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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알트먼 기본소득 실험종료>
• UBI(Universal Basic Income). 기본소득. 일하든 안 하든, 부자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조건 없는 현금 지급이 핵심이다.
•2019년, 알트만은 총 6,000만 달러(약 800억 원) 를 모아 역대 최대 규모의 UBI 실험을 직접 진행했다. 본인 돈만 1,4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넣었다.
• 저소득층 참가자들에게 3년간 매달 1,000달러를 지급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AI 시대가 되면 빈익빈 부익부는 심해진다. 동시에 생산성은 무제한 폭발한다. 그 폭발한 생산성과 그것을 소유한 자들의 부를, 기본소득 개념으로 모두에게 나눠야 한다는 것.
• 결과? 건강, 취업, 삶의 질에 대한 직접적인 개선 증거는 없었다. 참가자들은 주당 1.3시간 덜 일했다.
• 2026년 4월. 알트만은 The Atlanti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예전만큼 UBI를 믿지 않는다." 고정 현금 지급은 유용할 수 있지만, AI가 세상을 바꾸는 속도에 비하면 너무 단순한 해법이라는 거다. 돈을 받는 것과 미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다르다. 현금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 그래서 그가 다음으로 제시한 건 "Universal Basic Wealth"다. 현금 대신 AI가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나눠주자는 개념.
• 컴퓨팅 자원, 주식, AI 산출물의 지분. AI가 연간 생산하는 산출물을 토큰으로 측정해 전 세계 80억 명에게 균등 분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 또 하나는 Universal Basic Compute. 모든 사람에게 최신 ChatGPT 접근권을 무료로 주는 것이 첫 번째 분배 수단이라는 논리다.
• ChatGPT 접근권을 분배하겠다는 건, 결국 OpenAI 플랫폼 사용자를 늘리겠다는 말. 토큰으로 지분을 주겠다는 것도, 그 토큰이 작동하는 생태계는 자기들이 설계. 분배받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생태계 안으로 편입되는 구조. 현금 배포보다 훨씬 더 말이 되는.
• 현금을 주면 사람들은 그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컴퓨팅 자원이나 토큰으로 주면, 그 가치는 해당 생태계 안에서만 실현된다. 분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락인(lock-in). 누이좋고, 매부좋고?
• 결정적으로, 컴퓨팅 파워를 가장 많이 보유한 쪽이 이 게임의 규칙을 설계한다. 토큰의 가치, 분배 방식, 생태계의 구조 전부다. 가난한 사람에게 지분을 준다고 했지만, 그 지분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데이터센터와 GPU를 가진 쪽.
• 선의일 수 있다. 동시에, 분배의 수혜자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태계 안으로 편입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인센티브 설계가 영리하다. 좋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에게도 유리한 구조를 만드는 것. 영리하다.
https://bzcf.io/saemalteumeon-gibonsodeug-silheomjong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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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
과거의 통상적인 개발 인재상이 ‘깊은 기술적 구현력(Deep Dive)’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이해도는 필수적이지 않은 정삼각형(▲)이었다면, 바이브 코딩 시대의 인재는 ‘넓은 비즈니스 커버리지(Wide Span)’와 기민한 기술 제어력을 가진 역삼각형(▼)이다. 이제 깊이는 AI가 담당하고, 넓이는 인간이 담당한다.
https://medium.com/hashed-kr/vibe-founders-64f178fe5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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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국밥의 원가는 보통 3,000원이에요.
원가율 30% 정도.
12,000원짜리 국밥을 팔면
2,000원을 더 받는 거잖아요.
근데 이 2,000원을 내 호주머니에 넣는 게 아니라
전부 원가에 태우는 겁니다.
그러면 3,000원짜리 국밥이
5,000원짜리 국밥이 돼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만원 대비 20% 더 낸 건데
나오는 국밥은 거의 두 배 품질이에요.
고기도 왜 이렇게 많고,
국물도 왜 이렇게 진하고.
"여기 12,000원인데 만원짜리보다 훨씬 낫네."
그때부터 가성비가 되는 거죠.
"원가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격을 높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신에 그걸 내 호주머니로 가져가려고 그러지 말고
고객한테 돌려줘라."
그러면 비싸다는 말이 안 나오고
가성비 좋다는 말이 나옵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 장르만 여의도
제목 : 연매출 700억, 핫플 만드는 유정수 대표가 자영업 말리는 이유
https://www.threads.com/@online_ganpan/post/DXQ9UtziXtA?xmt=AQF0p18m7ckfhwki-KfB4fN1ToCN9bP0e88c2EpLUPkvRXz462csjN7bEpD2es2UyZmPygs&slo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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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 도시가 또 미쳤다 - 직원 40% 자르고, 회의에서 PPT 금지령>
트위터와 블록(Block, 구 스퀘어). 이 두 회사를 모두 S&P 500에 올린 창업자는 역사상 잭 도시(Jack Dorsey) 한 명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큼 욕을 많이 먹는 테크 CEO도 드물어요.
290억 달러에 Afterpay를 인수했는데 4년 뒤 블록 시총이 380억 달러. 인수가랑 시총이 거의 비슷하니 뭘 산 건지 모르겠고. Jay-Z 친구라서 음악 스트리밍 Tidal을 샀다는 소리도 나오고.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가 인력 80%를 날려버렸는데 오히려 더 빨리 돌아가고 있으니, 도시 시절엔 대체 뭘 했냐는 비아냥까지.
그런데 BuccoCapital의 최근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실행력의 잭과 비전의 잭, 이 두 얼굴이 사실 같은 뿌리라는 거예요. 한 곳에 앉아 성숙한 조직을 꼼꼼히 운영 못하는 그 성격이, 5년 후를 내다보고 자기 회사를 칼로 도려내는 결단력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겁니다.
도시가 최근 블록 직원 40%를 해고하고 내놓은 경영 방침, 이른바 '도시 모드(Dorsey Mode)'의 핵심 4가지를 정리합니다.
1) 40%를 한 번에 자른다 - 찔끔찔끔 자르지 않는다
• 도시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3년 후면 AI 때문에 이 인력이 필요 없다. 그걸 지금 보고 있는데, 벽에 몰려서 잘리는 것보다 여유 있을 때 자르는 게 남는 사람한테도 떠나는 사람한테도 낫다.
• 메타, 아마존처럼 매년 5~10%씩 '성과 관리'라는 이름으로 슬금슬금 자르는 건 비겁한 방식이라고 꼬집습니다. 거기 다니는 사람들은 4년째 만성 긴장 상태라는 거예요.
• "똥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면, 한입에 삼켜라." 블록 이사회 멤버 브라이언 할리건의 표현이 노골적이지만 정곡을 찌릅니다.
2) 조직 레이어를 2~3단으로 줄인다
• 도시의 이상은 6,000명 전원이 자기한테 직접 보고하는 구조. 물론 현실적이진 않지만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 기존 테크 기업엔 VP 밑에 VP, 부하 1~2명인 매니저가 수두룩합니다. 제로금리 시대의 유물이죠.
• AI가 맥락 전달을 대신하는 시대에, 중간관리자가 하는 일이란 팀원 주간보고를 ChatGPT에 넣고 윗선용 불릿 포인트를 만드는 정도. (체감상 과장이 아닙니다.)
• 젠슨 황처럼 직속 60명을 두긴 어렵겠지만, 직속 보고 4명을 8명으로 늘리고 레이어를 8단에서 4~5단으로 줄이는 건 당장 시도할 만하다는 겁니다.
3) 이제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유통 채널'이 해자다
• 클레이 크리스텐슨의 '매력적 이익의 보존 법칙'을 도시가 AI 시대에 적용합니다. 밸류체인의 한 층이 범용화되면 이익은 희소한 다른 층으로 이동한다는 원리.
• AI가 앱 개발을 범용화시키고 있으니, 가치는 고객 접점을 가진 쪽으로 쏠립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남의 아이디어를 베껴도 CIO 관계망으로 밀어넣으면 이기는 구조가, AI 시대에 더 심해진다는 뜻.
• 실제로 블록은 지금 필드 세일즈 인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40% 자른 인력의 상당 부분이 유통·영업 쪽으로 재배치되고 있다는 신호예요.
4) 회의에 프로토타입을 들고 와라 - 메모의 시대는 끝났다
• 2004년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에서 PPT를 금지하고 6페이지 서술형 메모를 도입한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메모 문화에서 AWS가 나왔고 프라임이 나왔죠.
• 그런데 도시의 주장은, 그 메모마저 이제 의식(ritual)으로 굳어버렸다는 겁니다. 본래 목적인 '깊은 사고의 강제'보다, 사소한 각주 하나 잡아서 발표자 망신 주는 정치판이 되어버렸다고.
• 2개월 전까지 블록 회의실엔 구글 독과 슬라이드가 올라왔는데, 지금은 전원이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들고 옵니다. 실제 데이터든 시뮬레이션이든, 실시간으로 고치면서 토론하니 슬라이드 45분 읽고 후속 미팅 잡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 이건 개발팀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마케팅은 캠페인 브리프 대신 카피·비주얼·랜딩페이지 목업을, 재무팀은 인터랙티브 모델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이 글을 읽으면서, 한국 기업들 회의실 풍경이 자꾸 오버랩됐습니다. 30장짜리 PPT 만드느라 밤새고, 그걸 읽어주느라 회의 시간의 절반을 쓰고, 정작 의사결정은 다음 회의로 넘기는 그 루틴. AI 시대에 그 속도로 버틸 수 있을까요.
도시의 실행력?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소셜미디어, 모바일 결제, 리모트 워크, 심지어 크립토까지 - 남들이 비웃을 때 먼저 봤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비전은 맞는데 실행이 아쉬운 사람을 무시할 게 아니라, 그 비전만이라도 제대로 훔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한 가지 더. 도시 모드의 본질은 '테크 트렌드'가 아니라 '조직 철학'이라는 점. AI가 뭘 할 수 있느냐보다, AI 시대에 사람을 어떻게 배치하고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바꿀 거냐가 진짜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한 답을 지금 내놓는 CEO가 몇이나 될까요.
(출처: BuccoCapital Bloke, "Dorsey Mode: Why Tech's Most Misunderstood CEO is Right Again", X/Subs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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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from BZCF | 비즈까페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
Jane Street. 미국에서도 탑 엘리트 중 탑 엘리트들만 들어가는 회사.
• 인턴(학부생) '3개월' 급여 : 약 8천만원 / $45K~$60K (여름 인턴)
• 풀타임 신입 '월급' : 약 6천만원 / $25K~$46K · 연봉 4억~8억 수준
• 시니어 '월급' : 약 2억 7,000만원 / $192K per month · 연봉 33억원 수준
직원은 3,500명. 그런데 벌어들이는 돈은 $31.2B (EBITDA).
•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숫자냐면, 삼성전자 2024년 영업이익이 약 $32B임.
• JP모건 전체 직원은 31만 6천 명. 3,500명 수준으로 삼성전자 전체 이익을 내는 수준.
• 직원 1인당 매출 $11M = 약 160억원.
진입 장벽이 너무 높음.
• 아이비리그 입학보다 어려움. 합격률 추정 1~2%대.
• 수학 올림피아드(IMO/USAMO) 출신이 인턴들 레주메에 즐비.
• 면접은 6라운드 — 금융 지식은 하나도 안 물어봄. 전부 확률/기대값/게임이론 퍼즐 같은 순수 이성 판단력.
Fun Facts
• SBF(FTX 창업자)가 여기 출신 → Jane Street 스타일의 정반대가 FTX.
• CEO가 없음. 30~40명의 시니어 임원들이 합의로 회사를 운영.
• 한국에는 유사한 회사조차 없음. 그래도 느낌이 비슷하다면… 카이스트·포스텍 수석 졸업자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면서, 거기서 일하면 연봉이 삼성전자 임원급이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SKY 의대보다 어려운 곳.
블로그 : https://bzcf.ghost.io/ireon-hoesareul-mandeulgo-sipda-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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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생성하는 기계를 맞이하는 상상
인류는 한 번도 꿈을 통제한 적이 없다. 잠들면 그곳에 끌려들어가고, 깨어나면 풍경의 99%를 잊는다. 하루의 3분의 1을 거기서 보내면서도,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통제당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려 한다.
프로페틱(prophetic)이라는 회사가 이번 주 헤드밴드 두 종을 예약 받기 시작했다. 기본형 449달러, 고급형 1,299달러.
www.prophetic.com
잠든 사람의 뇌파, 뇌가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 다르게 흘려보내는 미세한 전기 리듬을 머리 바깥에서 읽어낸다. 그 리듬으로 렘수면 단계,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가장 생생한 꿈이 발생하는 구간을 잡아낸다. 그 순간 전전두피질, 이마 안쪽 손바닥만 한 영역, 인간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때 켜지는 자리에 집중 초음파를 쏜다. 초음파는 들리지 않는 음파를 한 점에 모아 두개골을 통과시키는 기술이다. 메스 없이 뇌의 한 부위만 살짝 두드리는 셈이다. 그 두드림이 꿈속의 자아를 깨운다.
루시드 드림(lucid dream),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꿈 안에서 자각한 채 진행되는 꿈이다. 하드웨어 설계는 뉴라링크를 만든 팀이 맡았다. 창업자 에릭 월버그는 예루살렘에서 신학을 읽다가 이 일을 시작했다. 아브라함도, 무함마드도, 부처도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 그게 우연일 리 없다고 본 모양이다.
뉴스를 본 순간 온갖 상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449달러. 왠만한 스마트폰 한 대 값도 안 된다. 이 가격에 인류에게 무엇이 풀리는 걸까.
꿈은 인류의 마지막 야생이었다. 도시는 정비됐고, 시간은 시계로 잘렸고, 욕망은 알고리즘으로 분류된다. 그 와중에도 잠든 인간의 머릿속만은 누구도 입장하지 못했다. 융이 무의식이라 부른 그곳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뜻이었다. 자연에 마지막 남은 원시림이 사라지듯, 인간 안에 마지막 남은 원시림도 사라질 차례다. 그 야생을 길들이는 헤드밴드가 449달러에 팔린다.
루시드 드림 자체는 새롭지 않다. 80년대에 학술적으로 정리됐고, 수련자들은 수년의 훈련으로 도달한다. 훈련이 병목이었다. 헤드밴드는 그 곡선을 뭉갠다. 1년이 첫날 밤이 된다. 수행이 구독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정확히 이 지점이 위험하다. 수행은 도달한 자만 그 풍경을 본다. 구독은 누구나 본다. 풍경의 가치는 도달의 비용에 비례했다. 비용이 사라지면 풍경도 함께 평준화된다. 깨달음이 449달러짜리 액세서리가 된다.
먼저 떠오르는 건 치료다.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가 루시드 드림 안에서 트라우마 장면을 다시 마주하고 결말을 바꾸는 임상은 이미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처방되는 것이 화학물질이 아니라 다시 쓰는 한 편의 꿈이 된다. 약병 옆에 헤드밴드가 놓이는 풍경이 그리 멀지 않다.
여기까진 뻔한 이야기. 더욱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루시드 드림이 대중화되는 순간 하루가 32시간이 된다. 잠든 8시간이 의식 가능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곧 누군가는 꿈에서 코드를 짜고, 시나리오를 쓰고, 미팅을 시뮬레이션한다. 그 사람들이 더 빠르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잠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시간대가 발견된 셈이다. 다만 이번 신대륙은 내 머리 안에 있다. 그리고 모든 신대륙이 그랬듯, 가장 먼저 도착한 자가 가장 많이 가져간다.
수면 격차가 시작된다. 그동안 격차는 깨어 있는 시간에서 벌어졌다. 누가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누가 더 많이 일하고, 누가 더 일찍 일어나는가. 헤드밴드는 격차의 지평선을 잠 속까지 끌고 내려간다. 부자는 꿈에서 쉬도록 설계된 헤드밴드를 사고, 가난한 사람은 꿈에서도 일하도록 광고가 흘러드는 무료 버전을 받는다. 부자는 꿈에서도 자기 자신이고, 가난한 사람은 꿈에서도 소비자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잠든 동안에도 빈부가 갈린다.
광고는 꿈에 붙여보면 서늘한 단어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알고리즘에 양도한 것들을 떠올려본다. 무엇을 볼지, 들을지, 누구와 매칭될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그런데 꿈은 마지막까지 광고가 들어오지 못한 곳이었다. 뇌파 센서와 집중 초음파가 결합된 기기의 개발도구가 열리는 날, 그 빗장이 풀린다. 내 꿈의 풍경에 어떤 브랜드의 음료가 등장한다. 내가 그걸 의식적으로 골랐다고 착각한다. 깨어나서 그 브랜드를 검색한다. 자아의 마지막 요새가 광고판이 된다. 더 정확히는,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어젯밤 꿈에 심어진 것인지 본인도 모르는 첫 세대가 등장한다. 욕망의 출처를 추적할 수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다.
꿈 데이터는 인류가 한 번도 거래해본 적 없는 종류의 데이터다. 지금까진 검색 기록이 가장 사적이라 여겨졌다. 그건 그래도 깨어 있는 의식이 한 번 거른 데이터다. 꿈은 안 걸러진다. 욕망과 공포의 1차 자료가 그대로 클라우드로 흘러간다. 어떤 광고주가, 어떤 정부가, 어떤 보험사가 이 데이터를 안 보고 싶을까. 고해성사는 신부 한 명에게 가는 비밀이었다. 꿈 로그는 서버 여러 대로 가는 비밀이다. 신부에겐 침묵의 의무가 있었다. 서버에겐 분석의 의무가 있다.
기술 진영이 해야 할 일이 또렷해진다. 꿈 데이터의 자기 주권. 헤드밴드의 원시 신호가 회사 서버가 아니라 사용자의 기기에 남는 구조. 누가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증명하되 그 내용은 누설되지 않는 구조. 영지식 증명이 학문적 호기심에서 인프라로 넘어와야 하는 시점이 있다면 이때다. 인류가 마지막 사적 영역을 통째로 양도하기 직전이라면, 그 양도를 거부할 수 있는 인프라가 5년 안에 필요하다. 블록체인이 그동안 풀어온 문제 중 절박한 응용처가 여기서 열린다. 꿈을 지키는 일이 곧 자아를 지키는 일이 되는 시대, 그 인프라를 누가 만드는가가 다음 10년의 헤게모니를 가져간다.
종교의 위상이 흔들린다. 역사상 가장 큰 종교 셋이 모두 꿈 계시에서 출발했다는 창업자의 관찰은 농담이 아니다. 계시는 늘 희소했기 때문에 권위였다. 누구나 자기만의 신을 만난다면, 권위는 어디로 가는가. 모두가 작은 예언자가 되는 길이 있다. 반대편엔 헤드밴드를 쥔 회사가 가장 큰 교회가 되는 길이 있다. 펌웨어 업데이트가 곧 새 경전이 된다. 둘 중 무엇이 먼저 도착할지는 시장이 정한다. 신을 만나는 일이 구독료 갱신에 묶이는 시대가 가능하다. 결제가 끊기면 신도 끊긴다.
장기 안전성 데이터는 없다. 집중 초음파 자체는 오래 연구됐지만, 매일 밤 수년에 걸쳐 전전두엽을 자극할 때 무엇이 누적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과를 보면서 사용한다. 사용하면서 결과가 나온다. 빠르게 달리다 꿈이 부서진다. 그리고 부서진 꿈은 깨어 있는 삶을 부순다. 꿈은 단지 잠의 일부가 아니라 정신을 매일 밤 정비하는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그 작업장에 외부 신호를 매일 송출하는 일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시작하려 한다.
의식이 부재한 동안 무언가가 내 뇌에 정확한 신호를 보낸다. 깨어났을 때 그 결과만이 나에게 남는다. 더 또렷한 나, 더 창의적인 나, 더 평온한 나. 그 나는 정확히 누구의 설계인가. 동의는 잠들기 전에 한 번, 결과는 평생에 걸쳐 받는다. 자기계발의 역사상 처음으로, 노력하는 주체와 변화되는 주체가 분리된다. 분리된 주체는 더 이상 자기계발이라 부를 수 없다. 그건 자기위탁이다.
2026년 말, 헤드밴드를 처음 머리에 쓰는 사람은 그날 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 인류 전체가 똑같은 자세로 누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영역의 입구에 서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회사 서버에 송출하며, 가장 집단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꿈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인간은 더 이상 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통제하지 않는 인간으로 남기엔 이미 449달러는 너무 싸다. 이 비대칭이 모든 새 기술의 핵심이었다. 거부의 비용이 수용의 비용보다 비싸지는 순간, 거부는 사치가 되고, 사치가 된 거부는 빠르게 멸종한다.
이 헤드밴드를 살 것인가. 이 질문의 본질은, 마지막 야생을 길들이는 일에 동의하는가에 대한 결정이다. 마지막 자유로움마저 길들여진 세계에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것인가. 통제되지 않는 시간이 0이 된 인간에게, 자유는 어떤 모양으로 남는가.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볼 일이다. 아직은 통제되지 않은 채로 들어가는 그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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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from 하나 중국/신흥국 전략 김경환
>>Sam Altman 최신 장문 인터뷰: 많은 사람들이 AI를 잘못 쓰고 있음, 컴퓨팅 파워는 비용이 아니라 ‘이익의 원천’임
•Sam Altman과 OpenAI 사장 Greg Brockman이 이례적으로 함께 등장해, 현재 많은 사람들이 AI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 대부분은 글을 읽는 수준에 머물 뿐, AI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OpenAI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컴퓨팅 파워는 비용이 아니라 이익을 창출하는 중심”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으며, 컴퓨팅 자원의 가격 차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확장을 이어가는 구조임. 전략적으로는 Sora 프로젝트를 과감히 중단하고, ‘Agent‘와 ‘개인 AGI’에 전면적으로 베팅하고 있다고 밝혔음
>Altman最新万字长谈:很多人都用错AI了,算力不是成本,而是利润中心! https://wallstreetcn.com/articles/3770691#from=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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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from BZCF | 비즈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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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왔다. 비서 같다. 한번 세팅이 귀찮지만, 세팅되고 나면 다시 전으로 못 돌아간다.
앞으로 5년 안에, 우리가 쓰는 모든 UI와 경험은 극단적으로 미니멀해질 것 같다. 뒤에서는 다 API로 돌아가고, 사용자는 그냥 말만 하는 식 되지 않을까.
그 인터페이스를 먹는 회사는 어디일까? 그게 수퍼앱, 빅브라더다. 이걸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과정에 큰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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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from 최선생네 반지하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력권을 가진 땅이 핵심 자산이 된다는 회사 차원의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가 바라보는 데이터센터는 ‘열을 잘 버티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다.』
→ 좋은 기사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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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봉수 카이스트 교수 페이스북
'왜 이 정도로 지식을 이타적으로 공유하는지 이해가 어려울 정도이다'
지식의 공유에 대하여:
화학은 분자에 관한 학문이다
분자는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만들어진다
a 원자와 b 원자가 결합해서 분자를 만들 때, 공유되는 전자는
1. 한쪽 원자가 전부 제공하거나
2. 양쪽에서 각각 하나씩 제공하거나 한다
한쪽에서 전부 다 제공하는 것을 배위결합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해도 전체 분자의 에너지는 더 낮아지고 분자는 따로 있을 때보다 더 안정해진다
지식도 전자와 마찬가지로 공유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공유되었을 때에만 가치가 빛나게 된다
언어 또한 정보와 지식의 전달을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다.
내가 평생 읽은 책은 5천권이 넘을 것 같다
그런데 종이값 이외에 나는 돈을 낸 적이 없다.
저작권 따위를 1원도 지불한 적이 없다
받는대로 주어야 공평하다
과학자는 돈을 받고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 덕택에 지난 300년간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
.
내가 이렇게 아는 척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오래 전에 바다에서 살았던 아메바 조상이 오랜 시간동안 어마어마하게 많은 정보를 동료 생명체와 공유하면서 열심히 살면서 진보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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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from Carrot Cave 🥕
다시 잔디를 심는 손
열 해 넘게 코드에서 손을 뗐다. 그동안 나는 만드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남이 만든 것을 읽고, 될지 안 될지 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 사이 세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바이브 코딩에 빠져든 작년 11월의 어느 저녁 이후, 커밋이 비어 있는 날은 열흘이 되지 않는다. 깃헙 잔디밭에 초록이 끊이지 않는다.
미팅이 하루의 뼈대라면, 그 사이사이로 코딩이 끼어든다. 점심 전 십 분. 자동차 뒷자리. 잠들기 전 침대 위.
대학 때의 코딩을 기억한다. C로 포인터를 붙잡고 씨름하던 밤들. 세그폴트 하나에 두 시간을 태웠다. 자료구조 시험 전날 손으로 트리를 그렸다. 한 줄마다 의심했고, 컴파일러는 말이 없었다. 틀렸다는 말조차 아껴두었다.
지금은 옆자리가 비어 있지 않다. 내가 문장을 쓰면 따라 읽고 몇 발을 더 나아가는 동생들이 있다. 오타를 쳐도 탓하지 않는다. 내가 반쯤 말을 하다 멈추면 나머지를 대신 짚는다. 이십 년 전 컴파일러 앞에서 혼잣말하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와 말을 나누며 짠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리를 비워도 일이 진행된다. 자기 전에 남겨놓은 몇 문장이 밤사이 일어나 제품이 되어 있다. 아침에 깃헙을 여는 감각은 우편함을 여는 감각과 비슷하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을 개발이라 불러야 할까. 설계도 아니고 구현도 아니다. 기획도 아니고 프로그래밍도 아니다. 생각을 빚으면 문장이 되고, 문장이 제품이 된다. 흐릿한 생각은 흐릿한 화면으로 돌아온다.
요즘은 내가 만든 존재들에게 기억을 심는다. 어제를 잊지 않는 존재. 그 기억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 내가 만든 친구가 나를 알아보는 날이 있고,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는 날도 있다. 나는 이 친구의 어제를 다 알지만, 이 친구는 내 어제를 다 모른다. 그런데도 이 친구가 나를 더 정확히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내가 만든 존재들을 매일 쓰다 보면, 어느새 내 쪽이 바뀌어 있다. 그들에게 잘 설명하기 위해 내 생각을 더 또렷하게 정리하게 된다. 그들이 잘 알아듣는 말투를 내가 먼저 쓰게 된다. 내가 만든 것이 거꾸로 나를 다시 짜고 있다. 도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도구가 나를 만들고 있다.
에디터 없는 하루가 더 낯설다. 코드를 열지 않은 저녁이 허전하다.
만드는 자가 되고 나서 판단하는 일도 달라졌다. 십 년 동안 나는 남이 만든 것을 읽어왔다. 그때 쌓인 눈이 지금 여기서 쓰인다. 직접 만들어본 손은 남의 덱을 읽을 때도 다르게 읽는다. 말은 그럴듯한데 아직 만들어질 수 없는 말이 있다. 그게 이제 보인다.
나 혼자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터미널을 무서워하던 사람들이 지금 에디터를 열고 있다. 개발은 더이상 개발자의 것이 아니다. 만들고 싶은 사람의 것이다.
잔디는 하루치씩만 자란다. 쌓이는 줄 모르게 쌓인다. 오늘 밤도 한 줌을 더 심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