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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Korea’s New FX Rules Renew Calls for More Fundamental Changes
외환수급 불균형 완화를 위한 이번 정부의 신규 조치는 단기적인 안정성을 가져다줄 뿐이며,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환당국이 이번에 내놓은 ‘외환수급 개선을 위한 추가 방안’에는 금융기관의 對기업 외환파생상품거래를 통한 위험헤지비율을 125%로 확대,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의 “김치본드” 매입 허용, 외국인 채권투자자에 대한 서류 간소화 등이 포함됐다.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고 해외 투자를 늘리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원화자산 수요 역시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규모는 2024년에 1.1조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이번 조치는 이같은 추세를 일부 반전시키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외환거래 주체들에게 심리적 안전판을 제공하고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외환시장 내 수급 흐름 자체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포함됐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특히 주식에 대한 국내 투자를 더 신중하게 고려하도록 하는 유도방안도 마련됐다. 국내 투자형 ISA에 대한 국내주식 의무투자 비율을 법정 한도인 40% 보다 상향하는 방안이다.
우리은행의 민경원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제도 개선이 정부가 지적한 외환수급 불균형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과 국내 거주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라며 해외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더 나은 산업 정책과 기업 지원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DB금융투자의 문홍철 연구원 역시 “근본적인 경제 체질”의 변화 없이는 원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의 제한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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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daq down 3.83% overnight. Korea futures opening at -2.8%.
Me? Just sipping my coffee, pretending it's all part of the p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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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stor Positioning: Bond Market’s Trump Trade Is Looking Like a Recession Play
채권 트레이더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한 관세 도입혼란과 연방정부의 인력 감축이 성장 둔화를 더욱 부추기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침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경기 확장을 위해 부양책을 쏟아부음으로써 미국채 금리 상승 압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추측은 대통령 취임 두 달이 채 안돼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대신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경기 악화를 막기 위해 빠르면 5월부터 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이라는 기대로 단기 국채를 매수하고 있다. 이에 2년물 미국채 금리는 2월 중순 이후 크게 하락했다.
TD 증권의 미국 금리 전략 책임자 Gennadily Goldberg는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가 다시 가속화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곤했는데, 지금은 갑자기 리세션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시장은 성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채권시장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미국밖 해외의 성장 둔화둔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놀랍게도 경제가 견조하다는 것이 주요 원동력이었다. 처음에는 대선 결과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라고 투자자들이 당초 생각했기 때문에 ‘트럼프 트레이드’의 기둥인 성장 가속화와 인플레이션 전망을 배경으로 채권 금리가 지난해 말 급등했다.
그러나 2월 중순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큰 불확실성을 가져옴에 따라 미국채 금리가 하락중이다. 단기채를 중심으로 금리가 하락하고 일드커브는 스티프닝됐다. 이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정책 완화에 착수할 것이라는 기대속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으로,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쇼크를 가져오며 세계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로인해 지난주 증시 매도세가 일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인상 발효를 다시 연기한 후에도 주가 하락은 계속됐다. 연방정부의 연방기관에 대한 자금 지원 자제 노력과 수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하는 행정부 노력도 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
블랜디 와인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Tracy Chen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순서, 즉 우선 관세 인상 후 감세가 뒤따르는 것으로 인해 불황 리스크가 분명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채권 트레이더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경기 침체에 대비해 여러 차례 준비를 해 왔지만, 실제로 경제가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타격을 입었었다. 지금은 연내에 3차례에 걸쳐 25bp씩의 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연준이 경기 침체 대응 모드에 들어갔다고 보기에 충분하지 않다. 파월 연준 의장은 7일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통화 완화책을 서둘러 재개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번 주 발표되는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2.9% 상승하여 미국 금융당국의 2% 목표를 웃돌 전망이며, 인플레이션 지표가 채권금리에 상승 압력을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애틀랜타 연준의 예측 모델 ‘GDP 나우’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3월(1분기)에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는 등 경기 둔화 징후가 꾸준히 쌓이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7일 발표한 2월 고용 통계에서는 고용 증가세가 견조한 모습을 보였지만 노동 시장이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타났다. 연방 정부의 고용 감소 속에 파트타이머가 급증했다.
채권 시장의 방향성은 향후 수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어떻게 모양을 갖출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7일, 정부 정책에 따라 경제에 혼란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 인정했지만 장기적 전망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블랜디 와인의 Chen은 “관세 전쟁에 앞서, 시장에서는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것은 큰 변화다”라고 말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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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Iran-Contra Paved the Way for Trump to Defy Democratic Norms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워터게이트만큼의 파급력과 기억도를 얻지는 못했다. 워터게이트처럼 극적인 대통령의 악행과 사임이 뒤따른 것도 아니었고,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역사 애호가나 시민 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앨런 맥퍼슨의 새 책 『The Breach』는 그런 통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콘트라는 냉전 말기의 해프닝이나 단순한 안보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2019년 트럼프 첫 탄핵 국면을 지켜보며 이란-콘트라에 다시 집중했고, 트럼프 2기 초기가 지나면서 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부패와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 등은 최근 벌어지는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이란-콘트라는 사실상 두 개 스캔들의 결합체다. 첫째, “이란”은 인질을 석방시키려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판매한 일이다. 미국은 인질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에 무기를 파는 건 금지였으며, 그나마도 효과가 없었다. 둘째, “콘트라”는 니카라과 반군에게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한 사건으로, 의회가 반군 지원을 막는 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어겼다.
의회와 법률을 무시하려면 비밀스러운 구조가 필요했고, 이는 정상적인 정부 관료제 대신 백악관 측근과 민간 인사들이 주도했다. 맥퍼슨은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더 엔터프라이즈”라는 민간회사가 무기 판매 수익 일부를 챙겼고, 반군 지원 자금 역시 뒷거래나 모금 행사로 걷혔는데,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100명 넘는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물러났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일행정부 이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는 해석으로, 의회나 독립 관료제의 견제를 무시하는 논리다. 이란-콘트라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된 대표 사례였다. 레이건은 관료와 국회를 우회하며 소수 측근으로 정책을 몰아갔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나중에 법률 자문을 받거나, 문서를 파쇄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레이건이 어느 정도까지 무기 판매 대금을 반군에 전용하는 ‘디버전’을 알았는지는 끝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인질과 무기 교환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결국 청문회와 수사, 재판으로 수년간 소동이 이어졌으나, 최종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스캔들 규모에 비해 형사처벌은 미미했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혁하거나 의회 견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맥퍼슨은 이를 “민주주의가 이런 전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반대 메시지를 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고,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후 정치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실무자 다수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 후속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권력 집중과 은밀한 안보 작전을 주도했다. 대통령 사면권과 같은 제도도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기관이나 관료제가 의회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두 시점을 똑같이 놓기는 어렵고, 레이건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란-콘트라는 현재 상황의 서막”이라는 맥퍼슨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이 스캔들이 보여준 행태와, 지금 벌어지는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 관료 배제, 의회 약화, 사실 왜곡, 공공자원 사유화 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콘트라는 “이런 식의 불법과 은폐를 민주주의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탈 없다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1992년 테드 드레이퍼가 말했듯, “미국 헌정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는 이란-콘트라 이후 정치인들이 무리수를 둬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건 주동자들이 처벌은커녕 이후 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이다. 일부는 사면을 받고, 일부는 보수 진영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무부에서도 젊은 보수 변호사들이 성장해 이후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려 했고, 딕 체니 같은 인사는 의회에서 사건을 방어함으로써 자신과 동조자들의 권력 강화 노선을 뒷받침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법 해석을 비밀리에 비틀어 고문을 합리화하거나 영장 없는 도청을 수행했고, 여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면서 사익이 개입될 여지도 늘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란-콘트라가 경고한 세상에 접어든 형국이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과 권력을 나누며, 의회는 옆길로 밀려나고, 관료들은 무력화된다. 책임 추궁이 이뤄질 장은 법원뿐이지만, 대법관 다수가 레이건 또는 부시 행정부 출신이고, 이들은 작년 7월 대통령의 공적 권한 사용 범죄에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란-콘트라가 우리 현재의 전조였다는 맥퍼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그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런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놓쳤고, 반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선례가 남았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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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일행정부 이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는 해석으로, 의회나 독립 관료제의 견제를 무시하는 논리다. 이란-콘트라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된 대표 사례였다. 레이건은 관료와 국회를 우회하며 소수 측근으로 정책을 몰아갔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나중에 법률 자문을 받거나, 문서를 파쇄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레이건이 어느 정도까지 무기 판매 대금을 반군에 전용하는 ‘디버전’을 알았는지는 끝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인질과 무기 교환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결국 청문회와 수사, 재판으로 수년간 소동이 이어졌으나, 최종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스캔들 규모에 비해 형사처벌은 미미했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혁하거나 의회 견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맥퍼슨은 이를 “민주주의가 이런 전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반대 메시지를 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고,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후 정치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실무자 다수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 후속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권력 집중과 은밀한 안보 작전을 주도했다. 대통령 사면권과 같은 제도도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기관이나 관료제가 의회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두 시점을 똑같이 놓기는 어렵고, 레이건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건 전개 속도나 최종 결과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란-콘트라는 현재 상황의 서막”이라는 맥퍼슨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이 스캔들이 보여준 행태와, 지금 벌어지는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 관료 배제, 의회 약화, 사실 왜곡, 공공자원 사유화 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콘트라는 “이런 식의 불법과 은폐를 민주주의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탈 없다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1992년 테드 드레이퍼가 말했듯, “미국 헌정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는 이란-콘트라 이후 정치인들이 무리수를 둬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건 주동자들이 처벌은커녕 이후 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이다. 일부는 사면을 받고, 일부는 보수 진영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무부에서도 젊은 보수 변호사들이 성장해 이후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려 했고, 딕 체니 같은 인사는 의회에서 사건을 방어함으로써 자신과 동조자들의 권력 강화 노선을 뒷받침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법 해석을 비밀리에 비틀어 고문을 합리화하거나 영장 없는 도청을 수행했고, 여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면서 사익이 개입될 여지도 늘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란-콘트라가 경고한 세상에 접어든 형국이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과 권력을 나누며, 의회는 옆길로 밀려나고, 관료들은 무력화된다. 책임 추궁이 이뤄질 장은 법원뿐이지만, 대법관 다수가 레이건 또는 부시 행정부 출신이고, 이들은 작년 7월 대통령의 공적 권한 사용 범죄에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란-콘트라가 우리 현재의 전조였다는 맥퍼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그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런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놓쳤고, 반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선례가 남았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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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Iran-Contra Paved the Way for Trump to Defy Democratic Norms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워터게이트만큼의 파급력과 기억도를 얻지는 못했다. 워터게이트처럼 극적인 대통령의 악행과 사임이 뒤따른 것도 아니었고,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역사 애호가나 시민 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앨런 맥퍼슨의 새 책 『The Breach』는 그런 통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콘트라는 냉전 말기의 해프닝이나 단순한 안보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2019년 트럼프 첫 탄핵 국면을 지켜보며 이란-콘트라에 다시 집중했고, 트럼프 2기 초기가 지나면서 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부패와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 등은 최근 벌어지는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이란-콘트라는 사실상 두 개 스캔들의 결합체다. 첫째, “이란”은 인질을 석방시키려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판매한 일이다. 미국은 인질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에 무기를 파는 건 금지였으며, 그나마도 효과가 없었다. 둘째, “콘트라”는 니카라과 반군에게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한 사건으로, 의회가 반군 지원을 막는 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어겼다.
의회와 법률을 무시하려면 비밀스러운 구조가 필요했고, 이는 정상적인 정부 관료제 대신 백악관 측근과 민간 인사들이 주도했다. 맥퍼슨은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더 엔터프라이즈”라는 민간회사가 무기 판매 수익 일부를 챙겼고, 반군 지원 자금 역시 뒷거래나 모금 행사로 걷혔는데,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100명 넘는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물러났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일행정부 이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는 해석으로, 의회나 독립 관료제의 견제를 무시하는 논리다. 이란-콘트라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된 대표 사례였다. 레이건은 관료와 국회를 우회하며 소수 측근으로 정책을 몰아갔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나중에 법률 자문을 받거나, 문서를 파쇄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레이건이 어느 정도까지 무기 판매 대금을 반군에 전용하는 ‘디버전’을 알았는지는 끝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인질과 무기 교환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결국 청문회와 수사, 재판으로 수년간 소동이 이어졌으나, 최종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스캔들 규모에 비해 형사처벌은 미미했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혁하거나 의회 견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맥퍼슨은 이를 “민주주의가 이런 전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반대 메시지를 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고,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후 정치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실무자 다수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 후속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권력 집중과 은밀한 안보 작전을 주도했다. 대통령 사면권과 같은 제도도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기관이나 관료제가 의회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두 시점을 똑같이 놓기는 어렵고, 레이건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건 전개 속도나 최종 결과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란-콘트라는 현재 상황의 서막”이라는 맥퍼슨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이 스캔들이 보여준 행태와, 지금 벌어지는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 관료 배제, 의회 약화, 사실 왜곡, 공공자원 사유화 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콘트라는 “이런 식의 불법과 은폐를 민주주의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탈 없다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1992년 테드 드레이퍼가 말했듯, “미국 헌정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는 이란-콘트라 이후 정치인들이 무리수를 둬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건 주동자들이 처벌은커녕 이후 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이다. 일부는 사면을 받고, 일부는 보수 진영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무부에서도 젊은 보수 변호사들이 성장해 이후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려 했고, 딕 체니 같은 인사는 의회에서 사건을 방어함으로써 자신과 동조자들의 권력 강화 노선을 뒷받침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법 해석을 비밀리에 비틀어 고문을 합리화하거나 영장 없는 도청을 수행했고, 여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면서 사익이 개입될 여지도 늘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란-콘트라가 경고한 세상에 접어든 형국이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과 권력을 나누며, 의회는 옆길로 밀려나고, 관료들은 무력화된다. 책임 추궁이 이뤄질 장은 법원뿐이지만, 대법관 다수가 레이건 또는 부시 행정부 출신이고, 이들은 작년 7월 대통령의 공적 권한 사용 범죄에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란-콘트라가 우리 현재의 전조였다는 맥퍼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그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런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놓쳤고, 반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선례가 남았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워터게이트만큼의 파급력과 기억도를 얻지는 못했다. 워터게이트처럼 극적인 대통령의 악행과 사임이 뒤따른 것도 아니었고,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역사 애호가나 시민 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앨런 맥퍼슨의 새 책 『The Breach』는 그런 통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콘트라는 냉전 말기의 해프닝이나 단순한 안보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2019년 트럼프 첫 탄핵 국면을 지켜보며 이란-콘트라에 다시 집중했고, 트럼프 2기 초기가 지나면서 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부패와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 등은 최근 벌어지는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이란-콘트라는 사실상 두 개 스캔들의 결합체다. 첫째, “이란”은 인질을 석방시키려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판매한 일이다. 미국은 인질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에 무기를 파는 건 금지였으며, 그나마도 효과가 없었다. 둘째, “콘트라”는 니카라과 반군에게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한 사건으로, 의회가 반군 지원을 막는 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어겼다.
의회와 법률을 무시하려면 비밀스러운 구조가 필요했고, 이는 정상적인 정부 관료제 대신 백악관 측근과 민간 인사들이 주도했다. 맥퍼슨은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더 엔터프라이즈”라는 민간회사가 무기 판매 수익 일부를 챙겼고, 반군 지원 자금 역시 뒷거래나 모금 행사로 걷혔는데,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100명 넘는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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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여러 조사—대통령 직속 위원회, 의회의 합동 청문회(텔레비전 생중계), 독립 검사, 형사 재판—가 진행됐지만, 백악관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기밀을 해제하지 않거나, 필요 최소한의 협조만 했다. 증언이 강제되거나 면책 거래가 이뤄졌을 때, 관련자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티기도 했다.
결국 이 장기적·복잡한 수사가 스캔들 열기를 서서히 식혔고, 레이건 지지율이 급락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큰 손실 없이 넘어갔다. 부통령 조지 H.W. 부시는 “나는 상황을 잘 몰랐다(not in the loop)”고 주장해 1988년 대선에서 쉽게 승리했다. (그는 실제론 이란 거래에 대해 “나는 이 디테일을 충분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 일기에 적었으며, 1985년엔 반군 지원을 위해 온두라스에 “인센티브”를 제시하러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란-콘트라 이후, 의회가 행정부를 보다 확실히 견제하도록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0년 정보법(Intelligence bill)에서 “의회에 ‘적시에(timely)’ 알린다는 것의 정의를 48시간 이내 보고로 한다” 정도의 사소한 수정이 있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서명하지 않았다.
형사 책임 문제도 흐지부지 끝났다. 위증(perjury) 혐의로 유죄 인정한 몇몇 인물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지역사회 봉사명령 같은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올리버 노스가 2년 집행유예, 1,200시간 봉사, 벌금 15만 달러로 가장 무거운 편이었지만, 항소심에서 절차상 문제로 뒤집혔다. 결국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부시 대통령이 남은 여섯 사건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이란-콘트라와 관련해 실제 수감된 사람은 세금 신고서에 해외계좌를 누락한 전 CIA 요원 한 명뿐이었으며, 형량은 16개월이었다.
3. 트럼프식 정치와 이란-콘트라의 기시감
“행정부가 관료 조직을 적대시한다, 의회를 배제한다, 정책을 중앙집권화하고 사유화한다, 사면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공공연한 거짓말과 부패에 대한 가능성…” 오늘날 트럼프 2기 행정부 초기 상황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란-콘트라 시절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렇다고 두 시점을 완전히 동일선 상에 놓기는 어렵다. 지금 벌어지는 행정부 권력 집중은 레이건 시절보다 더 방대해 보이며, 레이건의 예산관리국(OMB)이 연방 규제에 엄격한 비용편익분석을 도입한 것에 비해, 트럼프의 OMB 책임자는 연방공무원에게 “고통(trauma)을 주겠다”는 식이고, DOGE(정부효율부) 감축 논리도 불투명하다. 또 현재는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어 전체 그림을 단정하기에도 이르다.
그러나 맥퍼슨의 주장대로, 이란-콘트라는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의 전조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스캔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이런 식의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였지만, 반대로 결과적으로는 “이 정도 하는 건 괜찮다”는 신호를 주었다. 1992년에 이란-콘트라 초기 역사를 쓴 테드 드레이퍼(Ted Draper)는 “미국의 헌정민주주의가 만약 붕괴된다면, 우리가 이젠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질지 더 잘 알게 됐다”고 쓴 바 있다. 실제로 이란-콘트라는 정치인들에게 큰 교훈을 안겼다 — “행정부 내부를 조금만 뒤틀어도 많은 편의를 얻을 수 있고, 법은 유연하며, 무리수를 둬도 큰 징벌이 없다.”
즉, 이란-콘트라는 후속 세대 정치인들에게 “괜찮다”는 선례를 남겼다. 스캔들 핵심 책임자들은 쫓겨나거나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이후 잘나가게 되었다. 예컨대 엘리엇 에이브럼스(Elliott Abrams)는 의회에 정보 제출을 두 번이나 누락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지만, 부시가 그를 사면했고,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이라크전 옹호)와 트럼프 행정부 1기(베네수엘라·이란 특사)에서 요직을 맡았다. 올리버 노스(Oliver North)는 보수 진영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폭스뉴스(Fox News)에서 진행자로 활약했다. 폭스 뉴스의 오너 로저 에일스(Roger Ailes) 역시 이란-콘트라 당시 조지 H.W. 부시를 위한 미디어 컨설턴트였고, “스캔들 관련 질문이 오면 언론 탓을 해 공격적으로 회피하라”고 조언했다. 이 방식은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널리 쓰이게 된다.
법률가들도 배우는 게 있었다. 에드윈 미즈의 법무부는 의도적으로 보수적인 젊은 법률가를 대거 영입해 연줄·경력을 쌓게 했다. 이란-콘트라 시기 법무부는 “아주 학구적 분위기”였다고 스티븐 칼라브레시(Steven Calabresi)가 회고한다. 그는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를 공동 창립하고 단일행정부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을 주창한 대표적 학자다. (2008년 저서에서 그는 부시의 이란-콘트라 사면을 “단일행정부의 승리”로 묘사했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에도 이들 보수 법률가들이 법조계와 학계를 장악했고,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 주최로 ‘권력분립’을 주제로 한 학술모임을 열었는데, 그곳에 이란-콘트라 담당 변호사들이 여럿 강사로 나왔다.
딕 체니(Dick Cheney) 역시 그와 사상을 공유했다. 레이건 행정부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란-콘트라 청문회를 주관한 의회 측 인사(와이오밍 하원의원)로서 행정부를 옹호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사건의 책임을 “의회가 외교정책에서 대통령 권력을 침해했기 때문”이라는 보고서 초안(소수 의견)을 내며 대통령 권력 강화 노선을 지지했다. 포드 행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하며 강력한 대통령제를 옹호해 온 그가, 이 사건을 기회 삼아 레이건 진영과 협력했고, 당시 보좌관이던 데이비드 애딩턴(David Addington)이 이후 그의 오른팔이 되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 시절 식의 비밀·독점적 통치 방법을 테러와의 전쟁에 적용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때 이란-콘트라가 예고한 것과 상당히 닮아 있다. 대통령은 소수 측근과 준(準)정부 인사들을 통해 권력을 사유화하고, 연방 관료제는 부차적 존재로 전락했다. 의회는 이란-콘트라 때의 청문회만큼조차도 활발히 나서지 않는다. 결국 책임을 묻는 장은 법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것 또한 확실한 위안은 아니다. 현 대법관 아홉 명 중 다섯 명이 레이건 또는 조지 W. 부시 시절 행정부 변호사 출신이며, 이들은 2024년 7월 대통령이 공적 권한을 쓰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맥퍼슨이 말했듯, 이란-콘트라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서막이었다. 이 스캔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이런 식의 정치 행태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였으나, 그 반대 결과—“사실 괜찮다”—가 되어버렸다. 이란-콘트라에 대한 초기 종합역사를 쓴 테드 드레이퍼(Ted Draper)는 1992년, “만약 미국의 헌정민주주의가 언제고 전복된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젠 좀 알게 됐다”고 평했다. 실제로 이란-콘트라는 정치인들에게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큰 재량을 발휘할 수 있고, 법률은 유연하며, 무리수를 둬도 큰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교훈을 심어준 셈이다.
즉, 이란-콘트라 이후 “부정적 결과 없이” 법 테두리를 넘나드는 행태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지금의 상황이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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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Iran-Contra Paved the Way for Trump to Defy Democratic Norms
1. 이란-콘트라 사건은 어떻게 트럼프가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할 길을 열었나
이란-콘트라(Iran-Contra)는 미국 역사상 중요한 정치 스캔들 중 하나로 종종 꼽히지만, 워터게이트에 비해 그 영향이 제대로 평가되지는 못해 왔다. 워터게이트가 흔히 “대통령의 악행과 헌정 위기, 명확한 증거, 그리고 사임”이라는 극적 요소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다면, 이란-콘트라는 방대한 청문회 자료와 수사 기록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냉전 시대의 뒷이야기 정도”로 여겨지거나 “보수 강경파 안보 관료들이 몇 가지 법률을 약간 어겨 무기를 팔고 ‘자유 투사’를 도왔던 사건”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이렇다 보니 “대체 뭐가 문제였느냐”라는 반응도 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인기와 평판은 이 스캔들에도 크게 타격받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에 계속 관심을 두는 이들은 역사를 좋아하는 매니아들과 ‘시민 윤리’에 집착하는 일부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새로 나온 책은 이 같은 시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앨런 맥퍼슨(Alan McPherson)의 『The Breach: Iran-Contra and the Assault on American Democracy』(노스캐롤라이나대 출판부, 3월 4일 발간)는 이란-콘트라를 “냉전 말기의 일시적 해프닝이나 잘못된 국가안보 정책 사례” 정도로 바라보면 안 되고, 오히려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핵심적 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맥퍼슨이 이 사건에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첫 탄핵 사태를 지켜보면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트럼프 2기(제2기 대통령 임기) 초기 몇 주가 지난 지금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맥퍼슨의 설명대로라면 이란-콘트라는 극단적 행정부가 미국 민주적 통치방식을 공격한 사례였고, 그 결과인 ‘부패,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장면들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2. “이란”과 “콘트라”라는 두 개의 스캔들
이란-콘트라는 사실 두 개의 스캔들이 묶여 있는 사건이다. 첫째, “이란” 파트는 무기를 몰래 이란에 판매해, 그 대가로 레바논의 이란 우호 세력이 억류하고 있던 미군 인질을 석방시키려 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은 무기금수 대상이었으며, ‘무기수출통제법(Arms Export Control Act)’ 위반이기도 했다. 더구나 이 시도는 결국 효과가 없었다. 인질 3명이 풀려났지만, 곧바로 다른 3명이 잡혀 버렸다.
둘째, “콘트라” 파트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을 전복하려는 우익 반군(콘트라)에게 무기를 비밀리에 지원한 사건이다. 이는 미국 의회가 “미 정보기관이 콘트라를 지원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규정한 ‘볼란드 수정안’을 위반했다.
의회나 법률을 무시하려면 은밀히 움직여야 했고, 이는 곧 행정부의 관료 시스템을 배제한다는 의미였다.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 일부를 비롯한 소수의 백악관 측근들이 정책을 독점하며, 관(官)이 아닌 민간 동조자들이 핵심 역할을 맡았다. 맥퍼슨은 이렇게 비밀리에 운영된 구조에서 부패가 만연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이란에 무기를 팔아 억류자 석방을 노리던 과정에서 “더 엔터프라이즈(The Enterprise)”라는 소규모 민간회사가 수수료를 부풀려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챙기는 식이었다.
콘트라 지원 자금도 비슷하게 수상쩍은 방식으로 처리됐다. 국세 면제(nonprofit) 단체 “국가자유수호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Preservation of Liberty)”이 워싱턴 DC에서 기부금 행사를 열고 부유한 공화당 기부자들에게 세금 공제 혜택을 미끼로 돈을 모았는데, 1,000만 달러 중 실제 콘트라에게 전달된 건 450만 달러뿐이었다. 나머지는 직원들 몫이 되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3,200만 달러, 브루나이 술탄이 1,000만 달러를 지원했는데, 후자의 경우 잘못된 계좌번호를 안내받아 돈이 스위스 해운업계 거물에게 들어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현장에서 반군 지원을 맡던 전 CIA 요원 한 명은 “더 엔터프라이즈가 콘트라를 착취하고 있었다. 싸구려 무기를 비싸게 팔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 이러한 부패는 드물지 않았다. 맥퍼슨에 따르면 레이건 시절 백악관에서 100명 이상이 부패 의혹으로 사임·해임되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공직의 사익(私益) 이용을 막으려 여러 윤리법을 도입해 왔고, 정치적 중립·안정성을 지닌 관료제를 구축해 온 바 있다. 또한 입법·행정·사법 권력의 분립이 대통령 권력 남용을 막는 최종 안전장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정부 규제 철폐(deregulation)’를 핵심 의제로 내건 레이건 행정부는 이런 통치 철학과 정면 충돌했다. 레이건은 선거 유세에서 “워싱턴 관료들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고, 아이들을 버스로 이동시키며, 강력한 국방에 대한 요구를 조롱한다”고 비난했고, 취임 직후 곧장 공무원 채용동결과 연방정부 인력 감축을 지시했다. 같은 날, 법을 위반하면서 15명의 감찰관(Inspectors General)을 전원 해임했다(그리고 “쓰레기를 찾아내는 자(waste & mismanagement)에 대해 맹수처럼 굴길 바란다”는 이유로 자기 사람을 기용). 이후 여러 행정명령을 통해 모든 부처의 규제를 백악관 예산관리실(OMB)이 통제하도록 중앙집권화했다.
이는 대통령 권한의 새로운 해석, 즉 ‘단일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과 맞닿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헌법상 행정부 모든 권한은 오직 대통령에게 귀속된다. 이는 의회를 배제하고 관료제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대 법무장관이던 에드윈 미즈(Edwin Meese)는 “독립기관 자체가 위헌일 수 있다”고까지 말했으며, 이란-콘트라가 바로 그런 발상의 실천판이었다. 의회를 무시하고 정책을 백악관 내 소수 그룹이 장악했다.
통상, ‘대통령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만 관료는 선출되지 않았다’는 주장 아래 유니터리 행정부론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란-콘트라는 강력한 행정부가 얼마나 비밀리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이란과 콘트라 스캔들이 1986년 가을 터지자 관련자들은 문서를 파쇄·음성메시지 삭제·이메일 삭제 등 증거인멸에 나섰다(백업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지만).
여기서 결정적으로 레이건 대통령이 어느 정도 이 모든 과정(이란 무기판매 수익을 콘트라에 돌린 ‘디버전(Diversion)’)을 알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낼 ‘스모킹 건(smoking gun)’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스캔들의 핵심 이슈인 “무기 판매 수익을 니카라과 반군에게 흘려보냈다”를 대통령이 알았는지 여부는 흐지부지되었고, 그 덕에 레이건은 큰 정치적 타격을 입지 않았다.
사실 레이건은 처음엔 완전히 부인했다: “우리는 (인질 석방을 위해) 무기나 그 어떤 것도 교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거나, 최소한 오해를 부추기는 말이었다. 배우 출신이던 레이건은 사실관계 파악에 서투르거나 무심했을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그의 측근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지만,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고 평했다. 예를 들어 그가 일기에 “가짜 뉴스”와 “언론의 상어들”을 맹비난하며 음모론에 빠져 있다는 정황이 있다. 국가안보회의(NSC) 요원 올리버 노스(Oliver North)는 “(레이건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와 같은 ‘진실과 환상을 뒤섞는’ 태도가 결국 의회나 검사, 법정 등에서 사실 규명을 어렵게 했다. 레이건이 기억력이 나쁘다는 점도 한몫했다. (“내 마음과 최선의 의도가 말하길, 무기와 인질을 맞바꾸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증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라는 레이건의 명언이 이를 상징한다.) 극작가 스티브 테시치(Steve Tesich)는 1992년 『더 네이션(The Nation)』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콘트라를 “새로운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사회”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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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를 협상카드 삼아 오락가락 하면서 오히려 시장 불안과 변동성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25% 관세를 한달 유예하기로 했지만 뉴욕증시는 냉담했고, 나스닥 100 지수는 급락해 약 2주만에 10% 조정에 임박했다.
트럼프는 시장 혼란을 일축하며 주식매도세 배후로 “세계주의자들”을 지목했다. FHN은 정책 혼선에 “변동성이 유일한 확실성”이라고 진단했다.
간밤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약 2원 오른 1,447원 부근에서 마감했다. 유로 등 주요 통화 강세 속에 달러지수는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으나 원화는 글로벌 통화 움직임에 다소 소외된 흐름이었다.
KB증권은 원화가 쉽사리 강세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며,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될 경우 달러-원은 최근의 달러 하락과 엔화 강세와 함께 1,400원대 초반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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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cy: US Weighs One-Month Delay of Auto Tariffs on Canada, Mexico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1개월 면제한다고 백악관이 현지시간 수요일 밝혔다.
“우리는 USMCA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자동차에 대해 1개월 면제를 제공할 것이다”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말했다. 또한 ”상호 관세는 4월 2일에 발효될 예정이지만, USMCA와 관련된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경제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1개월 동안 면제를 줄 것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 행정부 관계자들이 화요일 포드자동차,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대표들과 만나 관세 문제를 논의했으며, 관세 감면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회의가 수요일 백악관에서 열린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포드와 GM, 스텔란티스는 논평을 거부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뒤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주가는 급등했다. 스텔란티스는 장중 한때 8% 넘게 뛰었고, GM은 6%, 포드는 4.5% 올랐다.
미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트럼프 관세를 중단하거나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주부터 시행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로 자동차 가격이 즉시 거의 수천 달러 오르고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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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cy: China Sets GDP Target at About 5%, Despite US Tariffs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로 약 5% 수준을 설정한 것으로 블룸버그가 확인한 정부 연례 업무 보고서 사본에 나왔다. 이 같은 목표치는 미중 무역 전쟁에 맞서기 위해 중국 정부가 더 많은 경기 부양책을 쏟아낼 것이라는 기대를 높여주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또 올해 재정 적자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약 4% 수준인 5.66조 위안으로 설정했다. 이는 1994년 정부 예산 개편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며, 블룸버그 서베이의 이코노미스트들의 추정치(4%)에 거의 부합한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10%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기로 결정한지 하루 뒤인 오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연다.
수십 년 동안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온 중국이 이러한 암묵적인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적자 수치를 설정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수출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수 활성화를 위해 비전통적인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리창 총리는 이날 전인대에서 이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공식적으로 경제성장 목표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여기에는 전세계 상품 가격과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국 정부의 재정 및 통화 부양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의 단서도 포함될 예정이다.
현재 중국 경제는 1960년대 이후 가장 길게 이어지고 있는 디플레이션과 아직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동산 부진 사태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 입수한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듯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공식 목표치를 약 2% 수준으로 낮췄는데,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목표치다.
한편, 중국은 지난해 1조 위안에 이어 올해도 1조3000억 위안 규모의 초장기 특별 국채를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도 나왔다. 또 국영 은행의 자본을 강화해 이들이 대출을 늘려 경제 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5000억 위안 규모로 추가 특별 국채를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지방 정부는 인프라 투자, 토지 및 미분양 주택 매입 등을 위해 4조4000억 위안 규모의 신규 특별 지방채 발행을 할 수 있게될 전망이다. 지난해 쿼터인 3조9000억 위안보다 많은 수준이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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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macroinvesting
201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시장이 어떤 이슈로 변동이 있었는지 그림으로 보며 복기하려고 유지 중인 SNS입니다.
트럼프, Fed, 중국, 무역분쟁 관련 과거를 복기해보는데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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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종전협상의 첫단추로 광물협정을 체결하기로 했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험악한 논쟁을 벌이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충격에 빠진 유럽 지도자들은 주말 런던에 모여 유럽 안보 강화와 우크라니아 지원에 대한 필요성을 재확인하며 ‘의지의 동맹(Coalition of the willing)’을 모색했고, 1개월 휴전안도 제기됐다.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계속 비난하면서도 광물협정이 죽진 않았다며 일말의 희망을 남겼다.
트럼프는 타협 여지를 일축하고 3월 4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가 발효되며 대중 관세는 20%로 올린다고 밝혔다. 농산물에 대해서도 4월 2일 수입관세 부과를 경고했다. 캐나다는 바로 보복 준비가 되어 있다며 긴장을 키웠다.
미 제조업 부진과 물가 상승 신호에 더해 무역전쟁마저 본격화되면서 엔비디아가 장중 10% 넘게 급락하는 등 기술주 매도에 S&P 500 지수가 한때 2.4%나 밀렸다. 트럼프 압박에 OPEC+가 4월부터 산유량을 늘리기로 하면서 국제유가도 급락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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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29 made and one of nine painted yellow, this 1989 RUF CTR “Yellowbird” sports car may take more than $6 million at auction.Source: Gooding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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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 Porsche Overtakes Ferrari as Million-Dollar Car of the Moment
이번 달 자동차 애호가들이 플로리다로 몰려드는 가운데, 100만 달러 이상 가격대가 예상되는 포르쉐가 14대 등장했다. 반면 페라리는 같은 기준에 12대로 그보다 적고, 전체 405대 물량(경매사 3곳 합계) 중에서 어떤 브랜드도 이 정도 숫자를 보이지 못한다. 과거 세계 주요 경매에서 수많은 고가 페라리가 주도하던 ‘엘리트’ 가격대에 이제는 포르쉐가 기어오르는 모양새다.
이러한 흐름은,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특정 브랜드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컬렉션’을 구축하려는 욕구·재정 능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고 보스턴 소재 자동차 브로커 스티브 세리오는 설명한다. 페라리는 오래전부터 수십억 달러짜리 GTO나 LM, 테스타로사 등을 통해 최고가를 상징했지만, 최근 들어 많은 수집가들이 역사 깊은 포르쉐에 집중하며 그 가치가 급부상 중이다.
“엔트리급(최저 모델)조차 이미 ‘백만 달러대 진입’을 봤습니다. 포르쉐 콜렉션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여전히 페라리보다 훨씬 많거든요. 페라리는 제대로 모으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현실적이지 않죠.”
— 스티브 세리오
이번 판매는 목요일, 코럴게이블스의 빌트모어 호텔에서 열리는 모다마이애미부터 시작한다. 소더비 회장 롭 마이어스가 기획한 모다는 올해 2회차로, 클래식카 쇼와 음악·쇼핑, 그리고 최근 5,300만 달러어치 메르세데스 경매를 성사시킨 기세를 잇는 2일간의 경매 행사를 펼친다.
이어 해거티가 주최하는 ‘The Amelia’가 3월 6~9일에 열린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콩쿠르 디엘레강스(Concours d’Elegance)는 리츠칼튼 아멜리아아일랜드에서 진행되며, 브로드 애로와 구딩 크리스티즈(의 경매가 축을 이룬다.
종합하면, 클래식카 지수 K500에 따르면 이번 경매에 나오는 차량들의 ‘중간값 기준 예상가격은 약 65만8천 달러로, 2024년 56만3천 달러 대비 상승했다. 하지만 1955년 페라리 375 MM 베를리네타(800만~1000만 달러 예상) 같은 극히 희귀한 차들이 현 시장에서 주된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현재 수집가 시장이 다소 부진하다고 평가한다.
“거래가 예전보다 오래 걸리고, 소유주와 에이전트들은 ‘합의’에서 ‘거래 성사’까지 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외교술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유일무이한 차들은 여전히 그만한 값을 받고 팔립니다.”
— K500 창립자 사이먼 키드스턴
그러나 이번 경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고가대 포르쉐 물량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포르쉐는 917과 같은 최정상급 레이스카가 아니면 10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게 흔치 않았는데, 지난 몇 년 새 이러한 ‘행사 수준’ 가격대에 진입한 클래식 포르쉐가 늘고 있다. 예컨대 2022년 캐레라 GT 한 대가 브링어트레일러에서 190만 달러에 팔려 해당 모델과 플랫폼 모두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소더비와 구딩 크리스티즈는 모두 “이번 플로리다 경매에서 최고가 포르쉐”의 타이틀을 노린다.
소더비 측은 1988년식 959 스포츠를 550만~650만 달러로 책정했다. 단 29대만 생산된 모델로, 주행거리는 고작 3,757마일. (이 밖에도 959는 다양하게 등장: 소더비가 1988년 959 SC를 300만~350만 달러로 내놓았고, 구딩은 1988년 959 컴포트를 200만~250만 달러로 내놓았다.)
혹은 구딩 크리스티즈 쪽이 내놓은 1989년 RUF CTR “옐로버드”가 6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돼 최고가를 기록할 수 있다. 이 차량은 29대 생산 중 9대만 노란색으로 칠해졌고, 신차 수준인 1,000마일 주행거리와 단 2명의 오너 이력이 특징이다. (RUF는 독일 튜너로, 포르쉐를 기반으로 속도·출력을 개선해 유명해졌다. 구딩은 RUF CTR2(1997년식)를 200만~250만 달러로, RM은 2009년 CTR3를 최고 130만 달러로 내놓았다.)
포르쉐가 최근에 만든 하이브리드 슈퍼카 918 스파이더 역시 2대가 출품된다: 소더비는 2015년식 918 “바이삭 팩” 스파이더를 최고 300만 달러로, 브로드 애로는 동일 연식 918 스파이더를 240만 달러로 예상한다. 또 소더비는 918의 전신인 캐레라 GT(2005년식)를 140만~170만 달러 범위로 내놓았다.
가장 오래된 ‘백만 달러 포르쉐’는 1959년 356 A 1600 GS/GT 카레라 스피드스터(90만~120만 달러)와 1964년 904 카레라 GTS(150만~180만 달러)다. 그러나 2019년식 911 GT2 RS “바이삭”이나 1993년식 911 터보 S 라이트웨이트(둘 다 소더비에서 예상가 약 100만 달러) 등 비교적 신형 모델도 이 가격대에 접근 중이다.
심지어 평범한(?) 포르쉐 914도 이 고가대 목록에 오른다. 구딩 크리스티즈는 1970년식 914/6 GT를 주황색 차체로, 복원 및 서류(르망24 우승자 위르겐 바스가 작성한 65쪽 보고서 포함)가 완벽하다는 점을 부각해 최고 100만 달러에 내놓는다.
경차 수준의 소형 2인승으로서는 놀라운 가격 상승이다. 1968년 출시 당시 914 기본형은 약 3,500달러—오늘날 물가로 치면 3만 달러 수준—이었으니, 수집 시장 전체 흐름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자동차 시장에서는 100만 달러로 살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스티브 세리오
- Bloomberg, Macro Tra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