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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메모리 값에 한쪽은 숨이 막히고, 한쪽은 웃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대란은 빅테크를 두 진영으로 정확히 갈라놓았습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비용으로 찍히는 회사와, 투자로 찍히는 회사입니다. 같은 숫자가 한쪽에서는 마진을 갉아먹는 손실로, 다른 쪽에서는 3년 뒤 회수될 자산으로 회계 장부에 올라갑니다. AI 운명공동체냐 아니냐, 이 한 줄이 체감 압박감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7월 30일 하루 사이에 발표된 애플과 아마존의 실적이, 이 명제를 교과서처럼 증명했습니다.
애플: 역대 최고 실적을 내고도 주가가 빠진 이유
먼저 애플입니다. 숫자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2026 회계연도 3분기(4~6월) 매출은 1,094억 2,0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인 1,086억 5,000만 달러를 웃돌았습니다. 순이익은 297억 9,000만 달러로 27% 늘었고, 아이폰 매출은 543억 달러로 22% 급증하며 6월 분기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서비스 매출도 307억 달러로 사상 최대, 활성 기기는 25억 대를 돌파했습니다. 영업이익 역시 356억 9,500만 달러로 26.6% 늘었습니다. 6월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고 성적표였죠.
그런데 주가는 빠졌습니다. 이유는 실적 발표가 아니라 컨퍼런스콜에 있었습니다. 애플은 메모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으며 7~9월 분기에는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과거에 싸게 확보해둔 재고로 방어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설명이었죠. 팀 쿡 CEO는 D램 시장에 공급업체가 사실상 세 곳뿐이라는 점을 짚으며 추가 공급처 확보를 검토 중이라고 했고, 7~9월에는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의 공급 제약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4분기 매출 증가율 가이던스는 9~11%로 제시됐는데, 월가 기대치인 12%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시장이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는 꽤 아팠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메모리 가격 상승분이 그대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경우, 차세대 아이폰 프로 모델 가격이 약 270달러 오를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한 증권가 분석은 512GB 모델에 200달러가 아니라 300달러를 얹는 수준의 인상을 단행하더라도 총마진 개선 효과는 21%에 그치고, 아이폰의 전체 매출총이익률이 38%에서 34.5%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가격을 올려도 마진이 깎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애플에게 메모리는 팔면 팔수록 나가는 돈, 즉 매출원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캐펙스를 20조 원 더 늘렸는데 주가가 15% 뛰었습니다
같은 날 아마존은 정반대의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2분기 매출은 2,006억 달러로 전년 대비 20% 늘었고, AWS 매출은 422억 달러로 37% 증가하며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AWS 영업이익은 166억 2,100만 달러로 64% 급증해, 아마존 전체 영업이익 274억 6,100만 달러의 절반을 넘겼습니다. 영업이익률은 39.4%로, 1년 전 32.9%에서 650bp 뛰어올랐습니다.
핵심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아마존은 올해 자본지출 전망을 2,000억 달러에서 2,200억 달러로 상향했는데, 앤디 재시 CEO는 그 증가 이유로 메모리 가격 상승을 직접 지목했습니다. 애플을 괴롭힌 바로 그 요인이 아마존에서는 투자 확대의 명분이 된 겁니다. 대규모 투자로 잉여현금흐름은 적자로 돌아섰고, 유형자산 매입액은 1,690억 700만 달러로 64% 늘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악재여야 합니다. 그런데 주가는 애프터마켓에서 10% 가까이 뛰었고, 다음 날 정규장에서는 15%까지 치솟았습니다.
시장이 자본지출을 용서한 근거, 백로그와 3년
왜 시장은 애플의 원가 상승은 응징하고 아마존의 원가 상승은 축복했을까요. 답은 회수 구조에 있습니다. 2분기 말 기준 AWS의 계약 잔고, 즉 백로그는 4,960억 달러로 한 분기 만에 1,320억 달러가 늘었습니다. 이는 직전 12개월 매출의 3.3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다년 계약 구조 덕에 미래 가시성이 확보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쉽게 말해 아마존이 사들이는 비싼 메모리에는 이미 주인이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숫자가 붙습니다. AWS는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가 평균 3년 이내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며, 이미 내년 증설 용량 대부분과 2028년 상당 물량까지 계약이 완료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3년이라는 숫자가 왜 강력하냐면, 서버 자산의 회계상 내용연수는 5~6년, 데이터센터 건물 껍데기는 약 30년으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3년에 원금을 회수하고 남은 기간의 매출은 사실상 순증분이 되는 구조인 셈이죠. 원가가 올라도 계약 단가와 수요가 그 이상으로 받쳐준다면, 비싼 메모리는 손실이 아니라 더 큰 자산을 더 빨리 사들이는 행위가 됩니다.
자체 반도체도 이 방정식을 떠받칩니다. 아마존은 AI 사업과 자체 설계 칩 사업이 각각 연환산 매출 25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습니다. 두 부문 모두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앤스로픽과 오픈AI가 트레이니엄에 다년·멀티기가와트 규모의 용량을 약정했습니다. 트레이니엄2는 사실상 완판, 트레이니엄3는 거의 전량 예약, 트레이니엄4도 상당 부분이 선점된 상태입니다. 남의 칩을 시장 가격에 사 오는 대신 자기 칩을 원가에 찍어내니, 메모리발 인플레이션의 타격 면적 자체가 작아진 겁니다.
메모리 대란의 실체: 이건 사이클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이 격차가 일시적이지 않은 이유는 공급 측 구조에 있습니다. 트렌드포스는 2026년 2분기 일반형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58~63%, 낸드 계약가격이 70~75% 오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D램 캐파는 HBM과 서버용에, 낸드는 기업용 SSD에 우선 배정되면서 북미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장기공급계약까지 서두르는 상황입니다. 서버용 D램의 경우 고객사에 따라 최대 70%의 인상안이 제시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수요 구조를 뜯어보면 방향이 더 선명합니다. 올해 AI 서버용 D램 수요는 전년 대비 105% 성장이 예상되는 반면, 기존 서버용 D램 수요 성장률 기대치는 3%에 그칩니다. 전체 D램 비트 소비량에서 가전·IT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54%에서 2026년 42%로 떨어질 전망이며, 글로벌 D램 수급은 2025년 8% 공급과잉에서 2026년 12% 공급부족으로 전환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가트너는 2026년 연간 D램 가격이 47% 오를 것으로 봤고, IDC는 같은 해 공급 증가율이 16%에 그쳐 AI 수요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신규 팹 증설을 통한 유의미한 공급 확대는 2027년 말이나 2028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메모리 업계의 생산 라인이 AI 쪽으로 통째로 기울었고, 소비자 기기는 그 잔량을 비싸게 사 가는 위치로 밀려난 겁니다. AI 밸류체인 안에 서 있느냐, 밖에 서 있느냐가 그대로 원가 협상력의 차이가 되는 구조입니다.
투자자가 가져갈 세 가지 관점
첫째, 원가 전가력보다 회수 가시성입니다. 애플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 결정권을 가진 회사지만, 가격을 올려도 마진이 깎일 수 있다는 계산 앞에서 주가가 흔들렸습니다. 반면 아마존은 지출을 늘렸는데 주가가 올랐습니다. 시장은 지출의 크기가 아니라 그 지출에 근거를 댈 수 있느냐를 봅니다.
둘째, 수직계열화의 재평가입니다. 자체 칩과 자체 인프라를 가진 기업은 인플레이션 구간에서 타격 면적이 줄어듭니다. 4대 하이퍼스케일러가 2분기에만 쓴 자본지출은 1,65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87.1% 급증했고, 이 중 아마존이 542억 달러로 구글 449억, MS 358억, 메타 301억을 모두 앞질렀습니다. 재시 CEO는 몇 년이 지나면 매출 증가율이 자본지출 증가율을 앞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수급 불균형의 지속 기간입니다. 재시 CEO는 투자를 늘렸음에도 폭증하는 수요를 채울 연산 용량이 여전히 부족하며, 이런 불균형이 2026년은 물론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메모리 3사에게는 실적 슈퍼사이클, 세트 업체에게는 원가 압박이 최소 1~2년 더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애플이 나쁜 회사라서 압박을 받는 게 아닙니다. 회계연도 누적 아이폰 매출만 1,965억 달러를 찍는 기업이고,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현금창출 기계입니다. 다만 지금 국면에서 애플의 메모리는 손익계산서를 지나가는 비용이고, 아마존의 메모리는 대차대조표에 쌓이는 자산입니다. 회계 처리 방식 하나가 CEO의 표정을 이렇게까지 바꿔놓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시장을 볼 때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이 회사에게 AI는 사야 하는 부품인가, 팔 수 있는 상품인가." 이 질문의 답이 앞으로 몇 분기 동안 빅테크 간 주가 격차를 만들어낼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본 콘텐츠는 공개된 자료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한 정보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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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청산 사건의 전말
4배 레버리지가 가져간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AI 논지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방향은 상당 부분 맞았는데, 그 방향이 옳았다고 시장이 답해주기 전에 브로커의 시계가 먼저 만료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물량이 걷힌 바로 다음 날, 시장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답했습니다.
주인공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스물다섯 살입니다. 컬럼비아대를 열아홉에 수석 졸업한 독일 태생으로, 원래 오픈AI 초정렬팀에 있었습니다. AI가 사람보다 똑똑해졌을 때 통제가 가능한지를 연구하는 조직이었죠. 2024년 4월 그곳에서 해고됩니다. 본인은 오픈AI 보안이 허술해 산업스파이에 뚫릴 수 있다는 메모를 이사회에 올린 것이 이유라고 했고, 회사는 기밀 유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양쪽 말이 다릅니다. 나온 뒤 그는 165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씁니다. 제목은 「상황 인식」. 2027년쯤 AI가 최고 수준 연구자를 따라잡고, 그때부터 전기와 칩과 데이터센터를 미친 듯이 깔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 제목 그대로 펀드를 차려 2억 2,500만 달러로 시작해 2년이 채 안 되는 사이 최대 450억 달러까지 불렸습니다. 상반기 순수익률 439%, 설정 이후 누적 1,000% 초과였습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와, 13F가 보여준 진짜 구조
시중에 도는 설명은 간단합니다. AI 인프라를 4배 레버리지로 롱 담았다가 7월 낙폭에 무너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1분기 13F를 열어보면 그림이 훨씬 정교합니다. 공시된 42개 포지션 136억 8,000만 달러 가운데 84억 6,000만 달러, 즉 61.8%가 AI 하드웨어 복합체를 겨눈 풋옵션이었습니다. 반도체 ETF에 20억 4,000만 달러, 엔비디아에 15억 7,000만 달러, 오라클 10억 7,000만 달러, 브로드컴 10억 1,000만 달러, AMD 9억 6,900만 달러 순이었죠.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됩니다. 반도체를 통째로 숏 친 게 아닙니다. 숏은 연산 쪽이었습니다. GPU와 ASIC과 클라우드, 그러니까 칩을 설계해 파는 쪽이었죠. 메모리는 오히려 롱이었습니다. 샌디스크, 마이크론, SK하이닉스가 롱 쪽에 있었습니다. 같은 반도체인데 편이 갈린 겁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롱 북은 전력을 공급하고, 연산을 호스팅하고, GPU 클라우드를 돌리고, AI 데이터를 저장하는 회사들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에세이가 주장한 물리적 병목 그 자체였고, 풋은 이미 시장의 열광을 가장 많이 흡수한 칩 설계 구간에 대한 폭락 보험이었던 셈이죠. 비싸다고 본 쪽은 숏, 물리적으로 못 늘리는 병목은 싸다고 봐서 롱. 여기까지는 대단히 세련된 설계입니다.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마이크론과 TSMC에는 풋과 콜을 동시에 들고 있었습니다. 방향을 걸지 않고 변동성만 사는 양방향 베팅이었죠. 그리고 반도체 ETF 풋 20억 달러는 섹터 전체를 덮는 우산이었는데, 그 우산 안에 자기가 롱으로 들고 있는 마이크론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개별로는 롱인데 섹터로는 숏을 씌운 구조. 바로 이 지점이 뒤에서 문제가 됩니다.
헤지는 걸려 있었는데, 본진이 두 배 빨리 무너졌습니다
숏은 방향을 맞혔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6월 22일 고점 대비 28.6% 하락했고, 반도체 ETF는 24.6%, 엔비디아는 8.9% 빠졌습니다. 숏이니 이건 수익이죠. 다만 숏 북 전체가 벌었다고 하면 과합니다. 어도비 같은 소프트웨어 숏이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며 손실을 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롱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샌디스크는 55.3%, 블룸에너지는 52.7%, IREN은 48.5%, 네비우스는 47.7%, 코어위브는 45.3%, 마이크론은 39.0% 빠졌습니다.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핵심 롱 종목들이 7월 한 달 35~47% 급락한 겁니다. 헤지 대상은 24% 빠지는데 본진은 45~55% 빠졌습니다. 헤지를 안 한 게 아니라, 헤지한 쪽보다 본진이 두 배 빨리 무너진 것이죠.
ETF로 개별주를 덮을 때 늘 생기는 문제입니다. ETF는 수십 개 종목이 섞여 있어 덜 흔들리고, 개별주는 그보다 훨씬 크게 흔들립니다. 같은 금액을 덮어놔도 빠지는 속도가 다르면 그건 헤지가 아니라 그냥 손실 완충일 뿐입니다.
여기에 4배가 들어옵니다. 산수는 잔인할 만큼 단순합니다. 내 돈 1억에 브로커가 3억을 빌려줘 4억어치를 삽니다. 4억이 30% 빠지면 2억 8,000만 원이 되는데, 빌린 3억은 무조건 갚아야 하는 돈입니다. 4배 레버리지에서는 기초자산이 25%만 빠져도 투자자 자기자본이 수학적으로 전액 소멸합니다. 숏에서 번 것으로는 이 구멍이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모자랐습니다
돈을 넣으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7월 24일 투자자 서한에서 기술주 매도세를 오히려 기회로 제시하며 8월 1일부터 추가 출자 창구를 열겠다고 공지했고, 앤트로픽 상장 가능성을 하반기 촉매로 지목했습니다. 동시에 마진콜을 막기 위해 세쿼이아캐피털과 그린오크스에 비상장 지분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브로커 기한은 7월 30일이었습니다. 이틀이 모자랐던 겁니다.
왜 시타델 한 곳으로 통째로 넘어갔는지가 이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돈을 빌려준 프라임 브로커는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JP모건 세 곳이었습니다. 담보를 나눠 가진 브로커가 여럿이면 먼저 파는 쪽이 제값을 받고 늦게 파는 쪽이 물립니다. 2021년 아르케고스 때 실제로 벌어진 일이죠. 골드만과 모건스탠리는 재빨리 던져 손실을 줄였고, 늦게 움직인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는 수십억 달러를 날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각자 던지기 전에 물량을 통째로 받아줄 곳을 먼저 찾았습니다. 짧은 입찰이 붙었고 켄 그리핀의 시타델이 목요일 개장 전 단일 블록으로 롱과 숏을 한꺼번에 인수했습니다.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최근 월가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긴급 주식 이전이었습니다.
블록딜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장 시작 전 단일 거래로 소유주만 바뀌는 것이라 호가창에 매도 물량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공개시장에 흘렸다면 며칠간 가격을 보지 않는 매도가 이어지며 AI 인프라 전체를 끌어내렸을 물량이었죠.
그리고 다음 날, 시장이 답했습니다
7월 30일 종가를 보시죠. 네비우스가 28.5% 오른 190달러 50센트, IREN이 27.4% 오른 37달러 33센트, 블룸에너지가 26.0%, 샌디스크가 24.1% 오르며 1,260달러를 넘겼고, 코어위브가 21.8% 오른 74달러 10센트를 기록했습니다. 던져진 바로 그 종목들이 그날 다 올랐습니다. 같은 날 엔비디아는 2.6%, 반도체 ETF는 6.9% 상승에 그쳤죠. 시장 전체가 좋아졌다기보다, 누르고 있던 강제 매도가 사라진 쪽에 가까웠습니다. 극단적 집중, 레버리지, 마진콜, 강제 청산, 스마트머니의 매집, 그리고 반전이라는 교과서적 항복 바닥 패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만 이 반등을 그의 논지가 옳았다는 증거로 읽으면 안 됩니다. 같은 날 마이크로소프트 실적이 시장 심리를 함께 끌어올린 날이었으니까요. 물량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블록딜은 파는 게 아니라 주인이 바뀌는 것이고, 물량은 그대로 시타델에 있습니다. 바뀐 건 딱 하나입니다. 레오폴드는 오늘 안에 팔아야 했고 가격을 볼 수 없었지만, 시타델은 안 팔아도 되고 가격을 보면서 팝니다. 강제 매도가 재량 매도로 바뀐 것이지, 매도 압력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논지를 받쳐주는 실물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안이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주가는 반토막이 났지만 계약서는 반대로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헛8은 텍사스 비컨포인트 캠퍼스에서 98억 달러 규모의 두 번째 15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IREN은 28억 달러의 신규 AI 클라우드 계약을 공시하며 2026년 매출 목표를 40억 달러 위로 올렸습니다. 테라울프는 올해 앤트로픽과 장기 임대를 맺었고, 네비우스는 전력 용량 가이던스를 여러 차례 상향하며 엔비디아 투자까지 유치했습니다. 네비우스는 2029년까지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로 리플렉션AI에 연산을 공급하는 계약도 맺었죠. 블룸에너지는 2026년 매출 전망을 39억~42억 달러로, 조정 주당순이익을 2.55~2.85달러로 상향했고, JP모건은 목표주가 314달러의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병목이 진짜라는 증거는 주가가 아니라 이런 계약과 가이던스에 남습니다.
이 사람, 망한 게 아닙니다
오해가 가장 많은 부분입니다. 매각 이후에도 펀드 자산은 약 100억 달러가 남아 있습니다. 제인스트리트, 스트라이프 창업자 콜리슨 형제, 대니얼 그로스와 냇 프리드먼 같은 초기 출자자들이 수억 달러를 대준 펀드였는데, 7월에 큰 손실을 봤어도 상반기 439%라는 완충이 워낙 두터워 연초 대비로는 여전히 크게 플러스입니다. 원금이 깨진 게 아니라 정점 대비 반토막이 난 겁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자산은 남았습니다. 비상장 북은 팔지 않았고, 여기에 앤트로픽 대규모 지분이 들어 있습니다. 2025년 2월 약 600억 달러 밸류에 처음 투자했는데 2026년 5월 기준 약 9,650억 달러가 됐으니 1년 남짓 만에 15배가량 오른 셈입니다. 5월 28일 마감된 시리즈H가 650억 달러를 조달하며 이 밸류를 확정했고, 앤트로픽은 이르면 10월 상장이 예상됩니다. 이 밖에 플루이드스택과 MatX 지분도 그대로입니다. 사고파는 회사에서 들고 기다리는 회사로 성격이 바뀐 것이죠.
물론 이것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비상장 지분의 비유동성은 최대 강점이자 최대 약점입니다. 매일 가격이 찍히지 않으니 강제 청산 압박에서 자유롭지만, 급할 때 현금으로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남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이 사건이 무서운 이유는 악당이 없어서입니다. 월가가 작정하고 한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도 돌지만, 저는 그보다 이쪽이 더 서늘하다고 봅니다. 브로커의 리스크 모델은 이 논지가 맞느냐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오늘 청산하면 빌려준 돈이 회수되느냐만 계산합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아도 결과는 똑같이 나옵니다.
틀린 것은 방향이 아니라 크기였습니다. 연산을 숏 치고 메모리를 롱으로 든 판단 자체는 7월 낙폭에서도, 다음 날 반등에서도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같은 하락장에서 본진이 헤지 대상보다 두 배 빨리 빠졌고, 4배 레버리지가 그 차이를 견딜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빌려주는 대가로 시간을 가져갑니다. 내가 옳은지 시장이 답하기 전에 브로커의 시계가 먼저 만료되는 것이죠.
하나 더 남깁니다. 매일 가격이 찍히는 자산은 담보로 잡혀 전부 팔렸고, 가격이 찍히지 않는 자산만 남았습니다. 유동성이 좋다는 말이 이럴 때는 언제든 강제로 팔릴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다음 확인 지점은 11월 중순 13F입니다. 시타델이 받아간 물량을 얼마나 들고 있는지 보면 소화 속도가 역산됩니다. 강제 매도가 재량 매도로 바뀐 그 물량이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가, 당분간 이 종목들의 수급 변수가 될 겁니다.
※ 본 글은 공개된 보도와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 목적의 콘텐츠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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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구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구리는 지금 '가격 싸움'이 아니라 '물량 싸움'입니다
지금 구리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가격 랠리가 아닙니다. 실물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고, 그 부족은 앞으로 5년 안에 해소될 구조가 아닙니다. 시장이 이 사실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먼저 세 개의 계기판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첫째, 중국 구매자들이 수입 구리에 톤당 100달러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양산 프리미엄인데요, 7월 17일 기준 톤당 100달러로, 1월 말 저점 20달러에서 뛰어올라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회복했습니다. 올해에만 133% 급등한 수치입니다. 프리미엄은 시장의 체온계입니다. 웃돈을 얹어야 물건이 온다는 건, 물건이 없다는 뜻이죠.
둘째, 중국 재고입니다. 상하이선물거래소 창고의 구리 재고는 7만 9,909톤으로 3월 중순 대비 80% 넘게 줄었고, 최근에는 주간 12.9% 추가 감소한 6만 9,610톤까지 밀리며 2024년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셋째, 런던입니다. LME 창고 재고는 5월 말 이후 24% 감소해 29만 5,275톤이 됐는데, 더 중요한 건 취소 워런트 비율이 56%라는 점입니다. 이미 인도가 예약된, 즉 곧 창고를 떠날 구리가 16만 6,025톤 더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번 주 LME 재고는 25만 5,400톤까지 내려와 2월 이후 최저를 찍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신호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LME 현물 계약이 3개월 선물보다 톤당 24달러 비싸게 거래되는 백워데이션이 나타났습니다. 올해 대부분의 기간 동안 현물이 오히려 할인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상태 변화입니다. 스톤엑스의 나탈리 스콧-그레이는 "시장이 매크로 심리에 끌려다니던 국면에서 진짜 물리적 타이트니스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투기가 만든 가격이 아니라, 창고가 비어서 만들어진 가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중국이 이렇게 사들이고 있을까요
두 가지가 겹쳤습니다. 하나는 세금입니다. 베이징이 수개월째 이른바 '인보이스 경제' 단속에 나서면서 스크랩 처리업체들이 짓눌렸고, 구매자들이 정련 구리 쪽으로 떠밀렸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구리 재활용 시장인데, 그 순환의 한 축이 행정적으로 막혀버린 겁니다. 다른 하나는 제련소입니다. 정기 보수로 국내 정련 생산이 줄면서, 6월 정련 구리 수입이 9개월 만의 최고치로 뛰었습니다. 안에서 못 만들면 밖에서 사와야 하고, 밖에서 사오려면 프리미엄을 내야 합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그런데 공급은 왜 못 늘릴까요
여기가 이 이야기의 진짜 무게중심입니다. 지난 1년간 세계 구리 광산에서 일어난 일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고는 분기가 아니라 연 단위로 회복됩니다.
세계 최대급 광산인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는 2025년 9월 산사태 이후 완전 재가동 시점을 2027년에서 2028년으로 미뤘고, 2026년 생산 가이던스를 약 35% 낮췄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카모아-카쿨라는 2025~2026년에 걸쳐 약 30만 톤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칠레 코델코의 엘테니엔테는 20년 만의 최저 월간 생산을 기록했습니다. 파나마의 코브레 파나마는 세계 공급의 약 1%를 담당했지만 여전히 문이 닫혀 있습니다.
올겨울 칠레 날씨는 여기에 한 겹을 더 얹었습니다. 폭풍으로 코델코가 안디나의 지상 작업을 중단하고 엘테니엔테의 광석 출하를 멈췄습니다. 안토파가스타의 상반기 생산은 9.5% 줄어든 28만 5,000톤에 그쳤고, 2026년 현금 원가 전망은 파운드당 2.40~2.60달러로 올라갔습니다. 가격이 올라도 생산이 곧바로 따라 나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더 놀라운 건 제련 마진입니다. 2025년 12월 안토파가스타는 2026년 가공비를 톤당 0달러로 합의했습니다. 기록상 최저입니다. 스팟 가공비는 2025년 10월 마이너스 66.60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이건 중국 제련소가 광산에 돈을 주고 정광을 가져다 처리했다는 의미입니다. 원료가 얼마나 귀하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여기에 뜻밖의 병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황산입니다. 중동발 에너지 비용 상승과 중국의 2026년 5월 황산 수출 중단이 겹치면서, JP모건은 이 황산 부족이 세계 구리 생산의 약 15%에 영향을 준다고 추산했습니다. 구리를 캐는 문제가 아니라, 캔 것을 녹이고 뽑아내는 공정이 막힌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제약이 남아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선진국에서 신규 광산은 발견부터 생산까지 통상 20~30년이 걸리고, 미국은 평균 29년에 가깝습니다. 칠레가 148억 달러 규모의 13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2028~2029년이 지나야 생산에 기여합니다. 오늘 가격이 사상 최고를 찍어도, 그 신호가 실물 공급으로 바뀌는 데는 최소 반 세대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적자를 없앨 방법이 없다는 말은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공학적 사실입니다.
수요는 지금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집니다. 과거 구리 수요는 중국 부동산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로 들어온 수요는 성격이 다릅니다.
S&P 글로벌이 올해 1월 내놓은 보고서 '인공지능 시대의 구리'는 이 변화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전기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구리 수요는 2040년 4,200만 톤으로 지금보다 50% 늘어나는 반면, 세계 구리 생산은 2030년 3,300만 톤에서 정점을 찍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2040년에는 1,000만 톤, 수요 대비 25%가 비게 됩니다. 재활용 스크랩이 지금의 400만 톤에서 1,000만 톤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난다는 낙관적 가정을 넣고도 그렇습니다. 보고서는 이 격차를 "세계 산업과 기술 발전, 경제 성장에 대한 시스템적 위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니엘 예긴 부회장의 정리는 간결합니다. 구리는 전기화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인데, 바로 그 전기화의 속도가 구리에게 점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데이터센터는 그 새 수요의 상징입니다. 우드매켄지는 지금부터 2030년까지 세계 데이터센터에 약 70만 톤의 구리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2030년 기준 연 110만 톤, 세계 수요의 3%에 육박하는 규모로 커진다고 봅니다. 데이터센터의 구리 수요 비중은 2024년 0.15%에서 2030년 1% 수준으로 뛰는데, 2026년 한 해에만 6,000억 달러가 넘는 데이터센터 자본 지출이 예정돼 있습니다. 구리는 데이터센터 원가의 0.5%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올라도 사는 쪽은 멈추지 않습니다. 가격에 둔감한 수요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그게 지금의 구리입니다.
그래서 시장은 어디까지 왔을까요
가격은 이미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뉴욕 코멕스 구리는 파운드당 6.49달러, 톤으로 환산하면 1만 4,224달러까지 올라 6월 초 사상 최고치의 2.5% 이내로 접근했고, 올해 상승률은 14%를 넘었습니다. 7월 31일 기준으로는 1년 전보다 46.87% 높은 수준입니다.
월가의 눈높이도 계단을 올랐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구리 적자를 2026년 64만 톤, 2027년 17만 톤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말 목표가를 1만 2,465달러에서 1만 3,735달러로 올렸고, 2027년 평균 1만 3,800달러, 나아가 2035년에는 광산 투자를 유인하고 시장을 균형시키려면 1만 5,000달러 수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씨티는 몇 달간의 중립을 접고 강세로 돌아서며 근시일 1만 4,500달러, 6~12개월 내 1만 5,000달러를 제시했고, 2027년에도 36만 톤의 적자를 전망했습니다. 스톤엑스는 주요 거래소에서 투기적 순매수가 우위를 점한 지금, 올해 안에 또 한 번의 사상 최고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지켜보면 될까요
복잡할 것 없습니다. 계기판 네 개면 충분합니다. 첫째, 양산 프리미엄이 톤당 100달러 위에 머무는지입니다. 둘째, 상하이 재고가 계속 줄어드는지입니다. 셋째, LME의 취소 워런트 비율입니다. 창고에 있어도 이미 남의 물건이라면 그건 재고가 아니죠. 넷째, 백워데이션의 지속 여부입니다. 현물이 선물보다 비싼 상태가 길어질수록 부족은 진짜입니다.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지역 간 분화입니다. 지금 코멕스 재고는 사상 최대인 64만 4,465톤으로, LME와 상하이 재고를 합친 것의 거의 두 배입니다. 관세를 앞두고 금속이 미국으로 빨려 들어간 결과죠. 세계에 구리가 남아도는 게 아니라, 구리가 한쪽에 쌓이고 나머지 세계가 마르고 있는 겁니다. 미국 232조 관세 결정은 그래서 앞으로도 가장 큰 변수로 남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프리미엄은 오르고, 재고는 줄고, 백워데이션은 나타났고, 광산은 몇 년째 사고에서 회복 중이며, 제련 마진은 마이너스를 찍었고, 수요에는 인공지능과 전력망이라는 새 축이 붙었습니다. 이 여섯 가지가 동시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구리는 지금, 20세기 내내 경기의 온도계였던 자리에서 21세기 인프라의 병목으로 자리를 옮기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균형을 위해 반론도 짚어드리겠습니다. 국제구리연구그룹은 스크랩 기반 생산 증가와 수요 둔화를 이유로 2026년 9만 6,000톤, 2027년 37만 7,000톤의 공급 과잉을 전망하고 있고, 맥쿼리 역시 시장이 구리가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단기 균형표와 장기 구조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투자 판단을 돕기 위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이나 원자재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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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
정책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간 사람이, 왜 매번 가장 크게 다쳤을까, 2026년 대한민국, 세 번의 신호와 세 번의 청구서
올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세 개의 사건, 부동산과 주식과 건강보험은 겉보기엔 전혀 다른 영역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완벽하게 같은 구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정책이 보낸 신호를 가장 성실하게 따라간 사람이, 결과적으로 가장 큰 비용을 치렀다는 것이죠. 이건 운이 나빴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호와 결과가 어긋나는 방식이 세 번 연속으로 같은 패턴을 그렸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오늘은 그 구조를 데이터로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청구서 , 집을 팔라는 신호, 그리고 사라진 전세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다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보유와 매도에 비용을 물리면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고, 매물이 늘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죠. 실제로 신호를 믿고 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2026년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자 서울 아파트 매물은 이틀 만에 6만 8,495건에서 6만 5,682건으로, 약 2,800건, 4.1%가 사라졌습니다. 매물 증가율로 보면 4월 마이너스 6%에서 5월 마이너스 15%로 감소폭이 오히려 두 배 이상 커졌고, 서초구 마이너스 22%, 강동구 마이너스 20%처럼 권역을 가리지 않고 두 자릿수로 줄었습니다. 중과 시행 전에 급매로 나올 물건은 이미 다 나왔고,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팔지 않은 겁니다. 세금이 매도 버튼이 아니라 잠금장치로 작동한 순간이죠.
가격은요. KB부동산 기준 2026년 5월 4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연초 대비 1.47% 올랐고, 그 안에서 서울 강북이 5.44%, 강남이 4.43%, 경기가 2.05% 상승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상승을 이끈 곳이 강남이 아니라 강북이라는 점입니다.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8.3, 전세수급지수는 113.7로 202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수급 불균형이 깊어졌습니다. 대출 규제로 고가 주택 접근이 막히자 실수요가 중저가 지역으로 밀려 내려온 겁니다. 규제가 수요를 없앤 게 아니라 이사만 시킨 셈이죠.
진짜 청구서는 임대차 시장으로 넘어갔습니다. 전국 월세 비중은 2022년 48.0%에서 2023년 54.9%, 2024년 57.9%, 2025년 60.7%를 거쳐 올해 1분기 68.6%까지 올라 4년 만에 20%포인트 넘게 뛰었습니다. 6월 통계는 더 선명합니다. 올해 상반기 서울 비아파트 월세 비중은 78.1%로 5년 평균 62.1%보다 16.0%포인트 높았고,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도 52%로 1년 만에 8.1%포인트 늘었습니다. 전세라는 제도가 통계적으로 소멸해 가고 있는 겁니다.
물량은 줄고 값은 올랐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5월 초 1만 5,626건으로 연초 2만 3,060건 대비 32.3% 감소했고,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6억 149만 원으로 2022년 10월 이후 처음 6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5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2만 101건으로 1년 전보다 25.8% 줄었습니다. 이사를 포기한 사람도 늘어 갱신 계약 비중은 39.7%에서 46.7%로 올랐습니다. 세입자 둘 중 하나는 이제 옮길 곳이 없어 그냥 눌러앉는 겁니다.
체감 가격은 숫자보다 잔인합니다. 강북구 미아동의 전용 84제곱미터 아파트가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10만 원, 도봉구 창동의 전용 134제곱미터가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280만 원에 계약됐습니다. 강남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외곽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경제학이 오래전에 정리해 둔 원리를 짚어야 합니다. 조세 귀착, 즉 세금을 누가 내느냐와 누가 부담하느냐는 다르다는 이야기죠. 공급이 비탄력적인 필수재일수록 세금은 공급자에게 머물지 않고 최종 사용자에게 굴러갑니다. 집은 하루아침에 늘릴 수 없고, 사람은 어디선가는 자야 합니다. 미국경제학회지에 실린 샌프란시스코 임대료 규제 연구가 정확히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규제는 대상 주택의 임대 공급 자체를 줄였고, 줄어든 공급은 규제 밖 임차인의 임대료를 밀어 올렸다는 겁니다. 정책은 가격을 통제하려 했지만 시장은 수량으로 응답했고, 사라진 수량의 청구서는 결국 집 없는 사람에게 배달됐습니다.
두 번째 청구서 , 국내 증시로 오라는 초대, 그리고 7월
두 번째 신호는 자본시장이었습니다. 지수는 화답했습니다. 문제는 그 뒤였죠.
7월 한 달간 코스피는 8,000선과 7,000선이 잇따라 무너지고 6,000선까지 붕괴됐습니다. 최저점 5,262.77 기준으로 최대낙폭은 마이너스 43.93%, 월중 하락률은 마이너스 37.91%까지 갔고, 마지막 거래일 대반등을 거치고도 월간 마이너스 22.19%로 마감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대침체를 넘어선 코스피 역사상 월간 최대 낙폭입니다.
변동성의 상징인 서킷브레이커를 보면 상황이 더 분명합니다. 1998년 도입 이래 2025년까지 스물여덟 해 동안 열세 번 발동됐던 제도가 2026년 한 해에만 반복 발동됐고, 7월까지 아홉 차례가 쌓였습니다. 7월 28일 코스피는 732.09포인트, 마이너스 10.84% 급락하며 올해 여덟 번째 서킷브레이커를 맞았고, 28일과 29일 이틀 연속 발동, 그것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반으로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를 이틀 연속 겪은 것은 국내 증시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전고점을 찍은 지 한 달 만에 2,780조 원이 증발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락 자체가 아닙니다. 하락을 견딜 수 있었느냐입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이후 41거래일간 반대매매는 1조 8,230억 원으로 직전 41거래일 1조 318억 원보다 77% 급증했습니다. 7월 9일 하루 반대매매만 1,422억 원, 비중은 10.2%에 육박했고, 신용융자 잔고는 6월 24일 38조 6,328억 원 고점에서 줄었지만 그 감소분의 상당 부분이 자발적 정리가 아니라 강제 청산이었습니다. 투자자예탁금은 6월 초 약 140조 원에서 7월 말 106조 원 수준으로 34조 원 가까이 빠졌습니다. 손실을 감수하고 시장 밖으로 밀려난 겁니다.
손실 규모도 추정치가 나왔습니다. 씨티는 레버리지 ETF에서 개인투자자가 입은 총손실을 약 387억 달러로 추산했습니다. 그런데도 7월 28일 개인은 하루 만에 28.43% 급락한 상품을 포함해 레버리지 ETF 네 종목을 1조 996억 원어치 순매수했습니다. 그날 유가증권시장 개인 순매수 전체의 25.48%였습니다. 반등을 노린 학습효과가 오히려 덫이 된 셈이죠.
그리고 반전이 왔습니다. 7월 마지막 거래일 코스피는 하루에 1,000포인트 넘게, 종가 기준 17.91% 폭등하며 상승률과 포인트 양쪽에서 신기록을 세웠고, 저점 기준 2.5일 만에 25.32%가 회복됐습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 개인이 없었다는 겁니다. HSBC는 7월 강제 반대매매가 발생한 미결제 신용계좌가 전체의 2%에 불과하다며 신용 물량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즉 털린 사람은 확실히 털렸고, 남은 위험은 그대로 남았다는 뜻입니다.
레버리지는 방향이 맞아도 시간이 틀리면 죽습니다. 7월 31일의 17.91%는 그 명제를 가장 비싼 방식으로 증명했습니다. 반등은 왔는데, 반등을 볼 수 있는 계좌만 살아남은 겁니다. 뒤늦게 금융위원회가 기본예탁금을 현금 3,000만 원으로 올리고 신규 상품 상장을 중단한 데 이어 총투자금액 대비 비율 제한까지 검토했지만, 안전장치가 상품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 번째 청구서 , 더 벌라더니, 더 버는 사람에게
세 번째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광범위합니다. 물가가 오르니 사람들은 본업 하나로 버티지 못하고 부업을 시작했습니다. KDI는 2026년 소비자물가를 2.7% 상승으로, 원유 도입단가를 2025년 배럴당 69달러에서 91달러로 전제했습니다. 중동 전쟁의 영향이죠. 생활비가 구조적으로 올라간 겁니다.
Kdi
그런데 부업으로 번 소득에 대한 계산서가 날아왔습니다. 보건복지부가 7월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 보고한 부과체계 개편안에 따르면, 소득월액 보험료 공제 한도가 기존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절반 축소됩니다. 대상은 월급 외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 178만 명, 예상 재원은 연간 7,070억 원입니다. 여기에 2026년 건강보험료율은 7.19%로 인상됐고, 초고소득 직장가입자 보수월액 보험료 상한액은 918만 3,480원으로 상향됐습니다.
건강보험료는 법률상 세금이 아닙니다. 하지만 소득이 있으면 강제로 부과되고, 안 내면 재산이 압류됩니다. 부담 기준이 국회 세법 개정이 아니라 위원회 고시로 바뀌고, 연말정산 세율표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세금이라 부르지 않는 세금, 그래서 준조세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 개편의 타깃은 자산가가 아니라 월급 외 소득이 생긴 직장인, 다시 말해 물가 때문에 일을 하나 더 늘린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세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팔라는 신호를 따른 사람은 무주택자가 되어 월세 시장으로 나갔고, 사라는 신호를 따른 사람은 고점에서 레버리지를 잡았다가 반등 전날 청산됐으며, 더 벌라는 신호를 따른 사람은 부업 소득에서 공제를 절반 잃었습니다. 세 사건 모두 정책은 가격을 통제하려 했고, 시장은 수량으로 반응했습니다. 매물이 사라지고, 유동성이 사라지고, 실수령이 사라졌죠.
그래서 개인이 챙겨야 할 실전 원칙은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필수재의 가격은 정책 발표문이 아니라 재고량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매물 건수, 전세 물량, 착공 실적이 값을 결정하지 구호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둘째, 어떤 자산이냐보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수익률을 결정합니다. 마이너스 43%를 견딜 수 없는 구조라면 17.91%의 반등은 남의 일입니다. 셋째, 모든 현금흐름은 세전이 아니라 건강보험료까지 뺀 실수령 기준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부업의 손익분기점은 매출이 아니라 공제 후 잔액에 있습니다.
물론 반론도 정직하게 짚겠습니다.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 세제가 아니라 금리와 공급 부족, 유동성이라는 분석이 있고, 실제로 4월 조사에서는 공인중개사 약 54%가 규제 강화로 수도권 아파트값 하락을 전망했습니다. 증시에 대해서도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정을 시스템 리스크가 아니라 과도하게 쌓였던 포지션이 해소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건강보험료 개편 역시 자산이나 금융소득이 있는 사람이 소득에 비해 적게 낸다는 형평성 지적이 오래 제기돼 왔다는 점, 건강보험 당기수지 적자 전환 전망이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됩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정책의 선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정책의 결과는 반드시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 신호를 믿는 것과 신호에 인생을 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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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대한민국 서민경제는 꽤 심각한 상황
지금 대한민국 서민경제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그 힘겨움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통계로 확인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나라 전체의 성적표는 좋게 나오고 있는데, 그 성적표를 만든 주체와 그 성적표의 혜택을 받는 주체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 바로 그 분리가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입니다. 오늘은 자영업, 주거비, 물가,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라 불렸던 주식시장까지, 서민경제의 네 축을 데이터로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큰 그림입니다. 2026년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기 대비 0.6%, 전년 동기 대비 3.7% 성장했고, 실질 국내총소득은 전기 대비 3.6%, 전년 동기 대비 15.6%나 늘었습니다. 6월 수출은 반도체와 컴퓨터, 선박 호조에 힘입어 전년 동월 대비 70.9% 증가했습니다. 소비자심리지수도 7월 106.8로 석 달 연속 100을 웃돌며 장기 평균보다 낙관적인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숫자만 보면 호황입니다. 그런데 왜 마트에서, 상가에서, 월세 계약서 앞에서는 정반대의 감각이 들까요. 답은 이 성장의 엔진이 반도체 수출이라는 점, 그리고 그 엔진의 열기가 골목 상권까지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첫 번째 축, 자영업, 100만 명 폐업 시대의 고착
중소벤처기업부가 2026년 7월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폐업 사업자는 97만 6,000개, 폐업률은 8.64%였습니다. 업종별로는 소매업 폐업률이 15.40%로 가장 높았고, 주요 폐업 사유는 사업부진이 49만 2,000개로 압도적 1순위였습니다. 연령별로는 40세 미만 청년 폐업이 27만 7,000개, 40~50대가 46만 개, 60세 이상이 23만 8,000개였고, 수도권 폐업만 54만 8,000개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대목은 실태조사 쪽입니다.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 수익성 악화와 매출 부진이 폐업 사유 1순위로 70.9%를 차지했고, 폐업을 결정할 때 64.4%가 정상 매출 대비 40% 이상 감소했을 때 결심했다고 답했습니다. 이 문장을 뒤집어 읽어보시죠. 매출이 30% 빠져도 사장님들은 안 닫는다는 뜻입니다. 20% 빠져도 버팁니다. 권리금이 있고, 인테리어 감가가 남아 있고, 무엇보다 닫는 순간 대출이 일시상환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폐업 통계는 '어려운 사장님의 숫자'가 아니라 '이미 버티기가 끝난 사장님의 숫자'입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라는 얘기죠.
수익성은 어떨까요. 한국신용데이터의 2026년 1분기 소상공인 동향 리포트를 보면, 사업장당 평균 매출은 4,258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9% 늘었지만 전 분기와 비교하면 13.38% 감소했고, 사업장당 평균 이익은 999만 원이었습니다. 분기 이익 999만 원, 월로 나누면 333만 원입니다. 사장님이 주 6일 매장에 서서 벌어들이는 돈이 2027년 최저임금 시급 1만 700원 기준 월 환산액 223만 6,300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리스크는 전부 사장님이 지는데 말이죠.
두 번째 축, 부채, 이자가 매출보다 먼저 나갑니다
한국은행 자료 기준 2026년 1분기 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95조 5,000억 원으로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였습니다. 사업자 대출이 745조 5,000억 원, 가계대출이 350조 원이고, 연체액은 22조 3,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연체율은 2.04%로 2015년 2분기 이후 10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숫자가 커서 감이 안 오신다면 2금융권을 보시면 됩니다.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12.79%로, 코로나19 이후 저점이었던 2022년 2분기 말 1.78%와 비교하면 7배가 넘습니다.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이자를 못 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득 하위 30%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53조 2,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연체율은 2.13%로 10년 3개월 만에 최고를 찍었습니다. 여기에 대출을 보유한 사업장 360만 곳 가운데 폐업 상태인 곳이 50만 곳입니다. 가게는 사라졌는데 빚은 남아 있는 분들이 50만 명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 한국은행은 대출 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경우 자영업자의 연간 이자 부담이 총 1조 8,000억 원 늘고 차주 한 명당 평균 56만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연내 2회 인상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 사이클과 방향이 정반대죠. 예전에는 버티면 금리가 내려와 줬는데, 이번에는 버티는 동안 금리가 올라옵니다.
세 번째 축, 주거비,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남았습니다
KB부동산 7월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 9,490만 원으로, 1월 15억 2,162만 원에서 6개월 만에 7,328만 원 올랐습니다. 평균 전셋값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7억 원을 넘었고, 아파트 월세도 올해 들어 5% 넘게 올랐습니다.
더 중요한 건 구조 변화입니다. 국토교통부 2026년 6월 주택통계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서울 비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이 78.1%였습니다. 5년 평균 62.1%보다 16.0%포인트 높고,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도 52%로 1년 전 43.9%에서 8.1%포인트 늘었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1년 전보다 25% 줄었고, 30평대 전세 보증금은 6억 9,000만 원으로 1년 새 8% 뛰었습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간다는 건 단순히 주거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닙니다. 목돈으로 묶여 있던 주거비가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고정 현금흐름으로 전환된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 가처분소득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 그러니까 외식비, 술값, 여가비의 재원이 통째로 줄어듭니다. 여기에 7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7로 2021년 9월 이후 4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가 강하다는 건, 임대료가 더 오를 거라는 예고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 축, 물가, 헤드라인보다 장바구니가 더 아픈 이유
2026년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해 전월 3.1%보다 0.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지수는 2.5%였고, 생활물가지수는 3.4%, 식품 이외 부문은 4.1% 올랐습니다. 이는 2023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로,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이 주된 배경입니다. 품목별로 보면 축산물이 6.2%, 석유류가 24.7% 급등했고, 개인서비스 물가는 3.4% 올랐습니다.
체감과 지표의 괴리가 여기서 생깁니다. 헤드라인은 3.2%인데 자주 사는 품목만 모아놓은 생활물가는 3.4%, 기름값은 24.7%입니다. 우리 뇌는 1년에 한 번 사는 물건이 아니라 일주일에 세 번 사는 물건으로 물가를 기억하죠. 그러니 "3%대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감각은 착각이 아니라 정확한 관측입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6월 물가 상승률을 0.4%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산했고, 국가데이터처는 8월 4일 7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가계는 어떻게 됐나
2026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월평균 소득은 548만 1,000원으로 2.4% 늘었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쳤고, 월평균 소비지출은 310만 5,000원으로 5.3% 급증했습니다. 처분가능소득은 434만 4,000원으로 2.7% 늘었지만 흑자액은 123만 9,000원으로 3.1% 감소했고, 흑자율은 28.5%로 1.7%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근로소득은 342만 2,000원으로 0.3%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비소비지출 중 이자비용은 6.6% 늘었습니다.
계층별로 보면 그림이 더 선명합니다. 소득 1분위 가구의 지출은 주거·수도·광열이 21.7%, 식료품·비주류음료가 20.8%, 음식·숙박이 11.8% 순이었습니다. 살 곳과 먹을 것에만 42.5%가 나갑니다. 1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155.3%까지 올라갔습니다.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쓰는 구조, 즉 빚으로 생활한다는 뜻이죠.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59배로 전년 동기 6.32배보다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주식시장
주거비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근로소득이 0.3% 늘어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시장으로 갔습니다. 문제는 그냥 간 게 아니라 배를 태워서 갔다는 겁니다.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없다고 판단한 20~30대가 지수 5배 포트폴리오 마진과 개별종목 2배 레버리지를 선택했고, 2026년 7월 코스피 급락 국면에서 36만 계좌가 청산됐습니다. 청산 계좌의 62%가 35세 미만이었고, 6월 말 코스피 마진 대출 잔액은 38조 6,3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였으며, 한 달간 차입 투자 개인 손실은 2조 1,5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정부는 1375 부채 상담 핫라인까지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7월 말 시장은 사상 최대 폭으로 반등했습니다. 여기에 이 이야기의 가장 잔인한 비대칭이 있습니다. 지수는 돌아왔지만 청산당한 계좌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레버리지는 방향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시간을 버티는 게임인데, 반대매매는 버틸 시간을 강제로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주가 하락에도 소비심리가 개선됐다고 나오는데, 이 역시 지수를 들고 있던 사람과 레버리지로 털린 사람이 다른 집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자영업이 최고 난이도라는 진단에 대하여
이 모든 데이터가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자영업의 매출은 다른 사람의 '잉여'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잉여를 나타내는 가계 흑자액이 3.1% 줄었고, 흑자율은 28.5%로 낮아졌습니다. 반면 자영업의 비용은 계약서로 고정돼 있습니다. 임대료는 계약 기간 동안 내려가지 않고, 2027년 최저임금은 시급 1만 700원으로 3.7% 인상돼 2027년 1월 1일부터 적용됩니다. 원재료비는 축산물 6.2%, 석유류 24.7%의 세계에 살고 있고요.
즉 자영업은 매출은 변동, 비용은 고정인 사업입니다. 이건 정확히 레버리지의 정의입니다. 주식 레버리지는 그래도 언제든 손절 버튼이 있지만, 자영업 레버리지에는 그 버튼이 없습니다. 닫는 데도 돈이 들고, 원상복구 비용이 들고, 남은 대출은 그대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사장님들이 매출 40%가 빠질 때까지 버티는 겁니다. 손절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최고의 전략은 버티기밖에 없으니까요. 자영업이 최고 난이도라는 진단, 데이터로 보면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지금 국면의 본질은 '불황'이 아니라 '분리'입니다. 수출과 자산은 유동성의 속도로 달리고, 임금과 골목 매출은 경제의 속도로 걷습니다. 실질소득 0.4%와 주택가격전망 127이 같은 달에 찍혔다는 사실이 그 분리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해집니다. 첫째, 고정비를 최대한 변동비로 바꾸는 것. 둘째, 부채의 만기와 금리 구조를 지금 다시 확인하는 것. 셋째, 손절 버튼이 없는 레버리지는 절대 만들지 않는 것.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국면이 아니라, 견딜 수 있게 설계한 사람이 이기는 국면입니다.
※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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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대한민국 서민경제는 꽤 심각한 상황
지금 대한민국 서민경제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그 힘겨움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통계로 확인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나라 전체의 성적표는 좋게 나오고 있는데, 그 성적표를 만든 주체와 그 성적표의 혜택을 받는 주체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 바로 그 분리가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입니다. 오늘은 자영업, 주거비, 물가,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라 불렸던 주식시장까지, 서민경제의 네 축을 데이터로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큰 그림입니다. 2026년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기 대비 0.6%, 전년 동기 대비 3.7% 성장했고, 실질 국내총소득은 전기 대비 3.6%, 전년 동기 대비 15.6%나 늘었습니다. 6월 수출은 반도체와 컴퓨터, 선박 호조에 힘입어 전년 동월 대비 70.9% 증가했습니다. 소비자심리지수도 7월 106.8로 석 달 연속 100을 웃돌며 장기 평균보다 낙관적인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숫자만 보면 호황입니다. 그런데 왜 마트에서, 상가에서, 월세 계약서 앞에서는 정반대의 감각이 들까요. 답은 이 성장의 엔진이 반도체 수출이라는 점, 그리고 그 엔진의 열기가 골목 상권까지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첫 번째 축, 자영업, 100만 명 폐업 시대의 고착
중소벤처기업부가 2026년 7월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폐업 사업자는 97만 6,000개, 폐업률은 8.64%였습니다. 업종별로는 소매업 폐업률이 15.40%로 가장 높았고, 주요 폐업 사유는 사업부진이 49만 2,000개로 압도적 1순위였습니다. 연령별로는 40세 미만 청년 폐업이 27만 7,000개, 40~50대가 46만 개, 60세 이상이 23만 8,000개였고, 수도권 폐업만 54만 8,000개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대목은 실태조사 쪽입니다.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 수익성 악화와 매출 부진이 폐업 사유 1순위로 70.9%를 차지했고, 폐업을 결정할 때 64.4%가 정상 매출 대비 40% 이상 감소했을 때 결심했다고 답했습니다. 이 문장을 뒤집어 읽어보시죠. 매출이 30% 빠져도 사장님들은 안 닫는다는 뜻입니다. 20% 빠져도 버팁니다. 권리금이 있고, 인테리어 감가가 남아 있고, 무엇보다 닫는 순간 대출이 일시상환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폐업 통계는 '어려운 사장님의 숫자'가 아니라 '이미 버티기가 끝난 사장님의 숫자'입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라는 얘기죠.
수익성은 어떨까요. 한국신용데이터의 2026년 1분기 소상공인 동향 리포트를 보면, 사업장당 평균 매출은 4,258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9% 늘었지만 전 분기와 비교하면 13.38% 감소했고, 사업장당 평균 이익은 999만 원이었습니다. 분기 이익 999만 원, 월로 나누면 333만 원입니다. 사장님이 주 6일 매장에 서서 벌어들이는 돈이 2027년 최저임금 시급 1만 700원 기준 <cite name="minwage" index="40-1">월 환산액 223만 6,300원</cite>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리스크는 전부 사장님이 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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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축, 부채, 이자가 매출보다 먼저 나갑니다
한국은행 자료 기준 2026년 1분기 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95조 5,000억 원으로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였습니다. 사업자 대출이 745조 5,000억 원, 가계대출이 350조 원이고, 연체액은 22조 3,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연체율은 2.04%로 2015년 2분기 이후 10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Investing.com
숫자가 커서 감이 안 오신다면 2금융권을 보시면 됩니다.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12.79%로, 코로나19 이후 저점이었던 2022년 2분기 말 1.78%와 비교하면 7배가 넘습니다.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이자를 못 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득 하위 30%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53조 2,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연체율은 2.13%로 10년 3개월 만에 최고를 찍었습니다. 여기에 대출을 보유한 사업장 360만 곳 가운데 폐업 상태인 곳이 50만 곳입니다. 가게는 사라졌는데 빚은 남아 있는 분들이 50만 명이라는 얘기입니다.
Seouleconews + 2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 한국은행은 대출 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경우 자영업자의 연간 이자 부담이 총 1조 8,000억 원 늘고 차주 한 명당 평균 56만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연내 2회 인상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 사이클과 방향이 정반대죠. 예전에는 버티면 금리가 내려와 줬는데, 이번에는 버티는 동안 금리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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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축, 주거비,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남았습니다
KB부동산 7월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 9,490만 원으로, 1월 15억 2,162만 원에서 6개월 만에 7,328만 원 올랐습니다. 평균 전셋값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7억 원을 넘었고, 아파트 월세도 올해 들어 5% 넘게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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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건 구조 변화입니다. 국토교통부 2026년 6월 주택통계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서울 비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이 78.1%였습니다. 5년 평균 62.1%보다 16.0%포인트 높고,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도 52%로 1년 전 43.9%에서 8.1%포인트 늘었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1년 전보다 25% 줄었고, 30평대 전세 보증금은 6억 9,000만 원으로 1년 새 8%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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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간다는 건 단순히 주거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닙니다. 목돈으로 묶여 있던 주거비가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고정 현금흐름으로 전환된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 가처분소득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 그러니까 외식비, 술값, 여가비의 재원이 통째로 줄어듭니다. 여기에 7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7로 2021년 9월 이후 4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가 강하다는 건, 임대료가 더 오를 거라는 예고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 축, 물가, 헤드라인보다 장바구니가 더 아픈 이유
2026년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해 전월 3.1%보다 0.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지수는 2.5%였고, 생활물가지수는 3.4%, 식품 이외 부문은 4.1% 올랐습니다. 이는 2023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로,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이 주된 배경입니다. 품목별로 보면 축산물이 6.2%, 석유류가 24.7% 급등했고, 개인서비스 물가는 3.4%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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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과 지표의 괴리가 여기서 생깁니다. 헤드라인은 3.2%인데 자주 사는 품목만 모아놓은 생활물가는 3.4%, 기름값은 24.7%입니다. 우리 뇌는 1년에 한 번 사는 물건이 아니라 일주일에 세 번 사는 물건으로 물가를 기억하죠. 그러니 "3%대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감각은 착각이 아니라 정확한 관측입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6월 물가 상승률을 0.4%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산했고, 국가데이터처는 8월 4일 7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가계는 어떻게 됐나
2026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월평균 소득은 548만 1,000원으로 2.4% 늘었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쳤고, 월평균 소비지출은 310만 5,000원으로 5.3% 급증했습니다. 처분가능소득은 434만 4,000원으로 2.7% 늘었지만 흑자액은 123만 9,000원으로 3.1% 감소했고, 흑자율은 28.5%로 1.7%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근로소득은 342만 2,000원으로 0.3%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비소비지출 중 이자비용은 6.6% 늘었습니다.
계층별로 보면 그림이 더 선명합니다. 소득 1분위 가구의 지출은 주거·수도·광열이 21.7%, 식료품·비주류음료가 20.8%, 음식·숙박이 11.8% 순이었습니다. 살 곳과 먹을 것에만 42.5%가 나갑니다. 1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155.3%까지 올라갔습니다.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쓰는 구조, 즉 빚으로 생활한다는 뜻이죠.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59배로 전년 동기 6.32배보다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주식시장
주거비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근로소득이 0.3% 늘어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시장으로 갔습니다. 문제는 그냥 간 게 아니라 배를 태워서 갔다는 겁니다.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없다고 판단한 20~30대가 지수 5배 포트폴리오 마진과 개별종목 2배 레버리지를 선택했고, 2026년 7월 코스피 급락 국면에서 36만 계좌가 청산됐습니다. 청산 계좌의 62%가 35세 미만이었고, 6월 말 코스피 마진 대출 잔액은 38조 6,3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였으며, 한 달간 차입 투자 개인 손실은 2조 1,5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정부는 1375 부채 상담 핫라인까지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7월 말 시장은 사상 최대 폭으로 반등했습니다. 여기에 이 이야기의 가장 잔인한 비대칭이 있습니다. 지수는 돌아왔지만 청산당한 계좌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레버리지는 방향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시간을 버티는 게임인데, 반대매매는 버틸 시간을 강제로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주가 하락에도 소비심리가 개선됐다고 나오는데, 이 역시 지수를 들고 있던 사람과 레버리지로 털린 사람이 다른 집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자영업이 최고 난이도라는 진단에 대하여
이 모든 데이터가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자영업의 매출은 다른 사람의 '잉여'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잉여를 나타내는 가계 흑자액이 3.1% 줄었고, 흑자율은 28.5%로 낮아졌습니다. 반면 자영업의 비용은 계약서로 고정돼 있습니다. 임대료는 계약 기간 동안 내려가지 않고, 2027년 최저임금은 시급 1만 700원으로 3.7% 인상돼 2027년 1월 1일부터 적용됩니다. 원재료비는 축산물 6.2%, 석유류 24.7%의 세계에 살고 있고요.
즉 자영업은 매출은 변동, 비용은 고정인 사업입니다. 이건 정확히 레버리지의 정의입니다. 주식 레버리지는 그래도 언제든 손절 버튼이 있지만, 자영업 레버리지에는 그 버튼이 없습니다. 닫는 데도 돈이 들고, 원상복구 비용이 들고, 남은 대출은 그대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사장님들이 매출 40%가 빠질 때까지 버티는 겁니다. 손절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최고의 전략은 버티기밖에 없으니까요. 자영업이 최고 난이도라는 진단, 데이터로 보면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지금 국면의 본질은 '불황'이 아니라 '분리'입니다. 수출과 자산은 유동성의 속도로 달리고, 임금과 골목 매출은 경제의 속도로 걷습니다. 실질소득 0.4%와 주택가격전망 127이 같은 달에 찍혔다는 사실이 그 분리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해집니다. 첫째, 고정비를 최대한 변동비로 바꾸는 것. 둘째, 부채의 만기와 금리 구조를 지금 다시 확인하는 것. 셋째, 손절 버튼이 없는 레버리지는 절대 만들지 않는 것.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국면이 아니라, 견딜 수 있게 설계한 사람이 이기는 국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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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수년간 공급 충격에 대비해 준비해 왔다.
해협이 닫혔는데, 왜 중국만 덜 흔들릴까요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호르무즈 사태에서,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단단한 자리에 서 있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위기를 잘 관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가 오기 몇 년 전부터 조용히 사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사놓았고, 곡물을 사놓았고, 햇빛과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설비를 사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금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네 갈래의 준비가 어떻게 하나의 그림으로 맞물리는지, 최신 데이터로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부터 보시죠. 7월 31일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상업 선박에게 사실상 닫혀 있습니다. 7월 23일 기준 해협을 통과한 상선은 10척, 평상시 하루 88척과 비교하면 약 11퍼센트 수준이고, 유조선 전쟁위험 보험료는 위기 이전의 8배로 뛰었으며 여섯 곳의 선주상호보험조합이 담보를 철회했습니다. 평시라면 이 좁은 물길로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4분의 1, 액화천연가스의 5분의 1이 지나갑니다. 지구의 혈관 하나가 눌린 셈입니다. 그런데 이 압박이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오늘의 본론입니다.
첫 번째 버퍼는 기름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2025년 12월 기준으로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전략 석유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은 2025년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110만 배럴씩 상업 재고를 쌓아 연말에 약 14억 배럴에 도달했고, 정부 보유분은 3억 6천만 배럴 규모로 추정됩니다. 정부와 상업 재고를 합치면 수입 기준 약 121일치로, 국제에너지기구가 회원국에 권고하는 90일 기준을 훌쩍 넘습니다. 중국은 그 기구의 회원국도 아닙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스스로 더 많이 쌓았다는 뜻이죠. 일부 분석은 2025년 말 총 원유 비축 규모를 12억~14억 7천만 배럴, 순수입 기준 110~180일치로 보고 있고, 2025년부터 2026년 사이 11개의 비축 기지를 추가해 연말이면 총 저장 능력이 20억 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 숫자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냈는지가 중요합니다. 브렌트유가 3월에 배럴당 118달러 부근까지 치솟았을 때, 중국 국내 유가는 국제 시장의 약 5분의 1 수준으로만 움직였습니다. 국제 유가가 다섯 걸음 뛸 때 중국 국내 가격은 한 걸음만 움직인 겁니다. 재고라는 것은 평소에는 창고 임대료만 나가는 비용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해협이 닫히는 순간, 그 창고는 나라 전체의 물가 방파제가 됩니다.
두 번째 버퍼는 식량입니다. 이쪽 숫자는 사실 원유보다 더 놀랍습니다. 2026/27년 기준 중국의 옥수수 재고는 약 1억 6,600만 톤으로 세계 전체의 60퍼센트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06/07년에는 3,660만 톤이었으니 20년 만에 네 배가 넘게 불어난 겁니다. 밀 재고도 같은 기간 3,860만 톤에서 약 1억 2,100만 톤으로 늘어 세계 밀 재고의 44퍼센트를 차지하고, 쌀은 1억 800만 톤으로 세계 재고의 절반을 넘습니다. 국영 비축 기업이 농가에서 사들이는 곡물만 연간 4억 2천만 톤 규모로, 2년 연속 4억 톤을 넘겼습니다. 에너지 위기는 거의 예외 없이 식량 위기로 번집니다. 비료도, 농기계도, 운송도 전부 기름을 먹기 때문이죠. 중국은 그 두 번째 파도가 오기 전에 창고를 채워둔 겁니다.
세 번째 버퍼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2026년 상반기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약 2조 킬로와트시로 전년 대비 9퍼센트 늘었고, 사상 처음으로 전체 발전량의 40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풍력과 태양광만 합쳐 1조 2,500억 킬로와트시입니다. 반대로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은 49.7퍼센트로 떨어져, 반기 기준으로 처음 50퍼센트 선이 무너졌습니다. 6월 말 기준 총 발전 설비는 40억 4천만 킬로와트로 세계 1위이고, 이 가운데 태양광이 12억 7천만 킬로와트로 전년 대비 15.8퍼센트, 풍력이 6억 8천만 킬로와트로 18.5퍼센트 늘었습니다. 2030년까지 풍력과 태양광 합계 28억 킬로와트, 재생에너지 전체 35억 킬로와트라는 목표도 이미 공표됐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그림이 완성됩니다.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그 전기를 쓸 수요가 없으면 기름을 대체하지 못하죠. 그런데 중국은 수요 쪽도 함께 갈아엎었습니다. 2025년 기준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합친 전동화 차량이 신차 승용차 판매의 57퍼센트를 차지했고, 늘어난 전기차 보유대수가 2026년 한 해에만 하루 54만 배럴의 휘발유 수요를 밀어냅니다. 2026년 5월에는 전기차 비중이 62.9퍼센트라는 기록을 세웠고, 전력이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4퍼센트에 이릅니다. 전기차 전체 함대가 이미 하루 100만 배럴이 넘는 석유 수요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는 오만의 하루 산유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유조선이 못 들어오면 발전소를 더 돌리면 되고, 그 발전소의 연료는 수입할 필요가 없는 국산 햇빛과 바람입니다. 이것이 중국이 만든 구조적 우회로입니다.
그래서 실제 성적표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중국의 2026년 상반기 성장률은 4.7퍼센트였습니다. 1분기 5.0퍼센트, 2분기 4.3퍼센트로, 3월 양회에서 제시한 4.5~5.0퍼센트 목표 범위 안에 들어왔죠. 국제통화기금은 7월 8일 세계경제전망 수정치에서 올해 세계 성장률을 3.0퍼센트로 낮추면서 미국·일본·인도를 0.1퍼센트포인트씩, 유로존을 0.2퍼센트포인트 하향했습니다. 물가를 보면 격차가 더 선명합니다. 5월 미국 물가상승률은 4.3퍼센트, 유로존은 3.2퍼센트였고 6월에 각각 3.5퍼센트와 2.8퍼센트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은 소비자물가 1.0퍼센트, 생산자물가 1.5퍼센트에 머물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유 수입국이, 원유 위기 국면에서 가장 낮은 물가를 기록한 겁니다.
공급선 자체도 조용히 갈아탔습니다.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 가운데 호르무즈를 지나는 비중은 2025년 51퍼센트에서 약 44퍼센트로 낮아졌습니다. 해협을 지나지 않는 러시아산 해상 원유가 하루 120만 배럴에서 약 180만 배럴로 늘어난 결과입니다. 6월에는 러시아산이 중국 원유 수입의 29퍼센트를 차지한 반면 사우디산은 5퍼센트에 그쳤고, 상반기 중러 교역액은 1,341억 8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6퍼센트 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역설이 하나 더 붙습니다. 1분기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77.5퍼센트 급증했고, 3월 한 달 선적량은 약 140퍼센트 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세계의 주유소 가격이 오를수록 중국의 수출 효자 상품이 더 잘 팔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 금입니다. 중국 인민은행은 6월에 14.93톤의 금을 추가 매입해 20개월 연속 매수를 이어갔고, 보유량은 2,346톤에 이르렀습니다. 6월 말 외환보유액은 3조 4,163억 달러로 전월 대비 260억 달러 줄었습니다. 6월 매입분은 2023년 이후 단일 월 최대 규모였고, 스팟 금값이 온스당 4,000달러 아래로, 1월 장중 고점인 5,500달러대에서 약 16퍼센트나 밀린 시점에 이루어졌습니다. 가격이 빠지는데 오히려 더 샀다는 뜻이죠. 수입 쪽은 더 공격적입니다. 3월 순수입만 143톤으로 전월 대비 49퍼센트 늘었고, 1분기 순수입은 316톤으로 전 분기 대비 182퍼센트, 전년 동기 대비로는 333퍼센트 폭증했습니다. 5월 수입량도 약 163톤에 달했는데, 같은 달 공식 발표된 인민은행 매입분은 9.95톤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중반 현재 중국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 못 미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준비자산 관리자들이 70퍼센트 안팎을 금으로 들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는 이야기죠.
중국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세계금협회가 76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상 최대 규모의 2026년 조사에서, 89퍼센트가 향후 12개월간 세계 공식 금 보유량이 늘어날 것으로 봤고, 자국 보유를 늘리겠다고 답한 곳은 45퍼센트로 2018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위기 국면에서의 성과를 이유로 든 응답이 90퍼센트, 장기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응답이 84퍼센트, 분산투자가 82퍼센트였습니다. 한편 7월 24일부터 중국 주요 은행들은 소매 고객의 귀금속 증거금 거래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종이로 된 금의 시대를 닫고 실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 이 다섯 갈래를 한 문장으로 묶어보겠습니다. 원유 비축은 시간을 벌어주고, 식량 비축은 물가를 눌러주고, 태양광과 풍력은 수입 의존 자체를 줄여주고, 러시아·중앙아시아 노선은 병목을 우회하고, 금은 이 모든 것을 감싸는 마지막 보험입니다. 각각은 평범한 정책이지만, 다섯 개가 동시에 작동할 때는 완충 장치가 아니라 협상력이 됩니다. 위기 때 급하게 살 필요가 없는 나라는, 가격을 부르는 쪽이 아니라 기다리는 쪽에 설 수 있으니까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여기서 가져갈 교훈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준비는 위기 전에만 할 수 있습니다. 해협이 닫힌 다음에 기름을 사려면 118달러를 내야 하고, 금값이 사상 최고를 찍은 다음에 금을 사려면 5,500달러를 내야 하죠. 반대로 중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남들이 팔 때 사고, 조용할 때 쌓고, 값이 빠질 때 더 담는 것입니다. 현금이라는 완충장치, 자산군 분산이라는 우회로, 그리고 실물이라는 마지막 보험. 국가 단위에서 통하는 원리는 계좌 단위에서도 똑같이 통합니다. 우리가 지금 점검해야 할 것은 시황 전망이 아니라, 내 포트폴리오에 며칠치 버퍼가 들어 있는가 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종목이나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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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뒤 삼전이랑 하이닉스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 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산업 패권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도, 설비도, 심지어 정부의 의지도 아닙니다. 그 시대에 가장 똑똑한 열여덟 살들이 어느 문으로 걸어 들어갔느냐, 오직 그것 하나입니다. 이 명제를 지난 40년 동안 가장 잔인하게 증명해 보인 나라가 일본이고, 그 덕분에 왕좌를 물려받은 나라가 한국이며, 지금 그 똑같은 각본을 반대편에서 다시 연기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숫자로 끝까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일본입니다. 흔히들 일본 전자산업의 몰락을 플라자 합의나 엔고, 혹은 갈라파고스화 때문이라고 설명하시죠. 물론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헤이세이 원년 무렵부터 일본의 교실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목적지가 공학부에서 의학부로 통째로 옮겨간 겁니다. 놀라운 건 그 이전 시대의 풍경입니다.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는 이공계가 대단히 인기가 높아서, 오사카대 의학부를 나온 사람이 교토대 공학부에는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고, 규슈대 같은 옛 제국대학에서도 공학부가 의학부보다 위였다는 자료가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소니와 도시바와 NEC를 만든 세대가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버블이 무너지고 나서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일본에서 의학부 인기가 치솟은 배경은 명확합니다.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 침체 속에서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직업으로 의사가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이겁니다. 방위의대를 뺀 전국 의학부 입학 정원은 1990년도 7,685명에서 2015년도 9,134명으로 상당히 늘었는데, 그렇다고 의대 입시가 쉬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정원을 늘리면 경쟁이 완화될 거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겁니다. 몰려드는 속도가 정원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빨랐으니까요. 그 결과가 무엇이었냐면, 오늘날 지방 국공립대 의학부의 편차치가 도쿄대와 교토대의 이공계 학부들을 웃도는 역전 현상입니다. 지방 명문고의 자랑거리가 도쿄대 합격자 수가 아니라 지역 의대 합격자 수가 된 나라,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바로 그 30년 동안 한국의 최상위권은 어디로 갔습니까. 서울대 공대, 카이스트, 포스텍이었습니다. 전국 상위 0.1퍼센트가 반도체 공정과 회로 설계와 재료공학을 공부했고, 그 인력이 기흥과 이천의 클린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본이 의국을 채우는 동안 한국은 팹을 채웠고, 그 인재 배치의 차이가 20년 뒤 D램과 낸드와 스마트폰 시장의 순위표로 나타났습니다. 이건 정신론이 아니라 산술입니다. 최고의 두뇌를 어디에 배치했는지가 20년 뒤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을 결정합니다.
자,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의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기서부터가 오싹한 대목입니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이공계 정시 합격선 상위 20개 학과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의대였습니다.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곱씹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26학년도 결과는 더 선명합니다. 서울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자연계열 등록 포기자가 180명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심각한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전기정보공학부에서만 15명이 등록을 포기해 전년 대비 25퍼센트 늘었고, 컴퓨터공학부 9명, 화학생물공학부 8명 등 전통의 간판 학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서울대 의예과에서는 등록 포기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입시 업계에서는 서울대 공대와 의대에 동시 합격했을 때 수험생의 최종 선택은 결국 의대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6학년도 정시에서 서울대 107명, 연세대 435명이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 주로 의대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숫자가 남아 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대기업 계약학과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2026학년도에 144명으로, 전년 103명보다 39.8퍼센트 늘었습니다. 계약학과가 어떤 곳입니까. 입학과 동시에 국내 최고 대기업의 취업이 사실상 보장되는, 이공계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를 걷어차고 의대로 갑니다. 대한민국 이공계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인센티브가 시장에서 이미 패배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2027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제가 본격 도입되면 의대 모집 인원이 추가로 확보되면서 자연계열 이탈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학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학원은 이미 비어 있습니다. 서울대의 2025학년도 대학원 STEM 정원 가운데 75퍼센트가 미충원 상태였고,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를 합해 41개 학과 61명이 미충원됐는데 이는 2020년 대비 3배 늘어난 수치입니다. 박사급 AI 인재 중 해외 이민을 희망하는 인원은 2023년 592명, 2024년 658명, 2025년 709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고, 미국 AI 박사 초임이 11만 4천 달러를 넘는 반면 한국 민간 AI 연구원의 초임은 약 4,100만 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스탠퍼드 HAI의 AI 인덱스 2026 기준으로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은 OECD 38개국 가운데 35위, 순유입률은 만 명당 마이너스 0.36입니다.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죠. 스위스 IMD의 세계 인재 순위 2025에서 한국은 69개국 중 37위로 전년보다 11계단 떨어져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외국 고급 인재 유치는 61위, 두뇌 유출 방지는 48위였습니다. 국내 과학자의 해외 이직률 2.85퍼센트가 외국 과학자의 국내 유입률 2.64퍼센트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위에서는 안 들어오고, 안에 있던 사람은 나갑니다. 파이프라인의 위아래가 동시에 끊긴 겁니다.
이제 중국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체급 자체가 다릅니다. 중국은 상위 1퍼센트 영재를 선발해 학부 시절부터 연구 현장에 투입하고 있고,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이른바 996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 일상입니다.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10퍼센트 늘린 데 이어 중앙 국유기업들을 통해 4년 연속 1조 위안, 약 210조 원이 넘는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230조 원이 들어갔습니다. 투입 인력은 144만 명, 국가급 연구개발 플랫폼은 470여 개에 이릅니다. 인재를 뽑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중국 교육부와 8개 부처는 2022년부터 공학 석·박사 교육 개혁 시범사업을 추진해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같은 전략 분야의 병목 기술을 풀 고급 엔지니어를 길러내고 있는데, 3년여 만에 60개 대학과 100여 개 기업의 공동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2만 명이 넘는 공학 인재가 선발됐습니다. 2024년에는 아예 법을 통과시켜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등 18개 분야에 실천성과 박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논문이 아니라 문제 해결로 박사를 주는 나라, 그것이 지금의 중국입니다.
그래서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을까요. 정부의 공식 평가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보고한 2024년도 기술 수준 평가에 따르면, 50개 국가전략기술에서 미국을 100퍼센트로 볼 때 한국은 82.7퍼센트인 반면 중국은 91.3퍼센트였습니다. 중국은 2022년 86.5퍼센트에서 끌어올린 것이고, 한중 격차는 4.8퍼센트포인트에서 8.6퍼센트포인트로 2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양자는 중국 93.2퍼센트 대 한국 67.8퍼센트, 우주항공은 84.8퍼센트 대 59.3퍼센트, AI는 93.0퍼센트 대 80.6퍼센트, 로봇은 90퍼센트 대 81퍼센트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강세라던 반도체·디스플레이마저 중국 91.5퍼센트, 한국 91.2퍼센트로 사실상 기술 우위가 사라졌으며, 2차전지는 중국이 처음으로 한국을 추월해 1위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지켰다고 믿었던 마지막 성벽에서 소수점 세 자리의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이 한 회사에 응축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입니다. CXMT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약 508억 위안, 미화 75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9퍼센트 늘었고 순이익은 1,200퍼센트 넘게 증가했습니다. 회사는 2026년 상반기 매출을 1,100억에서 1,200억 위안, 즉 160억에서 177억 달러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0퍼센트 이상의 성장입니다. 기업공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CXMT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연구개발 인력만 4,653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체 직원 1만 5,300명 가운데 30퍼센트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한국 엔지니어 200명을 이미 품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링크드인으로 불특정 다수를 접촉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인력을 조직적으로 영입하는 단계까지 진화했고, 연봉만이 아니라 조직 운영 권한과 스톡옵션, 주거 지원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기술 격차가 아직 남아 있다는 반론도 물론 있습니다. CXMT가 HBM3 초기 양산을 안정화하는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4를 엔비디아 등에 공급했고 7세대 HBM4E 샘플까지 출하해, 로드맵상 최소 두 세대 이상 앞서 있다는 평가입니다.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격차의 크기가 아니라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 그리고 그 사이 우리 수익 기반이 어디서 무너지고 있는가입니다. CXMT가 최근 공개한 DDR5와 LPDDR5X의 표시 성능은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력 제품 수준에 상당히 근접했고, 중국이 자체 개발한 액침식 DUV 노광장비도 올해 약 5대를 생산해 CXMT와 SMIC 등에 공급한 뒤 2027년 20대로 늘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CXMT는 DDR4를 시장가의 절반 수준으로 뿌리며 구형 D램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HP와 델, 에이수스와 에이서 같은 글로벌 제조사들이 품질 테스트와 협력 논의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능력 절반 이상이 여전히 범용 제품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HBM4에서 앞서 있어도, 범용 D램의 수익성이 무너지면 전체 실적이 흔들립니다. 낸드에서 점유율 10퍼센트를 확보한 YMTC 역시 신규 공장을 통해 D램과 HBM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각본, 우리는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입니다. 중국의 LCD 패널 수입액은 2012년 503억 달러에서 2023년 119억 달러로 4분의 1 아래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이 LCD 시장을 60.8퍼센트로 장악하는 동안 한국 점유율은 10.1퍼센트로 내려앉았고,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쓰는 OLED 패널 가운데 한국 제품 비중은 2021년 78퍼센트에서 2023년 16퍼센트로 급감했습니다. 지금 세계 LCD 생산의 약 90퍼센트가 중국 몫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망친 OLED는 안전할까요. 한국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OLED 점유율은 2020년 한국 87퍼센트 대 중국 12퍼센트에서 2025년 69퍼센트 대 31퍼센트로 좁혀졌습니다. 2024년 기준 글로벌 OLED 출하량에서 중국 업체 비중은 이미 48퍼센트에 달합니다. 태양광은 더 참혹합니다. 전 세계 태양광의 90퍼센트가 중국산이고 웨이퍼는 97퍼센트, 셀은 80퍼센트를 중국이 장악했으며, 한국 점유율은 50퍼센트대에서 4퍼센트대로 추락했습니다. 태양광에서 벌어진 일이 LCD에서 반복됐고, LCD에서 벌어진 일이 지금 OLED에서 진행 중이며, 그다음 순번이 메모리라는 것이 이 산업의 냉정한 경로입니다.
여기에 우리 쪽 조건 하나가 더 겹칩니다. 2025년 반도체특별법 논의에서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를 두고 여야가 합의하지 못했고, 2026년 1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도 근로시간 특례는 끝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저쪽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자랑하는데, 이쪽은 그 논쟁 자체를 아직 매듭짓지 못한 겁니다. 여기서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장시간 노동을 미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경쟁이라는 게 우리가 정한 규칙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 산업의 부침이 아니라, 한 세대의 인재 배치가 20년 뒤 국가 산업 지도를 바꾸는 과정의 초반부입니다. 일본은 최고의 두뇌를 진료실로 보냈고 20년 뒤 전자 왕국을 잃었습니다. 한국은 그 두뇌를 클린룸으로 보냈고 20년 뒤 왕좌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이공계 우등생들이 연구 환경과 인프라를 좇아 중국 명문 공대로 진학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향이 완전히 뒤집힌 겁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당장 내일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수년 뒤 이 두 회사가 마주할 질문이 점유율이나 마진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오늘의 교실에서, 서울대 공대 등록을 포기하는 180명의 선택 속에서 조용히 결정되고 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20년 늦게 도착할 뿐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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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에서는 변압기가 '없어서 못 파는' 물건입니다
효성중공업을 "아파트 짓는 회사"로 알고 계셨다면, 오늘 그 인식을 한 번 뒤집으실 차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회사의 진짜 주력은 아파트가 아니라 미국 전기를 실어 나르는 초대형 변압기이고, 미국 땅에서 가장 높은 전압인 765kV급 변압기를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공장은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효성중공업 공장, 단 하나뿐입니다.
먼저 아파트 이야기부터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해링턴 플레이스(Harrington Place)'는 효성중공업이 2013년에 런칭한 아파트 브랜드이고, 그 전신은 2002년의 '효성백년가약'입니다. 오피스텔은 해링턴 타워, 복합건물은 해링턴 스퀘어, 빌라는 해링턴 코트로 갈래를 나눠 쓰고 있죠. 최근 사례로는 김포 풍무동 현장이 있습니다. 풍무 양도지구에 지하 3층~지상 최고 29층, 18개 동, 총 1,769세대 규모로 조성되고 입주는 2028년 8월 예정이며,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GSS팀이 조경을 설계해 테마별 정원과 선큰 커뮤니티를 배치한 단지입니다. 브랜드로도, 상품으로도 충분히 존재감 있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무게중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효성중공업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1조 3,58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2% 늘었고, 영업이익은 1,523억 원으로 48.7% 증가했습니다. 그중 중공업 부문만 놓고 보면 2분기 매출 1조 2,945억 원, 영업이익 3,067억 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죠. 변압기·차단기 등 전력기기 생산액은 2023년 2조 705억 원에서 2025년 3조 2,581억 원으로, 2년 만에 약 57% 늘었습니다. 아파트가 이름을 만들었다면, 전기가 실적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초고압 변압기가 뭔지 쉽게 짚어보겠습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장거리 송전에 맞게 초고압으로 끌어올리거나, 반대로 수요처에 맞춰 다시 낮춰주는 전력망의 핵심 장비입니다. 여기서 숫자가 중요합니다. 765kV 변압기는 설계와 제조 난도가 매우 높은 대신, 기존 345kV나 500kV 대비 송전 손실을 크게 줄여줍니다. 전압이 높아질수록 절연 기술과 설계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대단히 높은 품목이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멤피스 공장의 위상이 특별합니다. 2020년 인수한 이 공장에 효성중공업은 인수 비용을 포함해 총 3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 증설이 끝나면 미국 내 최대 변압기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더 놀라운 건 실적입니다. 효성은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 765kV 변압기 시장의 리더 자리를 지켜왔고, 미국 전력망에 설치된 765kV 변압기의 거의 절반을 공급해왔습니다. 테네시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증설에는 1억 5,700만 달러가 추가 투입되고 24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며, 생산능력은 50% 더 늘어납니다.
현장의 온도는 더 뜨겁습니다. 효성 하이코(HICO)는 연 100대 이상의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데, 2028년까지 주문이 꽉 차 있고 이미 2030년 이후 물량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2028년까지 총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2027년까지 북미 전력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북미 매출 1조 원을 넘긴 흐름이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셈이죠.
그럼 왜 지금일까요. 답은 AI 데이터센터입니다. 숫자로 보시겠습니다. 우드매켄지의 2025년 2분기 조사에서 전력용 변압기 리드타임은 평균 128주, 발전기 승압용(GSU)은 144주로 2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2019년 이후 GSU 수요는 274%, 변전소용 전력변압기 수요는 116% 늘었고, 단가도 각각 77%, 45% 올랐죠. PwC 분석 기준으로는 대용량 제품의 대기 시간이 최대 4년까지 늘어난 상황이고, 고압 변전 설비는 3~5년까지 벌어졌습니다. 전기설비는 데이터센터 총원가의 10%도 안 되지만, 병목의 100%를 차지한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 자료를 인용한 회사 전망에 따르면 미국 변압기 시장은 2024년 122억 달러에서 2034년 257억 달러로 연평균 7.7% 성장할 것으로 보이고, 미국 전력회사들은 이미 데이터센터에 116기가와트의 신규 전력 공급을 약정했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 최대 전력수요의 약 15.5%에 해당합니다. 만들어야 할 전기는 정해졌는데, 그 전기를 옮길 장비가 부족한 상황. 이 구조에서 유일한 국산 765kV 생산기지를 쥐고 있다는 건 대단히 유리한 자리입니다.
수주 데이터가 이를 증명합니다. 2026년 1분기 수주잔고는 15조 615억 원으로 전년 대비 44%, 전분기 대비 26% 급증했고, 이 중 북미 비중이 53%에 달합니다. 최근에는 미국 주요 송전망 운영사와 약 7,800억 원 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프로젝트 수주였습니다. 앞서 2025년 8~9월에는 765kV 초고압변압기와 리액터, 800kV 초고압차단기를 묶은 전력기기 패키지로 2,000억 원 이상을 수주했는데, 한국 기업이 765kV 송전망에 풀 패키지를 공급한 첫 사례였습니다.
무대는 변압기를 넘어 확장되고 있습니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자회사 하이코가 북미 에너지 인프라 기업 콴타서비스의 자회사와 초고압차단기 합작법인 'HYOSUNG HICO BREAKER LLC'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합작법인은 7월 설립돼 10월부터 펜실베이니아주 캐논스버그 공장에서 72.5kV~800kV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데, 국내 전력기기 업체가 미국 현지에 초고압차단기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멤피스 변압기 공장과 차단기 기지를 연계해 '패키지 수주' 경쟁력을 키우는 그림이죠.
국내 투자도 같은 방향입니다. 효성중공업은 향후 2년간 총 3,300억 원을 투입해 창원 제3공장 부지에 국내 최대 HVDC 변압기 공장을 2027년 7월 준공할 예정입니다. HVDC는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장거리 전력을 안정적으로 보내는 기술인데, 효성중공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압형 HVDC 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200MW급 전압형 HVDC 개발에도 국내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약 1,000억 원을 투자한 수출용 초고압차단기 전용공장에서는 420kV, 550kV, 800kV 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중동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증설 일정이 곧 실적 일정이라는 점도 눈여겨보실 만합니다. 2026년 9월 말 창원 GIS 차단기 수출 전용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매출 캐파가 3,400억 원 늘고, 2026년 말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1차 증설이 끝나면 연간 매출 캐파가 2억 달러에서 4억 달러로 두 배가 됩니다. 2027년부터는 북미 비중 확대에 따른 수익성 개선과 물량 확대에 따른 외형 성장이 동시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적 눈높이도 올라가 있습니다. IBK투자증권은 2분기 매출 1조 9,091억 원, 영업이익 3,245억 원을 제시하며 시장 컨센서스를 웃도는 수치를 내놨고, 유안타증권은 2026년과 2027년 영업이익을 각각 1조 1,829억 원, 1조 7,691억 원으로 추정했습니다.
주가는 어떨까요. 2026년 7월 중순 기준 주가는 270만 원대, 52주 범위는 95만 9,000원에서 474만 2,000원이고, 애널리스트 16명이 매수·매도 0명으로 12개월 평균 목표주가는 445만 원으로 제시돼 있습니다. 지난 1년의 변동폭 자체가 이 산업의 재평가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보셔도 좋겠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효성중공업은 '해링턴 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지금 이 회사의 심장은 미시시피 강가 멤피스에서 뛰고 있습니다. 회사 스스로도 멤피스를 택한 이유로 물류 인프라와 함께 관세를 피하면서 AI 데이터센터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죠. AI가 아무리 빨라도 전기가 없으면 한 줄도 연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전기를 765,000볼트로 끌어올려 대륙을 가로지르게 만드는 장비를, 미국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곳은 아직 이 회사 한 곳뿐입니다. 아파트 이름은 해링턴이지만, 진짜 상품은 미국의 전기였던 겁니다.
※ 본 글은 공개된 뉴스·리서치·기업 발표 자료를 정리한 정보성 콘텐츠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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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대놓고 저점 시그널 던져줌
"샀다 팔았다 하지 마세요" 최태원 회장이 49억 원에 담아 던진 한 문장
지난 3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개인 돈으로 사들였습니다. 금액은 약 49억 원. 그런데 이 숫자, 우연이 아닙니다. 법이 정한 '즉시 살 수 있는 최대치'에 정확히 붙여 놓은 금액이었고, 시장은 하루 만에 그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먼저 팩트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SK하이닉스는 30일 최 회장이 장내매수를 통해 보통주 3,620주를 매입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직접, 개인 명의로 사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평균 매수 단가는 주당 135만 3,677원, 총 매수 금액은 약 49억 원이었습니다. 장중에는 49억 원 이상을 담았지만 주가가 밀리면서 그날 종가 132만 2,000원 기준으로는 47억 9,000만 원어치가 된 겁니다.
왜 하필 49억 원이었을까요
여기서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나옵니다. 2024년 7월 24일부터 시행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따르면,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 원 이상을 거래할 때는 반드시 30일 전에 공시해야 합니다. 위반하면 최대 2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과거 6개월 합산 기준으로 '1% 미만'과 '50억 원 미만'을 동시에 충족할 때만 보고 의무가 면제되죠.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최 회장이 50억 원 이상을 사고 싶었다면, 한 달 전에 "제가 언제 얼마어치를 사겠습니다"라고 미리 공표하고, 그 30일 동안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주가가 어디로 가든 지켜만 봐야 하고요. 그래서 매입 규모를 47억 원 수준으로 제한한 겁니다.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최대 한도를 꽉 채운 셈이죠.
즉, 이건 "조금 사봤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만큼 전부 샀다"입니다. 숫자 뒤에 붙은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는 지점입니다. 시장에서 최 회장이 비슷한 규모로 여러 차례 나눠 추가 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분율 0.00%가 갖는 무게
두 번째 포인트는 '처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최 회장은 그동안 SK하이닉스 지분을 개인적으로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최대주주인 SK스퀘어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해 왔으니까요. 이번 매수로 최 회장의 개인 보유 지분은 3,620주, 지분율로는 0.00%가 됐습니다. SK스퀘어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합산 지분율은 20.00%로 그대로여서 지배구조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총수가 개인 자격으로 직접 자금을 넣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게 업계 분석입니다.
지배력을 늘리려고 산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배력은 이미 충분하니까요. 그렇다면 남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이 가격이 싸다고 봤다는 것.
사상 최대 실적과 반토막 난 주가
배경을 보시면 더 선명해집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9일, 2분기 매출 79조 3,187억 원, 영업이익 60조 5,426억 원, 순이익 93조 9,226억 원이라는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76%,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57%, 영업이익은 557% 늘었고, 상반기 누적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대에 올라섰습니다. 감가상각 차감 전 영업이익은 64조 6,000억 원, EBITDA 마진율은 81%였고,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88조 원으로 한 분기 만에 33조 6,000억 원 늘었습니다.
그런데 주가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6월 25일 장중 298만 7,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찍은 뒤 가파른 조정을 받았고, 한 달여 만인 30일 132만 2,000원까지 밀렸습니다. 실적과 펀더멘털에 비해 낙폭이 과도하다는 시각이 증권가와 업계에서 이어진 배경입니다. 중국 창신메모리의 약진과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 여력에 대한 회의론이 겹치며 전 세계 반도체주가 함께 눌렸죠.
역사상 가장 좋은 실적을 낸 회사의 주가가 반토막 났습니다. 회사 안에서 숫자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건 기회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 시장의 대답
7월 31일 장이 열리자마자 벌어진 일은 그야말로 극적이었습니다. 코스피는 사흘간의 폭락을 딛고 장 초반 16% 넘게 급반등하며 6,500선을 탈환했고,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습니다. SK스퀘어와 삼성전기는 나란히 상한가에 안착했고, 외국인은 7월 일일 최대치인 5조 원 이상을 쓸어 담았습니다. 삼성전자는 25% 넘게, SK하이닉스는 28% 넘게 뛰었습니다.
최 회장이 전날 사들인 지분의 평가가치는 약 61억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하루 만의 평가이익이 12억 700만 원에 달합니다.
물론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반등이 최 회장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닙니다. 간밤 뉴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호실적에 15% 넘게 급등했고, SK하이닉스 ADR도 17.52% 오른 149달러로 마감했습니다. 미국 6월 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하락했고, MSCI 한국지수 ETF는 11.79% 급등하며 국내 증시 강세를 예고했죠. 키움증권은 반도체주 급락을 키웠던 레버리지 펀드의 강제 매도 압력이 줄어들 가능성과 빅테크의 설비투자 확대 기조를 반등 배경으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급락 과정에서 형성된 옵션 포지션이 이날은 반대로 상승 폭을 증폭시켰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다만 여러 재료가 한 방향으로 정렬될 때, 시장은 늘 '누가 먼저 움직였는가'를 봅니다. 전날 최 회장의 매수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반복해서 등장한 이유입니다.
학계가 30년간 검증한 신호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내부자 매수'는 월가에서 나온 수많은 신호 중에서 학술적 근거가 탄탄한 몇 안 되는 지표입니다.
미시간대 네자트 세이훈 교수는 1975~1981년 거래를 분석해 순매수가 나타난 기업에서 300일간 4.3%의 초과수익이 발생한 반면, 순매도 기업은 2.2% 부진했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라코니쇼크와 리는 이를 1995년까지 확장해, 내부자 매수가 가장 많았던 그룹이 가장 적었던 그룹을 12개월간 약 5% 앞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와튼스쿨 연구진의 분석에서는 매수 포트폴리오가 시장을 연 10.2% 앞선 반면, 매도 포트폴리오에서는 그런 초과수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여기입니다. 임원이 주식을 파는 이유는 수십 가지지만, 자기 돈을 들여 장내에서 사는 이유는 대개 하나뿐입니다. 오를 거라고 믿기 때문이죠. 스톡옵션 행사와 달리 장내 매수는 개인 자본을 걸고 추가 위험을 떠안는 행위입니다.
더 정교한 연구도 있습니다. 코헨·맬로이·포모르스키는 내부자 거래를 '루틴'과 '기회주의적' 거래로 나눴습니다. 매년 3월에 세금 때문에 파는 것처럼 계절적 패턴을 따르는 기계적 거래는 예측력이 사실상 0이었습니다. 반면 기존 패턴에서 벗어난 거래는 달랐죠. 기회주의적 거래는 월 82베이시스포인트, 연환산 약 10%의 초과수익을 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통용되는 '신호 강화 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고액 연봉자가 1,000만 원어치 사는 건 큰 의미가 없지만 개인 현금으로 수십억 원을 넣으면 메시지가 강해지고, 여러 임원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매수하면 신뢰가 리더십 전반에 공유돼 있다는 뜻이 되어 신호가 더 강력해집니다.
이번 케이스를 이 체크리스트에 대입해 보시죠. 개인 자금, 확인. 규정 한도를 꽉 채운 대규모, 확인. 생애 첫 매수라는 완벽한 '비(非)루틴', 확인. 여기에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4월 스톡옵션을 행사해 20억 원 규모를 취득했고 차선용 사장도 동일 규모를 확보했다는 사실까지 얹으면, 클러스터 조건도 어느 정도 채워집니다. 교과서적으로 가장 강한 형태의 신호가 맞습니다.
진짜 메시지는 숫자가 아니라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사건에서 49억 원보다 더 중요한 게 최 회장이 남긴 말이라고 봅니다.
최 회장은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쓰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시간을 두면 우상향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다음 달에 어떻게 될지는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덧붙였죠. 주가는 기대가 좋아지면 확 올랐다가 조금 아닌 것 같으면 또 확 떨어진다면서요. 그러면서 이런 종류의 주식이라면 그냥 가만히 갖고 있으라고, 그게 재산을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거라고 했습니다.
이 짧은 말 안에 개인 투자자가 가장 자주 놓치는 구분이 들어 있습니다. 방향과 타이밍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AI 인프라가 커질수록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다는 건 방향입니다. 이건 산업 구조에서 나오는 이야기이고, 분기 실적 숫자로 이미 확인되고 있습니다. 반면 다음 달 주가는 타이밍입니다. 여기엔 옵션 만기, 레버리지 청산, 환율, 연준, 중국발 헤드라인이 뒤엉킵니다. 그룹 총수조차 "그건 나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영역이죠.
그래서 그의 행동은 정확히 이 구분을 따라갑니다. 방향을 믿기에 개인 돈을 넣었고, 타이밍을 모르기에 사고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28% 급등이 나왔다는 건, 사실 그가 옳았다는 증거라기보다 타이밍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최고가 대비 55% 하락과 하루 28% 상승은 같은 시장에서 사흘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정리하겠습니다
최 회장은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에서도 AI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성장할수록 메모리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말로 한 이야기를 자기 계좌로 옮긴 것, 그게 이번 매수의 본질입니다.
한 달 사이 반토막 난 주가 앞에서 회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총수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를 개인 돈으로 담았으며, 시장은 다음 날 사이드카로 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건 "지금 사라"는 결론이 아니라, 왜 그가 사고팔지 말라고 했는지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자산을 골랐다면, 그다음 승부는 종목이 아니라 시간에서 갈리니까요.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인용된 수치와 학술 연구 결과는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것으로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으며,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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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경제의 속도로, 자산은 유동성의 속도로 자랍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열심히 사는데 왜 계속 뒤처지는 느낌일까'라는 감각은 착각이 아닙니다. 통장 잔고는 줄지 않았고 연봉도 조금씩 올랐는데, 집과 주식과 땅은 매년 더 멀어져 갑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노동의 성장 엔진과 자산의 성장 엔진이 애초에 다른 연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월급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자라지만, 자산은 유동성이 팽창하는 속도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이 두 속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습니다.
숫자가 먼저 증언합니다
미국의 광의통화 M2를 보시겠습니다. 2026년 7월 기준 M2는 약 23조 2,90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1년 전 21조 9,492억 달러에서 6.11% 늘었습니다. 5월 기준으로도 전년 대비 5.6% 증가하며 2022년 7월 이후 가장 빠른 연간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1981년 M2가 1조 6,000억 달러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지난 45년간 돈의 총량이 열네 배 넘게 불어난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돈이 늘었다'가 아니라 '늘어난 돈이 어디로 갔는가'입니다. 미국 가계 순자산은 2026년 1분기 183조 달러에 도달했고, 순자산 대비 처분가능소득 비율은 7.81배로 역사적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소득보다 자산이 훨씬 빠르게 부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026년 상반기 다우지수는 8.9% 올라 2021년 이후 최고의 상반기를 기록했고, S&P500은 9.6%, 나스닥은 12.8%, 러셀2000은 22% 가까이 오르며 1991년 이후 최고의 상반기를 보냈습니다. 같은 기간 여러분의 연봉은 몇 퍼센트 올랐는지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관계는 감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1975년 1월부터 2025년 9월까지의 월간 데이터로 주식·주택·금·은·원유를 소비자물가 기준과 통화량 기준으로 각각 재평가한 최근 연구는, 명목 기준으로는 금과 주식이 역사적 고점에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줍니다. 흥미로운 건 통화량으로 나눠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M2로 조정한 S&P500은 최근에야 겨우 닷컴 버블 정점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명목 수익률의 상당 부분이 실은 '화폐 가치 하락분'이었다는 뜻입니다.
1971년,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습니다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을까요. 대담에서 마크 무스는 1971년을 지목합니다. 그 이전 인류의 기록된 역사 전체에서 화폐는 '자기자본'이었습니다. 금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었죠. 내가 금을 건네면 상대가 금을 가졌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1971년 이후 우리는 부채 기반 화폐 시스템으로 넘어왔습니다. 달러는 누군가의 부채이고, 돈은 대출이 일어날 때 창조됩니다. 즉 이 시스템에서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말은 곧 누군가가 빚을 늘렸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우연 아닌 우연이 겹칩니다. 연방준비제도와 국세청이 모두 1913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돈을 만드는 기관과 세금을 걷는 기관이 같은 해에 태어났고, 두 시스템 모두 '소유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무스의 관찰입니다. 임금을 벌어 소비하면 세금은 가장 무겁게 매겨지고 남는 것은 없습니다. 반면 자산을 소유하면 담보가 생기고, 담보가 있어야 은행이 돈을 빌려주며, 팔지 않으면 과세 이벤트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로 남으면 과세되고, 소유자로 남으면 유동성을 얻습니다.
부채는 죄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우리는 빚을 죄악처럼 배웠습니다. 빌리는 자는 빌려주는 자의 종이 된다는 오래된 문장부터, 데이브 램지식의 '무조건 빚부터 갚아라'까지요. 그 가르침이 틀렸다기보다는, 월급으로 사는 사람을 위해 쓰인 규칙서라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부자들의 규칙서는 다릅니다.
핵심은 로버트 기요사키가 대중화한 구분입니다. 나쁜 빚은 내가 갚는 빚이고, 좋은 빚은 다른 사람이 갚아주는 빚입니다. 가난한 사고방식은 '살 수 없는 것을 사기 위해' 빚을 씁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다녀올 수 없는 여행에요. 부유한 사고방식은 '자산을 사기 위해' 빚을 씁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돈보다 남의 돈이 싸기 때문에 빌립니다. 그래서 켄 맥엘로이는 200세대 아파트를 살 때 그 안에 원리금과 비용을 갚아줄 200명의 세입자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고 말합니다. 1만 세대 규모의 멀티패밀리 포트폴리오를 굴리면서도 부채비율은 50% 안팎을 유지하고, 상업용 자산은 개인이 아니라 부동산 자체가 담보가 되는 비소구 대출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미용사였던 어머니가 1만 1,000달러에 산 집이 지금 80만~90만 달러가 되었다는 일화도 상징적입니다. 특별한 투자 실력이 아니라, 대출로 하드 애셋을 잡고 오래 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반면 같은 시기 아버지가 가입한 사망보험금 1만 달러짜리 보험은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1만 달러입니다. 당시엔 집 한 채 값이었죠. 인플레이션이 한쪽은 밀어 올리고 다른 쪽은 그대로 묶어둔 겁니다.
'팔지 않고 꺼내 쓰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자산을 파는 대신 쓰는 방법이 이른바 '평가차익 수확'입니다. 오른 자산을 담보로 신용을 일으켜 유동성만 빼내는 방식이죠. 자산은 계속 복리로 굴러가고, 매도가 아니니 양도세도 발생하지 않으며, 필요한 현금은 손에 들어옵니다.
이건 소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6년 3월 ICE 모기지 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주택 보유자의 총 자기자본은 17조 달러에 육박하고, 이 중 인출 가능한 자기자본만 약 11조 달러입니다. 그리고 2026년 1분기 자기자본 인출은 전년 대비 2% 늘어 2021년 이후 최고의 1분기를 기록했습니다. 인출의 54%는 후순위 담보를 통해 이뤄졌는데, 이는 기존의 낮은 1순위 금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1분기 기준 약 20년 만의 최대 규모였습니다. 2020~2022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중 390만 명이 이미 후순위 담보를 추가로 얹었습니다. 1분기에만 24만 8,000명이 후순위로 250억 달러를, 23만 4,000명이 현금인출 재대출로 220억 달러를 꺼내 총 470억 달러를 인출했습니다.
맥엘로이가 2005년에 매입한 플래그스태프의 267세대 단지를 21년째 보유하며 세 번째 리파이낸싱으로 1,400만 달러를 회수했다는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원리입니다. 원금은 세입자가 갚아주고, 그만큼 자기자본이 쌓이며, 오른 가치는 부채로 다시 꺼냅니다. 일부는 도색과 주차장 보수로 자산에 재투자하고, 나머지는 투자자에게 배분합니다. 자산을 ATM처럼 쓰되 자산 자체는 절대 놓지 않는 구조죠.
다만 규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무스는 2008년에 직접 지은 혼합용도 빌딩을 1,2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했다가 은행에 넘겼고, 그 건물은 4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지금 그 건물은 2,000만 달러 가치가 되었고, 그는 그 건물에 세입자로 들어가 있습니다. 뼈아픈 경험이죠.
그런데 그가 내린 결론은 '빚을 쓰지 말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위험 없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늙어서 돈이 없을 위험이 있고, 그 위험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투자하는 것뿐입니다. 불이 위험하다고 불을 없애는 게 아니라 벽난로 안에 두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성숙한 태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규칙이 남습니다. 첫째, 필요한 만큼만 밟습니다. 목표 자산과 현재 자산의 격차를 계산해 필요한 수익률을 먼저 구하고, 딱 거기까지만 레버리지를 씁니다. 무조건 풀액셀은 목적지가 없는 과속입니다. 둘째, 개인이 아니라 자산이 담보가 되게 합니다. 셋째, 진짜 위험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강제 매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400만 원의 월세가 나오는 자산은 평가액이 흔들려도 여전히 400만 원을 줍니다. 문제는 만기가 목을 조를 때입니다. 그래서 부채의 만기 구조가 자산의 보유 기간과 맞아야 합니다. 넷째, 금리는 아무도 못 맞춥니다. 그러니 오늘의 현금흐름으로 말이 되어야 합니다. 돈은 팔 때가 아니라 살 때 버는 것이라는 오래된 격언이 여기서 나옵니다. 다섯째, 모든 자산에 빚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100년간 세 번째 주인이 된 세도나의 리조트처럼, 대체 불가능한 자산은 무차입으로 들고 가는 선택도 얼마든지 합리적입니다.
한국의 좌표는 어디쯤일까요
우리 이야기로 옮겨 보겠습니다. 2025년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 6,678만 원으로 전년 대비 4.9% 늘었고, 평균 소득은 7,427만 원으로 3.4% 늘었습니다. 자산이 소득보다 빨리 자랐습니다. 특히 실물자산은 4억 2,988만 원으로 5.8% 증가하며 전체 자산의 75.8%까지 비중이 올라갔고,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전년 0.612보다 상승했습니다. 가구 자산의 71.1%가 부동산이고, 자산 상위로 갈수록 거주 외 부동산 비중이 급격히 커집니다. 자산의 상단은 실물로 부를 키우고, 하단은 전월세 보증금에 묶여 있다는 뜻이죠.
2026년의 현장은 더 선명합니다.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 9,490만 원으로 전월보다 1,179만 원 올랐고, 1월 15억 2,162만 원에서 6개월 만에 7,328만 원 상승했습니다. 매달 평균 1,000만 원 넘게 오른 셈입니다. 7월 한 달 서울 아파트값은 1.05% 올랐고, 화성 동탄구는 6.25%로 전월 4.16%에 이어 두 달 연속 역대 최고 상승률을 갈아치웠습니다. 월급이 한 달에 1,000만 원씩 오르는 직장은 없습니다. 이것이 '임금은 경제의 속도, 자산은 유동성의 속도'라는 문장의 실물 버전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조수가 밀려올 때 배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떠오르고, 배가 없는 사람은 제자리에 서 있기 위해 평생 헤엄쳐야 합니다. 이 구조를 원망하는 데 쓸 에너지를, 배 한 척을 마련하는 데 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째, 일하는 목적을 '생활비 결제'에서 '자산 매입'으로 옮기는 것부터입니다. 근로소득은 자산으로 가는 통로일 뿐이라는 관점의 전환이죠. 둘째, 빚을 볼 때 '내가 갚는가, 남이 갚는가'라는 질문 하나만 습관처럼 붙여 보십시오. 이 질문 하나가 신용카드 할부와 임대수익형 자산을 명확히 갈라놓습니다. 셋째, 화폐 단위가 아니라 자산 단위로 성적표를 매겨 보십시오. 예금 이자 3%가 통화량 6% 팽창 앞에서 어떤 의미인지 계산해 보면, 원화 예금 비중이 87.3%에 달하는 우리 가계의 포트폴리오가 왜 다시 점검되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이실 겁니다.
유동성은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는 적자를 내고 중앙은행은 그것을 수용하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돈은 결국 유한한 자산으로 흘러갑니다.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흐름 위에 배를 띄워 둘 수는 있습니다. 늦었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자산 시장에서 가장 비싼 대가는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레버리지 활용은 손실을 확대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본인의 상환 능력과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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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식 폭락은 월가식 양털깎이였다.
양털깎이의 해부학, 2026년 7월, 시장은 어떻게 레버리지를 걷어냈나
이번 7월 장세는 펀더멘털이 무너져서 생긴 하락이 아닙니다. 빌린 돈이 무너져서 생긴 하락입니다. 상승장에서 탐욕을 키우게 하고, 하락장에서 레버리지를 강제로 털어낸 뒤, 현금을 쥔 자본이 그 물량을 헐값에 받아가는 것. 시장이 오래 반복해온 그 구조가 이번에도 거의 교과서처럼 재현됐다고 보셔도 무리가 없습니다.
1단계,탐욕을 쌓게 만드는 구간
먼저 숫자부터 보시죠. 미국의 증거금 부채는 6월에 사상 최고인 1조 5,30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3개월 연속 증가이고, 전월 대비 7.9%, 전년 대비로는 무려 51.5% 늘어난 수치입니다. 같은 시점 투자자 신용잔고는 마이너스 1조 600억 달러로 사상 최저를 찍었습니다. GDP 대비 증거금 부채 비율은 4.71%로 역시 사상 최고였고, 장기 중앙값 2.38%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톰 리는 이 증가 속도를 두고 지난 60년간 여섯 번째로 큰 급증이라고 평가했죠.
한국은 더 극적이었습니다. 신용융자 잔액은 작년 말 27조 3,000억 원에서 3월 말 32조 9,000억 원, 6월 말에는 37조 3,000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미수거래 일평균 반대매매 금액도 작년 말 71억 원에서 3월 262억 원, 6월 527억 원으로 뛰었고요. 월별 신용융자 반대매매는 1월 565억 원에서 6월 약 3,935억 원으로 약 7배 늘었고, 상반기 누적으로는 9,193억 원에 달했습니다. 특히 70대 이상 연령층의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습니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주가가 오르는 동안 개인은 더 많이 빌렸습니다. 오르니까 빌렸고, 빌리니까 더 올랐습니다. 이 자기강화 구조가 바로 양털을 기르는 과정이죠.
2단계,가장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이 가장 극적으로 청산당하다
이번 국면의 상징은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입니다. 2024년 말 약 2억 2,500만 달러로 출발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는 스트라이프의 콜리슨 형제, 냇 프리드먼, 대니얼 그로스, 그리고 이례적으로 제인스트리트까지 후원자로 두며 2026년 중반 200억~240억 달러 규모로 커졌습니다. 한때 자산이 450억 달러까지 불어났고요. 6월 30일 기준 설정 이후 수익률은 수수료 차감 후 약 439%, AI 인프라 베팅에 최대 4배 레버리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7월이 왔습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프라임 브로커들이 마진콜을 걸었고, 펀드는 증거금을 조금씩 메우는 대신 공개주식 포트폴리오 전체를 단 한 번의 블록딜로 넘겼습니다. 켄 그리핀의 시타델이 그 물량의 대부분을 사들였고, 자산은 약 100억 달러로 몇 달 만에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가장 아픈 대목은 타이밍입니다. 아셴브레너는 7월 24일 투자자 서한에서 이번 조정을 "2025년 초 이후 가장 좋은 매수 기회"로 규정하고 8월 1일부터 신규 자금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6일 뒤, 그 자금은 끝내 도착하지 않았고 포지션은 통째로 넘어갔습니다. 논지가 틀려서가 아닙니다. 논지를 끝까지 들고 갈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레버리지가 빼앗는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죠.
3단계,강제 매도가 강제 매도를 부른다
무너진 종목들을 보시면 성격이 분명합니다. 1분기 말 최대 보유 종목이던 네비우스, 샌디스크, 마이크론, 코어위브는 그달에 모두 35% 넘게 빠졌습니다. SK하이닉스 미국 상장 주식은 6월 고점 대비 약 47% 하락했고, 어느 하루에는 메모리 6개사에서 5,410억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하며 그중 950억 달러가 SK하이닉스 몫이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가총액은 6월 이후 3조 3,000억 달러가 사라졌습니다.
이건 실적 뉴스가 아니라 자금조달 뉴스입니다. 방아쇠는 실적이 아니라 신용시장이었습니다. AI 인프라 차입자들의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지금의 설비투자 붐을 지속 가능한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번졌죠. 아폴로의 토르스텐 슬록은 하이퍼스케일러 채권의 응찰배수가 2026년 2월 5배 수준에서 7월 2배 아래로 급락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과정을 오래전부터 정리해뒀습니다. 브루너마이어와 페더슨이 2009년에 제시한 '마진 나선(margin spiral)'이 정확히 이겁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증거금 요구가 커지고, 그걸 못 채우면 강제 매도가 나오고, 그 매도가 다시 가격을 떨어뜨립니다. 슐라이퍼와 비쉬니의 '화재판매(fire sale)' 이론은 여기에 한 겹을 더합니다. 급매물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소수의 자본가로 제한될 때, 자산은 내재가치가 아니라 구매자의 지불 여력 수준에서 거래된다는 겁니다. 조달이 불편해지는 순간 대주는 미래의 잠재력이 아니라 오늘의 담보를 우선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조정이 강제 매도 이벤트로 바뀌고, AI 관련주 전체가 하나의 상관된 포지션처럼 취급됩니다.
4단계,한국에서 벌어진 같은 장면
국내 시장은 이 나선을 실시간 중계하듯 보여줬습니다. 코스피는 7월 6일 8,051.33으로 마감하며 8,000선을 넘겼지만, 7일 5.44%, 8일 5.99% 급락했습니다. 9일 하루 반대매매 금액은 1,422억 원으로 전날 288억 원의 5배 가까이 뛰었고, 위탁매매 미수금은 1조 4,322억 원,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10.2%까지 치솟았습니다. 이후에도 장중 8% 넘는 하락으로 유가증권시장에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요. 7월 30일 코스피는 5,593.56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주목해야 할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7월 29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2조 9,950억 원으로, 폭락에도 불구하고 4~6월 일평균 35조 9,418억 원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락장에서도 자금을 추가로 넣으며 빚투를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HSBC는 7월에 강제 반대매매가 발생한 미결제 신용계좌가 전체의 2%에 불과해 신용 물량이 아직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경고했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총자산이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줄었지만 위험은 여전하다고 봤습니다. 29일 반대매매 금액은 611억 원으로 7월 9일 이후 최대치였습니다.
5단계,그리고 물량은 어디로 갔나
여기가 양털깎이 서사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시타델은 흩어진 매도를 막는 대신 공개주식 장부 전체를 한 번에 흡수하며 즉각적인 출구를 제공했습니다. 시장 안정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가장 싼 가격에 가장 좋은 물건을 한 손에 몰아넣은 거래이기도 했죠.
그리고 강제 매도가 끝나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네비우스가 하루에 26.3%, 코어위브가 21.8%, TSMC가 7.8%, ARM이 7.3% 튀어올랐습니다. 며칠 만에 회사가 좋아진 게 아닙니다. 파는 사람이 사라진 겁니다. 그 자체가 이번 하락의 원인이 펀더멘털이 아니라 자금조달이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대기 자본의 규모도 확인해 두시죠. 7월 22일 기준 미국 머니마켓펀드 자산은 7조 8,600억 달러입니다. 7월 8일에는 사상 최고인 7조 9,500억 달러를 찍었고요. 흥미로운 건 역사적 패턴입니다. MMF 잔고는 주가가 고점을 찍은 뒤에도 계속 늘어나 2008~2009년에는 주식이 바닥을 칠 때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즉 현금이 가장 두툼할 때가 가격이 가장 쌀 때였다는 뜻이죠. 받아갈 자본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ICI
그래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국면에서 월가가 특정 개인 한 명을 겨냥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가장 큰 레버리지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이, 바로 그 레버리지 때문에 가장 극적으로 청산당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논지의 정확성과 생존은 별개의 문제라는 걸 그보다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드물죠.
개인 투자자가 가져갈 교훈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보유 기간을 결정하는 계약입니다. 4배를 쓰는 순간 나의 투자 시계는 내가 아니라 담보비율이 정합니다. 둘째, 강제 매도 국면의 가격은 가치가 아니라 유동성의 함수입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빚 없는 자본에게만 기회가 됩니다. 셋째, 담보비율 140% 선처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규칙은 감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시장이 나를 이해해주길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죠.
한국일보
결국 양털은 두 번 깎입니다. 한 번은 올라갈 때 빚으로, 또 한 번은 내려갈 때 강제 매도로요. 그 사이클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깎일 털을 애초에 빌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현금 비중과 시간이라는 두 자산이야말로 이런 장세에서 가장 비싼 값을 하는 자산이라는 점,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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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100으로 준비하는 노후, 필요한 돈은 10억 원입니다
부부가 노후에 남 눈치 보지 않고 월 300만 원 정도를 쓰면서 살고 싶다면, 내 힘으로 만들어 두어야 할 돈은 대략 10억 원입니다. 이 숫자를 듣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창을 닫으려 하셨다면 딱 3분만 더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의 핵심은 10억 원이라는 금액이 아니라, 그 10억 원에 도달하는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 연봉이 아니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나온 최신 연구들은 이 목표 금액을 오히려 낮춰 주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착실하게 준비한 사람이라면 50대, 60대가 아니라 40대에 일에서 내려와 남은 인생을 자기 시간으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0억 원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출발점은 국민연금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서 부부 기준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296만 원으로 제시됩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쪽 수치는 더 높아서 적정 336만 원, 최소 240만 원입니다. 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부부 기준으로 월 240만 원에서 340만 원 사이라는 결론은 공통적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이 가운데 얼마를 채워 줄까요. 2026년 기준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약 69만 8천 원입니다. 부부가 함께 받는 가구도 합산 평균이 111만 원 수준입니다. 필요한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제도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2026년부터 보험료율이 9%에서 9.5%로 올랐고, 2033년까지 13%를 향해 단계적으로 인상됩니다. 소득대체율도 43%로 상향됐습니다. 정부 공식 예시로는 월소득 309만 원인 평균소득자가 40년 가입하고 25년 수급할 경우 생애 총 1억 8천만 원을 내고 3억 1천만 원을 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이 43%는 40년을 꽉 채워 낸 사람의 기준입니다. 40대에 은퇴하면 납부 기간이 짧아지니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을 아예 빼겠습니다. 예순다섯 살부터 들어오는 돈은 전부 보너스로 두는 겁니다. 계산이 어긋나더라도 안전한 쪽으로 어긋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내 돈으로 월 300만 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1년이면 3,600만 원, 세금까지 감안하면 연 4,000만 원입니다.
4% 룰, 그리고 그 룰을 만든 사람이 직접 올려 놓은 숫자
연 4,000만 원을 평생 빼 쓰려면 얼마가 있어야 할까요. 옥상 물탱크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위에서는 비가 와서 물이 채워지고, 아래 수도꼭지로는 내가 쓸 물이 빠져나갑니다. 중요한 건 비가 매년 똑같이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여는 정도는 장마철이 아니라 가뭄이 3년 이어지는 해에 맞춰야 합니다.
1994년 미국의 재무설계사 윌리엄 벤겐이 바로 이 계산을 했습니다. 1926년 이후 미국 시장 데이터를 놓고 은퇴 시점을 1년씩 옮겨 가며 수백 가지 경우를 전부 돌려 본 뒤, "매년 몇 퍼센트씩 빼 썼다면 단 한 명도 30년을 못 버티는 일이 없었을까"를 물었습니다. 답이 4%였습니다.
방식을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4% 룰은 매년 남은 잔액의 4%를 빼는 것이 아닙니다. 은퇴 첫해에 전체 자산의 4%를 꺼내고, 그다음부터는 그 금액을 물가만큼만 올려서 쓰는 방식입니다. 첫해에 4,000만 원을 뺐다면 이듬해에는 4,120만 원을 뺍니다. 그러니까 4%는 평균 수익률로 계산한 숫자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운이 나빴던 사람이 겨우 살아남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오늘 가장 중요한 업데이트입니다. 2025년 8월, 벤겐 본인이 『A Richer Retirement』라는 책을 내고 자신의 숫자를 직접 올렸습니다. 미국 대형주와 중기 국채만 쓰던 원래 모델을, 대형·중형·소형·해외 주식까지 포함한 7개 자산군으로 넓히자 최악의 30년 구간을 견디는 최저 인출률이 4.15%에서 4.7%로 올라갔습니다. 검증에 쓰인 배분은 주식 약 55%, 중기 국채 40%, 단기물 5%였고, 약 400개의 은퇴 시점이 대상이었습니다.
여기서 정말 눈여겨보실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4.7%는 권장치가 아니라 바닥입니다. 벤겐의 새 연구에서 전체 은퇴 시점의 평균 안전인출률은 약 7.1%였습니다. 다수의 구간에서는 6%, 8%, 심지어 그 이상을 꺼내 써도 자산이 마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4%라는 숫자는 미국 금융사에서 가장 나쁜 30년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사실상 최악을 가정한 값입니다.
물론 반대 방향의 연구도 있습니다. 모닝스타는 2026년판 『State of Retirement Income』에서 기준 안전인출률을 3.9%로 제시했습니다. 다만 이 숫자도 전년 3.7%에서 올라온 값이고, 지출을 시장 상황에 맞춰 조절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방식을 쓰면 6%에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가연동국채 사다리를 쓰는 경우의 인출률은 4.5%로 계산됐습니다.
정리하면 오늘의 안전인출률은 대략 3.9%에서 4.7% 사이의 띠입니다. 우리는 보수적으로 가운데인 4%를 쓰겠습니다. 그러면 4,000만 원 나누기 0.04, 정확히 10억 원입니다. 그리고 4%로 나눈다는 건 25를 곱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간 생활비 곱하기 25배가 내 은퇴 금액입니다. 이 25배를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벤겐의 새 기준인 4.7%를 적용하면 배수는 21.3배로 내려갑니다. 같은 생활비라면 목표가 10억 원에서 8억 5천만 원 근처로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왜 하필 나스닥100일까요
나스닥100 지수는 1985년에 만들어져 올해로 41년째입니다. 이 기간 배당까지 재투자했다면 연평균 14.8%, 누적 229배입니다. 100만 원이 2억 2,900만 원이 됐다는 뜻입니다. 같은 기간 S&P500은 연평균 11.5%, 누적 73배였습니다. 연 수익률 차이는 3.3%포인트뿐인데 41년을 굴리니 결과가 세 배로 벌어졌습니다.
구조를 보면 이유가 보입니다. 나스닥100은 나스닥 상장 기업 중 금융회사를 제외한 시가총액 상위 100개로 구성됩니다. 은행도 보험사도 없습니다. 대신 정보기술 섹터 비중이 50% 안팎으로, 번 돈을 다음 제품에 다시 꽂아 넣는 회사들만 모아 놓은 지수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1985년 원년 멤버 100개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회사는 애플, 마이크론, 인텔, KLA, 페이첵스, 코스트코 여섯 개뿐입니다. 나머지 아흔 곳은 밀려나거나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지수 투자의 핵심입니다. 회사는 죽어도 지수는 죽지 않습니다. 밀려난 회사는 자동으로 빠지고 새로 커진 회사가 자동으로 들어옵니다. 종목을 내가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이 대신 갈아 줍니다.
최근 성적도 나쁘지 않습니다. 2023년 53.8%, 2024년 24.8%, 2025년 20.2%였고 2026년도 연초 이후 두 자릿수 상승 구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수는 6월과 7월에 걸쳐 3만 선 부근까지 올랐다가 7월 하순 2만 8천 대에서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한국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원조 상품인 QQQ의 순자산은 3천억 달러 규모이고, 국내에서는 나스닥100을 기초로 한 커버드콜 ETF 하나만도 순자산 2조 2,234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물가를 먼저 빼고 계산해야 합니다
최근 20년 나스닥100의 평균은 연 13%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를 그대로 쓰면 계산이 거짓말이 됩니다. 물가 때문입니다.
2026년 6월 한국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2% 올랐습니다.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다만 식료품과 에너지를 뺀 근원물가는 2.5%로 비교적 안정적이고, 정부는 7월 중 2%대 복귀를 목표로 관세율 할당 확대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즉 지금의 3%대는 유가와 농축수산물이 만든 일시적 구간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계산은 안전하게 가겠습니다. 수익률에서 물가를 먼저 빼는 겁니다. 13%에서 3%를 빼면 10%. 앞으로 나오는 모든 숫자는 이 10%로 계산한 오늘 돈 가치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10억 원은 계속 10억 원입니다. 나중에 20억 원이 필요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 기준으로 매달 300만 원씩 넣으면 10억 원까지 13년입니다. 서른다섯에 시작하면 마흔여덟입니다.
은퇴 시점을 결정하는 건 연봉이 아니라 저축률입니다
여기서 대부분이 "매달 300만 원을 어떻게 넣느냐"고 되물으십니다. 바로 그 지점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부부 합산 실수령 600만 원인 가정을 보겠습니다. 생활비로 420만 원을 쓰면 저축은 180만 원이고, 필요한 은퇴 금액은 420만 원 곱하기 12 곱하기 25, 즉 12억 6천만 원입니다. 월 180만 원으로 모으면 19년이 걸립니다. 반대로 생활비를 300만 원으로 줄이면 저축이 300만 원이 되고, 목표는 9억 원, 세금을 감안해 10억 원으로 내려옵니다. 걸리는 시간은 13년입니다.
생활비를 120만 원 줄였을 뿐인데 은퇴가 6년 앞당겨졌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생활비를 줄이면 저축이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25배를 곱하는 대상 자체가 함께 줄어듭니다. 산을 오르는데 내 다리가 빨라지는 동시에 산이 낮아지는 겁니다.
실질 수익률 10%, 목표는 연간 생활비의 25배로 놓고 보면 저축률 10%는 32년, 30%는 19년, 50%는 13년, 70%는 7년입니다. 이 표에는 연봉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연봉이 3천만 원이든 3억 원이든 저축률이 50%면 똑같이 13년입니다. 연봉이 높으면 저축 금액도 커지지만 생활비도 함께 커지니 목표도 커져 서로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40대에 은퇴하고 싶다"는 말은 정확히 옮기면 "저축률 50%를 만들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미 30대 후반, 혹은 40대라면
서른에 시작하면 저축률 30%로도 마흔아홉에 끝납니다. 서른다섯이면 50%가 필요하고 마흔여덟입니다. 마흔에 시작하면 70%가 필요한데, 솔직히 70%는 대부분에게 비현실적입니다.
그래서 답은 포기가 아니라 목표의 이동입니다. 마흔에 시작해도 저축률 50%면 쉰셋, 30%면 쉰아홉입니다. 40대는 아니어도 예순 이전에 끝납니다. 예순다섯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인생입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저축률은 오늘 오후에 바꿀 수 있는 숫자입니다. 늦게 출발한 사람이 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이겁니다.
2026년, 그릇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여기에 올해 아주 반가운 변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나스닥100을 사더라도 어느 계좌에서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데, 그 계좌들의 조건이 대폭 개선됐습니다.
먼저 연금 계좌입니다. 연금저축과 IRP를 합쳐 연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되고,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는 16.5%, 초과는 13.2%가 적용돼 최대 148만 5천 원을 돌려받습니다. 더 중요한 건 세금을 미루는 효과입니다. 계좌 안에서는 팔아도 그때 세금을 내지 않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에서 5.5%만 냅니다.
다음이 ISA입니다. 2026년 6월부터 이른바 '슈퍼 ISA'가 시행되면서 연간 납입 한도가 2,000만 원에서 4,000만 원으로, 총 한도가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두 배가 됐습니다. 비과세 한도도 일반형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서민형과 신설된 청년형은 1,000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를 넘는 수익은 15.4%가 아니라 9.9%로 저율 분리과세됩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도 가입할 수 있는 국내투자형이 새로 생겼고, 만기 자금을 연금저축이나 IRP로 옮기면 전환 금액의 10%, 최대 300만 원을 세액공제 한도에 추가로 얹어 줍니다.
이 조합이 왜 결정적일까요. 연금 계좌는 쉰다섯 살부터 꺼낼 수 있습니다. 마흔여덟에 은퇴하면 7년의 공백이 생깁니다. 그 다리를 놓아 주는 그릇이 바로 ISA와 일반 계좌이고, 올해 그 그릇이 두 배로 커진 겁니다. 예순다섯 이후에 쓸 돈은 연금 계좌에, 그 전에 쓸 돈은 ISA와 일반 계좌에. 같은 상품을 사더라도 언제 꺼낼 돈인지에 따라 담는 그릇이 달라야 합니다.
앞의 9년이 지루한 건 정상입니다
저축률 50%로 13년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럼 절반인 5억 원까지는 몇 년일까요. 6년 반이 아니라 9년입니다. 9년 걸려 절반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4년 반에 만듭니다. 뒤쪽 구간이 두 배 빠릅니다.
눈덩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눈을 뭉칩니다. 손이 시리고 아무리 뭉쳐도 크기가 눈에 띄게 늘지 않습니다. 그게 앞의 9년입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언덕에 굴릴 수 있고, 굴리기 시작하면 손을 떼도 커집니다. 그게 마지막 4년 반입니다.
그러니 3년 차에 잔고가 잘 늘지 않는 건 뭔가를 잘못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원래 그런 구간입니다. 대부분이 여기서 그만둡니다. 언덕에 도착하기 전에 눈덩이를 버리는 셈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미 5억 원을 모으신 분은 남은 기간이 5년입니다. 힘든 구간을 이미 다 지나오셨으니 새로 무언가를 시작할 필요 없이 지금 하던 걸 유지하시면 됩니다.
지키는 기술까지 갖추면 계획은 완성됩니다
밝은 쪽만 말씀드리면 반칙이겠지요. 2000년 3월부터 2002년 8월까지 나스닥100은 81.8% 하락했고, 배당 재투자 기준 전고점 회복은 2015년 2월이었습니다. 은퇴 직후에 이런 구간을 만나면 탱크가 가득할 때 4%를 빼는 것과 물이 5분의 1로 줄었을 때 같은 양을 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은퇴 후 첫 5년에서 10년이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구간인 이유입니다.
지금 시장이 싼 편도 아닙니다. 미국 시장의 장기 밸류에이션 지표인 실러 지수는 2026년 7월 기준 41.4 수준으로, 1871년 이후 중앙값 16.1의 두 배가 넘습니다. 역사상 이보다 높았던 때는 2000년 닷컴 버블 무렵뿐입니다. 다만 균형 잡힌 시각도 필요합니다. 실러 지수는 매도 신호가 아니라 장기 기대수익률의 눈금이고, 실제로 S&P500의 2026년 2분기 이익 증가율은 7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분자만 오른 것이 아니라 분모도 따라 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답은 시장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첫째, 벤겐 본인의 조언대로 은퇴하는 날이 아니라 은퇴 5년 전부터 채권을 섞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으로는 10억 원을 다 채운 뒤가 아니라 8억 원쯤 왔을 때부터 조금씩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조금 덜 벌고 확실하게 끝내는 선택입니다. 둘째,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을 나눠 담습니다. 원달러가 1,40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는 구간에서는 지수가 제자리여도 계좌가 10% 넘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셋째, 일찍 은퇴하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되고 금융소득이 연 1,000만 원을 넘으면 보험료 산정에 반영되니, 건강보험료를 처음부터 생활비 항목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노후에 월 300만 원을 쓰려면 10억 원이 필요합니다. 연간 생활비의 25배이고, 최신 연구를 적용하면 21배 수준까지 내려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연봉이 아니라 저축률이 결정합니다. 30%면 19년, 50%면 13년, 70%면 7년입니다.
오늘 하나만 가져가신다면 이 문장으로 하시면 좋겠습니다. 나스닥100은 10억 원을 만들어 주는 도구이지, 10억 원을 지켜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눈덩이를 뭉치고 굴리는 13년은 공격적으로 가도 됩니다. 다만 꺼내 쓰기 시작한 이후의 40년은 한 지수에 전부 걸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금 몇 살인지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이번 달에 얼마를 남겼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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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식의 외국인 소유 비중은 이제 사상 최대인 20조 달러에 달하며, 시장의 거의 20%에 이른다.
"외국인이 사상 최대로 사들일 때", 20조 달러가 보내는 신호
오늘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는 시장의 큰 고점 근처에서 미국 주식을 가장 많이 사들인다. 월가의 전설 로버트 패럴이 메릴린치에서 남긴 교훈이죠. 그리고 지금, 이 오래된 경험칙이 데이터로 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외국인의 사상 최대 매수는 강세의 증거가 아니라 사이클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알려주는 온도계에 가깝습니다.
먼저 패럴이 누구인지 짚고 가겠습니다. 그는 1957년 메릴린치에 기술적 분석가로 입사해 50년 넘게 시장을 지켜본 인물입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그레이엄과 도드의 가치분석을 배웠지만, 주가가 재무제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기술적 분석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투자심리와 시장심리 연구의 개척자가 됐습니다. 그가 남긴 열 가지 원칙 가운데 가장 유명한 문장이 이겁니다. 대중은 고점에서 가장 많이 사고, 바닥에서 가장 적게 산다. 외국인 자금 이야기는 이 원칙의 국제판인 셈이죠.
그럼 숫자를 보겠습니다. 2021년, 외국인은 미국 주식에 4천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당시로선 사상 최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12개월 수치는 9천억 달러, 두 배가 넘습니다. 공식 통계도 방향이 같습니다. 미 재무부 국제자본수지 조사에 따르면 2025년 6월 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증권은 35조 3,340억 달러였고, 이 가운데 주식이 19조 8,430억 달러였습니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총 30조 8,810억 달러, 주식은 16조 8,780억 달러였죠. 단 1년 만에 주식 보유액이 3조 달러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그리고 2026년 들어서도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2026년 5월 한 달간 외국인의 미국 장기 증권 순매수는 2,628억 달러, 이 중 민간 부문이 2,468억 달러였습니다.
비중은 더 중요합니다. 국제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비중은 194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입니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현상을 무역적자의 거울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외국이 미국에 물건을 팔아 받은 달러가 다시 미국 자산으로, 특히 미국 주식으로 돌아온다는 뜻이죠. 시장의 5분의 1을 바다 건너 투자자가 쥐고 있다는 건, 미국 증시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국 증시의 한계 매수자가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왜 이 패턴이 반복될까요. 학계에는 오래된 설명이 있습니다. 1997년 브레넌과 차오는 외국인 투자자가 현지 투자자에 비해 누적적인 정보 열위에 놓여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나왔을 때 정보가 부족한 외국인은 자기 판단을 더 크게 수정하고, 그래서 주가는 외국인의 매수와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현지 투자자에게는 실적과 산업의 결이 먼저 보이지만, 외국인에게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정보는 이미 오른 주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가격이 오르면 사고, 더 오르면 더 삽니다. 이 양의 피드백 거래는 1999년 한국 시장 데이터를 다룬 최·고·스툴츠의 연구 이후 국제금융 문헌의 표준 관찰이 됐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림이죠. 우리 시장에서 외국인 수급을 보던 그 프레임을, 지금은 미국 시장이 반대편에서 겪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이 기록적 매수가 다른 과열 지표들과 정확히 겹친다는 점입니다. 2026년 7월 기준 S&P 500 지수는 7,500선 중반에서 사상 최고치 부근을 오갔고, 실러 CAPE는 41.4 부근을 기록했습니다. 130년이 넘는 데이터에서 이보다 높았던 적은 1999년 12월의 44.19, 단 한 번뿐입니다. 참고로 1929년 대공황 직전이 32 부근, 2007년 금융위기 직전이 27 부근이었습니다. 지금 시장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레버리지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융자 잔고는 2026년 5월 1조 4,2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회귀추세, 크레스몬트 PER, Q비율, PER10 등 네 가지 장기 밸류에이션 지표를 함께 놓고 보면 S&P 500은 지표에 따라 116%에서 207%까지 고평가 구간에 있습니다. 가장 최근 집계에서는 신용융자가 1조 5,000억 달러, 전년 대비 49% 증가로 올라섰고, 0DTE 옵션 거래량은 2026년 상반기에만 46.2% 늘어 하루 2천만 계약을 넘었습니다. 전체 주식 시가총액 대비 GDP 비율, 이른바 버핏 지표는 2026년 1분기 말 335%를 넘어섰습니다. 기록적 외국인 매수, 130년 만의 두 번째 밸류에이션, 사상 최대 레버리지가 한 화면에 동시에 떠 있는 상태인 거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번 사이클만의 구조적 특징이 보입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미국이 자국 재정을 조달하는 방식이 국채가 아니라 주식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정학적 균열이 미국 국채 보유를 꺼리게 만드는 사이, AI 붐이 자금을 주식으로 끌어당기면서 달러가 기술 섹터의 사이클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겁니다. 전략가 말리카 사흐데바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미 국채 수요는 전통적으로 경기 역행적이어서 침체나 위험자산 조정 국면에 오히려 달러를 지지해줬는데, 이 분산 효과 덕분에 투자자들은 환헤지 없이 달러를 들고 있을 수 있었다는 거죠. 반대로 경기 순응적이고 개인 주도인 주식 자금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 달러는 더 위험해지고, AI에 더 크게 연동된다는 겁니다. 호주중앙은행 부총재 앤드루 하우저도 같은 맥락에서, 채권에서 주식으로의 이동이 달러의 이른바 '과도한 특권'에서 멀어지는 신호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균열의 첫 신호가 나오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에 따르면 2026년 들어 유럽과 일본 등 해외 선진국 주식형 펀드로 1,040억 달러가 들어간 반면, 미국 주식으로는 250억 달러가 유입되는 데 그쳤습니다. 자금이 4대 1로 미국 밖을 향한 겁니다. 성과도 마찬가지여서 S&P 500이 연초 대비 0.5% 수준에 머무는 동안 미국 외 전 세계 주식은 11% 올랐고, 마이클 하트넷은 2026년을 국제 주식의 '신세계 질서'라고 표현했습니다. 앞서 골드만삭스도 2025년 봄, 외국인이 3월 이후 630억 달러어치 미국 주식을 순매도했을 때 "외국인이 기록적 보유 비중을 안고 한 해를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밸류에이션에 상당한 리스크"라고 짚은 바 있습니다. 보유 비중이 클수록 되돌림의 진폭도 커진다는 뜻이죠.
여기서 오해는 없어야겠습니다. 이 신호는 "내일 팔아라"가 아닙니다. CAPE는 향후 10년의 기대수익률과 하방 위험을 말해줄 뿐, 다음 주나 다음 달을 맞히는 도구가 아닙니다. 실제로 CAPE는 시장이 오르는 동안에도 몇 년씩 높은 수준에 머물러 왔죠. 패럴의 교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남긴 또 하나의 문장은 "과도한 쏠림은 논리가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지역 분산입니다. 미국 주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자금의 20%가 이미 한곳에 몰려 있다면 나머지 한 표는 다른 곳에 두는 게 확률적으로 유리합니다. 둘째, 환에 대한 인식입니다. 해외 투자자에게 미국 주식은 주가와 달러라는 두 개의 베팅이 겹쳐 있는 자산이고, 도이체방크의 지적대로 그 둘의 상관관계가 예전만큼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셋째, 레버리지 점검입니다. 사상 최대 신용융자는 상승장에서는 연료지만 하락장에서는 도화선이 됩니다. 조정을 견딜 수 있는 사람과 견딜 수 없는 사람을 가르는 건 결국 빚의 유무입니다.
패럴이 진짜로 가르친 건 예측이 아니라 겸손이었습니다. 시장이 가장 확신에 차 있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서 있을 때, 조금 물러서서 자신의 포지션을 점검하라는 것. 20조 달러라는 숫자는 미국 기업의 위대함에 대한 세계의 투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투표가 이미 거의 다 집계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표를 더 던질 사람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 질문을 지금 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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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일수록 아날로그 방식이 빛을 보지않을까
AI가 시장을 삼킬수록, 왜 가장 낡은 무기가 가장 강해지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시장을 더 깊이 장악할수록, 개인 투자자에게 남는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속도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더 빠른 판단, 더 정교한 신호, 더 촘촘한 매매로 기계를 이기겠다는 발상은 이미 승산이 사라진 게임이고요. 반대로 기계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한 가지, 즉 좋은 자산을 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능력은 지금부터 오히려 값이 오릅니다. 워런 버핏이 실제로 무대에서 내려간 지금, 그가 남긴 것은 종목 리스트가 아니라 바로 이 방법론이라는 점을 오늘 데이터로 하나하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판이 얼마나 기울었는지부터 보시죠. 알고리즘 거래는 이미 주요 주식시장 거래대금의 약 60~75%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증시만 놓고 보면 대략 70%가 알고리즘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고빈도매매 회사는 거래 주체의 2%에 불과한데 주식 거래량의 73%가량을 만들어 냅니다. 집계 방식에 따라 글로벌 기준으로는 89%에 근접한다는 추정치까지 나오고, 자동화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장 규모는 2026년 271억 7,000만 달러로 연 13.2% 성장하며 2030년 445억 5,000만 달러를 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금융기관의 78%가 최소 한 개 이상의 업무나 매매 기능에 인공지능을 쓰고 있고요.
숫자만 보면 그저 기술 발전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시장 안에서 이 변화가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2026년 들어 시장은 지수만 보면 멀쩡한데 그 안은 전쟁터인 기묘한 국면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변동성 지수가 18 수준으로 역사적 중앙값 근처에 머물러 지수 자체는 위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시장의 서로 다른 조각들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아주 자주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7월 22일 기준 지표를 보면 개별 종목 변동성 지수는 50.18까지 뛰었고 분산 지수도 47.26으로 올라간 반면, S&P 500 종목 간 실현 상관계수는 0.05까지 떨어졌습니다. 지수가 잔잔해 보이는 이유는 시장이 평온해서가 아니라, 종목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상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통계가 바로 많은 분들이 체감으로 말씀하시는 그 감각의 실체입니다. 지수는 별일 없는데 내 계좌만 녹아내리는 상황, 오르는 신호를 주길래 따라 들어가면 빠지고 손절하면 다시 튀어 오르는 상황이요. 이건 기분 탓이 아니라 시장 구조가 그렇게 바뀐 결과입니다.
학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와튼스쿨의 윈스턴 웨이 더우, 이타이 골드스타인 교수와 홍콩과기대 얀 지 교수가 쓴 전미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 34054번은, 강화학습으로 학습한 인공지능 트레이더들이 서로 합의도, 소통도, 의도도 없이 자율적으로 경쟁 수준을 넘어서는 초과이윤을 지속시킨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런 담합은 경쟁과 시장 효율성을 훼손한다는 것이 결론이고요. 연구진은 두 가지 경로를 짚었습니다. 하나는 서로를 응징할 수 있다는 위협을 통한 담합, 다른 하나는 학습 편향이 똑같이 굳어지면서 생기는 담합입니다. 앞의 것을 인공지능이라 부른다면, 뒤의 것은 연구자들 표현대로 인공적 우둔함에 가깝습니다. 기계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같은 데이터로 같은 방식으로 배우다 보니 저절로 한 방향으로 몰린다는 뜻이죠. 시장이 참여자를 털어먹는다는 표현은 음모론이 아니라, 이제 논문으로 뒷받침되는 시장 구조의 특성이 되었
규제 당국의 언어도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영란은행 세라 브리든 부총재는 2026년 6월 30일 유럽중앙은행 신트라 포럼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스트레스 국면에서 변동성을 증폭시켜 시장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현행 금융 규제는 애초에 에이전트형 인공지능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영란은행은 잘못된 모델이 연쇄적으로 같은 실수를 할 경우 거래를 멈출 수 있는 시장 전체 차원의 서킷브레이커, 이른바 킬 스위치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의 토비아스 아드리안은 7월 23일 블로그에서 동조화된 알고리즘 매매가 2007년식 군집행동을 되살릴 수 있다고 경고했고, 영란은행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금융회사의 절반 이상이 이미 사람의 최종 승인 없이 인공지능이 주문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금융안정위원회도 6월에 인공지능 도입 관련 12개 권고 초안을 내고 10월 최종본을 준비 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들이 동시에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입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더 빨라지고, 더 자주 흔들리고, 더 정교하게 사람의 손절을 유도할 거라는 뜻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단기 매매와 레버리지로 맞서는 건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이건 추측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치 데이터가 답을 내놓은 영역입니다. 브라질의 샤그와 데-로소 연구진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미니 지수 선물을 처음 시작한 개인 1만 9,646명을 2019년까지 추적했는데, 300거래일 이상 버틴 사람들 가운데 이익을 낸 비율은 3%였고 그마저 중앙값 기준 하루 이익은 약 54헤알, 우리 돈 몇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여러 나라 연구를 종합하면 개인 단타 참여자의 74~97%가 손실을 봤고, 3년 이상 꾸준히 수익을 낸 비율은 1~3%에 그쳤습니다. 레버리지가 크고 수수료가 낮은, 단타에 가장 유리해 보이는 시장에서 나온 숫자라는 점이 뼈아프죠.
그리고 지금 우리 시장에서 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씨티글로벌마켓의 아시아태평양 트레이딩 전략 총괄 모하메드 아파바이는 지난 한 달간의 증시 급락 과정에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에서 입은 누적 손실을 약 387억 달러, 우리 돈 58조 원 규모로 추정했고, 손실이 더 깊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연일 급락하면서 개별 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변동성의 근원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두 배로 만들어 주는 도구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절반으로 깎는 도구입니다.
문제는 문턱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2026년 4월 14일 금융산업규제청의 규칙 개정안을 승인하면서, 2001년부터 개인 단타를 규율해 온 패턴 데이트레이더 지정 제도와 2만 5,000달러 최소 자기자본 요건을 공식적으로 없앴습니다. 상대는 더 강해지고 무기는 더 정교해지는데, 링에 오르는 문은 더 활짝 열린 셈이죠.
자, 이제 반대편 데이터를 보시겠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희망적인 이야기입니다. 제이피모건이 2004년부터 2024년까지 20년간 S&P 500을 분석한 결과, 1만 달러를 전 기간 그대로 들고 있었으면 6만 4,844달러, 연 10.6%가 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았던 단 열흘을 놓치면 약 3만 2,000달러, 연 6.37%로 절반이 날아가고, 서른 날을 놓치면 연 1.53%로 예금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20년이면 약 5,040 거래일인데, 그중 30일은 전체의 0.6%에 불과합니다. 더 결정적인 건 지난 20년간 최고의 열흘 중 일곱 번이 최악의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2026년 들어서도 같은 결론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최고의 열흘을 놓치면 총수익이 대략 절반으로 줄고, 상위 50일을 놓치면 수익이 5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듭니다.
이 숫자가 왜 중요할까요. 폭락과 급반등이 붙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 내는 급락은 대체로 짧고 날카롭고, 그만큼 반등도 짧고 날카롭게 옵니다. 무서워서 던지는 그 며칠, 정확히 그 며칠에 수익의 대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변동성이 커질수록 도망친 사람의 페널티도 함께 커진다는 뜻이고요. 인내는 미덕이 아니라 산술입니다.
전문가들에게는 다를까요.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20년 넘게 집계해 온 스피바 스코어카드를 보면, 20년 기준으로 미국 주식형 액티브 펀드의 약 92%가 벤치마크를 밑돌았습니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대형 가치주 카테고리조차 86%가 미달이었고요. 1년 기준으로는 주식 22개 카테고리 중 8개에서 과반이 지수를 이겼지만, 15년으로 늘리면 국내 주식, 해외 주식, 채권을 통틀어 과반이 지수를 이긴 카테고리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달 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이 스피바의 일관된 결론입니다. 최근 이 방법론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반론 연구가 나왔는데, 그 연구가 계산한 가장 관대한 수치조차 20년 기준 자산의 55%가 벤치마크에 미달, 즉 동전 던지기 수준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데이터와 가장 비싼 인재를 쓰는 사람들의 성적표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버핏이 떠난 자리가 오히려 더 크게 보입니다. 2026년 1월 1일 그렉 아벨 부회장이 신임 최고경영자로 취임했고, 워런 버핏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버크셔가 남긴 1분기 재무제표에는 현금과 단기 국채가 3,974억 달러, 사상 최고치로 찍혀 있습니다. 2025년 말 3,730억 달러에서 더 불어난 규모이고, S&P 500 편입 기업 476곳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 현금은 투자 가능 자산의 59%에 해당하고, 버크셔는 14개 분기 연속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2026년 3월까지 누적 순매도액은 약 1,948억 달러에 달하고, 시가총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이른바 버핏 지표는 6월에 23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버핏 본인은 5월 주주총회에서 지금보다 사람들이 더 도박에 가까운 분위기였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주식에 비싼 값을 치르고, 단기 옵션과 예측시장에 몰려드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죠. 그러니까 반세기 넘게 시장을 이겨 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잡은 포지션은 특정 종목이 아니라 현금과 시간이었습니다. 이건 비관이 아닙니다. 좋은 가격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능력, 그 자체가 자산이라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아벨은 손을 놓고 있지 않습니다. 주택건설사 테일러모리슨 인수를 마무리했고, 자사주 매입은 2021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돌아갔으며, 알파벳 지분을 310억 달러 규모로 쌓았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버핏이 골드만삭스 주식 50억 달러어치를 사서 75% 수익을 냈던 것처럼, 시장에 피가 흐를 때 살 수 있는 위치에 버크셔는 다시 서 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우리가 개인 계좌에서 축소판으로 재현해야 할 구조입니다.
여기서 아날로그 방식이 왜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강해지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알고리즘의 최대 약점은 평가 주기입니다. 기계는 초 단위로 판단하지만, 그 기계를 굴리는 자본은 월 단위, 분기 단위로 성적을 요구받습니다. 손실이 나면 위험 한도가 줄고, 포지션은 강제로 정리됩니다. 반면 개인은 아무도 분기마다 성적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노동소득이라는 현금흐름이 있고, 매도 버튼을 누르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버크셔가 보험료로 들어온 자금을 오래 굴릴 수 있어 강했다면, 개인에게는 월급과 시간이 그 역할을 합니다. 이건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구조적 우위입니다.
다만 인내에도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아무거나 오래 들고 있는 게 답은 아니라는 점이죠. 제이피모건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별 종목의 40%는 고점 대비 70% 이상 하락한 뒤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3분의 2는 시장 전체보다 못한 성과를 냈습니다. 시장의 상승은 소수의 초대형 승자가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버티기 전략의 짝은 반드시 분산이어야 합니다. 광범위한 지수, 검증된 현금흐름, 대체하기 어려운 해자를 가진 자산이어야 시간이 내 편이 됩니다. 좋은 자산이 변동성 때문에 크게 밀렸을 때 차분히 나눠 담는 방식이 힘을 갖는 것도 이 전제 위에서입니다.
국제결제은행은 올해 연차보고서에서 인공지능 투자 경쟁이 과잉투자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주식시장 급락과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기술주와 인프라 관련 주식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겼고요. 이 경고들을 공포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죠. 이런 국면이 온다는 건, 좋은 자산에 붙어 있던 프리미엄이 벗겨지는 순간이 온다는 뜻이고, 현금과 인내를 준비해 둔 사람에게는 그게 기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인공지능은 시장에서 속도와 패턴 인식이라는 영역을 완전히 가져갔습니다. 그 영역에서 사람이 이길 확률은 데이터가 이미 3% 안팎이라고 말해 주고 있고요. 그런데 기계가 손대지 못한 영역이 정확히 하나 남아 있습니다. 기다림입니다. 알고리즘이 많아질수록 흔들림은 커지고, 흔들림이 커질수록 최고의 날과 최악의 날은 더 가깝게 붙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을 계좌에 남아서 통과한 사람만이 20년 뒤의 숫자를 가져갑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세련된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촌스러운 전략입니다. 좋은 것을 사서, 흔들릴 때 조금 더 사고, 그냥 오래 갖고 있는 것이죠. 버핏이 떠난 지금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그의 종목이 아니라 바로 이 태도입니다.
본 콘텐츠는 투자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이나 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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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의 케빈워시 의장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7월 29일 연준이 금리를 동결한 건 인상할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상해야 할 만큼의 긴축이 이미 시장에서 벌어진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케빈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 논리를 아주 정확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멈춤이 아니고, 지난 42일 동안 시장이 이미 긴축을 단행했다는 겁니다. 중앙은행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 금융 여건이 조여진 상황, 이걸 워시 의장은 문제가 아니라 성과로 봤습니다. 오늘은 이 한 문장이 왜 지난 20년의 통화정책 문법을 바꾸는 발언인지, 데이터로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숫자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연준은 7월 29일 이틀간의 FOMC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유지했습니다. 올해 1월, 3월, 4월, 6월에 이은 다섯 번째 연속 동결이고, 워시 의장 취임 이후로는 두 번 연속입니다. 다만 지난 6월의 만장일치와는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위원 12명 가운데 찬성 9명, 반대 3명.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같은 방향의 소수의견이 세 명이나 나온 건 2016년 이후 처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반대표의 숫자가 아니라 성격입니다. 워시 의장은 이 표결을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진짜 내부 논쟁이었다고 표현했고, 그 불일치가 연준의 임무 자체를 두고 벌어진 게 아니라 타이밍과 전술을 두고 벌어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물가를 2%로 되돌린다는 목적지에는 열두 명 모두 동의했고, 다만 언제 어떤 수단으로 가느냐에서 갈렸다는 겁니다. 목적지가 흔들리는 조직의 분열과, 경로를 놓고 다투는 조직의 분열은 시장에 완전히 다른 신호를 줍니다. 후자는 오히려 신뢰의 근거가 되죠.
채권시장이 연준의 일을 대신했습니다
이번 회의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연준이 아니라 채권시장이었습니다. 워시 의장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 5.21%까지, 장중에는 5.23% 가까이 튀어 올랐습니다. 전장 대비 최대 0.14%포인트 상승이자 2007년 이후, 그러니까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10년물도 4.61%대에서 4.68~4.69%까지 올라 1년여 만의 최고치에 다가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같은 시각 2년물 금리는 오히려 0.04%포인트 내려 4.24%를 기록했습니다. 2년물은 통화정책 기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구간입니다. 즉 시장은 연준이 당장 뭘 할지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낮추면서, 장기 구간의 금리만 밀어 올린 겁니다. 커브가 가팔라진 거죠. 이건 연준의 힌트를 따라간 움직임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성장에 대한 시장 자신의 판단이 반영된 움직임입니다.
워시 의장이 짚은 지점도 정확히 여기입니다. 6월 FOMC 이후 미 국채 수익률 곡선 전반에서 명목 금리와 실질 금리가 의미 있게 높아졌는데, 이는 시장의 관심이 연준의 말이 아니라 실물 데이터와 실물 경제의 진전에 집중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이 이제 심판이 아니라 공을 보고 플레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못 박았습니다. 시장이 함께 움직이며 회의 사이 기간에 금융 여건을 긴축시켰고, 그 덕에 연준이 목표를 완수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어느 정도 안도감을 얻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책금리는 그대로인데 장기 조달비용은 올라갔습니다. 기업의 회사채 발행 금리, 가계의 모기지 금리, 프로젝트의 할인율은 모두 장기 금리를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연준이 25bp를 올리는 것과, 30년물이 십수 bp 오르며 실질금리 곡선 전체가 위로 밀리는 것 중에 실물 경제를 더 세게 조이는 쪽이 무엇인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워시 의장의 표현대로 채권시장이 이미 그 역할을 대신한 겁니다.
2% 말고 다른 숫자는 없습니다
워시 의장이 기자회견 내내 가장 많이 반복한 문장은 느슨한 물가 목표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5년간의 고물가가 일부 가계와 기업, 시장 전문가들에게 연준의 암묵적인 인플레이션 목표가 2%보다 높은 것 아니냐는, 털어내기 힘든 잘못된 인상을 남겼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상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숨겨진 목표도, 소프트한 목표도, 이 위원회 임기 중에는 없다는 겁니다. 목표는 오직 2%라고요.
동시에 마법 지팡이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5년 넘게 이어진 고물가를 9주 만에, 혹은 물가가 한 달 조금 내렸다고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 대목이 6월 CPI를 대하는 위원회의 태도를 설명해 줍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습니다. 5월의 4.2%에서 크게 둔화했고 시장 예상치 3.8%도 밑돌았습니다. 전월 대비로는 0.4% 하락해 6년 만에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발표 직후 금리선물 시장이 반영하던 7월 인상 확률은 40% 수준에서 15% 아래로, 이후 PPI까지 예상을 하회하면서 1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도 위원회의 생각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단일 데이터 포인트가 아니라 추세를 본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가 안정이 6월 물가 둔화를 이끌었는데,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충돌이 재개되며 유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습니다. 한 달치 좋은 숫자에 정책을 걸었다면 곧바로 되돌림을 맞았을 상황이죠. 좋은 숫자 하나에 환호하지 않는 태도, 이게 물가 목표에 대한 진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AI 투자가 경제 판독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워시 의장이 지난 회의 이후 특별히 두드러졌다고 꼽은 두 가지 중 하나가 국채 수익률의 자체적인 급변동이었고, 다른 하나가 AI 관련 기업 투자였습니다. 인공지능 관련 하이테크 장비와 소프트웨어 부문의 최근 4개 분기 성장률이 20%에 육박했고, 이것이 제조업 생산의 견조한 모멘텀을 떠받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컴퓨터·반도체 관련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도 전년 대비 약 20%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총수요와 총공급이 어느 수준인지 합리적인 감은 있지만, AI를 둘러싼 자본지출 급증이 그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는 게 워시 의장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컴퓨팅 장비 투자가 급증하면서 반도체와 전력 같은 한정된 자원의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는데, 이게 경기가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생산성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인지가 겹쳐 보인다는 겁니다.
다만 워시 의장은 AI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지금 나타나는 건 AI가 생산성을 통해 물가를 낮추기 전에 투자 수요가 먼저 가격을 밀어 올리는 순서의 문제라는 거죠. 그리고 연준의 성명에도 이 판단이 담겼습니다. 중동 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고조됐음에도 경제 활동은 견조한 속도로 확대되고 있고, 생산성 향상과 자본 투자는 강력하며, 일자리 증가는 노동력과 보조를 맞추고 실업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문장입니다.
물가와 일자리는 거래 관계가 아닙니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프레임은 물가를 잡으려면 일자리를 희생해야 한다는 구도입니다. 워시 의장은 이 트레이드오프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2% 물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오히려 노동시장을 지지한다는 겁니다. 물가가 높게 고착되면 실질임금이 깎이고, 기업의 투자 계획이 흔들리고, 결국 고용이 먼저 무너집니다. 물가 안정은 고용의 반대편에 있는 비용이 아니라 고용이 서 있을 수 있는 바닥이라는 논리입니다. 지속적으로 높은 물가가 미국 국민에게 부담이 된다는, 취임 이후 반복해 온 문장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는 이야기죠.
8월 잭슨홀은 아직 백지입니다
8월에는 FOMC가 없습니다. 다음 관문은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잭슨홀 심포지엄입니다. 전통적으로 연준 의장은 이 자리에서 큰 정책 방향을 제시해 왔는데, 워시 의장은 자신의 기조연설에 대해 지금은 백지 한 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연설이 될지, 9월부터 12월까지의 행보를 위한 실무적인 준비가 될지 아직 정하지 않았고, 그때까지 다섯 개 태스크포스와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겁니다.
시장이 9월 인상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데 놀라게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연준은 시장 가격에 구속되지 않으며 시장이 하는 대로 받아 적지도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동시에 연말까지 FOMC 이후 기자회견은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말은 줄이되 원칙은 반복하고, 예고는 하지 않되 설명은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FOMC가 남긴 메시지는 세 줄로 요약됩니다. 첫째, 연준의 목표는 2% 하나뿐이고 여기에 예외나 뒷문은 없습니다. 둘째, 정책금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시장이 스스로 긴축할 수 있으며, 실제로 지난 42일 동안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앞으로 시장은 연준의 힌트가 아니라 실물 데이터를 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점도표와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지도를 접었으니, 이제는 지형을 직접 읽어야 하는 국면인 거죠.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봐야 할 건 연준 위원들의 발언 온도가 아니라, 국채 커브의 기울기와 실질금리, 유가, 그리고 AI 자본지출의 속도입니다. 특히 30년물과 2년물의 방향이 갈리는 지금 같은 구간에서는, 장기 금리가 만들어내는 할인율 변화가 자산 가격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게 순서입니다. 금리 인상 여부보다 금융 여건 전체가 조여지고 있느냐가 실물과 시장에 훨씬 결정적이니까요.
워시 의장의 이번 기자회견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채권시장이 우리 몫의 일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입니다. 중앙은행이 시장을 끌고 가는 시대에서, 시장이 데이터를 보고 스스로 가격을 매기는 시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우리가 서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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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4대 위기... (feat. 한국 주식)
오늘 우리가 목격한 건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지난 3년간 "중국은 못 한다"는 전제 위에 쌓아 올린 밸류에이션이 한꺼번에 재계산되는 장면입니다. 창신메모리 상장, 키미 쇼크, 딥시크 회의록 유출, 그리고 노광장비 국산화. 이 네 가지는 각각 다른 뉴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중국이 "아직 못 하는 것"의 목록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는 것이죠.
오늘 아침, 숫자가 먼저 반응했습니다
7월 28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55.48포인트, 5.26% 하락한 6,400.27로 개장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장 초반 8% 넘게 빠지며 23만 3,500원까지 밀렸고, SK하이닉스는 10% 가까이 떨어져 164만 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삼성전자가 23만 원대를 다시 본 건 5월 초 이후 두 달여 만입니다. 간밤 뉴욕에서도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엔비디아 5.0%, ASML 5.8%, 마이크론 2.3%, 샌디스크는 무려 11.0% 하락했고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2.23% 밀렸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기대로 유가와 금리는 오히려 안정됐는데도 반도체만 골라서 맞았다는 점, 이게 핵심입니다. 매크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이야기라는 뜻이니까요.
첫 번째, 창신메모리가 상장했습니다
중국 최대 D램 기업 창신메모리, CXMT가 7월 27일 상하이 과창판에 상장했습니다. 공모가는 주당 8.66위안, 조달 금액은 579억 위안, 우리 돈 약 12조 5천억 원입니다. 2026년 아시아 최대 규모 IPO이자 과창판 역사상 최대 반도체 상장입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건 첫날 주가였습니다. 공모가 대비 466% 폭등하며 단숨에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은 462.9대 1이었고, 이 청약에 자금이 쏠리면서 과창판50 지수가 7월 초 고점 대비 20% 가까이 밀릴 정도로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였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옴디아와 트렌드포스 기준 CXMT의 글로벌 D램 점유율은 2025년 1분기 3~4%에서 2026년 1분기 7.6~8%로 올라 세계 4위가 됐습니다. 1년 만에 두 배죠. 월 웨이퍼 생산능력은 2년 새 14만 장에서 30만 장 이상으로 늘었고, 2027년까지 42만 장,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 2035년까지 세 배가 목표입니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719% 늘었고, 설립 이후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제품 믹스입니다. 지난해 매출에서 LPDDR 계열이 66.4%, DDR 계열이 31.9%를 차지했습니다. 철저히 범용 D램 중심이죠. 그런데 이 회사가 이제 DDR4를 단계적으로 접고 DDR5와 LPDDR5X 비중을 전체 생산의 7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 서버용 D램 매출 비중은 2023년 4.6%에서 2025년 26.5%로 급증했고, 애플까지 DDR5 테스트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장으로 확보한 실탄은 상하이·베이징 신규 팹과 허페이 클러스터로 들어갑니다. 상하이 신규 팹이 완공되는 2028년 상반기부터가 진짜 승부처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증권가에서 짚은 경로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공급입니다. DDR5 수율이 2026년 말 선두권에 근접하면 PC·모바일·가전용 중저가 시장부터 저가 공세가 시작되고, 범용 비중이 큰 쪽이 더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급입니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CXMT 주가 폭등이 글로벌 자금의 중국 익스포저 확대로 이어지고, 그 결과 국내 반도체주가 상대적으로 수급에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돈에는 국적이 없고, 새 종목이 생기면 기존 종목에서 나옵니다.
두 번째, 키미 쇼크입니다
미국이 제재를 걸어도 중국 AI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속했죠. 베이징의 문샷AI는 2025년 7월 1조 파라미터 오픈웨이트 모델 키미 K2를 내놓은 뒤, 11월 K2 씽킹, 올해 1월 멀티모달과 에이전트 스웜을 얹은 K2.5, 4월 K2.6, 6월 코딩 특화 K2.7, 그리고 7월 16일 2조 8천억 파라미터의 K3까지 1년도 안 되는 사이 여섯 번 갈아탔습니다.
성능 지표가 말해줍니다. K2.6은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SWE-Bench Pro에서 GPT-5.5와 동률을 기록하면서 토큰당 가격은 약 80% 저렴했습니다. K3는 블라인드 개발자 평가인 프론트엔드 코드 아레나에서 1,679점으로 1위에 올랐고, 7개 세부 영역 중 6개에서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K2.6이 18위였으니 17계단을 한 번에 뛴 겁니다. 가중치를 내려받아 직접 돌릴 수 있는 오픈웨이트라는 점도 결정적입니다.
미국의 반응이 오히려 상황을 증명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값싸고 성능 좋은 중국 모델의 확산을 두고 워싱턴에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백악관 AI 고문 데이비드 색스는 "규제를 경쟁 전략으로 쓰겠다는 자백"이라고 맞받았고,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도 규제 포획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지식재산권 탈취 조사 방침을 언급했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술로 막을 수 없으니 제도로 막자는 논의가 시작된 겁니다. 그 자체가 격차가 좁혀졌다는 가장 정직한 신호입니다.
세 번째, 딥시크 회의록이 유출됐습니다
7월 27일, 텐센트테크가 공개한 4시간 분량의 딥시크 투자자 회의록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량원펑 최고경영자는 미중 AI 격차가 인재 차이가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양국 인력의 수준은 기본적으로 같고, 문제는 자금과 장비 같은 가용 자원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화웨이 어센드 950 카드는 엔비디아 GPU 한 장을 대체하려면 네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했습니다. 5만 장으로 될 일에 20만 장을 넣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시장이 진짜로 놀란 건 그다음 문장입니다. 량 대표는 중국 안에서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쿠다의 영향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으며, 화웨이 950 슈퍼노드가 성능과 가격 양쪽에서 엔비디아 GB200과 GB300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전선이 "칩 한 장의 성능"에서 "랙 단위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잠금"으로 옮겨간 겁니다. 실제로 화웨이는 지난해 8월 쿠다 대항마인 CANN을 오픈소스로 전환했고, 딥시크는 차세대 V4를 개발하면서 기존 쿠다 코드를 CANN으로 포팅했습니다. 지난달에는 화웨이와 선전 연구진이 어센드 910C 천여 대로 1조 6천억 파라미터 모델 V4-프로의 사후학습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학습은 엔비디아, 추론만 화웨이라던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죠. 어센드 950DT와 960으로 이어지는 로드맵도 공개돼 있습니다. 참고로 이 회의록 유출의 여파로 딥시크는 100억 위안, 약 2조 원 규모 투자 유치를 중단했습니다. 그만큼 민감한 내용이었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 노광장비입니다
가장 무겁습니다. 7월 27일 디인포메이션과 로이터에 따르면 상하이의 한 국유 지원 기업이 자체 개발한 액침 심자외선, 즉 이머전 DUV 노광장비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올해 약 5대를 만들어 SMIC와 화훙반도체, 그리고 CXMT에 공급하고 내년에는 20대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업계는 이 성과를 단일 기업의 작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상하이 국유자본과 신카이라이가 합작한 위량성, 화웨이 사내 연구소 출신 1천여 명이 나와 세운 신카이라이, 기존 노광 기술을 가진 SMEE, 그리고 칭화대 연구진이 결합한 연합체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입니다. SMEE는 2009년 중국 첫 노광장비를 만든 뒤 2018년 90나노, 2023년 28나노급까지 올라왔고, 28나노 장비 SSA800 계열은 이미 45대가 납품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핵심은 대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중국 팹의 진짜 약점은 장비 자체보다 유지·보수와 부품 공급이 미국 규제 한 줄에 끊길 수 있다는 구조적 인질 상태였습니다. 국산 장비가 소량이라도 실제로 라인에 들어가는 순간, 그 인질 관계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ASML 주가가 하루 만에 5.8% 빠진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네 개의 뉴스는 사실 하나의 회로입니다
이제 위에서 아래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노광장비가 국산화되고, 그 장비로 창신메모리가 D램을 찍고, 그 메모리가 화웨이 어센드에 실리고, 그 위에서 키미와 딥시크가 돌아갑니다. 장비부터 모델까지 수직으로 이어진 국산 스택이 완성되는 겁니다. 각 고리는 여전히 세계 최고 대비 열등합니다. 그런데 배터리도, 디스플레이도, 조선도, 태양광도 정확히 이 순서로 갔습니다. 열등한 상태로 연결되고, 연결된 뒤에 규모로 원가를 깎고, 원가가 깎이면 가격이 무기가 되죠.
물론 반론도 분명합니다. HBM에서는 여전히 2~3년 격차가 있고, 어센드는 엔비디아 대비 4배를 투입해야 하며, DUV 5대는 ASML의 연간 출하량에 비하면 반올림 오차입니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이번 급락을 펀더멘털 훼손보다 심리와 수급의 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지금 한국 반도체의 안전은 회사의 속성이 아니라 사이클의 속성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잠식 속도보다 빠를 때는 점유율 8%가 위협이 아닙니다. 그런데 파이가 멈추는 순간, 똑같은 8%는 남의 자리를 파고든 몫으로 의미가 바뀝니다. 수위가 높으면 바위가 보이지 않을 뿐이죠.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창신메모리 상장은 자금 조달 이벤트가 아니라 범용 D램의 가격 결정력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둘째, 키미 쇼크는 제재가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는 증거이고, 미국의 규제 논의가 그 사실을 역설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셋째, 딥시크 회의록은 쿠다라는 마지막 해자에 금이 가고 있다는 당사자의 육성입니다. 넷째, DUV 국산화는 병목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물리적 증거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 확인할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창신메모리의 DDR5 수율이 언제 선두권에 닿는지, 그리고 메모리 업사이클이 언제 꺾이는지. 이 두 시계가 겹치는 지점이 진짜 채점일이 될 겁니다. 위기라는 말이 과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오늘 아침 5% 넘게 빠진 지수로 이미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앞으로 몇 분기에 걸쳐 데이터로 확인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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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튜더 존스가 지금 S&P 500을 사지 말라고 말한 진짜 이유
폴 튜더 존스의 경고는 "곧 폭락한다"가 아닙니다. 훨씬 더 불편한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 지불하는 가격이 앞으로 10년 당신의 수익률을 이미 결정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지금 이 밸류에이션에서 S&P를 사면, 주가수익비율 22배에 사는 것이라면 10년 선행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역사가 보여주는 게 그거다." 그리고 덧붙였죠. "주식시장이 정말 높습니다. 어떤 장기적 관점으로 보든, 여기서부터 돈을 벌기는 정말 힘들 겁니다."
이 말이 무거운 이유는 화자가 누구냐에 있습니다. 1987년 10월, 월가 전체가 재산을 잃던 그날 존스는 재산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몇 달에 걸쳐 1987년과 1929년의 유사성을 연구했고, 펀드를 시장 반대편에 세워두었으며,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퍼센트 무너지던 날 —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대 단일 하락률입니다 — 그의 공매도 포지션은 약 1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40년 만에 다시 시장을 보며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폭락이 온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 조합이 이번 발언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층: 시장이 경제보다 커져버렸습니다
존스가 대화를 시작한 숫자는 주가지수가 아니라 비율이었습니다. 미국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GDP의 252퍼센트라는 숫자죠. 참고로 대공황 직전인 1929년에는 65퍼센트, 닷컴 버블 정점인 2000년에는 170퍼센트였습니다. 1987년은 85~90퍼센트 수준이었고요. 존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과도하게 주식화된" 상태입니다. 주식시장이 경제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주식시장이 경제를 끌고 다니는 단계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가 계산한 숫자가 섬뜩합니다. 평균 회귀가 일어난다면 30~35퍼센트 하락인데, GDP의 250퍼센트짜리 자산에서 35퍼센트가 사라지면 그건 GDP의 80~90퍼센트에 해당하는 부가 증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미국 세수의 약 10퍼센트가 자본이득세에서 나오는데, 그 정도 조정이 오면 이 세수가 사실상 제로가 됩니다. 재정적자가 폭발하고 그 충격이 채권시장으로 번지죠. 주식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식이 떨어질 때 국가 재정이 함께 무너지는 구조라는 게 그의 논점입니다.
두 번째 층: 130년 만에 두 번째로 비싼 시장
존스가 말한 22배는 감이 아닙니다. 데이터가 그를 뒷받침합니다. 2026년 7월 기준 실러 CAPE는 41.4 부근인데, 130년이 넘는 데이터에서 이보다 높았던 적은 딱 한 번, 1999년 12월의 44.19뿐입니다. 연평균 기준으로 CAPE가 40을 연속으로 넘긴 시기도 역사상 단 한 번, 1999년과 2000년입니다. 각각 42.1과 41.7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우리는 압니다. 1999년 CAPE가 40을 넘은 뒤 S&P 500은 약 12개월 후에 고점을 찍었고, 이후 2년 동안 최대 49퍼센트 하락했습니다. 현재 선행 기준으로도 12개월 선행 PER은 20.1배로 5년 평균 19.9배, 10년 평균 19.0배를 모두 웃돕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밸류에이션이 타이밍 도구가 아니라 기대수익 도구라는 점입니다. 존스가 폭락을 예측하지 않는 이유가 정확히 이겁니다. 비싼 시장은 내일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만 10년 뒤에 돌려줄 게 없을 뿐이죠.
세 번째 층: 기관들이 이미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존스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대형 운용사들의 장기 전망은 이미 조용히 항복 선언을 하고 있어요. GMO는 미국 대형주의 향후 7년 실질 수익률을 마이너스 6퍼센트로 제시했고, 리서치 어필리에이츠는 미국 대형주 10년 명목 기대수익률을 3.1퍼센트로 낮췄습니다. 두 곳 모두 향후 10년 미국 채권이 미국 주식을 이길 것으로 봅니다. 뱅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2026년 6월 30일 기준 모델에서 미국 주식 10년 기대 연환산 수익률을 기존 4.9~6.9퍼센트에서 4.2~6.2퍼센트로 낮췄습니다.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은 수준에서 더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죠.
즉 존스의 "10년 마이너스"는 극단값이 아니라, 업계 전체가 서 있는 스펙트럼의 한쪽 끝입니다.
네 번째 층: 그가 진짜 무서워하는 것, 레버리지
존스가 반복해서 강조한 문장이 있습니다. 그의 50년 커리어에서 모든 대형 폭락의 뿌리는 똑같았다, 과도한 레버리지, 대개는 파생상품을 통한 레버리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2008년보다 더 심하다고 말하죠. 데이터가 정확히 그 그림을 그립니다.
6월 기준 마진부채는 1조 5,300억 달러로 3개월 연속 사상 최고를 경신했습니다. 전월 대비 7.9퍼센트, 전년 대비 51.5퍼센트 증가했고요. 같은 시점 투자자 순크레딧 잔고는 마이너스 1조 600억 달러로 사상 최저입니다. 1997년 이후 마진부채가 이 정도 속도로 늘어난 국면은 딱 세 번뿐이었습니다.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 2007년 중반, 그리고 2021년 봄입니다. 완벽한 고점 신호는 아니었지만, 모두 위험이 관대하지 않았던 후기 국면이었죠. GDP 대비로도 약 4퍼센트 수준으로 2021년 정점 비율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에 존스가 더 중요하게 본 게 비유동성입니다. "우리는 2008년보다 훨씬 더 비유동적입니다." 기관 포트폴리오가 사모주식, 인프라, 부동산에 훨씬 크게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2007년, 2008년에 사모주식은 기관 포트폴리오의 약 7퍼센트였습니다. 지금은 약 16퍼센트예요. 부동산도 늘었고 인프라 베팅도 늘었습니다." 규제당국도 같은 곳을 보고 있습니다. FSB는 2026년 5월 보고서에서 사모신용이 2024년 말 기준 1조 5,000억~2조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지만 현재 규모로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어본 적이 없고, 차입자들이 공개시장 대비 신용등급이 낮고 레버리지가 높으며, 밸류에이션 불투명성이 스트레스 국면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IMF 역시 레버리지로 팽창한 비은행 금융기관의 강제 매도가 마진콜과 환매를 통해 변동성을 키울 수 있고, 주식시장 변동성은 옵션 매도자와 레버리지 ETF에 의해 증폭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섯 번째 층: 지수가 지수가 아니게 된 문제
존스의 논지를 한 겹 더 보강하는 게 집중도입니다. S&P 500 상위 10종목 비중은 40.8퍼센트로, 기술 버블 정점의 26.6퍼센트를 크게 웃돕니다. 이 상위 10종목의 밸류에이션은 26배로 장기 평균보다 25퍼센트 비싸고요. 최근에는 43퍼센트까지 올라 역사상 최고 집중도를 기록했습니다. 지수 펀드를 들고 있다면 자산의 절반 가까이가 사실상 10개 회사, 대부분 같은 섹터, 상당수가 같은 매크로 리스크에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10개 회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마지막 퍼즐입니다. 국제결제은행은 상위 5개 하이퍼스케일러가 2025~2026년에 AI 관련 자본지출로 1조 달러 이상을 쓸 것으로 보면서, 이 약정이 해당 기업들의 이익과 잉여현금흐름을 앞지르고 있어 일부는 부채를 조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은 2026년 영업현금흐름의 거의 100퍼센트를 소진하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평균은 약 40퍼센트였죠. 2026년 글로벌 AI 관련 부채 발행은 5,700억 달러로 전망되는데, 5월 31일까지 이미 2,360억 달러가 발행돼 전년 동기의 네 배 속도입니다. 그리고 신호가 하나 켜졌습니다. 2월에 하이퍼스케일러 채권 주문은 발행액의 다섯 배 가까이 몰렸지만, 7월에는 두 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존스가 지적한 수급 요인이 겹칩니다. IPO 물량이 시가총액의 5~6퍼센트로 예상되는 동시에,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현금을 AI 자본지출로 돌리면서 자사주 매입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그냥 주식 공급을 늘리는 건데, 이미 자사주 매입은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 결과가 기술주의 '롤링 톱', 즉 서서히 굴러 내려가는 고점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죠.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존스는 "다 팔아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건 인식입니다. "자기 돈을 어떻게 배치할지 생각할 때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고로 그는 같은 대화에서 비트코인을 최고의 인플레이션 헤지로 본다고 밝혔고, 일본 시장에 대한 강세론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 이 이야기가 남기는 함의는 분명합니다. 서학개미 자금이 미국 대형 기술주와 지수형·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돼 있다는 건,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리스크 — 높은 진입 밸류에이션, 사상 최고 레버리지, 사상 최고 집중도 — 를 한꺼번에, 그것도 환율까지 얹어서 떠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존스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내일을 맞히려 하지 말고, 지금 지불하는 가격이 10년을 결정한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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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CXMT를 산다고 국장을 다 팔기 시작
코스닥을 팔아 전닉을 샀고, 이제 외국인은 국장을 팔아 중국을 삽니다
지금 한국 증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떤 종목이 좋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한 방향으로만 빨려 들어가는 사다리 현상이고, 그 사다리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습니다. 코스닥을 팔아 전닉을 샀고, 코스닥이 마르자 대형주를 팔았고, 대형주가 마르자 반도체 2등주까지 팔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외국인은 그 마지막 단계에서 국장 전체를 팔아 중국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 상하이에서 벌어진 일이 그 증거입니다.
1단계, 코스닥을 팔아 전닉을 샀습니다
숫자가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5월 27일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은 15조 2,784억 원이었는데, 7월 24일에는 5조 1,77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하루 거래대금이 10조 1,014억 원, 그러니까 66.1%가 증발한 겁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1,133.13에서 748.22로 34.0% 하락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실 부분은 지수 하락률보다 거래대금 감소폭이 훨씬 컸다는 점입니다. 가격이 떨어진 것보다 거래 자체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뜻이죠. 가격이 아니라 사람이 떠난 겁니다.
돈의 이동 경로도 선명합니다. 6월 19일부터 24일까지 개인은 코스피에서 약 14조 3,000억 원을 순매수했는데, 이 가운데 약 75%인 10조 7,000여억 원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는 1조 1,033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코스닥에서 뺀 돈이 그대로 전닉으로 옮겨 탄 겁니다.
빚의 이동은 더 노골적입니다. 코스닥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5월 27일 9조 8,563억 원에서 7월 23일 6조 9,106억 원으로 29.9%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 신용융자는 3.7% 감소하는 데 그쳤습니다. 코스닥 신용융자 감소율이 코스피의 약 8배에 달한 겁니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추정 신용잔고 약 12조 5,000억 원은 코스닥 전체 신용거래융자 잔고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두 종목의 빚이 1,800개 시장 전체의 빚보다 많습니다. 이게 1단계입니다.
2단계, 코스닥이 마르자 대형주를 팔았습니다
코스닥에서 빼올 돈이 바닥나자, 다음 순서는 코스피 안의 다른 대형주였습니다. 그 결과가 이 숫자입니다.
6월 1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4,162조 원, 코스피 전체의 54.76%였습니다. 두 종목 합산 비중은 3월에 처음 40%를 넘었고, 5월 말 50%를 돌파한 뒤 다시 뛰었습니다. 닷컴 버블도, 일본 버블도 이 정도 쏠림은 없었습니다.
상징적인 장면도 나왔습니다. 6월 22일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 2,090조 원으로 2,088조 원인 삼성전자를 넘어 시총 1위에 올랐습니다. 삼성전자가 코스피 시총 1위를 내준 것은 2000년 11월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1년간 삼성전자 주가는 490%, SK하이닉스는 1,030% 올랐습니다.
지수가 올라도 내 종목은 안 오른다는 하소연, 착시가 아니었습니다. 코스피 ETF를 샀다면 사실상 절반 넘게 전닉을 산 것이었으니까요.
3단계, 대형주가 마르자 2등주까지 팔았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거래대금 지표에서 가장 잔인하게 드러납니다. 5월 27일부터 7월 24일까지 41거래일간 삼성전자 거래대금은 398조 7,849억 원, SK하이닉스는 560조 4,831억 원, 합계 959조 2,680억 원으로 같은 기간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 1,861조 4,813억 원의 51.5%를 차지했습니다. 코스피에서 거래된 100만 원 중 51만 5,000원이 두 종목에서 손바뀜한 겁니다.
여기에 파생상품까지 얹으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7월 8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주에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16종의 거래대금까지 합산하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3.1%까지 치솟습니다. 그리고 레버리지 ETF 14종의 41거래일 누적 거래대금 392조 1,284억 원은 코스닥시장 전체 359조 4,237억 원보다 9.1% 많았습니다.
ETF 14개가 1,800개 종목보다 더 거래됐습니다. 소부장이든 2등주든, 전닉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으면 '전닉 본체'를 사기 위한 현금 조달원으로 먼저 정리됐다는 뜻입니다.
4단계, 외국인은 국장을 팔아 중국을 삽니다
그리고 오늘, 네 번째 단계가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7월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는 장 초반 공모가 대비 471.59% 오른 49.50위안에 거래를 시작하며, 상장과 동시에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습니다. 장중 최고 상승률은 535%에 달했습니다. 장중 시가총액은 68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상장 직후 국내 증시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약세를 보이며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코스피는 외국인 2조 원 순매도에 하락 전환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흐름은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올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149조 원 순매도했고, 일본 증시에는 736억 달러 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며 아베노믹스 시기를 넘어선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전닉스로 많이 벌었으니 일본 가자", "K반도체 팔고 J반도체 담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중국으로도 갑니다. IMF는 7월 8일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로 낮추면서도 중국은 0.2%포인트 올린 4.6%로 상향했고, 골드만삭스는 A주 비중확대 관점을 유지하며 중국 AI 섹터 전반에 버블이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로드쇼 결과 향후 수개월간 글로벌 자금의 중국 포트폴리오 재배치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CXMT의 실체도 봐야 합니다. CXMT는 579억 위안 규모 IPO 자금으로 차세대 공정과 HBM3 개발, 생산능력 확대에 투자하며, 현재 D램 점유율 9%를 2028년 11%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상하이와 허페이에 신규 공장을 짓고 제3공장까지 협의 중인데, 이 계획이 모두 현실화되면 월 60만 장 이상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삼성전자의 월 D램 생산능력이 약 60만~65만 장, 마이크론이 38만 장 안팎입니다.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CXMT의 생산능력은 이미 2027년 말 공급분까지 예약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모건스탠리는 D램 계약가격의 전년 대비 상승률이 2026년 4분기 정점을 찍은 뒤 2027년 들어 큰 폭으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계산은 단순합니다. 가격 상승률이 정점을 지나는 시점에, 원가가 30% 낮은 신규 공급자가 자본시장 실탄까지 확보했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5단계는 무엇일까요
빈칸으로 남겨두셨던 5단계, 데이터가 이미 답을 하고 있습니다. 팔 것이 다 소진되면, 마지막에 남는 건 레버리지를 낀 개인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전체 ETF 거래대금의 약 4분의 1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차지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정 종목이 급락하면 레버리지 ETF는 기계적으로 보유 지분을 추가 매도해야 하고, 이는 추가 하락과 추가 리밸런싱의 피드백 루프를 형성합니다. 사람이 파는 게 아니라 상품 구조가 스스로 파는 단계입니다.
관련 ETF 16개는 모두 공모가격인 2만 원을 밑돌고 있고, 금융당국은 기본예탁금 3,000만 원 상향 시기를 8월 5일에서 7월 31일로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매매 단위는 1주에서 20주로, 교육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고, 신규 상품 상장과 광고는 잠정 중단됩니다. 개인은 한 달간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8조 9,000억 원어치 매수했고, 반대매매는 하루 572억 원까지 늘었습니다.
낙폭도 이미 역사적입니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6월 21일 9,114포인트에서 7월 20일 6,516포인트까지 28.5% 하락했으며, 이는 코로나19(-36%), 2022년 미국 금리 인상 국면(-3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4%) 이후 최대 낙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균형을 위해 말씀드리면, CXMT는 HBM에서 여전히 뒤처져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4 양산 경쟁에 들어간 반면 CXMT는 HBM3E를 내년에야 양산하는 것이 목표이고, EUV 노광장비 수출 규제가 결정적 병목입니다. 세미애널리시스는 CXMT의 HBM 배정 물량이 2027년 말에도 월 5만 5,000장 수준에 그칠 것으로 봤습니다. 최근에는 CXMT가 64GB DDR5 서버 메모리를 삼성전자보다 비싼 가격에 공급한 사례도 보도됐습니다. 국민연금은 7월 순매수로 전환하며 SK하이닉스를 담았습니다. 이익 자체가 꺾인 게 아니라 속도가 꺾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국면의 본질은 반도체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자본이 두 종목으로 압축됐고, 그 압축을 레버리지가 증폭시켰고, 이제 새로운 공급자가 등장하면서 외국인이 먼저 판을 갈아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켜보실 지표는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코스닥 거래대금이 5조 원대에서 회복되는지. 둘째, 7월 31일 레버리지 규제 시행 이후 반대매매가 진정되는지. 셋째, 4분기 D램 계약가 상승률이 실제로 정점을 찍는지입니다. 사다리를 거꾸로 내려오는 신호는 언제나 거래대금에서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본 내용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