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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수년간 공급 충격에 대비해 준비해 왔다.
해협이 닫혔는데, 왜 중국만 덜 흔들릴까요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호르무즈 사태에서,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단단한 자리에 서 있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위기를 잘 관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가 오기 몇 년 전부터 조용히 사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사놓았고, 곡물을 사놓았고, 햇빛과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설비를 사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금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네 갈래의 준비가 어떻게 하나의 그림으로 맞물리는지, 최신 데이터로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부터 보시죠. 7월 31일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상업 선박에게 사실상 닫혀 있습니다. 7월 23일 기준 해협을 통과한 상선은 10척, 평상시 하루 88척과 비교하면 약 11퍼센트 수준이고, 유조선 전쟁위험 보험료는 위기 이전의 8배로 뛰었으며 여섯 곳의 선주상호보험조합이 담보를 철회했습니다. 평시라면 이 좁은 물길로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4분의 1, 액화천연가스의 5분의 1이 지나갑니다. 지구의 혈관 하나가 눌린 셈입니다. 그런데 이 압박이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오늘의 본론입니다.
첫 번째 버퍼는 기름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2025년 12월 기준으로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전략 석유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은 2025년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110만 배럴씩 상업 재고를 쌓아 연말에 약 14억 배럴에 도달했고, 정부 보유분은 3억 6천만 배럴 규모로 추정됩니다. 정부와 상업 재고를 합치면 수입 기준 약 121일치로, 국제에너지기구가 회원국에 권고하는 90일 기준을 훌쩍 넘습니다. 중국은 그 기구의 회원국도 아닙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스스로 더 많이 쌓았다는 뜻이죠. 일부 분석은 2025년 말 총 원유 비축 규모를 12억~14억 7천만 배럴, 순수입 기준 110~180일치로 보고 있고, 2025년부터 2026년 사이 11개의 비축 기지를 추가해 연말이면 총 저장 능력이 20억 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 숫자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냈는지가 중요합니다. 브렌트유가 3월에 배럴당 118달러 부근까지 치솟았을 때, 중국 국내 유가는 국제 시장의 약 5분의 1 수준으로만 움직였습니다. 국제 유가가 다섯 걸음 뛸 때 중국 국내 가격은 한 걸음만 움직인 겁니다. 재고라는 것은 평소에는 창고 임대료만 나가는 비용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해협이 닫히는 순간, 그 창고는 나라 전체의 물가 방파제가 됩니다.
두 번째 버퍼는 식량입니다. 이쪽 숫자는 사실 원유보다 더 놀랍습니다. 2026/27년 기준 중국의 옥수수 재고는 약 1억 6,600만 톤으로 세계 전체의 60퍼센트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06/07년에는 3,660만 톤이었으니 20년 만에 네 배가 넘게 불어난 겁니다. 밀 재고도 같은 기간 3,860만 톤에서 약 1억 2,100만 톤으로 늘어 세계 밀 재고의 44퍼센트를 차지하고, 쌀은 1억 800만 톤으로 세계 재고의 절반을 넘습니다. 국영 비축 기업이 농가에서 사들이는 곡물만 연간 4억 2천만 톤 규모로, 2년 연속 4억 톤을 넘겼습니다. 에너지 위기는 거의 예외 없이 식량 위기로 번집니다. 비료도, 농기계도, 운송도 전부 기름을 먹기 때문이죠. 중국은 그 두 번째 파도가 오기 전에 창고를 채워둔 겁니다.
세 번째 버퍼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2026년 상반기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약 2조 킬로와트시로 전년 대비 9퍼센트 늘었고, 사상 처음으로 전체 발전량의 40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풍력과 태양광만 합쳐 1조 2,500억 킬로와트시입니다. 반대로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은 49.7퍼센트로 떨어져, 반기 기준으로 처음 50퍼센트 선이 무너졌습니다. 6월 말 기준 총 발전 설비는 40억 4천만 킬로와트로 세계 1위이고, 이 가운데 태양광이 12억 7천만 킬로와트로 전년 대비 15.8퍼센트, 풍력이 6억 8천만 킬로와트로 18.5퍼센트 늘었습니다. 2030년까지 풍력과 태양광 합계 28억 킬로와트, 재생에너지 전체 35억 킬로와트라는 목표도 이미 공표됐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그림이 완성됩니다.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그 전기를 쓸 수요가 없으면 기름을 대체하지 못하죠. 그런데 중국은 수요 쪽도 함께 갈아엎었습니다. 2025년 기준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합친 전동화 차량이 신차 승용차 판매의 57퍼센트를 차지했고, 늘어난 전기차 보유대수가 2026년 한 해에만 하루 54만 배럴의 휘발유 수요를 밀어냅니다. 2026년 5월에는 전기차 비중이 62.9퍼센트라는 기록을 세웠고, 전력이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4퍼센트에 이릅니다. 전기차 전체 함대가 이미 하루 100만 배럴이 넘는 석유 수요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는 오만의 하루 산유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유조선이 못 들어오면 발전소를 더 돌리면 되고, 그 발전소의 연료는 수입할 필요가 없는 국산 햇빛과 바람입니다. 이것이 중국이 만든 구조적 우회로입니다.
그래서 실제 성적표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중국의 2026년 상반기 성장률은 4.7퍼센트였습니다. 1분기 5.0퍼센트, 2분기 4.3퍼센트로, 3월 양회에서 제시한 4.5~5.0퍼센트 목표 범위 안에 들어왔죠. 국제통화기금은 7월 8일 세계경제전망 수정치에서 올해 세계 성장률을 3.0퍼센트로 낮추면서 미국·일본·인도를 0.1퍼센트포인트씩, 유로존을 0.2퍼센트포인트 하향했습니다. 물가를 보면 격차가 더 선명합니다. 5월 미국 물가상승률은 4.3퍼센트, 유로존은 3.2퍼센트였고 6월에 각각 3.5퍼센트와 2.8퍼센트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은 소비자물가 1.0퍼센트, 생산자물가 1.5퍼센트에 머물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유 수입국이, 원유 위기 국면에서 가장 낮은 물가를 기록한 겁니다.
공급선 자체도 조용히 갈아탔습니다.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 가운데 호르무즈를 지나는 비중은 2025년 51퍼센트에서 약 44퍼센트로 낮아졌습니다. 해협을 지나지 않는 러시아산 해상 원유가 하루 120만 배럴에서 약 180만 배럴로 늘어난 결과입니다. 6월에는 러시아산이 중국 원유 수입의 29퍼센트를 차지한 반면 사우디산은 5퍼센트에 그쳤고, 상반기 중러 교역액은 1,341억 8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6퍼센트 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역설이 하나 더 붙습니다. 1분기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77.5퍼센트 급증했고, 3월 한 달 선적량은 약 140퍼센트 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세계의 주유소 가격이 오를수록 중국의 수출 효자 상품이 더 잘 팔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 금입니다. 중국 인민은행은 6월에 14.93톤의 금을 추가 매입해 20개월 연속 매수를 이어갔고, 보유량은 2,346톤에 이르렀습니다. 6월 말 외환보유액은 3조 4,163억 달러로 전월 대비 260억 달러 줄었습니다. 6월 매입분은 2023년 이후 단일 월 최대 규모였고, 스팟 금값이 온스당 4,000달러 아래로, 1월 장중 고점인 5,500달러대에서 약 16퍼센트나 밀린 시점에 이루어졌습니다. 가격이 빠지는데 오히려 더 샀다는 뜻이죠. 수입 쪽은 더 공격적입니다. 3월 순수입만 143톤으로 전월 대비 49퍼센트 늘었고, 1분기 순수입은 316톤으로 전 분기 대비 182퍼센트, 전년 동기 대비로는 333퍼센트 폭증했습니다. 5월 수입량도 약 163톤에 달했는데, 같은 달 공식 발표된 인민은행 매입분은 9.95톤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중반 현재 중국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 못 미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준비자산 관리자들이 70퍼센트 안팎을 금으로 들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는 이야기죠.
중국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세계금협회가 76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상 최대 규모의 2026년 조사에서, 89퍼센트가 향후 12개월간 세계 공식 금 보유량이 늘어날 것으로 봤고, 자국 보유를 늘리겠다고 답한 곳은 45퍼센트로 2018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위기 국면에서의 성과를 이유로 든 응답이 90퍼센트, 장기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응답이 84퍼센트, 분산투자가 82퍼센트였습니다. 한편 7월 24일부터 중국 주요 은행들은 소매 고객의 귀금속 증거금 거래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종이로 된 금의 시대를 닫고 실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 이 다섯 갈래를 한 문장으로 묶어보겠습니다. 원유 비축은 시간을 벌어주고, 식량 비축은 물가를 눌러주고, 태양광과 풍력은 수입 의존 자체를 줄여주고, 러시아·중앙아시아 노선은 병목을 우회하고, 금은 이 모든 것을 감싸는 마지막 보험입니다. 각각은 평범한 정책이지만, 다섯 개가 동시에 작동할 때는 완충 장치가 아니라 협상력이 됩니다. 위기 때 급하게 살 필요가 없는 나라는, 가격을 부르는 쪽이 아니라 기다리는 쪽에 설 수 있으니까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여기서 가져갈 교훈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준비는 위기 전에만 할 수 있습니다. 해협이 닫힌 다음에 기름을 사려면 118달러를 내야 하고, 금값이 사상 최고를 찍은 다음에 금을 사려면 5,500달러를 내야 하죠. 반대로 중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남들이 팔 때 사고, 조용할 때 쌓고, 값이 빠질 때 더 담는 것입니다. 현금이라는 완충장치, 자산군 분산이라는 우회로, 그리고 실물이라는 마지막 보험. 국가 단위에서 통하는 원리는 계좌 단위에서도 똑같이 통합니다. 우리가 지금 점검해야 할 것은 시황 전망이 아니라, 내 포트폴리오에 며칠치 버퍼가 들어 있는가 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종목이나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2 | 수년뒤 삼전이랑 하이닉스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 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산업 패권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도, 설비도, 심지어 정부의 의지도 아닙니다. 그 시대에 가장 똑똑한 열여덟 살들이 어느 문으로 걸어 들어갔느냐, 오직 그것 하나입니다. 이 명제를 지난 40년 동안 가장 잔인하게 증명해 보인 나라가 일본이고, 그 덕분에 왕좌를 물려받은 나라가 한국이며, 지금 그 똑같은 각본을 반대편에서 다시 연기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숫자로 끝까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일본입니다. 흔히들 일본 전자산업의 몰락을 플라자 합의나 엔고, 혹은 갈라파고스화 때문이라고 설명하시죠. 물론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헤이세이 원년 무렵부터 일본의 교실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목적지가 공학부에서 의학부로 통째로 옮겨간 겁니다. 놀라운 건 그 이전 시대의 풍경입니다.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는 이공계가 대단히 인기가 높아서, 오사카대 의학부를 나온 사람이 교토대 공학부에는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고, 규슈대 같은 옛 제국대학에서도 공학부가 의학부보다 위였다는 자료가 실제로 남아 있습니다. 소니와 도시바와 NEC를 만든 세대가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버블이 무너지고 나서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일본에서 의학부 인기가 치솟은 배경은 명확합니다.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 침체 속에서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직업으로 의사가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이겁니다. 방위의대를 뺀 전국 의학부 입학 정원은 1990년도 7,685명에서 2015년도 9,134명으로 상당히 늘었는데, 그렇다고 의대 입시가 쉬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정원을 늘리면 경쟁이 완화될 거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겁니다. 몰려드는 속도가 정원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빨랐으니까요. 그 결과가 무엇이었냐면, 오늘날 지방 국공립대 의학부의 편차치가 도쿄대와 교토대의 이공계 학부들을 웃도는 역전 현상입니다. 지방 명문고의 자랑거리가 도쿄대 합격자 수가 아니라 지역 의대 합격자 수가 된 나라,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바로 그 30년 동안 한국의 최상위권은 어디로 갔습니까. 서울대 공대, 카이스트, 포스텍이었습니다. 전국 상위 0.1퍼센트가 반도체 공정과 회로 설계와 재료공학을 공부했고, 그 인력이 기흥과 이천의 클린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본이 의국을 채우는 동안 한국은 팹을 채웠고, 그 인재 배치의 차이가 20년 뒤 D램과 낸드와 스마트폰 시장의 순위표로 나타났습니다. 이건 정신론이 아니라 산술입니다. 최고의 두뇌를 어디에 배치했는지가 20년 뒤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을 결정합니다.
자,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의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기서부터가 오싹한 대목입니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이공계 정시 합격선 상위 20개 학과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의대였습니다.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곱씹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26학년도 결과는 더 선명합니다. 서울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자연계열 등록 포기자가 180명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심각한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전기정보공학부에서만 15명이 등록을 포기해 전년 대비 25퍼센트 늘었고, 컴퓨터공학부 9명, 화학생물공학부 8명 등 전통의 간판 학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서울대 의예과에서는 등록 포기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입시 업계에서는 서울대 공대와 의대에 동시 합격했을 때 수험생의 최종 선택은 결국 의대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6학년도 정시에서 서울대 107명, 연세대 435명이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 주로 의대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숫자가 남아 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대기업 계약학과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2026학년도에 144명으로, 전년 103명보다 39.8퍼센트 늘었습니다. 계약학과가 어떤 곳입니까. 입학과 동시에 국내 최고 대기업의 취업이 사실상 보장되는, 이공계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를 걷어차고 의대로 갑니다. 대한민국 이공계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인센티브가 시장에서 이미 패배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2027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제가 본격 도입되면 의대 모집 인원이 추가로 확보되면서 자연계열 이탈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학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학원은 이미 비어 있습니다. 서울대의 2025학년도 대학원 STEM 정원 가운데 75퍼센트가 미충원 상태였고,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를 합해 41개 학과 61명이 미충원됐는데 이는 2020년 대비 3배 늘어난 수치입니다. 박사급 AI 인재 중 해외 이민을 희망하는 인원은 2023년 592명, 2024년 658명, 2025년 709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고, 미국 AI 박사 초임이 11만 4천 달러를 넘는 반면 한국 민간 AI 연구원의 초임은 약 4,100만 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스탠퍼드 HAI의 AI 인덱스 2026 기준으로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은 OECD 38개국 가운데 35위, 순유입률은 만 명당 마이너스 0.36입니다.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죠. 스위스 IMD의 세계 인재 순위 2025에서 한국은 69개국 중 37위로 전년보다 11계단 떨어져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외국 고급 인재 유치는 61위, 두뇌 유출 방지는 48위였습니다. 국내 과학자의 해외 이직률 2.85퍼센트가 외국 과학자의 국내 유입률 2.64퍼센트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위에서는 안 들어오고, 안에 있던 사람은 나갑니다. 파이프라인의 위아래가 동시에 끊긴 겁니다.
이제 중국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체급 자체가 다릅니다. 중국은 상위 1퍼센트 영재를 선발해 학부 시절부터 연구 현장에 투입하고 있고,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이른바 996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 일상입니다.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10퍼센트 늘린 데 이어 중앙 국유기업들을 통해 4년 연속 1조 위안, 약 210조 원이 넘는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230조 원이 들어갔습니다. 투입 인력은 144만 명, 국가급 연구개발 플랫폼은 470여 개에 이릅니다. 인재를 뽑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중국 교육부와 8개 부처는 2022년부터 공학 석·박사 교육 개혁 시범사업을 추진해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같은 전략 분야의 병목 기술을 풀 고급 엔지니어를 길러내고 있는데, 3년여 만에 60개 대학과 100여 개 기업의 공동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2만 명이 넘는 공학 인재가 선발됐습니다. 2024년에는 아예 법을 통과시켜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등 18개 분야에 실천성과 박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논문이 아니라 문제 해결로 박사를 주는 나라, 그것이 지금의 중국입니다.
그래서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을까요. 정부의 공식 평가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보고한 2024년도 기술 수준 평가에 따르면, 50개 국가전략기술에서 미국을 100퍼센트로 볼 때 한국은 82.7퍼센트인 반면 중국은 91.3퍼센트였습니다. 중국은 2022년 86.5퍼센트에서 끌어올린 것이고, 한중 격차는 4.8퍼센트포인트에서 8.6퍼센트포인트로 2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양자는 중국 93.2퍼센트 대 한국 67.8퍼센트, 우주항공은 84.8퍼센트 대 59.3퍼센트, AI는 93.0퍼센트 대 80.6퍼센트, 로봇은 90퍼센트 대 81퍼센트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강세라던 반도체·디스플레이마저 중국 91.5퍼센트, 한국 91.2퍼센트로 사실상 기술 우위가 사라졌으며, 2차전지는 중국이 처음으로 한국을 추월해 1위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지켰다고 믿었던 마지막 성벽에서 소수점 세 자리의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이 한 회사에 응축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입니다. CXMT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약 508억 위안, 미화 75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9퍼센트 늘었고 순이익은 1,200퍼센트 넘게 증가했습니다. 회사는 2026년 상반기 매출을 1,100억에서 1,200억 위안, 즉 160억에서 177억 달러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0퍼센트 이상의 성장입니다. 기업공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CXMT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연구개발 인력만 4,653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체 직원 1만 5,300명 가운데 30퍼센트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한국 엔지니어 200명을 이미 품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링크드인으로 불특정 다수를 접촉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인력을 조직적으로 영입하는 단계까지 진화했고, 연봉만이 아니라 조직 운영 권한과 스톡옵션, 주거 지원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기술 격차가 아직 남아 있다는 반론도 물론 있습니다. CXMT가 HBM3 초기 양산을 안정화하는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4를 엔비디아 등에 공급했고 7세대 HBM4E 샘플까지 출하해, 로드맵상 최소 두 세대 이상 앞서 있다는 평가입니다.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격차의 크기가 아니라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 그리고 그 사이 우리 수익 기반이 어디서 무너지고 있는가입니다. CXMT가 최근 공개한 DDR5와 LPDDR5X의 표시 성능은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력 제품 수준에 상당히 근접했고, 중국이 자체 개발한 액침식 DUV 노광장비도 올해 약 5대를 생산해 CXMT와 SMIC 등에 공급한 뒤 2027년 20대로 늘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CXMT는 DDR4를 시장가의 절반 수준으로 뿌리며 구형 D램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HP와 델, 에이수스와 에이서 같은 글로벌 제조사들이 품질 테스트와 협력 논의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능력 절반 이상이 여전히 범용 제품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HBM4에서 앞서 있어도, 범용 D램의 수익성이 무너지면 전체 실적이 흔들립니다. 낸드에서 점유율 10퍼센트를 확보한 YMTC 역시 신규 공장을 통해 D램과 HBM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각본, 우리는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입니다. 중국의 LCD 패널 수입액은 2012년 503억 달러에서 2023년 119억 달러로 4분의 1 아래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이 LCD 시장을 60.8퍼센트로 장악하는 동안 한국 점유율은 10.1퍼센트로 내려앉았고,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쓰는 OLED 패널 가운데 한국 제품 비중은 2021년 78퍼센트에서 2023년 16퍼센트로 급감했습니다. 지금 세계 LCD 생산의 약 90퍼센트가 중국 몫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망친 OLED는 안전할까요. 한국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OLED 점유율은 2020년 한국 87퍼센트 대 중국 12퍼센트에서 2025년 69퍼센트 대 31퍼센트로 좁혀졌습니다. 2024년 기준 글로벌 OLED 출하량에서 중국 업체 비중은 이미 48퍼센트에 달합니다. 태양광은 더 참혹합니다. 전 세계 태양광의 90퍼센트가 중국산이고 웨이퍼는 97퍼센트, 셀은 80퍼센트를 중국이 장악했으며, 한국 점유율은 50퍼센트대에서 4퍼센트대로 추락했습니다. 태양광에서 벌어진 일이 LCD에서 반복됐고, LCD에서 벌어진 일이 지금 OLED에서 진행 중이며, 그다음 순번이 메모리라는 것이 이 산업의 냉정한 경로입니다.
여기에 우리 쪽 조건 하나가 더 겹칩니다. 2025년 반도체특별법 논의에서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를 두고 여야가 합의하지 못했고, 2026년 1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도 근로시간 특례는 끝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저쪽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자랑하는데, 이쪽은 그 논쟁 자체를 아직 매듭짓지 못한 겁니다. 여기서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장시간 노동을 미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경쟁이라는 게 우리가 정한 규칙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 산업의 부침이 아니라, 한 세대의 인재 배치가 20년 뒤 국가 산업 지도를 바꾸는 과정의 초반부입니다. 일본은 최고의 두뇌를 진료실로 보냈고 20년 뒤 전자 왕국을 잃었습니다. 한국은 그 두뇌를 클린룸으로 보냈고 20년 뒤 왕좌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이공계 우등생들이 연구 환경과 인프라를 좇아 중국 명문 공대로 진학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향이 완전히 뒤집힌 겁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당장 내일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수년 뒤 이 두 회사가 마주할 질문이 점유율이나 마진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오늘의 교실에서, 서울대 공대 등록을 포기하는 180명의 선택 속에서 조용히 결정되고 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20년 늦게 도착할 뿐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30 |
| 3 | 지금 미국에서는 변압기가 '없어서 못 파는' 물건입니다
효성중공업을 "아파트 짓는 회사"로 알고 계셨다면, 오늘 그 인식을 한 번 뒤집으실 차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회사의 진짜 주력은 아파트가 아니라 미국 전기를 실어 나르는 초대형 변압기이고, 미국 땅에서 가장 높은 전압인 765kV급 변압기를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공장은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효성중공업 공장, 단 하나뿐입니다.
먼저 아파트 이야기부터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해링턴 플레이스(Harrington Place)'는 효성중공업이 2013년에 런칭한 아파트 브랜드이고, 그 전신은 2002년의 '효성백년가약'입니다. 오피스텔은 해링턴 타워, 복합건물은 해링턴 스퀘어, 빌라는 해링턴 코트로 갈래를 나눠 쓰고 있죠. 최근 사례로는 김포 풍무동 현장이 있습니다. 풍무 양도지구에 지하 3층~지상 최고 29층, 18개 동, 총 1,769세대 규모로 조성되고 입주는 2028년 8월 예정이며,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GSS팀이 조경을 설계해 테마별 정원과 선큰 커뮤니티를 배치한 단지입니다. 브랜드로도, 상품으로도 충분히 존재감 있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무게중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효성중공업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1조 3,58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2% 늘었고, 영업이익은 1,523억 원으로 48.7% 증가했습니다. 그중 중공업 부문만 놓고 보면 2분기 매출 1조 2,945억 원, 영업이익 3,067억 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죠. 변압기·차단기 등 전력기기 생산액은 2023년 2조 705억 원에서 2025년 3조 2,581억 원으로, 2년 만에 약 57% 늘었습니다. 아파트가 이름을 만들었다면, 전기가 실적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초고압 변압기가 뭔지 쉽게 짚어보겠습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장거리 송전에 맞게 초고압으로 끌어올리거나, 반대로 수요처에 맞춰 다시 낮춰주는 전력망의 핵심 장비입니다. 여기서 숫자가 중요합니다. 765kV 변압기는 설계와 제조 난도가 매우 높은 대신, 기존 345kV나 500kV 대비 송전 손실을 크게 줄여줍니다. 전압이 높아질수록 절연 기술과 설계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대단히 높은 품목이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멤피스 공장의 위상이 특별합니다. 2020년 인수한 이 공장에 효성중공업은 인수 비용을 포함해 총 3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 증설이 끝나면 미국 내 최대 변압기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더 놀라운 건 실적입니다. 효성은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 765kV 변압기 시장의 리더 자리를 지켜왔고, 미국 전력망에 설치된 765kV 변압기의 거의 절반을 공급해왔습니다. 테네시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증설에는 1억 5,700만 달러가 추가 투입되고 24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며, 생산능력은 50% 더 늘어납니다.
현장의 온도는 더 뜨겁습니다. 효성 하이코(HICO)는 연 100대 이상의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데, 2028년까지 주문이 꽉 차 있고 이미 2030년 이후 물량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2028년까지 총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2027년까지 북미 전력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북미 매출 1조 원을 넘긴 흐름이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셈이죠.
그럼 왜 지금일까요. 답은 AI 데이터센터입니다. 숫자로 보시겠습니다. 우드매켄지의 2025년 2분기 조사에서 전력용 변압기 리드타임은 평균 128주, 발전기 승압용(GSU)은 144주로 2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2019년 이후 GSU 수요는 274%, 변전소용 전력변압기 수요는 116% 늘었고, 단가도 각각 77%, 45% 올랐죠. PwC 분석 기준으로는 대용량 제품의 대기 시간이 최대 4년까지 늘어난 상황이고, 고압 변전 설비는 3~5년까지 벌어졌습니다. 전기설비는 데이터센터 총원가의 10%도 안 되지만, 병목의 100%를 차지한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 자료를 인용한 회사 전망에 따르면 미국 변압기 시장은 2024년 122억 달러에서 2034년 257억 달러로 연평균 7.7% 성장할 것으로 보이고, 미국 전력회사들은 이미 데이터센터에 116기가와트의 신규 전력 공급을 약정했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 최대 전력수요의 약 15.5%에 해당합니다. 만들어야 할 전기는 정해졌는데, 그 전기를 옮길 장비가 부족한 상황. 이 구조에서 유일한 국산 765kV 생산기지를 쥐고 있다는 건 대단히 유리한 자리입니다.
수주 데이터가 이를 증명합니다. 2026년 1분기 수주잔고는 15조 615억 원으로 전년 대비 44%, 전분기 대비 26% 급증했고, 이 중 북미 비중이 53%에 달합니다. 최근에는 미국 주요 송전망 운영사와 약 7,800억 원 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프로젝트 수주였습니다. 앞서 2025년 8~9월에는 765kV 초고압변압기와 리액터, 800kV 초고압차단기를 묶은 전력기기 패키지로 2,000억 원 이상을 수주했는데, 한국 기업이 765kV 송전망에 풀 패키지를 공급한 첫 사례였습니다.
무대는 변압기를 넘어 확장되고 있습니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자회사 하이코가 북미 에너지 인프라 기업 콴타서비스의 자회사와 초고압차단기 합작법인 'HYOSUNG HICO BREAKER LLC'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합작법인은 7월 설립돼 10월부터 펜실베이니아주 캐논스버그 공장에서 72.5kV~800kV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데, 국내 전력기기 업체가 미국 현지에 초고압차단기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멤피스 변압기 공장과 차단기 기지를 연계해 '패키지 수주' 경쟁력을 키우는 그림이죠.
국내 투자도 같은 방향입니다. 효성중공업은 향후 2년간 총 3,300억 원을 투입해 창원 제3공장 부지에 국내 최대 HVDC 변압기 공장을 2027년 7월 준공할 예정입니다. HVDC는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장거리 전력을 안정적으로 보내는 기술인데, 효성중공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압형 HVDC 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200MW급 전압형 HVDC 개발에도 국내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약 1,000억 원을 투자한 수출용 초고압차단기 전용공장에서는 420kV, 550kV, 800kV 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중동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증설 일정이 곧 실적 일정이라는 점도 눈여겨보실 만합니다. 2026년 9월 말 창원 GIS 차단기 수출 전용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매출 캐파가 3,400억 원 늘고, 2026년 말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1차 증설이 끝나면 연간 매출 캐파가 2억 달러에서 4억 달러로 두 배가 됩니다. 2027년부터는 북미 비중 확대에 따른 수익성 개선과 물량 확대에 따른 외형 성장이 동시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적 눈높이도 올라가 있습니다. IBK투자증권은 2분기 매출 1조 9,091억 원, 영업이익 3,245억 원을 제시하며 시장 컨센서스를 웃도는 수치를 내놨고, 유안타증권은 2026년과 2027년 영업이익을 각각 1조 1,829억 원, 1조 7,691억 원으로 추정했습니다.
주가는 어떨까요. 2026년 7월 중순 기준 주가는 270만 원대, 52주 범위는 95만 9,000원에서 474만 2,000원이고, 애널리스트 16명이 매수·매도 0명으로 12개월 평균 목표주가는 445만 원으로 제시돼 있습니다. 지난 1년의 변동폭 자체가 이 산업의 재평가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보셔도 좋겠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효성중공업은 '해링턴 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지금 이 회사의 심장은 미시시피 강가 멤피스에서 뛰고 있습니다. 회사 스스로도 멤피스를 택한 이유로 물류 인프라와 함께 관세를 피하면서 AI 데이터센터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죠. AI가 아무리 빨라도 전기가 없으면 한 줄도 연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전기를 765,000볼트로 끌어올려 대륙을 가로지르게 만드는 장비를, 미국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곳은 아직 이 회사 한 곳뿐입니다. 아파트 이름은 해링턴이지만, 진짜 상품은 미국의 전기였던 겁니다.
※ 본 글은 공개된 뉴스·리서치·기업 발표 자료를 정리한 정보성 콘텐츠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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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최태원 회장이 대놓고 저점 시그널 던져줌
"샀다 팔았다 하지 마세요" 최태원 회장이 49억 원에 담아 던진 한 문장
지난 3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개인 돈으로 사들였습니다. 금액은 약 49억 원. 그런데 이 숫자, 우연이 아닙니다. 법이 정한 '즉시 살 수 있는 최대치'에 정확히 붙여 놓은 금액이었고, 시장은 하루 만에 그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먼저 팩트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SK하이닉스는 30일 최 회장이 장내매수를 통해 보통주 3,620주를 매입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직접, 개인 명의로 사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평균 매수 단가는 주당 135만 3,677원, 총 매수 금액은 약 49억 원이었습니다. 장중에는 49억 원 이상을 담았지만 주가가 밀리면서 그날 종가 132만 2,000원 기준으로는 47억 9,000만 원어치가 된 겁니다.
왜 하필 49억 원이었을까요
여기서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나옵니다. 2024년 7월 24일부터 시행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따르면,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 원 이상을 거래할 때는 반드시 30일 전에 공시해야 합니다. 위반하면 최대 2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과거 6개월 합산 기준으로 '1% 미만'과 '50억 원 미만'을 동시에 충족할 때만 보고 의무가 면제되죠.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최 회장이 50억 원 이상을 사고 싶었다면, 한 달 전에 "제가 언제 얼마어치를 사겠습니다"라고 미리 공표하고, 그 30일 동안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주가가 어디로 가든 지켜만 봐야 하고요. 그래서 매입 규모를 47억 원 수준으로 제한한 겁니다.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최대 한도를 꽉 채운 셈이죠.
즉, 이건 "조금 사봤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만큼 전부 샀다"입니다. 숫자 뒤에 붙은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는 지점입니다. 시장에서 최 회장이 비슷한 규모로 여러 차례 나눠 추가 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분율 0.00%가 갖는 무게
두 번째 포인트는 '처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최 회장은 그동안 SK하이닉스 지분을 개인적으로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최대주주인 SK스퀘어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해 왔으니까요. 이번 매수로 최 회장의 개인 보유 지분은 3,620주, 지분율로는 0.00%가 됐습니다. SK스퀘어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합산 지분율은 20.00%로 그대로여서 지배구조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총수가 개인 자격으로 직접 자금을 넣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게 업계 분석입니다.
지배력을 늘리려고 산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배력은 이미 충분하니까요. 그렇다면 남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이 가격이 싸다고 봤다는 것.
사상 최대 실적과 반토막 난 주가
배경을 보시면 더 선명해집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9일, 2분기 매출 79조 3,187억 원, 영업이익 60조 5,426억 원, 순이익 93조 9,226억 원이라는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76%,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57%, 영업이익은 557% 늘었고, 상반기 누적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대에 올라섰습니다. 감가상각 차감 전 영업이익은 64조 6,000억 원, EBITDA 마진율은 81%였고,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88조 원으로 한 분기 만에 33조 6,000억 원 늘었습니다.
그런데 주가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6월 25일 장중 298만 7,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찍은 뒤 가파른 조정을 받았고, 한 달여 만인 30일 132만 2,000원까지 밀렸습니다. 실적과 펀더멘털에 비해 낙폭이 과도하다는 시각이 증권가와 업계에서 이어진 배경입니다. 중국 창신메모리의 약진과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 여력에 대한 회의론이 겹치며 전 세계 반도체주가 함께 눌렸죠.
역사상 가장 좋은 실적을 낸 회사의 주가가 반토막 났습니다. 회사 안에서 숫자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건 기회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 시장의 대답
7월 31일 장이 열리자마자 벌어진 일은 그야말로 극적이었습니다. 코스피는 사흘간의 폭락을 딛고 장 초반 16% 넘게 급반등하며 6,500선을 탈환했고,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습니다. SK스퀘어와 삼성전기는 나란히 상한가에 안착했고, 외국인은 7월 일일 최대치인 5조 원 이상을 쓸어 담았습니다. 삼성전자는 25% 넘게, SK하이닉스는 28% 넘게 뛰었습니다.
최 회장이 전날 사들인 지분의 평가가치는 약 61억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하루 만의 평가이익이 12억 700만 원에 달합니다.
물론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반등이 최 회장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닙니다. 간밤 뉴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호실적에 15% 넘게 급등했고, SK하이닉스 ADR도 17.52% 오른 149달러로 마감했습니다. 미국 6월 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하락했고, MSCI 한국지수 ETF는 11.79% 급등하며 국내 증시 강세를 예고했죠. 키움증권은 반도체주 급락을 키웠던 레버리지 펀드의 강제 매도 압력이 줄어들 가능성과 빅테크의 설비투자 확대 기조를 반등 배경으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급락 과정에서 형성된 옵션 포지션이 이날은 반대로 상승 폭을 증폭시켰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다만 여러 재료가 한 방향으로 정렬될 때, 시장은 늘 '누가 먼저 움직였는가'를 봅니다. 전날 최 회장의 매수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반복해서 등장한 이유입니다.
학계가 30년간 검증한 신호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내부자 매수'는 월가에서 나온 수많은 신호 중에서 학술적 근거가 탄탄한 몇 안 되는 지표입니다.
미시간대 네자트 세이훈 교수는 1975~1981년 거래를 분석해 순매수가 나타난 기업에서 300일간 4.3%의 초과수익이 발생한 반면, 순매도 기업은 2.2% 부진했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라코니쇼크와 리는 이를 1995년까지 확장해, 내부자 매수가 가장 많았던 그룹이 가장 적었던 그룹을 12개월간 약 5% 앞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와튼스쿨 연구진의 분석에서는 매수 포트폴리오가 시장을 연 10.2% 앞선 반면, 매도 포트폴리오에서는 그런 초과수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여기입니다. 임원이 주식을 파는 이유는 수십 가지지만, 자기 돈을 들여 장내에서 사는 이유는 대개 하나뿐입니다. 오를 거라고 믿기 때문이죠. 스톡옵션 행사와 달리 장내 매수는 개인 자본을 걸고 추가 위험을 떠안는 행위입니다.
더 정교한 연구도 있습니다. 코헨·맬로이·포모르스키는 내부자 거래를 '루틴'과 '기회주의적' 거래로 나눴습니다. 매년 3월에 세금 때문에 파는 것처럼 계절적 패턴을 따르는 기계적 거래는 예측력이 사실상 0이었습니다. 반면 기존 패턴에서 벗어난 거래는 달랐죠. 기회주의적 거래는 월 82베이시스포인트, 연환산 약 10%의 초과수익을 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통용되는 '신호 강화 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고액 연봉자가 1,000만 원어치 사는 건 큰 의미가 없지만 개인 현금으로 수십억 원을 넣으면 메시지가 강해지고, 여러 임원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매수하면 신뢰가 리더십 전반에 공유돼 있다는 뜻이 되어 신호가 더 강력해집니다.
이번 케이스를 이 체크리스트에 대입해 보시죠. 개인 자금, 확인. 규정 한도를 꽉 채운 대규모, 확인. 생애 첫 매수라는 완벽한 '비(非)루틴', 확인. 여기에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4월 스톡옵션을 행사해 20억 원 규모를 취득했고 차선용 사장도 동일 규모를 확보했다는 사실까지 얹으면, 클러스터 조건도 어느 정도 채워집니다. 교과서적으로 가장 강한 형태의 신호가 맞습니다.
진짜 메시지는 숫자가 아니라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사건에서 49억 원보다 더 중요한 게 최 회장이 남긴 말이라고 봅니다.
최 회장은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쓰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시간을 두면 우상향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다음 달에 어떻게 될지는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덧붙였죠. 주가는 기대가 좋아지면 확 올랐다가 조금 아닌 것 같으면 또 확 떨어진다면서요. 그러면서 이런 종류의 주식이라면 그냥 가만히 갖고 있으라고, 그게 재산을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거라고 했습니다.
이 짧은 말 안에 개인 투자자가 가장 자주 놓치는 구분이 들어 있습니다. 방향과 타이밍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AI 인프라가 커질수록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다는 건 방향입니다. 이건 산업 구조에서 나오는 이야기이고, 분기 실적 숫자로 이미 확인되고 있습니다. 반면 다음 달 주가는 타이밍입니다. 여기엔 옵션 만기, 레버리지 청산, 환율, 연준, 중국발 헤드라인이 뒤엉킵니다. 그룹 총수조차 "그건 나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영역이죠.
그래서 그의 행동은 정확히 이 구분을 따라갑니다. 방향을 믿기에 개인 돈을 넣었고, 타이밍을 모르기에 사고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28% 급등이 나왔다는 건, 사실 그가 옳았다는 증거라기보다 타이밍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최고가 대비 55% 하락과 하루 28% 상승은 같은 시장에서 사흘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정리하겠습니다
최 회장은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에서도 AI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성장할수록 메모리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말로 한 이야기를 자기 계좌로 옮긴 것, 그게 이번 매수의 본질입니다.
한 달 사이 반토막 난 주가 앞에서 회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총수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를 개인 돈으로 담았으며, 시장은 다음 날 사이드카로 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건 "지금 사라"는 결론이 아니라, 왜 그가 사고팔지 말라고 했는지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자산을 골랐다면, 그다음 승부는 종목이 아니라 시간에서 갈리니까요.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인용된 수치와 학술 연구 결과는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것으로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으며,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31 |
| 6 | 월급은 경제의 속도로, 자산은 유동성의 속도로 자랍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열심히 사는데 왜 계속 뒤처지는 느낌일까'라는 감각은 착각이 아닙니다. 통장 잔고는 줄지 않았고 연봉도 조금씩 올랐는데, 집과 주식과 땅은 매년 더 멀어져 갑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노동의 성장 엔진과 자산의 성장 엔진이 애초에 다른 연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월급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자라지만, 자산은 유동성이 팽창하는 속도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이 두 속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습니다.
숫자가 먼저 증언합니다
미국의 광의통화 M2를 보시겠습니다. 2026년 7월 기준 M2는 약 23조 2,90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1년 전 21조 9,492억 달러에서 6.11% 늘었습니다. 5월 기준으로도 전년 대비 5.6% 증가하며 2022년 7월 이후 가장 빠른 연간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1981년 M2가 1조 6,000억 달러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지난 45년간 돈의 총량이 열네 배 넘게 불어난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돈이 늘었다'가 아니라 '늘어난 돈이 어디로 갔는가'입니다. 미국 가계 순자산은 2026년 1분기 183조 달러에 도달했고, 순자산 대비 처분가능소득 비율은 7.81배로 역사적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소득보다 자산이 훨씬 빠르게 부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026년 상반기 다우지수는 8.9% 올라 2021년 이후 최고의 상반기를 기록했고, S&P500은 9.6%, 나스닥은 12.8%, 러셀2000은 22% 가까이 오르며 1991년 이후 최고의 상반기를 보냈습니다. 같은 기간 여러분의 연봉은 몇 퍼센트 올랐는지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관계는 감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1975년 1월부터 2025년 9월까지의 월간 데이터로 주식·주택·금·은·원유를 소비자물가 기준과 통화량 기준으로 각각 재평가한 최근 연구는, 명목 기준으로는 금과 주식이 역사적 고점에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줍니다. 흥미로운 건 통화량으로 나눠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M2로 조정한 S&P500은 최근에야 겨우 닷컴 버블 정점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명목 수익률의 상당 부분이 실은 '화폐 가치 하락분'이었다는 뜻입니다.
1971년,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습니다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을까요. 대담에서 마크 무스는 1971년을 지목합니다. 그 이전 인류의 기록된 역사 전체에서 화폐는 '자기자본'이었습니다. 금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었죠. 내가 금을 건네면 상대가 금을 가졌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1971년 이후 우리는 부채 기반 화폐 시스템으로 넘어왔습니다. 달러는 누군가의 부채이고, 돈은 대출이 일어날 때 창조됩니다. 즉 이 시스템에서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말은 곧 누군가가 빚을 늘렸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우연 아닌 우연이 겹칩니다. 연방준비제도와 국세청이 모두 1913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돈을 만드는 기관과 세금을 걷는 기관이 같은 해에 태어났고, 두 시스템 모두 '소유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무스의 관찰입니다. 임금을 벌어 소비하면 세금은 가장 무겁게 매겨지고 남는 것은 없습니다. 반면 자산을 소유하면 담보가 생기고, 담보가 있어야 은행이 돈을 빌려주며, 팔지 않으면 과세 이벤트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로 남으면 과세되고, 소유자로 남으면 유동성을 얻습니다.
부채는 죄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우리는 빚을 죄악처럼 배웠습니다. 빌리는 자는 빌려주는 자의 종이 된다는 오래된 문장부터, 데이브 램지식의 '무조건 빚부터 갚아라'까지요. 그 가르침이 틀렸다기보다는, 월급으로 사는 사람을 위해 쓰인 규칙서라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부자들의 규칙서는 다릅니다.
핵심은 로버트 기요사키가 대중화한 구분입니다. 나쁜 빚은 내가 갚는 빚이고, 좋은 빚은 다른 사람이 갚아주는 빚입니다. 가난한 사고방식은 '살 수 없는 것을 사기 위해' 빚을 씁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다녀올 수 없는 여행에요. 부유한 사고방식은 '자산을 사기 위해' 빚을 씁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돈보다 남의 돈이 싸기 때문에 빌립니다. 그래서 켄 맥엘로이는 200세대 아파트를 살 때 그 안에 원리금과 비용을 갚아줄 200명의 세입자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고 말합니다. 1만 세대 규모의 멀티패밀리 포트폴리오를 굴리면서도 부채비율은 50% 안팎을 유지하고, 상업용 자산은 개인이 아니라 부동산 자체가 담보가 되는 비소구 대출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미용사였던 어머니가 1만 1,000달러에 산 집이 지금 80만~90만 달러가 되었다는 일화도 상징적입니다. 특별한 투자 실력이 아니라, 대출로 하드 애셋을 잡고 오래 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반면 같은 시기 아버지가 가입한 사망보험금 1만 달러짜리 보험은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1만 달러입니다. 당시엔 집 한 채 값이었죠. 인플레이션이 한쪽은 밀어 올리고 다른 쪽은 그대로 묶어둔 겁니다.
'팔지 않고 꺼내 쓰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자산을 파는 대신 쓰는 방법이 이른바 '평가차익 수확'입니다. 오른 자산을 담보로 신용을 일으켜 유동성만 빼내는 방식이죠. 자산은 계속 복리로 굴러가고, 매도가 아니니 양도세도 발생하지 않으며, 필요한 현금은 손에 들어옵니다.
이건 소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6년 3월 ICE 모기지 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주택 보유자의 총 자기자본은 17조 달러에 육박하고, 이 중 인출 가능한 자기자본만 약 11조 달러입니다. 그리고 2026년 1분기 자기자본 인출은 전년 대비 2% 늘어 2021년 이후 최고의 1분기를 기록했습니다. 인출의 54%는 후순위 담보를 통해 이뤄졌는데, 이는 기존의 낮은 1순위 금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1분기 기준 약 20년 만의 최대 규모였습니다. 2020~2022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중 390만 명이 이미 후순위 담보를 추가로 얹었습니다. 1분기에만 24만 8,000명이 후순위로 250억 달러를, 23만 4,000명이 현금인출 재대출로 220억 달러를 꺼내 총 470억 달러를 인출했습니다.
맥엘로이가 2005년에 매입한 플래그스태프의 267세대 단지를 21년째 보유하며 세 번째 리파이낸싱으로 1,400만 달러를 회수했다는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원리입니다. 원금은 세입자가 갚아주고, 그만큼 자기자본이 쌓이며, 오른 가치는 부채로 다시 꺼냅니다. 일부는 도색과 주차장 보수로 자산에 재투자하고, 나머지는 투자자에게 배분합니다. 자산을 ATM처럼 쓰되 자산 자체는 절대 놓지 않는 구조죠.
다만 규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무스는 2008년에 직접 지은 혼합용도 빌딩을 1,2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했다가 은행에 넘겼고, 그 건물은 4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지금 그 건물은 2,000만 달러 가치가 되었고, 그는 그 건물에 세입자로 들어가 있습니다. 뼈아픈 경험이죠.
그런데 그가 내린 결론은 '빚을 쓰지 말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위험 없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늙어서 돈이 없을 위험이 있고, 그 위험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투자하는 것뿐입니다. 불이 위험하다고 불을 없애는 게 아니라 벽난로 안에 두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성숙한 태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규칙이 남습니다. 첫째, 필요한 만큼만 밟습니다. 목표 자산과 현재 자산의 격차를 계산해 필요한 수익률을 먼저 구하고, 딱 거기까지만 레버리지를 씁니다. 무조건 풀액셀은 목적지가 없는 과속입니다. 둘째, 개인이 아니라 자산이 담보가 되게 합니다. 셋째, 진짜 위험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강제 매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400만 원의 월세가 나오는 자산은 평가액이 흔들려도 여전히 400만 원을 줍니다. 문제는 만기가 목을 조를 때입니다. 그래서 부채의 만기 구조가 자산의 보유 기간과 맞아야 합니다. 넷째, 금리는 아무도 못 맞춥니다. 그러니 오늘의 현금흐름으로 말이 되어야 합니다. 돈은 팔 때가 아니라 살 때 버는 것이라는 오래된 격언이 여기서 나옵니다. 다섯째, 모든 자산에 빚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100년간 세 번째 주인이 된 세도나의 리조트처럼, 대체 불가능한 자산은 무차입으로 들고 가는 선택도 얼마든지 합리적입니다.
한국의 좌표는 어디쯤일까요
우리 이야기로 옮겨 보겠습니다. 2025년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 6,678만 원으로 전년 대비 4.9% 늘었고, 평균 소득은 7,427만 원으로 3.4% 늘었습니다. 자산이 소득보다 빨리 자랐습니다. 특히 실물자산은 4억 2,988만 원으로 5.8% 증가하며 전체 자산의 75.8%까지 비중이 올라갔고,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전년 0.612보다 상승했습니다. 가구 자산의 71.1%가 부동산이고, 자산 상위로 갈수록 거주 외 부동산 비중이 급격히 커집니다. 자산의 상단은 실물로 부를 키우고, 하단은 전월세 보증금에 묶여 있다는 뜻이죠.
2026년의 현장은 더 선명합니다.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 9,490만 원으로 전월보다 1,179만 원 올랐고, 1월 15억 2,162만 원에서 6개월 만에 7,328만 원 상승했습니다. 매달 평균 1,000만 원 넘게 오른 셈입니다. 7월 한 달 서울 아파트값은 1.05% 올랐고, 화성 동탄구는 6.25%로 전월 4.16%에 이어 두 달 연속 역대 최고 상승률을 갈아치웠습니다. 월급이 한 달에 1,000만 원씩 오르는 직장은 없습니다. 이것이 '임금은 경제의 속도, 자산은 유동성의 속도'라는 문장의 실물 버전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조수가 밀려올 때 배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떠오르고, 배가 없는 사람은 제자리에 서 있기 위해 평생 헤엄쳐야 합니다. 이 구조를 원망하는 데 쓸 에너지를, 배 한 척을 마련하는 데 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째, 일하는 목적을 '생활비 결제'에서 '자산 매입'으로 옮기는 것부터입니다. 근로소득은 자산으로 가는 통로일 뿐이라는 관점의 전환이죠. 둘째, 빚을 볼 때 '내가 갚는가, 남이 갚는가'라는 질문 하나만 습관처럼 붙여 보십시오. 이 질문 하나가 신용카드 할부와 임대수익형 자산을 명확히 갈라놓습니다. 셋째, 화폐 단위가 아니라 자산 단위로 성적표를 매겨 보십시오. 예금 이자 3%가 통화량 6% 팽창 앞에서 어떤 의미인지 계산해 보면, 원화 예금 비중이 87.3%에 달하는 우리 가계의 포트폴리오가 왜 다시 점검되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이실 겁니다.
유동성은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는 적자를 내고 중앙은행은 그것을 수용하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돈은 결국 유한한 자산으로 흘러갑니다.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흐름 위에 배를 띄워 둘 수는 있습니다. 늦었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자산 시장에서 가장 비싼 대가는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레버리지 활용은 손실을 확대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본인의 상환 능력과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 26 |
| 7 | 이번 주식 폭락은 월가식 양털깎이였다.
양털깎이의 해부학, 2026년 7월, 시장은 어떻게 레버리지를 걷어냈나
이번 7월 장세는 펀더멘털이 무너져서 생긴 하락이 아닙니다. 빌린 돈이 무너져서 생긴 하락입니다. 상승장에서 탐욕을 키우게 하고, 하락장에서 레버리지를 강제로 털어낸 뒤, 현금을 쥔 자본이 그 물량을 헐값에 받아가는 것. 시장이 오래 반복해온 그 구조가 이번에도 거의 교과서처럼 재현됐다고 보셔도 무리가 없습니다.
1단계,탐욕을 쌓게 만드는 구간
먼저 숫자부터 보시죠. 미국의 증거금 부채는 6월에 사상 최고인 1조 5,30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3개월 연속 증가이고, 전월 대비 7.9%, 전년 대비로는 무려 51.5% 늘어난 수치입니다. 같은 시점 투자자 신용잔고는 마이너스 1조 600억 달러로 사상 최저를 찍었습니다. GDP 대비 증거금 부채 비율은 4.71%로 역시 사상 최고였고, 장기 중앙값 2.38%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톰 리는 이 증가 속도를 두고 지난 60년간 여섯 번째로 큰 급증이라고 평가했죠.
한국은 더 극적이었습니다. 신용융자 잔액은 작년 말 27조 3,000억 원에서 3월 말 32조 9,000억 원, 6월 말에는 37조 3,000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미수거래 일평균 반대매매 금액도 작년 말 71억 원에서 3월 262억 원, 6월 527억 원으로 뛰었고요. 월별 신용융자 반대매매는 1월 565억 원에서 6월 약 3,935억 원으로 약 7배 늘었고, 상반기 누적으로는 9,193억 원에 달했습니다. 특히 70대 이상 연령층의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습니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주가가 오르는 동안 개인은 더 많이 빌렸습니다. 오르니까 빌렸고, 빌리니까 더 올랐습니다. 이 자기강화 구조가 바로 양털을 기르는 과정이죠.
2단계,가장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이 가장 극적으로 청산당하다
이번 국면의 상징은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입니다. 2024년 말 약 2억 2,500만 달러로 출발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는 스트라이프의 콜리슨 형제, 냇 프리드먼, 대니얼 그로스, 그리고 이례적으로 제인스트리트까지 후원자로 두며 2026년 중반 200억~240억 달러 규모로 커졌습니다. 한때 자산이 450억 달러까지 불어났고요. 6월 30일 기준 설정 이후 수익률은 수수료 차감 후 약 439%, AI 인프라 베팅에 최대 4배 레버리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7월이 왔습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프라임 브로커들이 마진콜을 걸었고, 펀드는 증거금을 조금씩 메우는 대신 공개주식 포트폴리오 전체를 단 한 번의 블록딜로 넘겼습니다. 켄 그리핀의 시타델이 그 물량의 대부분을 사들였고, 자산은 약 100억 달러로 몇 달 만에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가장 아픈 대목은 타이밍입니다. 아셴브레너는 7월 24일 투자자 서한에서 이번 조정을 "2025년 초 이후 가장 좋은 매수 기회"로 규정하고 8월 1일부터 신규 자금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6일 뒤, 그 자금은 끝내 도착하지 않았고 포지션은 통째로 넘어갔습니다. 논지가 틀려서가 아닙니다. 논지를 끝까지 들고 갈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레버리지가 빼앗는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죠.
3단계,강제 매도가 강제 매도를 부른다
무너진 종목들을 보시면 성격이 분명합니다. 1분기 말 최대 보유 종목이던 네비우스, 샌디스크, 마이크론, 코어위브는 그달에 모두 35% 넘게 빠졌습니다. SK하이닉스 미국 상장 주식은 6월 고점 대비 약 47% 하락했고, 어느 하루에는 메모리 6개사에서 5,410억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하며 그중 950억 달러가 SK하이닉스 몫이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가총액은 6월 이후 3조 3,000억 달러가 사라졌습니다.
이건 실적 뉴스가 아니라 자금조달 뉴스입니다. 방아쇠는 실적이 아니라 신용시장이었습니다. AI 인프라 차입자들의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지금의 설비투자 붐을 지속 가능한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번졌죠. 아폴로의 토르스텐 슬록은 하이퍼스케일러 채권의 응찰배수가 2026년 2월 5배 수준에서 7월 2배 아래로 급락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과정을 오래전부터 정리해뒀습니다. 브루너마이어와 페더슨이 2009년에 제시한 '마진 나선(margin spiral)'이 정확히 이겁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증거금 요구가 커지고, 그걸 못 채우면 강제 매도가 나오고, 그 매도가 다시 가격을 떨어뜨립니다. 슐라이퍼와 비쉬니의 '화재판매(fire sale)' 이론은 여기에 한 겹을 더합니다. 급매물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소수의 자본가로 제한될 때, 자산은 내재가치가 아니라 구매자의 지불 여력 수준에서 거래된다는 겁니다. 조달이 불편해지는 순간 대주는 미래의 잠재력이 아니라 오늘의 담보를 우선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조정이 강제 매도 이벤트로 바뀌고, AI 관련주 전체가 하나의 상관된 포지션처럼 취급됩니다.
4단계,한국에서 벌어진 같은 장면
국내 시장은 이 나선을 실시간 중계하듯 보여줬습니다. 코스피는 7월 6일 8,051.33으로 마감하며 8,000선을 넘겼지만, 7일 5.44%, 8일 5.99% 급락했습니다. 9일 하루 반대매매 금액은 1,422억 원으로 전날 288억 원의 5배 가까이 뛰었고, 위탁매매 미수금은 1조 4,322억 원,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10.2%까지 치솟았습니다. 이후에도 장중 8% 넘는 하락으로 유가증권시장에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요. 7월 30일 코스피는 5,593.56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주목해야 할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7월 29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2조 9,950억 원으로, 폭락에도 불구하고 4~6월 일평균 35조 9,418억 원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락장에서도 자금을 추가로 넣으며 빚투를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HSBC는 7월에 강제 반대매매가 발생한 미결제 신용계좌가 전체의 2%에 불과해 신용 물량이 아직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경고했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총자산이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줄었지만 위험은 여전하다고 봤습니다. 29일 반대매매 금액은 611억 원으로 7월 9일 이후 최대치였습니다.
5단계,그리고 물량은 어디로 갔나
여기가 양털깎이 서사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시타델은 흩어진 매도를 막는 대신 공개주식 장부 전체를 한 번에 흡수하며 즉각적인 출구를 제공했습니다. 시장 안정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가장 싼 가격에 가장 좋은 물건을 한 손에 몰아넣은 거래이기도 했죠.
그리고 강제 매도가 끝나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네비우스가 하루에 26.3%, 코어위브가 21.8%, TSMC가 7.8%, ARM이 7.3% 튀어올랐습니다. 며칠 만에 회사가 좋아진 게 아닙니다. 파는 사람이 사라진 겁니다. 그 자체가 이번 하락의 원인이 펀더멘털이 아니라 자금조달이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대기 자본의 규모도 확인해 두시죠. 7월 22일 기준 미국 머니마켓펀드 자산은 7조 8,600억 달러입니다. 7월 8일에는 사상 최고인 7조 9,500억 달러를 찍었고요. 흥미로운 건 역사적 패턴입니다. MMF 잔고는 주가가 고점을 찍은 뒤에도 계속 늘어나 2008~2009년에는 주식이 바닥을 칠 때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즉 현금이 가장 두툼할 때가 가격이 가장 쌀 때였다는 뜻이죠. 받아갈 자본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ICI
그래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국면에서 월가가 특정 개인 한 명을 겨냥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가장 큰 레버리지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이, 바로 그 레버리지 때문에 가장 극적으로 청산당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논지의 정확성과 생존은 별개의 문제라는 걸 그보다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드물죠.
개인 투자자가 가져갈 교훈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보유 기간을 결정하는 계약입니다. 4배를 쓰는 순간 나의 투자 시계는 내가 아니라 담보비율이 정합니다. 둘째, 강제 매도 국면의 가격은 가치가 아니라 유동성의 함수입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빚 없는 자본에게만 기회가 됩니다. 셋째, 담보비율 140% 선처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규칙은 감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시장이 나를 이해해주길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죠.
한국일보
결국 양털은 두 번 깎입니다. 한 번은 올라갈 때 빚으로, 또 한 번은 내려갈 때 강제 매도로요. 그 사이클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깎일 털을 애초에 빌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현금 비중과 시간이라는 두 자산이야말로 이런 장세에서 가장 비싼 값을 하는 자산이라는 점,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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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나스닥100으로 준비하는 노후, 필요한 돈은 10억 원입니다
부부가 노후에 남 눈치 보지 않고 월 300만 원 정도를 쓰면서 살고 싶다면, 내 힘으로 만들어 두어야 할 돈은 대략 10억 원입니다. 이 숫자를 듣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창을 닫으려 하셨다면 딱 3분만 더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의 핵심은 10억 원이라는 금액이 아니라, 그 10억 원에 도달하는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 연봉이 아니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나온 최신 연구들은 이 목표 금액을 오히려 낮춰 주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착실하게 준비한 사람이라면 50대, 60대가 아니라 40대에 일에서 내려와 남은 인생을 자기 시간으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0억 원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출발점은 국민연금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서 부부 기준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296만 원으로 제시됩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쪽 수치는 더 높아서 적정 336만 원, 최소 240만 원입니다. 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부부 기준으로 월 240만 원에서 340만 원 사이라는 결론은 공통적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이 가운데 얼마를 채워 줄까요. 2026년 기준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약 69만 8천 원입니다. 부부가 함께 받는 가구도 합산 평균이 111만 원 수준입니다. 필요한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제도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2026년부터 보험료율이 9%에서 9.5%로 올랐고, 2033년까지 13%를 향해 단계적으로 인상됩니다. 소득대체율도 43%로 상향됐습니다. 정부 공식 예시로는 월소득 309만 원인 평균소득자가 40년 가입하고 25년 수급할 경우 생애 총 1억 8천만 원을 내고 3억 1천만 원을 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이 43%는 40년을 꽉 채워 낸 사람의 기준입니다. 40대에 은퇴하면 납부 기간이 짧아지니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을 아예 빼겠습니다. 예순다섯 살부터 들어오는 돈은 전부 보너스로 두는 겁니다. 계산이 어긋나더라도 안전한 쪽으로 어긋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내 돈으로 월 300만 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1년이면 3,600만 원, 세금까지 감안하면 연 4,000만 원입니다.
4% 룰, 그리고 그 룰을 만든 사람이 직접 올려 놓은 숫자
연 4,000만 원을 평생 빼 쓰려면 얼마가 있어야 할까요. 옥상 물탱크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위에서는 비가 와서 물이 채워지고, 아래 수도꼭지로는 내가 쓸 물이 빠져나갑니다. 중요한 건 비가 매년 똑같이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여는 정도는 장마철이 아니라 가뭄이 3년 이어지는 해에 맞춰야 합니다.
1994년 미국의 재무설계사 윌리엄 벤겐이 바로 이 계산을 했습니다. 1926년 이후 미국 시장 데이터를 놓고 은퇴 시점을 1년씩 옮겨 가며 수백 가지 경우를 전부 돌려 본 뒤, "매년 몇 퍼센트씩 빼 썼다면 단 한 명도 30년을 못 버티는 일이 없었을까"를 물었습니다. 답이 4%였습니다.
방식을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4% 룰은 매년 남은 잔액의 4%를 빼는 것이 아닙니다. 은퇴 첫해에 전체 자산의 4%를 꺼내고, 그다음부터는 그 금액을 물가만큼만 올려서 쓰는 방식입니다. 첫해에 4,000만 원을 뺐다면 이듬해에는 4,120만 원을 뺍니다. 그러니까 4%는 평균 수익률로 계산한 숫자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운이 나빴던 사람이 겨우 살아남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오늘 가장 중요한 업데이트입니다. 2025년 8월, 벤겐 본인이 『A Richer Retirement』라는 책을 내고 자신의 숫자를 직접 올렸습니다. 미국 대형주와 중기 국채만 쓰던 원래 모델을, 대형·중형·소형·해외 주식까지 포함한 7개 자산군으로 넓히자 최악의 30년 구간을 견디는 최저 인출률이 4.15%에서 4.7%로 올라갔습니다. 검증에 쓰인 배분은 주식 약 55%, 중기 국채 40%, 단기물 5%였고, 약 400개의 은퇴 시점이 대상이었습니다.
여기서 정말 눈여겨보실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4.7%는 권장치가 아니라 바닥입니다. 벤겐의 새 연구에서 전체 은퇴 시점의 평균 안전인출률은 약 7.1%였습니다. 다수의 구간에서는 6%, 8%, 심지어 그 이상을 꺼내 써도 자산이 마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4%라는 숫자는 미국 금융사에서 가장 나쁜 30년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사실상 최악을 가정한 값입니다.
물론 반대 방향의 연구도 있습니다. 모닝스타는 2026년판 『State of Retirement Income』에서 기준 안전인출률을 3.9%로 제시했습니다. 다만 이 숫자도 전년 3.7%에서 올라온 값이고, 지출을 시장 상황에 맞춰 조절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방식을 쓰면 6%에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가연동국채 사다리를 쓰는 경우의 인출률은 4.5%로 계산됐습니다.
정리하면 오늘의 안전인출률은 대략 3.9%에서 4.7% 사이의 띠입니다. 우리는 보수적으로 가운데인 4%를 쓰겠습니다. 그러면 4,000만 원 나누기 0.04, 정확히 10억 원입니다. 그리고 4%로 나눈다는 건 25를 곱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간 생활비 곱하기 25배가 내 은퇴 금액입니다. 이 25배를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벤겐의 새 기준인 4.7%를 적용하면 배수는 21.3배로 내려갑니다. 같은 생활비라면 목표가 10억 원에서 8억 5천만 원 근처로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왜 하필 나스닥100일까요
나스닥100 지수는 1985년에 만들어져 올해로 41년째입니다. 이 기간 배당까지 재투자했다면 연평균 14.8%, 누적 229배입니다. 100만 원이 2억 2,900만 원이 됐다는 뜻입니다. 같은 기간 S&P500은 연평균 11.5%, 누적 73배였습니다. 연 수익률 차이는 3.3%포인트뿐인데 41년을 굴리니 결과가 세 배로 벌어졌습니다.
구조를 보면 이유가 보입니다. 나스닥100은 나스닥 상장 기업 중 금융회사를 제외한 시가총액 상위 100개로 구성됩니다. 은행도 보험사도 없습니다. 대신 정보기술 섹터 비중이 50% 안팎으로, 번 돈을 다음 제품에 다시 꽂아 넣는 회사들만 모아 놓은 지수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1985년 원년 멤버 100개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회사는 애플, 마이크론, 인텔, KLA, 페이첵스, 코스트코 여섯 개뿐입니다. 나머지 아흔 곳은 밀려나거나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지수 투자의 핵심입니다. 회사는 죽어도 지수는 죽지 않습니다. 밀려난 회사는 자동으로 빠지고 새로 커진 회사가 자동으로 들어옵니다. 종목을 내가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이 대신 갈아 줍니다.
최근 성적도 나쁘지 않습니다. 2023년 53.8%, 2024년 24.8%, 2025년 20.2%였고 2026년도 연초 이후 두 자릿수 상승 구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수는 6월과 7월에 걸쳐 3만 선 부근까지 올랐다가 7월 하순 2만 8천 대에서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한국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원조 상품인 QQQ의 순자산은 3천억 달러 규모이고, 국내에서는 나스닥100을 기초로 한 커버드콜 ETF 하나만도 순자산 2조 2,234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물가를 먼저 빼고 계산해야 합니다
최근 20년 나스닥100의 평균은 연 13%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를 그대로 쓰면 계산이 거짓말이 됩니다. 물가 때문입니다.
2026년 6월 한국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2% 올랐습니다.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다만 식료품과 에너지를 뺀 근원물가는 2.5%로 비교적 안정적이고, 정부는 7월 중 2%대 복귀를 목표로 관세율 할당 확대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즉 지금의 3%대는 유가와 농축수산물이 만든 일시적 구간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계산은 안전하게 가겠습니다. 수익률에서 물가를 먼저 빼는 겁니다. 13%에서 3%를 빼면 10%. 앞으로 나오는 모든 숫자는 이 10%로 계산한 오늘 돈 가치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10억 원은 계속 10억 원입니다. 나중에 20억 원이 필요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 기준으로 매달 300만 원씩 넣으면 10억 원까지 13년입니다. 서른다섯에 시작하면 마흔여덟입니다.
은퇴 시점을 결정하는 건 연봉이 아니라 저축률입니다
여기서 대부분이 "매달 300만 원을 어떻게 넣느냐"고 되물으십니다. 바로 그 지점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부부 합산 실수령 600만 원인 가정을 보겠습니다. 생활비로 420만 원을 쓰면 저축은 180만 원이고, 필요한 은퇴 금액은 420만 원 곱하기 12 곱하기 25, 즉 12억 6천만 원입니다. 월 180만 원으로 모으면 19년이 걸립니다. 반대로 생활비를 300만 원으로 줄이면 저축이 300만 원이 되고, 목표는 9억 원, 세금을 감안해 10억 원으로 내려옵니다. 걸리는 시간은 13년입니다.
생활비를 120만 원 줄였을 뿐인데 은퇴가 6년 앞당겨졌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생활비를 줄이면 저축이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25배를 곱하는 대상 자체가 함께 줄어듭니다. 산을 오르는데 내 다리가 빨라지는 동시에 산이 낮아지는 겁니다.
실질 수익률 10%, 목표는 연간 생활비의 25배로 놓고 보면 저축률 10%는 32년, 30%는 19년, 50%는 13년, 70%는 7년입니다. 이 표에는 연봉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연봉이 3천만 원이든 3억 원이든 저축률이 50%면 똑같이 13년입니다. 연봉이 높으면 저축 금액도 커지지만 생활비도 함께 커지니 목표도 커져 서로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40대에 은퇴하고 싶다"는 말은 정확히 옮기면 "저축률 50%를 만들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미 30대 후반, 혹은 40대라면
서른에 시작하면 저축률 30%로도 마흔아홉에 끝납니다. 서른다섯이면 50%가 필요하고 마흔여덟입니다. 마흔에 시작하면 70%가 필요한데, 솔직히 70%는 대부분에게 비현실적입니다.
그래서 답은 포기가 아니라 목표의 이동입니다. 마흔에 시작해도 저축률 50%면 쉰셋, 30%면 쉰아홉입니다. 40대는 아니어도 예순 이전에 끝납니다. 예순다섯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인생입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저축률은 오늘 오후에 바꿀 수 있는 숫자입니다. 늦게 출발한 사람이 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이겁니다.
2026년, 그릇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여기에 올해 아주 반가운 변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나스닥100을 사더라도 어느 계좌에서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데, 그 계좌들의 조건이 대폭 개선됐습니다.
먼저 연금 계좌입니다. 연금저축과 IRP를 합쳐 연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되고,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는 16.5%, 초과는 13.2%가 적용돼 최대 148만 5천 원을 돌려받습니다. 더 중요한 건 세금을 미루는 효과입니다. 계좌 안에서는 팔아도 그때 세금을 내지 않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에서 5.5%만 냅니다.
다음이 ISA입니다. 2026년 6월부터 이른바 '슈퍼 ISA'가 시행되면서 연간 납입 한도가 2,000만 원에서 4,000만 원으로, 총 한도가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두 배가 됐습니다. 비과세 한도도 일반형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서민형과 신설된 청년형은 1,000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를 넘는 수익은 15.4%가 아니라 9.9%로 저율 분리과세됩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도 가입할 수 있는 국내투자형이 새로 생겼고, 만기 자금을 연금저축이나 IRP로 옮기면 전환 금액의 10%, 최대 300만 원을 세액공제 한도에 추가로 얹어 줍니다.
이 조합이 왜 결정적일까요. 연금 계좌는 쉰다섯 살부터 꺼낼 수 있습니다. 마흔여덟에 은퇴하면 7년의 공백이 생깁니다. 그 다리를 놓아 주는 그릇이 바로 ISA와 일반 계좌이고, 올해 그 그릇이 두 배로 커진 겁니다. 예순다섯 이후에 쓸 돈은 연금 계좌에, 그 전에 쓸 돈은 ISA와 일반 계좌에. 같은 상품을 사더라도 언제 꺼낼 돈인지에 따라 담는 그릇이 달라야 합니다.
앞의 9년이 지루한 건 정상입니다
저축률 50%로 13년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럼 절반인 5억 원까지는 몇 년일까요. 6년 반이 아니라 9년입니다. 9년 걸려 절반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4년 반에 만듭니다. 뒤쪽 구간이 두 배 빠릅니다.
눈덩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눈을 뭉칩니다. 손이 시리고 아무리 뭉쳐도 크기가 눈에 띄게 늘지 않습니다. 그게 앞의 9년입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언덕에 굴릴 수 있고, 굴리기 시작하면 손을 떼도 커집니다. 그게 마지막 4년 반입니다.
그러니 3년 차에 잔고가 잘 늘지 않는 건 뭔가를 잘못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원래 그런 구간입니다. 대부분이 여기서 그만둡니다. 언덕에 도착하기 전에 눈덩이를 버리는 셈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미 5억 원을 모으신 분은 남은 기간이 5년입니다. 힘든 구간을 이미 다 지나오셨으니 새로 무언가를 시작할 필요 없이 지금 하던 걸 유지하시면 됩니다.
지키는 기술까지 갖추면 계획은 완성됩니다
밝은 쪽만 말씀드리면 반칙이겠지요. 2000년 3월부터 2002년 8월까지 나스닥100은 81.8% 하락했고, 배당 재투자 기준 전고점 회복은 2015년 2월이었습니다. 은퇴 직후에 이런 구간을 만나면 탱크가 가득할 때 4%를 빼는 것과 물이 5분의 1로 줄었을 때 같은 양을 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은퇴 후 첫 5년에서 10년이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구간인 이유입니다.
지금 시장이 싼 편도 아닙니다. 미국 시장의 장기 밸류에이션 지표인 실러 지수는 2026년 7월 기준 41.4 수준으로, 1871년 이후 중앙값 16.1의 두 배가 넘습니다. 역사상 이보다 높았던 때는 2000년 닷컴 버블 무렵뿐입니다. 다만 균형 잡힌 시각도 필요합니다. 실러 지수는 매도 신호가 아니라 장기 기대수익률의 눈금이고, 실제로 S&P500의 2026년 2분기 이익 증가율은 7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분자만 오른 것이 아니라 분모도 따라 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답은 시장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첫째, 벤겐 본인의 조언대로 은퇴하는 날이 아니라 은퇴 5년 전부터 채권을 섞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으로는 10억 원을 다 채운 뒤가 아니라 8억 원쯤 왔을 때부터 조금씩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조금 덜 벌고 확실하게 끝내는 선택입니다. 둘째,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을 나눠 담습니다. 원달러가 1,40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는 구간에서는 지수가 제자리여도 계좌가 10% 넘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셋째, 일찍 은퇴하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되고 금융소득이 연 1,000만 원을 넘으면 보험료 산정에 반영되니, 건강보험료를 처음부터 생활비 항목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노후에 월 300만 원을 쓰려면 10억 원이 필요합니다. 연간 생활비의 25배이고, 최신 연구를 적용하면 21배 수준까지 내려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연봉이 아니라 저축률이 결정합니다. 30%면 19년, 50%면 13년, 70%면 7년입니다.
오늘 하나만 가져가신다면 이 문장으로 하시면 좋겠습니다. 나스닥100은 10억 원을 만들어 주는 도구이지, 10억 원을 지켜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눈덩이를 뭉치고 굴리는 13년은 공격적으로 가도 됩니다. 다만 꺼내 쓰기 시작한 이후의 40년은 한 지수에 전부 걸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금 몇 살인지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이번 달에 얼마를 남겼느냐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이나 상품의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으며,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세제 및 제도 관련 내용은 시행 시점과 개인별 요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금융기관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30 |
| 9 | 미국 주식의 외국인 소유 비중은 이제 사상 최대인 20조 달러에 달하며, 시장의 거의 20%에 이른다.
"외국인이 사상 최대로 사들일 때", 20조 달러가 보내는 신호
오늘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는 시장의 큰 고점 근처에서 미국 주식을 가장 많이 사들인다. 월가의 전설 로버트 패럴이 메릴린치에서 남긴 교훈이죠. 그리고 지금, 이 오래된 경험칙이 데이터로 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외국인의 사상 최대 매수는 강세의 증거가 아니라 사이클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알려주는 온도계에 가깝습니다.
먼저 패럴이 누구인지 짚고 가겠습니다. 그는 1957년 메릴린치에 기술적 분석가로 입사해 50년 넘게 시장을 지켜본 인물입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그레이엄과 도드의 가치분석을 배웠지만, 주가가 재무제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기술적 분석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투자심리와 시장심리 연구의 개척자가 됐습니다. 그가 남긴 열 가지 원칙 가운데 가장 유명한 문장이 이겁니다. 대중은 고점에서 가장 많이 사고, 바닥에서 가장 적게 산다. 외국인 자금 이야기는 이 원칙의 국제판인 셈이죠.
그럼 숫자를 보겠습니다. 2021년, 외국인은 미국 주식에 4천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당시로선 사상 최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12개월 수치는 9천억 달러, 두 배가 넘습니다. 공식 통계도 방향이 같습니다. 미 재무부 국제자본수지 조사에 따르면 2025년 6월 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증권은 35조 3,340억 달러였고, 이 가운데 주식이 19조 8,430억 달러였습니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총 30조 8,810억 달러, 주식은 16조 8,780억 달러였죠. 단 1년 만에 주식 보유액이 3조 달러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그리고 2026년 들어서도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2026년 5월 한 달간 외국인의 미국 장기 증권 순매수는 2,628억 달러, 이 중 민간 부문이 2,468억 달러였습니다.
비중은 더 중요합니다. 국제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비중은 194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입니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현상을 무역적자의 거울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외국이 미국에 물건을 팔아 받은 달러가 다시 미국 자산으로, 특히 미국 주식으로 돌아온다는 뜻이죠. 시장의 5분의 1을 바다 건너 투자자가 쥐고 있다는 건, 미국 증시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국 증시의 한계 매수자가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왜 이 패턴이 반복될까요. 학계에는 오래된 설명이 있습니다. 1997년 브레넌과 차오는 외국인 투자자가 현지 투자자에 비해 누적적인 정보 열위에 놓여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나왔을 때 정보가 부족한 외국인은 자기 판단을 더 크게 수정하고, 그래서 주가는 외국인의 매수와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현지 투자자에게는 실적과 산업의 결이 먼저 보이지만, 외국인에게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정보는 이미 오른 주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가격이 오르면 사고, 더 오르면 더 삽니다. 이 양의 피드백 거래는 1999년 한국 시장 데이터를 다룬 최·고·스툴츠의 연구 이후 국제금융 문헌의 표준 관찰이 됐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림이죠. 우리 시장에서 외국인 수급을 보던 그 프레임을, 지금은 미국 시장이 반대편에서 겪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이 기록적 매수가 다른 과열 지표들과 정확히 겹친다는 점입니다. 2026년 7월 기준 S&P 500 지수는 7,500선 중반에서 사상 최고치 부근을 오갔고, 실러 CAPE는 41.4 부근을 기록했습니다. 130년이 넘는 데이터에서 이보다 높았던 적은 1999년 12월의 44.19, 단 한 번뿐입니다. 참고로 1929년 대공황 직전이 32 부근, 2007년 금융위기 직전이 27 부근이었습니다. 지금 시장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레버리지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융자 잔고는 2026년 5월 1조 4,2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회귀추세, 크레스몬트 PER, Q비율, PER10 등 네 가지 장기 밸류에이션 지표를 함께 놓고 보면 S&P 500은 지표에 따라 116%에서 207%까지 고평가 구간에 있습니다. 가장 최근 집계에서는 신용융자가 1조 5,000억 달러, 전년 대비 49% 증가로 올라섰고, 0DTE 옵션 거래량은 2026년 상반기에만 46.2% 늘어 하루 2천만 계약을 넘었습니다. 전체 주식 시가총액 대비 GDP 비율, 이른바 버핏 지표는 2026년 1분기 말 335%를 넘어섰습니다. 기록적 외국인 매수, 130년 만의 두 번째 밸류에이션, 사상 최대 레버리지가 한 화면에 동시에 떠 있는 상태인 거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번 사이클만의 구조적 특징이 보입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미국이 자국 재정을 조달하는 방식이 국채가 아니라 주식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정학적 균열이 미국 국채 보유를 꺼리게 만드는 사이, AI 붐이 자금을 주식으로 끌어당기면서 달러가 기술 섹터의 사이클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겁니다. 전략가 말리카 사흐데바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미 국채 수요는 전통적으로 경기 역행적이어서 침체나 위험자산 조정 국면에 오히려 달러를 지지해줬는데, 이 분산 효과 덕분에 투자자들은 환헤지 없이 달러를 들고 있을 수 있었다는 거죠. 반대로 경기 순응적이고 개인 주도인 주식 자금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 달러는 더 위험해지고, AI에 더 크게 연동된다는 겁니다. 호주중앙은행 부총재 앤드루 하우저도 같은 맥락에서, 채권에서 주식으로의 이동이 달러의 이른바 '과도한 특권'에서 멀어지는 신호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균열의 첫 신호가 나오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에 따르면 2026년 들어 유럽과 일본 등 해외 선진국 주식형 펀드로 1,040억 달러가 들어간 반면, 미국 주식으로는 250억 달러가 유입되는 데 그쳤습니다. 자금이 4대 1로 미국 밖을 향한 겁니다. 성과도 마찬가지여서 S&P 500이 연초 대비 0.5% 수준에 머무는 동안 미국 외 전 세계 주식은 11% 올랐고, 마이클 하트넷은 2026년을 국제 주식의 '신세계 질서'라고 표현했습니다. 앞서 골드만삭스도 2025년 봄, 외국인이 3월 이후 630억 달러어치 미국 주식을 순매도했을 때 "외국인이 기록적 보유 비중을 안고 한 해를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밸류에이션에 상당한 리스크"라고 짚은 바 있습니다. 보유 비중이 클수록 되돌림의 진폭도 커진다는 뜻이죠.
여기서 오해는 없어야겠습니다. 이 신호는 "내일 팔아라"가 아닙니다. CAPE는 향후 10년의 기대수익률과 하방 위험을 말해줄 뿐, 다음 주나 다음 달을 맞히는 도구가 아닙니다. 실제로 CAPE는 시장이 오르는 동안에도 몇 년씩 높은 수준에 머물러 왔죠. 패럴의 교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남긴 또 하나의 문장은 "과도한 쏠림은 논리가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지역 분산입니다. 미국 주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자금의 20%가 이미 한곳에 몰려 있다면 나머지 한 표는 다른 곳에 두는 게 확률적으로 유리합니다. 둘째, 환에 대한 인식입니다. 해외 투자자에게 미국 주식은 주가와 달러라는 두 개의 베팅이 겹쳐 있는 자산이고, 도이체방크의 지적대로 그 둘의 상관관계가 예전만큼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셋째, 레버리지 점검입니다. 사상 최대 신용융자는 상승장에서는 연료지만 하락장에서는 도화선이 됩니다. 조정을 견딜 수 있는 사람과 견딜 수 없는 사람을 가르는 건 결국 빚의 유무입니다.
패럴이 진짜로 가르친 건 예측이 아니라 겸손이었습니다. 시장이 가장 확신에 차 있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서 있을 때, 조금 물러서서 자신의 포지션을 점검하라는 것. 20조 달러라는 숫자는 미국 기업의 위대함에 대한 세계의 투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투표가 이미 거의 다 집계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표를 더 던질 사람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 질문을 지금 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됐으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31 |
| 10 | AI 시대일수록 아날로그 방식이 빛을 보지않을까
AI가 시장을 삼킬수록, 왜 가장 낡은 무기가 가장 강해지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시장을 더 깊이 장악할수록, 개인 투자자에게 남는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속도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더 빠른 판단, 더 정교한 신호, 더 촘촘한 매매로 기계를 이기겠다는 발상은 이미 승산이 사라진 게임이고요. 반대로 기계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한 가지, 즉 좋은 자산을 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능력은 지금부터 오히려 값이 오릅니다. 워런 버핏이 실제로 무대에서 내려간 지금, 그가 남긴 것은 종목 리스트가 아니라 바로 이 방법론이라는 점을 오늘 데이터로 하나하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판이 얼마나 기울었는지부터 보시죠. 알고리즘 거래는 이미 주요 주식시장 거래대금의 약 60~75%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증시만 놓고 보면 대략 70%가 알고리즘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고빈도매매 회사는 거래 주체의 2%에 불과한데 주식 거래량의 73%가량을 만들어 냅니다. 집계 방식에 따라 글로벌 기준으로는 89%에 근접한다는 추정치까지 나오고, 자동화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장 규모는 2026년 271억 7,000만 달러로 연 13.2% 성장하며 2030년 445억 5,000만 달러를 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금융기관의 78%가 최소 한 개 이상의 업무나 매매 기능에 인공지능을 쓰고 있고요.
숫자만 보면 그저 기술 발전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시장 안에서 이 변화가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2026년 들어 시장은 지수만 보면 멀쩡한데 그 안은 전쟁터인 기묘한 국면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변동성 지수가 18 수준으로 역사적 중앙값 근처에 머물러 지수 자체는 위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시장의 서로 다른 조각들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아주 자주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7월 22일 기준 지표를 보면 개별 종목 변동성 지수는 50.18까지 뛰었고 분산 지수도 47.26으로 올라간 반면, S&P 500 종목 간 실현 상관계수는 0.05까지 떨어졌습니다. 지수가 잔잔해 보이는 이유는 시장이 평온해서가 아니라, 종목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상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통계가 바로 많은 분들이 체감으로 말씀하시는 그 감각의 실체입니다. 지수는 별일 없는데 내 계좌만 녹아내리는 상황, 오르는 신호를 주길래 따라 들어가면 빠지고 손절하면 다시 튀어 오르는 상황이요. 이건 기분 탓이 아니라 시장 구조가 그렇게 바뀐 결과입니다.
학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와튼스쿨의 윈스턴 웨이 더우, 이타이 골드스타인 교수와 홍콩과기대 얀 지 교수가 쓴 전미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 34054번은, 강화학습으로 학습한 인공지능 트레이더들이 서로 합의도, 소통도, 의도도 없이 자율적으로 경쟁 수준을 넘어서는 초과이윤을 지속시킨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런 담합은 경쟁과 시장 효율성을 훼손한다는 것이 결론이고요. 연구진은 두 가지 경로를 짚었습니다. 하나는 서로를 응징할 수 있다는 위협을 통한 담합, 다른 하나는 학습 편향이 똑같이 굳어지면서 생기는 담합입니다. 앞의 것을 인공지능이라 부른다면, 뒤의 것은 연구자들 표현대로 인공적 우둔함에 가깝습니다. 기계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같은 데이터로 같은 방식으로 배우다 보니 저절로 한 방향으로 몰린다는 뜻이죠. 시장이 참여자를 털어먹는다는 표현은 음모론이 아니라, 이제 논문으로 뒷받침되는 시장 구조의 특성이 되었
규제 당국의 언어도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영란은행 세라 브리든 부총재는 2026년 6월 30일 유럽중앙은행 신트라 포럼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스트레스 국면에서 변동성을 증폭시켜 시장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현행 금융 규제는 애초에 에이전트형 인공지능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영란은행은 잘못된 모델이 연쇄적으로 같은 실수를 할 경우 거래를 멈출 수 있는 시장 전체 차원의 서킷브레이커, 이른바 킬 스위치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의 토비아스 아드리안은 7월 23일 블로그에서 동조화된 알고리즘 매매가 2007년식 군집행동을 되살릴 수 있다고 경고했고, 영란은행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금융회사의 절반 이상이 이미 사람의 최종 승인 없이 인공지능이 주문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금융안정위원회도 6월에 인공지능 도입 관련 12개 권고 초안을 내고 10월 최종본을 준비 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들이 동시에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입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더 빨라지고, 더 자주 흔들리고, 더 정교하게 사람의 손절을 유도할 거라는 뜻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단기 매매와 레버리지로 맞서는 건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이건 추측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치 데이터가 답을 내놓은 영역입니다. 브라질의 샤그와 데-로소 연구진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미니 지수 선물을 처음 시작한 개인 1만 9,646명을 2019년까지 추적했는데, 300거래일 이상 버틴 사람들 가운데 이익을 낸 비율은 3%였고 그마저 중앙값 기준 하루 이익은 약 54헤알, 우리 돈 몇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여러 나라 연구를 종합하면 개인 단타 참여자의 74~97%가 손실을 봤고, 3년 이상 꾸준히 수익을 낸 비율은 1~3%에 그쳤습니다. 레버리지가 크고 수수료가 낮은, 단타에 가장 유리해 보이는 시장에서 나온 숫자라는 점이 뼈아프죠.
그리고 지금 우리 시장에서 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씨티글로벌마켓의 아시아태평양 트레이딩 전략 총괄 모하메드 아파바이는 지난 한 달간의 증시 급락 과정에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에서 입은 누적 손실을 약 387억 달러, 우리 돈 58조 원 규모로 추정했고, 손실이 더 깊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연일 급락하면서 개별 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변동성의 근원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두 배로 만들어 주는 도구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절반으로 깎는 도구입니다.
문제는 문턱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2026년 4월 14일 금융산업규제청의 규칙 개정안을 승인하면서, 2001년부터 개인 단타를 규율해 온 패턴 데이트레이더 지정 제도와 2만 5,000달러 최소 자기자본 요건을 공식적으로 없앴습니다. 상대는 더 강해지고 무기는 더 정교해지는데, 링에 오르는 문은 더 활짝 열린 셈이죠.
자, 이제 반대편 데이터를 보시겠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희망적인 이야기입니다. 제이피모건이 2004년부터 2024년까지 20년간 S&P 500을 분석한 결과, 1만 달러를 전 기간 그대로 들고 있었으면 6만 4,844달러, 연 10.6%가 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았던 단 열흘을 놓치면 약 3만 2,000달러, 연 6.37%로 절반이 날아가고, 서른 날을 놓치면 연 1.53%로 예금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20년이면 약 5,040 거래일인데, 그중 30일은 전체의 0.6%에 불과합니다. 더 결정적인 건 지난 20년간 최고의 열흘 중 일곱 번이 최악의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2026년 들어서도 같은 결론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최고의 열흘을 놓치면 총수익이 대략 절반으로 줄고, 상위 50일을 놓치면 수익이 5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듭니다.
이 숫자가 왜 중요할까요. 폭락과 급반등이 붙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 내는 급락은 대체로 짧고 날카롭고, 그만큼 반등도 짧고 날카롭게 옵니다. 무서워서 던지는 그 며칠, 정확히 그 며칠에 수익의 대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변동성이 커질수록 도망친 사람의 페널티도 함께 커진다는 뜻이고요. 인내는 미덕이 아니라 산술입니다.
전문가들에게는 다를까요.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20년 넘게 집계해 온 스피바 스코어카드를 보면, 20년 기준으로 미국 주식형 액티브 펀드의 약 92%가 벤치마크를 밑돌았습니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대형 가치주 카테고리조차 86%가 미달이었고요. 1년 기준으로는 주식 22개 카테고리 중 8개에서 과반이 지수를 이겼지만, 15년으로 늘리면 국내 주식, 해외 주식, 채권을 통틀어 과반이 지수를 이긴 카테고리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달 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이 스피바의 일관된 결론입니다. 최근 이 방법론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반론 연구가 나왔는데, 그 연구가 계산한 가장 관대한 수치조차 20년 기준 자산의 55%가 벤치마크에 미달, 즉 동전 던지기 수준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데이터와 가장 비싼 인재를 쓰는 사람들의 성적표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버핏이 떠난 자리가 오히려 더 크게 보입니다. 2026년 1월 1일 그렉 아벨 부회장이 신임 최고경영자로 취임했고, 워런 버핏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버크셔가 남긴 1분기 재무제표에는 현금과 단기 국채가 3,974억 달러, 사상 최고치로 찍혀 있습니다. 2025년 말 3,730억 달러에서 더 불어난 규모이고, S&P 500 편입 기업 476곳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 현금은 투자 가능 자산의 59%에 해당하고, 버크셔는 14개 분기 연속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2026년 3월까지 누적 순매도액은 약 1,948억 달러에 달하고, 시가총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이른바 버핏 지표는 6월에 23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버핏 본인은 5월 주주총회에서 지금보다 사람들이 더 도박에 가까운 분위기였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주식에 비싼 값을 치르고, 단기 옵션과 예측시장에 몰려드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죠. 그러니까 반세기 넘게 시장을 이겨 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잡은 포지션은 특정 종목이 아니라 현금과 시간이었습니다. 이건 비관이 아닙니다. 좋은 가격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능력, 그 자체가 자산이라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아벨은 손을 놓고 있지 않습니다. 주택건설사 테일러모리슨 인수를 마무리했고, 자사주 매입은 2021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돌아갔으며, 알파벳 지분을 310억 달러 규모로 쌓았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버핏이 골드만삭스 주식 50억 달러어치를 사서 75% 수익을 냈던 것처럼, 시장에 피가 흐를 때 살 수 있는 위치에 버크셔는 다시 서 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우리가 개인 계좌에서 축소판으로 재현해야 할 구조입니다.
여기서 아날로그 방식이 왜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강해지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알고리즘의 최대 약점은 평가 주기입니다. 기계는 초 단위로 판단하지만, 그 기계를 굴리는 자본은 월 단위, 분기 단위로 성적을 요구받습니다. 손실이 나면 위험 한도가 줄고, 포지션은 강제로 정리됩니다. 반면 개인은 아무도 분기마다 성적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노동소득이라는 현금흐름이 있고, 매도 버튼을 누르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버크셔가 보험료로 들어온 자금을 오래 굴릴 수 있어 강했다면, 개인에게는 월급과 시간이 그 역할을 합니다. 이건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구조적 우위입니다.
다만 인내에도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아무거나 오래 들고 있는 게 답은 아니라는 점이죠. 제이피모건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별 종목의 40%는 고점 대비 70% 이상 하락한 뒤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3분의 2는 시장 전체보다 못한 성과를 냈습니다. 시장의 상승은 소수의 초대형 승자가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버티기 전략의 짝은 반드시 분산이어야 합니다. 광범위한 지수, 검증된 현금흐름, 대체하기 어려운 해자를 가진 자산이어야 시간이 내 편이 됩니다. 좋은 자산이 변동성 때문에 크게 밀렸을 때 차분히 나눠 담는 방식이 힘을 갖는 것도 이 전제 위에서입니다.
국제결제은행은 올해 연차보고서에서 인공지능 투자 경쟁이 과잉투자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주식시장 급락과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기술주와 인프라 관련 주식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겼고요. 이 경고들을 공포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죠. 이런 국면이 온다는 건, 좋은 자산에 붙어 있던 프리미엄이 벗겨지는 순간이 온다는 뜻이고, 현금과 인내를 준비해 둔 사람에게는 그게 기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인공지능은 시장에서 속도와 패턴 인식이라는 영역을 완전히 가져갔습니다. 그 영역에서 사람이 이길 확률은 데이터가 이미 3% 안팎이라고 말해 주고 있고요. 그런데 기계가 손대지 못한 영역이 정확히 하나 남아 있습니다. 기다림입니다. 알고리즘이 많아질수록 흔들림은 커지고, 흔들림이 커질수록 최고의 날과 최악의 날은 더 가깝게 붙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을 계좌에 남아서 통과한 사람만이 20년 뒤의 숫자를 가져갑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세련된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촌스러운 전략입니다. 좋은 것을 사서, 흔들릴 때 조금 더 사고, 그냥 오래 갖고 있는 것이죠. 버핏이 떠난 지금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그의 종목이 아니라 바로 이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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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연준의 케빈워시 의장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7월 29일 연준이 금리를 동결한 건 인상할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상해야 할 만큼의 긴축이 이미 시장에서 벌어진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케빈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 논리를 아주 정확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멈춤이 아니고, 지난 42일 동안 시장이 이미 긴축을 단행했다는 겁니다. 중앙은행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 금융 여건이 조여진 상황, 이걸 워시 의장은 문제가 아니라 성과로 봤습니다. 오늘은 이 한 문장이 왜 지난 20년의 통화정책 문법을 바꾸는 발언인지, 데이터로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숫자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연준은 7월 29일 이틀간의 FOMC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유지했습니다. 올해 1월, 3월, 4월, 6월에 이은 다섯 번째 연속 동결이고, 워시 의장 취임 이후로는 두 번 연속입니다. 다만 지난 6월의 만장일치와는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위원 12명 가운데 찬성 9명, 반대 3명.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같은 방향의 소수의견이 세 명이나 나온 건 2016년 이후 처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반대표의 숫자가 아니라 성격입니다. 워시 의장은 이 표결을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진짜 내부 논쟁이었다고 표현했고, 그 불일치가 연준의 임무 자체를 두고 벌어진 게 아니라 타이밍과 전술을 두고 벌어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물가를 2%로 되돌린다는 목적지에는 열두 명 모두 동의했고, 다만 언제 어떤 수단으로 가느냐에서 갈렸다는 겁니다. 목적지가 흔들리는 조직의 분열과, 경로를 놓고 다투는 조직의 분열은 시장에 완전히 다른 신호를 줍니다. 후자는 오히려 신뢰의 근거가 되죠.
채권시장이 연준의 일을 대신했습니다
이번 회의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연준이 아니라 채권시장이었습니다. 워시 의장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 5.21%까지, 장중에는 5.23% 가까이 튀어 올랐습니다. 전장 대비 최대 0.14%포인트 상승이자 2007년 이후, 그러니까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10년물도 4.61%대에서 4.68~4.69%까지 올라 1년여 만의 최고치에 다가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같은 시각 2년물 금리는 오히려 0.04%포인트 내려 4.24%를 기록했습니다. 2년물은 통화정책 기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구간입니다. 즉 시장은 연준이 당장 뭘 할지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낮추면서, 장기 구간의 금리만 밀어 올린 겁니다. 커브가 가팔라진 거죠. 이건 연준의 힌트를 따라간 움직임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성장에 대한 시장 자신의 판단이 반영된 움직임입니다.
워시 의장이 짚은 지점도 정확히 여기입니다. 6월 FOMC 이후 미 국채 수익률 곡선 전반에서 명목 금리와 실질 금리가 의미 있게 높아졌는데, 이는 시장의 관심이 연준의 말이 아니라 실물 데이터와 실물 경제의 진전에 집중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이 이제 심판이 아니라 공을 보고 플레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못 박았습니다. 시장이 함께 움직이며 회의 사이 기간에 금융 여건을 긴축시켰고, 그 덕에 연준이 목표를 완수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어느 정도 안도감을 얻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책금리는 그대로인데 장기 조달비용은 올라갔습니다. 기업의 회사채 발행 금리, 가계의 모기지 금리, 프로젝트의 할인율은 모두 장기 금리를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연준이 25bp를 올리는 것과, 30년물이 십수 bp 오르며 실질금리 곡선 전체가 위로 밀리는 것 중에 실물 경제를 더 세게 조이는 쪽이 무엇인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워시 의장의 표현대로 채권시장이 이미 그 역할을 대신한 겁니다.
2% 말고 다른 숫자는 없습니다
워시 의장이 기자회견 내내 가장 많이 반복한 문장은 느슨한 물가 목표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5년간의 고물가가 일부 가계와 기업, 시장 전문가들에게 연준의 암묵적인 인플레이션 목표가 2%보다 높은 것 아니냐는, 털어내기 힘든 잘못된 인상을 남겼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상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숨겨진 목표도, 소프트한 목표도, 이 위원회 임기 중에는 없다는 겁니다. 목표는 오직 2%라고요.
동시에 마법 지팡이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5년 넘게 이어진 고물가를 9주 만에, 혹은 물가가 한 달 조금 내렸다고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 대목이 6월 CPI를 대하는 위원회의 태도를 설명해 줍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습니다. 5월의 4.2%에서 크게 둔화했고 시장 예상치 3.8%도 밑돌았습니다. 전월 대비로는 0.4% 하락해 6년 만에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발표 직후 금리선물 시장이 반영하던 7월 인상 확률은 40% 수준에서 15% 아래로, 이후 PPI까지 예상을 하회하면서 1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도 위원회의 생각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단일 데이터 포인트가 아니라 추세를 본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가 안정이 6월 물가 둔화를 이끌었는데,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충돌이 재개되며 유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습니다. 한 달치 좋은 숫자에 정책을 걸었다면 곧바로 되돌림을 맞았을 상황이죠. 좋은 숫자 하나에 환호하지 않는 태도, 이게 물가 목표에 대한 진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AI 투자가 경제 판독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워시 의장이 지난 회의 이후 특별히 두드러졌다고 꼽은 두 가지 중 하나가 국채 수익률의 자체적인 급변동이었고, 다른 하나가 AI 관련 기업 투자였습니다. 인공지능 관련 하이테크 장비와 소프트웨어 부문의 최근 4개 분기 성장률이 20%에 육박했고, 이것이 제조업 생산의 견조한 모멘텀을 떠받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컴퓨터·반도체 관련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도 전년 대비 약 20%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총수요와 총공급이 어느 수준인지 합리적인 감은 있지만, AI를 둘러싼 자본지출 급증이 그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는 게 워시 의장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컴퓨팅 장비 투자가 급증하면서 반도체와 전력 같은 한정된 자원의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는데, 이게 경기가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생산성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인지가 겹쳐 보인다는 겁니다.
다만 워시 의장은 AI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지금 나타나는 건 AI가 생산성을 통해 물가를 낮추기 전에 투자 수요가 먼저 가격을 밀어 올리는 순서의 문제라는 거죠. 그리고 연준의 성명에도 이 판단이 담겼습니다. 중동 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고조됐음에도 경제 활동은 견조한 속도로 확대되고 있고, 생산성 향상과 자본 투자는 강력하며, 일자리 증가는 노동력과 보조를 맞추고 실업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문장입니다.
물가와 일자리는 거래 관계가 아닙니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프레임은 물가를 잡으려면 일자리를 희생해야 한다는 구도입니다. 워시 의장은 이 트레이드오프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2% 물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오히려 노동시장을 지지한다는 겁니다. 물가가 높게 고착되면 실질임금이 깎이고, 기업의 투자 계획이 흔들리고, 결국 고용이 먼저 무너집니다. 물가 안정은 고용의 반대편에 있는 비용이 아니라 고용이 서 있을 수 있는 바닥이라는 논리입니다. 지속적으로 높은 물가가 미국 국민에게 부담이 된다는, 취임 이후 반복해 온 문장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는 이야기죠.
8월 잭슨홀은 아직 백지입니다
8월에는 FOMC가 없습니다. 다음 관문은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잭슨홀 심포지엄입니다. 전통적으로 연준 의장은 이 자리에서 큰 정책 방향을 제시해 왔는데, 워시 의장은 자신의 기조연설에 대해 지금은 백지 한 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연설이 될지, 9월부터 12월까지의 행보를 위한 실무적인 준비가 될지 아직 정하지 않았고, 그때까지 다섯 개 태스크포스와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겁니다.
시장이 9월 인상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데 놀라게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연준은 시장 가격에 구속되지 않으며 시장이 하는 대로 받아 적지도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동시에 연말까지 FOMC 이후 기자회견은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말은 줄이되 원칙은 반복하고, 예고는 하지 않되 설명은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FOMC가 남긴 메시지는 세 줄로 요약됩니다. 첫째, 연준의 목표는 2% 하나뿐이고 여기에 예외나 뒷문은 없습니다. 둘째, 정책금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시장이 스스로 긴축할 수 있으며, 실제로 지난 42일 동안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앞으로 시장은 연준의 힌트가 아니라 실물 데이터를 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점도표와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지도를 접었으니, 이제는 지형을 직접 읽어야 하는 국면인 거죠.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봐야 할 건 연준 위원들의 발언 온도가 아니라, 국채 커브의 기울기와 실질금리, 유가, 그리고 AI 자본지출의 속도입니다. 특히 30년물과 2년물의 방향이 갈리는 지금 같은 구간에서는, 장기 금리가 만들어내는 할인율 변화가 자산 가격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게 순서입니다. 금리 인상 여부보다 금융 여건 전체가 조여지고 있느냐가 실물과 시장에 훨씬 결정적이니까요.
워시 의장의 이번 기자회견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채권시장이 우리 몫의 일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입니다. 중앙은행이 시장을 끌고 가는 시대에서, 시장이 데이터를 보고 스스로 가격을 매기는 시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우리가 서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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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중국발 4대 위기... (feat. 한국 주식)
오늘 우리가 목격한 건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지난 3년간 "중국은 못 한다"는 전제 위에 쌓아 올린 밸류에이션이 한꺼번에 재계산되는 장면입니다. 창신메모리 상장, 키미 쇼크, 딥시크 회의록 유출, 그리고 노광장비 국산화. 이 네 가지는 각각 다른 뉴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중국이 "아직 못 하는 것"의 목록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는 것이죠.
오늘 아침, 숫자가 먼저 반응했습니다
7월 28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55.48포인트, 5.26% 하락한 6,400.27로 개장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장 초반 8% 넘게 빠지며 23만 3,500원까지 밀렸고, SK하이닉스는 10% 가까이 떨어져 164만 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삼성전자가 23만 원대를 다시 본 건 5월 초 이후 두 달여 만입니다. 간밤 뉴욕에서도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엔비디아 5.0%, ASML 5.8%, 마이크론 2.3%, 샌디스크는 무려 11.0% 하락했고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2.23% 밀렸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기대로 유가와 금리는 오히려 안정됐는데도 반도체만 골라서 맞았다는 점, 이게 핵심입니다. 매크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이야기라는 뜻이니까요.
첫 번째, 창신메모리가 상장했습니다
중국 최대 D램 기업 창신메모리, CXMT가 7월 27일 상하이 과창판에 상장했습니다. 공모가는 주당 8.66위안, 조달 금액은 579억 위안, 우리 돈 약 12조 5천억 원입니다. 2026년 아시아 최대 규모 IPO이자 과창판 역사상 최대 반도체 상장입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건 첫날 주가였습니다. 공모가 대비 466% 폭등하며 단숨에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은 462.9대 1이었고, 이 청약에 자금이 쏠리면서 과창판50 지수가 7월 초 고점 대비 20% 가까이 밀릴 정도로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였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옴디아와 트렌드포스 기준 CXMT의 글로벌 D램 점유율은 2025년 1분기 3~4%에서 2026년 1분기 7.6~8%로 올라 세계 4위가 됐습니다. 1년 만에 두 배죠. 월 웨이퍼 생산능력은 2년 새 14만 장에서 30만 장 이상으로 늘었고, 2027년까지 42만 장,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 2035년까지 세 배가 목표입니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719% 늘었고, 설립 이후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제품 믹스입니다. 지난해 매출에서 LPDDR 계열이 66.4%, DDR 계열이 31.9%를 차지했습니다. 철저히 범용 D램 중심이죠. 그런데 이 회사가 이제 DDR4를 단계적으로 접고 DDR5와 LPDDR5X 비중을 전체 생산의 7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 서버용 D램 매출 비중은 2023년 4.6%에서 2025년 26.5%로 급증했고, 애플까지 DDR5 테스트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장으로 확보한 실탄은 상하이·베이징 신규 팹과 허페이 클러스터로 들어갑니다. 상하이 신규 팹이 완공되는 2028년 상반기부터가 진짜 승부처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증권가에서 짚은 경로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공급입니다. DDR5 수율이 2026년 말 선두권에 근접하면 PC·모바일·가전용 중저가 시장부터 저가 공세가 시작되고, 범용 비중이 큰 쪽이 더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급입니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CXMT 주가 폭등이 글로벌 자금의 중국 익스포저 확대로 이어지고, 그 결과 국내 반도체주가 상대적으로 수급에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돈에는 국적이 없고, 새 종목이 생기면 기존 종목에서 나옵니다.
두 번째, 키미 쇼크입니다
미국이 제재를 걸어도 중국 AI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속했죠. 베이징의 문샷AI는 2025년 7월 1조 파라미터 오픈웨이트 모델 키미 K2를 내놓은 뒤, 11월 K2 씽킹, 올해 1월 멀티모달과 에이전트 스웜을 얹은 K2.5, 4월 K2.6, 6월 코딩 특화 K2.7, 그리고 7월 16일 2조 8천억 파라미터의 K3까지 1년도 안 되는 사이 여섯 번 갈아탔습니다.
성능 지표가 말해줍니다. K2.6은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SWE-Bench Pro에서 GPT-5.5와 동률을 기록하면서 토큰당 가격은 약 80% 저렴했습니다. K3는 블라인드 개발자 평가인 프론트엔드 코드 아레나에서 1,679점으로 1위에 올랐고, 7개 세부 영역 중 6개에서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K2.6이 18위였으니 17계단을 한 번에 뛴 겁니다. 가중치를 내려받아 직접 돌릴 수 있는 오픈웨이트라는 점도 결정적입니다.
미국의 반응이 오히려 상황을 증명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값싸고 성능 좋은 중국 모델의 확산을 두고 워싱턴에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백악관 AI 고문 데이비드 색스는 "규제를 경쟁 전략으로 쓰겠다는 자백"이라고 맞받았고,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도 규제 포획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지식재산권 탈취 조사 방침을 언급했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술로 막을 수 없으니 제도로 막자는 논의가 시작된 겁니다. 그 자체가 격차가 좁혀졌다는 가장 정직한 신호입니다.
세 번째, 딥시크 회의록이 유출됐습니다
7월 27일, 텐센트테크가 공개한 4시간 분량의 딥시크 투자자 회의록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량원펑 최고경영자는 미중 AI 격차가 인재 차이가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양국 인력의 수준은 기본적으로 같고, 문제는 자금과 장비 같은 가용 자원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화웨이 어센드 950 카드는 엔비디아 GPU 한 장을 대체하려면 네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했습니다. 5만 장으로 될 일에 20만 장을 넣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시장이 진짜로 놀란 건 그다음 문장입니다. 량 대표는 중국 안에서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쿠다의 영향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으며, 화웨이 950 슈퍼노드가 성능과 가격 양쪽에서 엔비디아 GB200과 GB300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전선이 "칩 한 장의 성능"에서 "랙 단위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잠금"으로 옮겨간 겁니다. 실제로 화웨이는 지난해 8월 쿠다 대항마인 CANN을 오픈소스로 전환했고, 딥시크는 차세대 V4를 개발하면서 기존 쿠다 코드를 CANN으로 포팅했습니다. 지난달에는 화웨이와 선전 연구진이 어센드 910C 천여 대로 1조 6천억 파라미터 모델 V4-프로의 사후학습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학습은 엔비디아, 추론만 화웨이라던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죠. 어센드 950DT와 960으로 이어지는 로드맵도 공개돼 있습니다. 참고로 이 회의록 유출의 여파로 딥시크는 100억 위안, 약 2조 원 규모 투자 유치를 중단했습니다. 그만큼 민감한 내용이었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 노광장비입니다
가장 무겁습니다. 7월 27일 디인포메이션과 로이터에 따르면 상하이의 한 국유 지원 기업이 자체 개발한 액침 심자외선, 즉 이머전 DUV 노광장비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올해 약 5대를 만들어 SMIC와 화훙반도체, 그리고 CXMT에 공급하고 내년에는 20대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업계는 이 성과를 단일 기업의 작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상하이 국유자본과 신카이라이가 합작한 위량성, 화웨이 사내 연구소 출신 1천여 명이 나와 세운 신카이라이, 기존 노광 기술을 가진 SMEE, 그리고 칭화대 연구진이 결합한 연합체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입니다. SMEE는 2009년 중국 첫 노광장비를 만든 뒤 2018년 90나노, 2023년 28나노급까지 올라왔고, 28나노 장비 SSA800 계열은 이미 45대가 납품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핵심은 대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중국 팹의 진짜 약점은 장비 자체보다 유지·보수와 부품 공급이 미국 규제 한 줄에 끊길 수 있다는 구조적 인질 상태였습니다. 국산 장비가 소량이라도 실제로 라인에 들어가는 순간, 그 인질 관계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ASML 주가가 하루 만에 5.8% 빠진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네 개의 뉴스는 사실 하나의 회로입니다
이제 위에서 아래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노광장비가 국산화되고, 그 장비로 창신메모리가 D램을 찍고, 그 메모리가 화웨이 어센드에 실리고, 그 위에서 키미와 딥시크가 돌아갑니다. 장비부터 모델까지 수직으로 이어진 국산 스택이 완성되는 겁니다. 각 고리는 여전히 세계 최고 대비 열등합니다. 그런데 배터리도, 디스플레이도, 조선도, 태양광도 정확히 이 순서로 갔습니다. 열등한 상태로 연결되고, 연결된 뒤에 규모로 원가를 깎고, 원가가 깎이면 가격이 무기가 되죠.
물론 반론도 분명합니다. HBM에서는 여전히 2~3년 격차가 있고, 어센드는 엔비디아 대비 4배를 투입해야 하며, DUV 5대는 ASML의 연간 출하량에 비하면 반올림 오차입니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이번 급락을 펀더멘털 훼손보다 심리와 수급의 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지금 한국 반도체의 안전은 회사의 속성이 아니라 사이클의 속성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잠식 속도보다 빠를 때는 점유율 8%가 위협이 아닙니다. 그런데 파이가 멈추는 순간, 똑같은 8%는 남의 자리를 파고든 몫으로 의미가 바뀝니다. 수위가 높으면 바위가 보이지 않을 뿐이죠.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창신메모리 상장은 자금 조달 이벤트가 아니라 범용 D램의 가격 결정력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둘째, 키미 쇼크는 제재가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는 증거이고, 미국의 규제 논의가 그 사실을 역설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셋째, 딥시크 회의록은 쿠다라는 마지막 해자에 금이 가고 있다는 당사자의 육성입니다. 넷째, DUV 국산화는 병목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물리적 증거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 확인할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창신메모리의 DDR5 수율이 언제 선두권에 닿는지, 그리고 메모리 업사이클이 언제 꺾이는지. 이 두 시계가 겹치는 지점이 진짜 채점일이 될 겁니다. 위기라는 말이 과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오늘 아침 5% 넘게 빠진 지수로 이미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앞으로 몇 분기에 걸쳐 데이터로 확인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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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폴 튜더 존스가 지금 S&P 500을 사지 말라고 말한 진짜 이유
폴 튜더 존스의 경고는 "곧 폭락한다"가 아닙니다. 훨씬 더 불편한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 지불하는 가격이 앞으로 10년 당신의 수익률을 이미 결정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지금 이 밸류에이션에서 S&P를 사면, 주가수익비율 22배에 사는 것이라면 10년 선행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역사가 보여주는 게 그거다." 그리고 덧붙였죠. "주식시장이 정말 높습니다. 어떤 장기적 관점으로 보든, 여기서부터 돈을 벌기는 정말 힘들 겁니다."
이 말이 무거운 이유는 화자가 누구냐에 있습니다. 1987년 10월, 월가 전체가 재산을 잃던 그날 존스는 재산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몇 달에 걸쳐 1987년과 1929년의 유사성을 연구했고, 펀드를 시장 반대편에 세워두었으며,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퍼센트 무너지던 날 —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대 단일 하락률입니다 — 그의 공매도 포지션은 약 1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40년 만에 다시 시장을 보며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폭락이 온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 조합이 이번 발언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층: 시장이 경제보다 커져버렸습니다
존스가 대화를 시작한 숫자는 주가지수가 아니라 비율이었습니다. 미국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GDP의 252퍼센트라는 숫자죠. 참고로 대공황 직전인 1929년에는 65퍼센트, 닷컴 버블 정점인 2000년에는 170퍼센트였습니다. 1987년은 85~90퍼센트 수준이었고요. 존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과도하게 주식화된" 상태입니다. 주식시장이 경제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주식시장이 경제를 끌고 다니는 단계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가 계산한 숫자가 섬뜩합니다. 평균 회귀가 일어난다면 30~35퍼센트 하락인데, GDP의 250퍼센트짜리 자산에서 35퍼센트가 사라지면 그건 GDP의 80~90퍼센트에 해당하는 부가 증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미국 세수의 약 10퍼센트가 자본이득세에서 나오는데, 그 정도 조정이 오면 이 세수가 사실상 제로가 됩니다. 재정적자가 폭발하고 그 충격이 채권시장으로 번지죠. 주식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식이 떨어질 때 국가 재정이 함께 무너지는 구조라는 게 그의 논점입니다.
두 번째 층: 130년 만에 두 번째로 비싼 시장
존스가 말한 22배는 감이 아닙니다. 데이터가 그를 뒷받침합니다. 2026년 7월 기준 실러 CAPE는 41.4 부근인데, 130년이 넘는 데이터에서 이보다 높았던 적은 딱 한 번, 1999년 12월의 44.19뿐입니다. 연평균 기준으로 CAPE가 40을 연속으로 넘긴 시기도 역사상 단 한 번, 1999년과 2000년입니다. 각각 42.1과 41.7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우리는 압니다. 1999년 CAPE가 40을 넘은 뒤 S&P 500은 약 12개월 후에 고점을 찍었고, 이후 2년 동안 최대 49퍼센트 하락했습니다. 현재 선행 기준으로도 12개월 선행 PER은 20.1배로 5년 평균 19.9배, 10년 평균 19.0배를 모두 웃돕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밸류에이션이 타이밍 도구가 아니라 기대수익 도구라는 점입니다. 존스가 폭락을 예측하지 않는 이유가 정확히 이겁니다. 비싼 시장은 내일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만 10년 뒤에 돌려줄 게 없을 뿐이죠.
세 번째 층: 기관들이 이미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존스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대형 운용사들의 장기 전망은 이미 조용히 항복 선언을 하고 있어요. GMO는 미국 대형주의 향후 7년 실질 수익률을 마이너스 6퍼센트로 제시했고, 리서치 어필리에이츠는 미국 대형주 10년 명목 기대수익률을 3.1퍼센트로 낮췄습니다. 두 곳 모두 향후 10년 미국 채권이 미국 주식을 이길 것으로 봅니다. 뱅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2026년 6월 30일 기준 모델에서 미국 주식 10년 기대 연환산 수익률을 기존 4.9~6.9퍼센트에서 4.2~6.2퍼센트로 낮췄습니다.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은 수준에서 더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죠.
즉 존스의 "10년 마이너스"는 극단값이 아니라, 업계 전체가 서 있는 스펙트럼의 한쪽 끝입니다.
네 번째 층: 그가 진짜 무서워하는 것, 레버리지
존스가 반복해서 강조한 문장이 있습니다. 그의 50년 커리어에서 모든 대형 폭락의 뿌리는 똑같았다, 과도한 레버리지, 대개는 파생상품을 통한 레버리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2008년보다 더 심하다고 말하죠. 데이터가 정확히 그 그림을 그립니다.
6월 기준 마진부채는 1조 5,300억 달러로 3개월 연속 사상 최고를 경신했습니다. 전월 대비 7.9퍼센트, 전년 대비 51.5퍼센트 증가했고요. 같은 시점 투자자 순크레딧 잔고는 마이너스 1조 600억 달러로 사상 최저입니다. 1997년 이후 마진부채가 이 정도 속도로 늘어난 국면은 딱 세 번뿐이었습니다.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 2007년 중반, 그리고 2021년 봄입니다. 완벽한 고점 신호는 아니었지만, 모두 위험이 관대하지 않았던 후기 국면이었죠. GDP 대비로도 약 4퍼센트 수준으로 2021년 정점 비율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에 존스가 더 중요하게 본 게 비유동성입니다. "우리는 2008년보다 훨씬 더 비유동적입니다." 기관 포트폴리오가 사모주식, 인프라, 부동산에 훨씬 크게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2007년, 2008년에 사모주식은 기관 포트폴리오의 약 7퍼센트였습니다. 지금은 약 16퍼센트예요. 부동산도 늘었고 인프라 베팅도 늘었습니다." 규제당국도 같은 곳을 보고 있습니다. FSB는 2026년 5월 보고서에서 사모신용이 2024년 말 기준 1조 5,000억~2조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지만 현재 규모로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어본 적이 없고, 차입자들이 공개시장 대비 신용등급이 낮고 레버리지가 높으며, 밸류에이션 불투명성이 스트레스 국면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IMF 역시 레버리지로 팽창한 비은행 금융기관의 강제 매도가 마진콜과 환매를 통해 변동성을 키울 수 있고, 주식시장 변동성은 옵션 매도자와 레버리지 ETF에 의해 증폭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섯 번째 층: 지수가 지수가 아니게 된 문제
존스의 논지를 한 겹 더 보강하는 게 집중도입니다. S&P 500 상위 10종목 비중은 40.8퍼센트로, 기술 버블 정점의 26.6퍼센트를 크게 웃돕니다. 이 상위 10종목의 밸류에이션은 26배로 장기 평균보다 25퍼센트 비싸고요. 최근에는 43퍼센트까지 올라 역사상 최고 집중도를 기록했습니다. 지수 펀드를 들고 있다면 자산의 절반 가까이가 사실상 10개 회사, 대부분 같은 섹터, 상당수가 같은 매크로 리스크에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10개 회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마지막 퍼즐입니다. 국제결제은행은 상위 5개 하이퍼스케일러가 2025~2026년에 AI 관련 자본지출로 1조 달러 이상을 쓸 것으로 보면서, 이 약정이 해당 기업들의 이익과 잉여현금흐름을 앞지르고 있어 일부는 부채를 조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은 2026년 영업현금흐름의 거의 100퍼센트를 소진하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평균은 약 40퍼센트였죠. 2026년 글로벌 AI 관련 부채 발행은 5,700억 달러로 전망되는데, 5월 31일까지 이미 2,360억 달러가 발행돼 전년 동기의 네 배 속도입니다. 그리고 신호가 하나 켜졌습니다. 2월에 하이퍼스케일러 채권 주문은 발행액의 다섯 배 가까이 몰렸지만, 7월에는 두 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존스가 지적한 수급 요인이 겹칩니다. IPO 물량이 시가총액의 5~6퍼센트로 예상되는 동시에,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현금을 AI 자본지출로 돌리면서 자사주 매입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그냥 주식 공급을 늘리는 건데, 이미 자사주 매입은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 결과가 기술주의 '롤링 톱', 즉 서서히 굴러 내려가는 고점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죠.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존스는 "다 팔아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건 인식입니다. "자기 돈을 어떻게 배치할지 생각할 때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고로 그는 같은 대화에서 비트코인을 최고의 인플레이션 헤지로 본다고 밝혔고, 일본 시장에 대한 강세론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 이 이야기가 남기는 함의는 분명합니다. 서학개미 자금이 미국 대형 기술주와 지수형·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돼 있다는 건,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리스크 — 높은 진입 밸류에이션, 사상 최고 레버리지, 사상 최고 집중도 — 를 한꺼번에, 그것도 환율까지 얹어서 떠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존스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내일을 맞히려 하지 말고, 지금 지불하는 가격이 10년을 결정한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84 |
| 14 | 외국인은 CXMT를 산다고 국장을 다 팔기 시작
코스닥을 팔아 전닉을 샀고, 이제 외국인은 국장을 팔아 중국을 삽니다
지금 한국 증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떤 종목이 좋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한 방향으로만 빨려 들어가는 사다리 현상이고, 그 사다리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습니다. 코스닥을 팔아 전닉을 샀고, 코스닥이 마르자 대형주를 팔았고, 대형주가 마르자 반도체 2등주까지 팔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외국인은 그 마지막 단계에서 국장 전체를 팔아 중국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 상하이에서 벌어진 일이 그 증거입니다.
1단계, 코스닥을 팔아 전닉을 샀습니다
숫자가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5월 27일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은 15조 2,784억 원이었는데, 7월 24일에는 5조 1,77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하루 거래대금이 10조 1,014억 원, 그러니까 66.1%가 증발한 겁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1,133.13에서 748.22로 34.0% 하락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실 부분은 지수 하락률보다 거래대금 감소폭이 훨씬 컸다는 점입니다. 가격이 떨어진 것보다 거래 자체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뜻이죠. 가격이 아니라 사람이 떠난 겁니다.
돈의 이동 경로도 선명합니다. 6월 19일부터 24일까지 개인은 코스피에서 약 14조 3,000억 원을 순매수했는데, 이 가운데 약 75%인 10조 7,000여억 원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는 1조 1,033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코스닥에서 뺀 돈이 그대로 전닉으로 옮겨 탄 겁니다.
빚의 이동은 더 노골적입니다. 코스닥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5월 27일 9조 8,563억 원에서 7월 23일 6조 9,106억 원으로 29.9%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 신용융자는 3.7% 감소하는 데 그쳤습니다. 코스닥 신용융자 감소율이 코스피의 약 8배에 달한 겁니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추정 신용잔고 약 12조 5,000억 원은 코스닥 전체 신용거래융자 잔고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두 종목의 빚이 1,800개 시장 전체의 빚보다 많습니다. 이게 1단계입니다.
2단계, 코스닥이 마르자 대형주를 팔았습니다
코스닥에서 빼올 돈이 바닥나자, 다음 순서는 코스피 안의 다른 대형주였습니다. 그 결과가 이 숫자입니다.
6월 1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4,162조 원, 코스피 전체의 54.76%였습니다. 두 종목 합산 비중은 3월에 처음 40%를 넘었고, 5월 말 50%를 돌파한 뒤 다시 뛰었습니다. 닷컴 버블도, 일본 버블도 이 정도 쏠림은 없었습니다.
상징적인 장면도 나왔습니다. 6월 22일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 2,090조 원으로 2,088조 원인 삼성전자를 넘어 시총 1위에 올랐습니다. 삼성전자가 코스피 시총 1위를 내준 것은 2000년 11월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1년간 삼성전자 주가는 490%, SK하이닉스는 1,030% 올랐습니다.
지수가 올라도 내 종목은 안 오른다는 하소연, 착시가 아니었습니다. 코스피 ETF를 샀다면 사실상 절반 넘게 전닉을 산 것이었으니까요.
3단계, 대형주가 마르자 2등주까지 팔았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거래대금 지표에서 가장 잔인하게 드러납니다. 5월 27일부터 7월 24일까지 41거래일간 삼성전자 거래대금은 398조 7,849억 원, SK하이닉스는 560조 4,831억 원, 합계 959조 2,680억 원으로 같은 기간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 1,861조 4,813억 원의 51.5%를 차지했습니다. 코스피에서 거래된 100만 원 중 51만 5,000원이 두 종목에서 손바뀜한 겁니다.
여기에 파생상품까지 얹으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7월 8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주에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16종의 거래대금까지 합산하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3.1%까지 치솟습니다. 그리고 레버리지 ETF 14종의 41거래일 누적 거래대금 392조 1,284억 원은 코스닥시장 전체 359조 4,237억 원보다 9.1% 많았습니다.
ETF 14개가 1,800개 종목보다 더 거래됐습니다. 소부장이든 2등주든, 전닉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으면 '전닉 본체'를 사기 위한 현금 조달원으로 먼저 정리됐다는 뜻입니다.
4단계, 외국인은 국장을 팔아 중국을 삽니다
그리고 오늘, 네 번째 단계가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7월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는 장 초반 공모가 대비 471.59% 오른 49.50위안에 거래를 시작하며, 상장과 동시에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습니다. 장중 최고 상승률은 535%에 달했습니다. 장중 시가총액은 68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상장 직후 국내 증시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약세를 보이며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코스피는 외국인 2조 원 순매도에 하락 전환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흐름은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올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149조 원 순매도했고, 일본 증시에는 736억 달러 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며 아베노믹스 시기를 넘어선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전닉스로 많이 벌었으니 일본 가자", "K반도체 팔고 J반도체 담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중국으로도 갑니다. IMF는 7월 8일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로 낮추면서도 중국은 0.2%포인트 올린 4.6%로 상향했고, 골드만삭스는 A주 비중확대 관점을 유지하며 중국 AI 섹터 전반에 버블이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로드쇼 결과 향후 수개월간 글로벌 자금의 중국 포트폴리오 재배치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CXMT의 실체도 봐야 합니다. CXMT는 579억 위안 규모 IPO 자금으로 차세대 공정과 HBM3 개발, 생산능력 확대에 투자하며, 현재 D램 점유율 9%를 2028년 11%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상하이와 허페이에 신규 공장을 짓고 제3공장까지 협의 중인데, 이 계획이 모두 현실화되면 월 60만 장 이상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삼성전자의 월 D램 생산능력이 약 60만~65만 장, 마이크론이 38만 장 안팎입니다.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CXMT의 생산능력은 이미 2027년 말 공급분까지 예약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모건스탠리는 D램 계약가격의 전년 대비 상승률이 2026년 4분기 정점을 찍은 뒤 2027년 들어 큰 폭으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계산은 단순합니다. 가격 상승률이 정점을 지나는 시점에, 원가가 30% 낮은 신규 공급자가 자본시장 실탄까지 확보했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5단계는 무엇일까요
빈칸으로 남겨두셨던 5단계, 데이터가 이미 답을 하고 있습니다. 팔 것이 다 소진되면, 마지막에 남는 건 레버리지를 낀 개인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전체 ETF 거래대금의 약 4분의 1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차지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정 종목이 급락하면 레버리지 ETF는 기계적으로 보유 지분을 추가 매도해야 하고, 이는 추가 하락과 추가 리밸런싱의 피드백 루프를 형성합니다. 사람이 파는 게 아니라 상품 구조가 스스로 파는 단계입니다.
관련 ETF 16개는 모두 공모가격인 2만 원을 밑돌고 있고, 금융당국은 기본예탁금 3,000만 원 상향 시기를 8월 5일에서 7월 31일로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매매 단위는 1주에서 20주로, 교육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고, 신규 상품 상장과 광고는 잠정 중단됩니다. 개인은 한 달간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8조 9,000억 원어치 매수했고, 반대매매는 하루 572억 원까지 늘었습니다.
낙폭도 이미 역사적입니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6월 21일 9,114포인트에서 7월 20일 6,516포인트까지 28.5% 하락했으며, 이는 코로나19(-36%), 2022년 미국 금리 인상 국면(-3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4%) 이후 최대 낙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균형을 위해 말씀드리면, CXMT는 HBM에서 여전히 뒤처져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4 양산 경쟁에 들어간 반면 CXMT는 HBM3E를 내년에야 양산하는 것이 목표이고, EUV 노광장비 수출 규제가 결정적 병목입니다. 세미애널리시스는 CXMT의 HBM 배정 물량이 2027년 말에도 월 5만 5,000장 수준에 그칠 것으로 봤습니다. 최근에는 CXMT가 64GB DDR5 서버 메모리를 삼성전자보다 비싼 가격에 공급한 사례도 보도됐습니다. 국민연금은 7월 순매수로 전환하며 SK하이닉스를 담았습니다. 이익 자체가 꺾인 게 아니라 속도가 꺾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국면의 본질은 반도체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자본이 두 종목으로 압축됐고, 그 압축을 레버리지가 증폭시켰고, 이제 새로운 공급자가 등장하면서 외국인이 먼저 판을 갈아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켜보실 지표는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코스닥 거래대금이 5조 원대에서 회복되는지. 둘째, 7월 31일 레버리지 규제 시행 이후 반대매매가 진정되는지. 셋째, 4분기 D램 계약가 상승률이 실제로 정점을 찍는지입니다. 사다리를 거꾸로 내려오는 신호는 언제나 거래대금에서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본 내용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86 |
| 15 | 미국 국채가 밀려나고 있습니다, AI 회사채가 바꿔버린 채권시장의 진짜 그림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미국 채권시장에서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구글과 메타, 아마존 같은 빅테크가 AI 인프라를 짓기 위해 찍어내는 회사채가, 원래는 미국 국채로 흘러가야 할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채가 상대적으로 외면받으면서 장기금리는 위험구간까지 올라섰고, 정부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흐름을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데이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미리 한 가지는 짚고 가겠습니다. "그러니 미국이 곧 폭망하고 비트코인만이 답"이라는 식의 단정은, 지금 시점의 데이터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서사라는 점입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은 해석대로 나눠서 보시죠.
첫 번째 축, 빅테크 회사채 발행이 역사상 최대 규모로 터졌습니다
먼저 규모부터 보겠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아마존,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이 다섯 개 하이퍼스케일러가 발행한 미국 회사채만 약 1,210억 달러입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평균이 280억 달러였으니, 무려 네 배가 넘는 물량이 한 해에 쏟아진 겁니다. 특히 메타는 2025년 10월 3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여기에 1,250억 달러의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역사상 최대급 회사채 발행으로 기록됐습니다. 알파벳이 250억 달러, 오라클이 약 180억 달러, 아마존이 150억 달러를 잇따라 조달했고, 알파벳은 100년 만기 채권까지 찍었습니다. AI 관련 투자가 달러 표시 투자등급 회사채 순발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는 게 골드만삭스와 본토벨 같은 기관들의 추정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빚을 내는 걸까요.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 인프라에 들어가는 돈이 이제는 이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으로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26년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설비투자, 이른바 CAPEX는 6,000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입니다. 현금으로 메우다가 부족한 부분을 채권시장에서 끌어다 쓰는 구조로 완전히 바뀐 겁니다. 예전에는 빚이 거의 없던 초우량 기업들이었는데, 이제는 시장에 어마어마한 채권 공급자로 등장한 셈이죠.
두 번째 축, 국채가 회사채에 수요를 뺏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논리가 나옵니다. 시장에 돈은 한정돼 있는데, 우량 빅테크 회사채가 국채보다 이자를 더 얹어주면서 자금을 빨아들이면, 국채는 상대적으로 덜 팔리게 됩니다. 이걸 구축효과, 영어로 크라우딩 아웃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도 공식적으로 쓰는 진단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블랙록은 주간 논평에서, 기업 차입이 늘어나는 것이 이미 막대한 정부 재정적자를 소화하느라 힘겨운 채권시장에 공급을 더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 IMF 역시 미국 국채 발행 속도가 국채가 전통적으로 누려온 프리미엄을 갉아먹고 있다며, 그 증거로 우량 회사채와 국채 간 금리 격차가 좁아진 점을 들었습니다. 국채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본 겁니다.
실제 입찰 현장에서도 정황이 나타납니다. 2025년 12월 2년물 국채 입찰에서, 외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를 포함하는 간접입찰자의 인수 비중이 53.21%까지 떨어졌습니다. 직전 달의 58.07%에서 급락한 것이고, 2023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2026년 3월에도 2년물, 5년물, 7년물 입찰이 낙찰금리 상승과 수요 약화, 프라이머리 딜러의 흡수 확대라는 부진한 지표를 함께 보였습니다. 큰손들이 예전만큼 국채를 사주지 않고 있다는 흔적입니다.
금리 현실, 이미 위험구간에 들어섰습니다
그 결과가 금리에 그대로 찍혀 있습니다. 미국 국채 30년물은 5.05%, 10년물은 4.54%까지 올라섰습니다. 여러분이 체감하시는 그 "헬게이트" 수준의 차입비용이 데이터로도 확인되는 겁니다. 정부는 매년 2조 달러가 넘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계속 팔아야 하는데, 시장 금리가 이 정도로 높으면 이자 부담만으로도 재정이 짓눌립니다. 미 의회예산국 CBO는 2027년부터 2036년까지 연평균 2.4조 달러의 적자를 전망하고 있고, 2026년 2월 기준 대중이 보유한 국채는 이미 31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공급은 계속 늘어나는데 수요는 예전 같지 않으니, 금리에 상방 압력이 쌓이는 구조입니다.
왜 멈출 수도 없나, 비용 청구서의 딜레마
그렇다면 빅테크는 왜 이 위험한 빚잔치를 멈추지 못할까요. 여기에 이 사태의 진짜 무서운 지점이 있습니다. AI 경쟁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오라클, 오픈AI가 전부 뛰어든 국가전 수준의 싸움입니다. 한 회사만 투자를 멈추면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으니 아무도 먼저 브레이크를 밟지 못합니다. 게다가 지금 투자를 중단하면, 그동안 쌓아 올린 막대한 감가상각과 부채 청구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계속 가자니 채권시장을 압박하고, 멈추자니 당장 비용 폭탄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시장의 우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지금의 AI 투자가 실제 기업 순이익과 GDP 성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엔비디아 칩을 사기 위해 빚을 내고 그 돈이 다시 반도체 진영으로 도는 "그들만의 순환경제"에 머문다면, 생산성 성과가 투자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순간 대규모 상각과 부채 부담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모건스탠리와 JP모건 등은 향후 몇 년간 테크 섹터가 AI와 데이터센터를 위해 최대 1.5조 달러 규모의 새 채권을 찍어야 할 수 있다고 봤고, 이 물량이 채권시장 전체를 시험대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균형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반론
다만 여기서 냉정하게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아무도 국채를 안 산다"는 표현은 과장으로 반박당할 수 있습니다. LPL파이낸셜은 최근 입찰이 다소 약하긴 했지만 응찰배수 같은 지표가 시장이 청산에 실패했다고 볼 수준은 아니며, 외국인 수요도 여전히 견조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2026년 4월 10년물 입찰에서는 응찰배수가 3월의 2.28에서 2.45로 반등했고, 외국인 비중도 1분기 저점에서 회복됐습니다. 그러니 "매수세가 완전히 증발했다"기보다는 "한계 매수자가 가격에 민감해졌다" 정도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또 하나, 지금 금리가 높은 이유를 회사채 탓으로만 돌리면 논리가 약해집니다. 신임 연준 의장 워시 체제에서 매파적 기조가 강해지면서 시장은 오히려 금리 인하가 아니라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하기 시작했고, 유가 반등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했습니다. 즉 지금의 고금리는 회사채 잠식이라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연준 정책, 재정적자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이 공동 원인을 함께 봐야 그림이 정확해집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피난처일까, 냉정하게 봅시다
마지막으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미국 재정과 AI 부채라는 뇌관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데이터가 잘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그러므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피신하면 된다"는 결론까지 이어주는 데이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근 국면에서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기술주와 함께 움직이는 위험자산처럼 거래되어 왔습니다. 국채 금리가 터지고 테크 조정이 오면, 비트코인이 피난처가 아니라 가장 먼저 매물이 나오는 자산이 될 위험도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반대편 서사도 존재합니다. 국가 부채가 통제 불능으로 커지고 화폐가치 희석 우려가 커질수록, 발행량이 정해진 희소자산이 왜 대안으로 주목받는지에 대한 논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레이스케일 같은 기관은 공공부채 증가가 장기적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수요를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핵심은, 이건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는 겁니다. 단정하지 마시고, 국채 시장의 구조적 압력이라는 팩트 위에 이 서사를 조건부로 얹는 방식이 가장 안전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빅테크 AI 회사채가 국채 수요를 잠식하며 장기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는 큰 그림은 데이터로 탄탄하게 확인됩니다. 다만 그 끝이 미국의 즉각적 붕괴인지, 크립토의 시대인지는 인플레이션과 연준, 실제 AI 수익화 성과라는 여러 변수에 달려 있습니다. 흐름은 빠르게 바뀔 수 있으니, 서사에 취하기보다 데이터를 계속 업데이트하며 지켜보시길 권합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230 |
| 16 | 미국에 돈이 쌓이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치입니다 — 23조 달러 M2와 7.95조 달러 MMF가 말해주는 것
오늘은 최근 글로벌 매크로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무거운 이야기, 바로 미국의 통화량과 대기자금 흐름을 짚어드리겠습니다. 시장은 지금 연준의 매파적 스탠스에 시선이 쏠려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이미 폭발적인 상승의 연료가 조용히 쌓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은 유동성이 없는 국면이 아니라 유동성이 준비되어 있는 국면입니다. 이 차이가 앞으로의 자산시장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가장 큰 그림부터 보시겠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식 통화량 지표인 M2가 2026년 5월 기준 23조 523억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웠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데이터 기준이고요, 계절조정 수치입니다. 비계절조정 주간 M2로 보면 6월 첫째 주에 이미 23조 629억 달러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경 원이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단순히 신고가라는 사실이 아닙니다. 5월 한 달 동안에만 약 2,478억 달러, 우리 돈으로 340조 원가량이 새로 늘어났는데, 이 월간 증가 폭은 2021년 5월 팬데믹 부양책이 정점이었던 시기 이후 최대입니다. 연초부터 5월까지 누적 증가액도 약 7,000억 달러에 육박하면서, 지난 5년 사이 1월부터 5월까지의 확장세 중 가장 공격적인 흐름으로 기록됐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의 통화량이 2022년 3월 이전 팬데믹 정점을 이미 1조 3천억 달러 이상 상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2022년 이후 진행된 양적긴축, QT의 효과를 완전히 되돌리고도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글로벌 M2, 그러니까 미국과 유로존, 중국, 일본 4대 경제권의 통화량 합계는 2026년 7월 1일 기준 101조 7천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습니다. 이 지표가 왜 중요하냐 하면, 과거 데이터를 돌려보면 글로벌 M2 증가율이 비트코인과 나스닥, AI 관련주의 방향성을 약 10주 정도 선행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지표가 우상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시차를 두고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밀려 들어올 조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대기자금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미국 투자회사협회, ICI가 발표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6년 7월 1일 기준 미국 머니마켓펀드, MMF 총자산은 7조 9,5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습니다. 이 한 주에만 477억 달러가 순유입됐고요, 기관 자금 이 440억 달러, 개인 자금이 36억 달러 늘었습니다. 여기에 블룸버그가 별도로 집계한 광의의 머니펀드 자산은 이미 5월 말에 8조 2,810억 달러까지 올라간 상태입니다. 요약하자면 8조 달러에 육박하는 현금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초단기 파킹 상태로 대기 중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돈은 그냥 사라진 돈이 아닙니다. 투자자들이 4~5%대 단기 금리를 즐기면서 위험자산으로 넘어갈 명분을 기다리는 자금입니다. 웨스턴 애셋 매니지먼트 리서치에 따르면, MMF 잔고는 역사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정점을 유지하다가, 단기 수익률이 유의미하게 꺾이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빠져나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 대기자금 유출은 인하가 시작될 때가 아니라, 인하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현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부각되는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은 그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국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이 돈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지, 연준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6월 16일과 17일 열린 FOMC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3.50%에서 3.75% 범위에서 만장일치로 동결했습니다. 새로 취임한 케빈 워시 의장의 첫 회의였는데요, 함께 공개된 점도표는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매파적으로 나왔습니다. 참여한 18명의 위원 중 9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8명이 동결, 단 1명만이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2026년 말 기준 중위값은 3.8%로, 3월 점도표의 3.4%에서 0.4%포인트나 상향 조정됐습니다. 위원들은 2026년 헤드라인 PCE 인플레이션 전망도 2.7%에서 3.6%로 크게 올렸고, 근원 PCE 역시 2.7%에서 3.3%로 대폭 상향했습니다. 5월 CPI가 전년비 4.2%, 근원 CPI가 2.9%로 여전히 목표치 2%를 크게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시장의 첫 반응은 당연히 부정적이었습니다. 회의 당일 다우지수는 507포인트, 약 0.98% 하락했고, S&P 500은 1.21%, 나스닥은 1.34% 밀렸습니다. 2년물 국채금리는 하루 만에 16bp 급등하며 4.21%까지 치솟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신호만 놓고 보면, 유동성 랠리는 커녕 조정 국면 진입 이야기가 나올 만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워시 의장이 매파적 카드를 꺼내 든 그 순간에도, S&P 500은 4월 중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고, 금은 온스당 4,800달러 부근에서 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비트코인 역시 이란 전쟁 국면에서 다른 주요 자산 대비 상대적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24/7 월스트리트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미국 M2는 약 47%, 금액으로는 7조 3천억 달러가 늘어났고, 이 유동성은 연준이 아무리 매파적 발언을 반복해도 이미 시스템 안으로 스며들어 자산가격을 조용히 밀어 올려왔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유동성이 없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이 넘치는 상태에서 연준이 말로만 조이고 있는 세상에 있는 겁니다.
정치적 변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저금리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케빈 하셋 NEC 위원장 등 백악관 경제팀도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시사해 왔습니다. 워시 의장 본인도 6월 회의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매파적 톤을 유지했지만, 원래 그는 균형 잡힌 성향의 인사이자 대차대조표 축소를 강조해 온 인물입니다.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와 미셸 보먼 이사는 이미 6월 회의에서 인하 쪽으로 소수 의견을 제시했고, 특히 보먼 이사는 하반기 세 차례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즉 FOMC 내부에서도 균열이 이미 시작됐다는 뜻입니다.
시장이 주목하는 다음 이벤트는 7월 28일과 29일 열리는 FOMC 회의입니다. 이번 회의에는 새로운 점도표가 공개되지 않지만, 워시 의장의 기자회견 톤과 성명서의 미묘한 문구 변화가 하반기 정책 경로에 대한 강력한 신호가 될 것입니다. CME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7월 3일 기준으로 시장은 7월 회의에서 동결 확률을 약 81%로 반영하고 있지만, 만약 워시 의장이 회견에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인정하거나 통화정책 재조정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시사한다면, 8조 달러에 가까운 MMF 자금이 방향을 틀 명분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분명합니다. 2020년과 2021년의 유동성 랠리는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이례적 국면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릅니다. 금리는 여전히 3%대 후반이고, 양적긴축도 아직 완전히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2는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고, MMF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기자금이 쌓여 있으며, S&P 500은 신고가 부근에 있고, 비트코인은 제도권 자금 유입 인프라를 완비한 상태입니다. J.P.모건은 최근 S&P 500 연말 목표치를 7,600포인트로 상향 조정했고, 골드만삭스는 2026년 S&P 500 총수익률을 12% 수준으로 전망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지금 시장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유동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쌓인 유동성이 아직 마지막 방아쇠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아쇠는 연준의 인하 개시일 수도 있고, 인플레이션의 결정적 둔화 신호일 수도 있으며, 워시 의장의 미묘한 톤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댐 뒤에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기다림은 랠리의 부재가 아니라, 랠리의 규모를 키우는 응축의 시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274 |
| 17 | AI 혁명의 숨은 개척자는, 사실 비트코인 채굴 산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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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를 뒤흔드는 AI 붐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생태계가 현대적인 데이터센터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실험하고 증명해두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빠르게 폭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개척지를 이끄는 리더들 상당수가 비트코이너이거나 크립토 필드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라는 점도 점점 분명해지고 있죠. 우리는 이 변화가 미래를 어떻게 다시 그릴지를, 아직도 크게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크립토 진영의 희망 섞인 주장이 아닙니다. 2026년 들어 블룸버그, S&P 글로벌,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제프리스(Jefferies)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산업 구조의 재편입니다. 오늘은 그 흐름을 위에서 아래로, 차근차근 풀어드리겠습니다.
AI가 진짜로 목말라하는 것은 GPU가 아니라 전력입니다
요즘 AI 업계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석유는 전기다"라는 표현이죠. 초거대 AI 모델이 늘어날수록 정말로 부족해지는 것은 GPU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GPU 수만 장을 동시에 돌릴 수 있는,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대규모 전력과 그것을 수용하고 식혀줄 데이터센터 부지입니다.
GPU는 돈을 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백 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을 새로 확보하는 데는 변전소 건설부터 송전망 연결, 인허가까지 보통 몇 년이 걸립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수년 동안 변전소를 짓고, 전력회사와 협상하고, 송전망에 연결하고, 부지를 확보하는 일을 직접 해왔기 때문입니다. AI 기업 입장에서는 이 경험 자체가 넘기 힘든 진입장벽인 셈이죠.
한때 "비효율"이라 불리던 것이, 가장 귀한 자산이 됐습니다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은 누구보다 먼저 수백 MW 규모의 전력을 확보했고, 초대형 ASIC·GPU 클러스터를 운영했으며, 액침냉각 같은 고효율 냉각 기술과 24시간 무중단 운영, 전력망 최적화를 실전에서 익혔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는 "전기만 잡아먹는 비효율적인 채굴"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AI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가장 먼저 축적해 둔 산업이었습니다.
과거 인터넷이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웹사이트 기술처럼 보였지만, 진짜 혁신은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스마트폰, 모바일 결제, 스트리밍이라는 2차 산업에서 폭발했죠. 비트코인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가장 큰 가치는 코인 가격의 등락 자체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산업, GPU 인프라, 분산 컴퓨팅으로 이어지는 2차·3차 파급효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숫자가 증명합니다: 채굴 기업이 데이터센터 운영사로 바뀌고 있습니다
가장 권위 있는 최신 자료인 코인셰어스(CoinShares)의 2026년 1분기 채굴 리포트를 보겠습니다. 상장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이 AI와 고성능 컴퓨팅(HPC)에서 거두는 매출 비중은 연초 약 30% 수준에서 2026년 말까지 최대 70%까지 치솟을 전망입니다. 공개 채굴 섹터 전체가 발표한 누적 AI·HPC 계약 규모는 이미 7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왜 이렇게 빠르게 갈아타는 걸까요. 수익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AI 워크로드는 같은 1MW의 전력으로 전통적인 비트코인 채굴보다 3배에서 많게는 25배까지 매출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장기 임대 계약은 80%에서 90%에 달하는 영업이익률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하죠. 변동성 큰 코인 채굴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 업계 관계자는 "AI 사이트 하나가 과거 전체 비트코인 채굴보다 더 큰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은 이미 이 변화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2026년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약 17% 하락하는 동안, 비트코인 채굴주 바스켓은 오히려 50% 넘게 올랐고 최고 성과주는 70%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이 기업들을 해시레이트나 코인 가격이 아니라, 확보한 컴퓨팅 인프라와 장기 계약으로 평가합니다. HPC 계약을 확보한 채굴주는 향후 12개월 예상 매출의 12.3배에, 순수 채굴주는 5.9배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시장이 AI 노출에 두 배 이상의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월스트리트의 공식 인정, 그리고 실제 대형 계약들
제프리스는 2026년 들어 AI 데이터센터로 전환 중인 채굴 기업들에 대거 매수(Buy) 의견을 냈습니다. 사이퍼 마이닝(CIFR), 헛8(HUT), 테라울프(WULF), 코어 사이언티픽(CORZ)에 매수, 라이엇 플랫폼스(RIOT)에 보유(Hold)를 부여했죠. 핵심 근거는 단순합니다. AI 시대 가장 희소한 자원이 전력이고, 채굴사들은 그 전력 인프라를 이미 선점해두었다는 것입니다.
대표 사례가 헛8입니다. 2026년 5월, 헛8은 텍사스 누에세스 카운티의 비콘 포인트(Beacon Point) 캠퍼스 1단계 352MW에 대해 15년·98억 달러 규모의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임차인은 AA- 등급 이상의 초우량 투자등급 기업이고, 계약은 임차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트리플넷(Triple-Net)·테이크오어페이 방식이라 수익이 매우 안정적입니다. 갱신 옵션을 모두 행사하면 계약 총액은 약 251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고, 캠퍼스는 최종적으로 1기가와트(GW)까지 확장됩니다. 여기서 가장 상징적인 사실은, 이 부지가 원래 비트코인 채굴을 위해 확보됐다가 AI 인프라로 전환됐다는 점입니다. 헛8의 애셔 제노트 CEO는 "전력이야말로 차세대 에너지 집약 기술의 기반 레이어이며, 그것을 대규모로 확보한 자가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쌓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계약으로 헛8의 총 AI 데이터센터 계약 용량은 597MW, 누적 계약 규모는 약 168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렌(IREN)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 최신 GB300 GPU 7만 6천 장, 텍사스 칠드레스 캠퍼스 200MW 규모의 97억 달러 계약을 맺었는데, 흥미롭게도 아이렌은 재무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으로 비트코인을 단 한 개도 보유하지 않습니다. 코어 사이언티픽은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와 약 1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확대하며 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으로 33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고, 일부 분기에는 AI 콜로케이션 매출 비중이 이미 39%에 달했습니다. 테라울프는 구글의 신용 보증을 등에 업고 128억 달러 규모의 HPC 계약을 확보했으며, 갤럭시 디지털은 코어위브와 800MW·15년 약정으로 약 45억 달러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의 살아있는 원형이 바로 코어위브입니다. 코어위브는 2017년 뉴저지에서 이더리움 채굴로 출발했지만 GPU 클라우드로 방향을 틀었고, 2023년 AI 붐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해 결국 오픈AI와 119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습니다. 크립토가 먼저 깔아둔 인프라 위에서 AI가 자라난다는 논지를, 한 회사의 역사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개척지의 리더들은, 크립토에서 시작했습니다
인프라뿐만이 아닙니다. AI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 상당수가 크립토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 분석은 크립토가 일종의 부트캠프 역할을 하며, 날카로운 판단력과 리스크 감각, 권력 구조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세대를 길러냈고 이들이 지금 AI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오픈씨(OpenSea)의 공동창업자이자 CTO였던 알렉스 아탈라는 크립토에서 익힌 고동시성 처리와 탈중앙 분배에 대한 이해를 AI로 옮겨, 수백 개의 AI 모델을 하나의 창구로 연결하는 오픈라우터(OpenRouter)를 'AI 시대의 앱스토어'로 키우고 있습니다. AI의 미래를 예측한 보고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로 유명한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역시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크립토였고, 지금은 전력 인프라와 첨단 반도체, 대규모 컴퓨트에 집중하는 수십억 달러 규모 펀드를 운용합니다. 벤처캐피털 a16z의 크리스 딕슨은 기술이 기존 개선 단계를 거쳐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다시 자동차가 고속도로와 물류를 낳았듯 2차 효과로 확장된다고 설명하며, 크립토 진영이 가장 기대하는 영역으로 탈중앙 물리 인프라(DePIN)를 꼽습니다.
AI와 크립토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키우는 생태계입니다
많은 분들이 AI가 크립토의 자금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AI는 비트코인이 먼저 구축해둔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냉각 기술, 운영 노하우 위에서 성장하고 있죠.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발전시키는 인프라 생태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한 인물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MIT 크립토이코노믹스랩을 세우고 디엠(옛 리브라) 프로젝트를 공동 설계한 크리스티안 카탈리니입니다. 그 자신이 크립토에서 AI 경제학으로 넘어간 산증인인데, 그는 AI가 복잡한 작업을 거의 제로에 가까운 비용으로 해내면서 이제 진짜 희소한 자원은 '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그 결과를 검증하고 책임지는 '검증 능력'이 됐다고 분석합니다. 규제에 대해서도 그는 과도한 관료화를 경계하며 기술이 스스로 혁신하도록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습니다. 지능이 자유롭게 풀려나는 길과 규제가 그것을 옭아매는 길 사이에서,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들이 제공하는 효율적이고 유연한 분산형 인프라는 전자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장기 투자 관점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비트코인 채굴에서 AI 데이터센터로의 전환은 이미 진행형이고, 2026년 말 AI 매출 비중 70%라는 목표는 충분히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크립토 배경의 팀과 기업들이 실제로 대형 계약을 따내고 자금을 조달하며 실행력을 증명하고 있죠. 단기 코인 가격의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전력과 부지, 실행력이라는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한 구조적 성장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주목할 영역은 AI 데이터센터로 전환 중인 채굴 기업, 대규모 전력과 냉각 기술을 보유한 인프라 기업, GPU 클라우드와 HPC 서비스 기업, 그리고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한 탈중앙 컴퓨팅 프로젝트입니다.
비트코인은 단순히 새로운 자산 하나를 만든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전력과 데이터센터,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가장 먼저 대규모로 실험하고 발전시킨 산업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흐름 속에서 더욱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시장 가격에만 매몰되지 마시고, 전력과 실행력, 장기 계약이라는 2차 효과를 함께 보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장기 투자 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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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나 매매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에 대한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으며, 모든 투자에는 원금 손실의 위험이 따릅니다. | 248 |
| 18 | 지금 시장에서 가장 저평가된 반도체 주식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인텔(INTC)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저평가'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텔은 이미 2026년에 폭발적으로 올랐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PER이 낮으니까 싸다"는 식의 저평가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저평가는, 시장이 인텔을 여전히 '망해가는 CPU 회사'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보고 있어서, 정작 그 안에 숨어 있는 '미국 유일의 최첨단 파운드리'라는 거대한 자산을 가격에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 인식의 격차, 그 사이에 저평가가 살아 있습니다.
먼저 냉정한 현실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인텔 주가는 2026년 6월 26일 현재 132달러에서 134달러 수준입니다. 52주 최저가가 18달러대였으니, 바닥에서 무려 7배 가까이 올라온 자리입니다. 연초 대비로는 약 240퍼센트, 1년 수익률은 약 532퍼센트에 이릅니다. 시가총액은 약 6,5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900조 원에 육박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많이 오른 주식을 두고 "싸다"고 말하면 의심부터 드는 게 당연합니다. 정규화 기준 PER은 200배가 넘고, DCF 모델 하나는 적정주가를 51달러로 보며 고평가라고 판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평가를 주장하려면, "이미 많이 올랐는데 왜 여전히 싸다는 거냐"는 반박을 정면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시장은 아직도 인텔을 '망한 CPU 회사'로 보고 있습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에는 대부분 AI GPU, HBM 메모리, AI 네트워크 같은 화려한 키워드에 프리미엄이 두껍게 붙어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그렇고, 브로드컴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인텔에게는 정반대의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AMD에게 점유율 뺏기는 회사", "AI 경쟁에서 한참 뒤처진 회사"라는 이미지입니다. 바로 이 이미지 때문에 인텔은 같은 반도체 기업인데도 평가 기준 자체가 박하게 적용돼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월가의 리서치를 들여다보면, 인텔을 바라보는 평가 기준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것입니다. 예전에는 인텔을 'CPU 회사'로 봤다면, 이제는 '미국 유일의 최첨단 파운드리'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한 줄의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CPU 회사로 보면 인텔은 쇠락하는 기업이지만, 미국 유일의 첨단 위탁생산 기업으로 보면 인텔은 국가 안보급 전략 자산이 됩니다.
진짜 변곡점은 '로드맵'이 아니라 '양산'입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18A 공정이 있습니다. 18A는 인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공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리본펫, 후면 전력공급 기술인 파워비아, 그리고 첨단 패키징 기술이 모두 집약돼 있습니다. 이 공정이 제대로 작동하면, 그동안 절대 못 따라간다고 여겨졌던 TSMC와 다시 경쟁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인텔은 늘 "내년에", "곧", "준비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로드맵만 화려했지 실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18A 공정으로 만든 노트북 CPU 팬서레이크가 실제로 출시됐고, 고코어 서버용 제온 6+ 역시 같은 공정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시장은 약속보다 실물 양산을 훨씬 높게 평가합니다. 거기에 더해 2026년 6월 16일 VLSI 심포지엄에서는 한 단계 개선된 18A-P 공정이 초기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고 공개됐습니다. 같은 전력에서 성능은 9퍼센트 올라가고, 같은 성능을 같은 전력으로 18퍼센트 아끼는, 명백한 진전입니다. 게다가 약속한 일정을 지켰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 회복의 신호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가장 강하게 밀어주는 반도체 회사입니다
다음으로 말씀드릴 것은 지정학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TSMC는 결국 대만 기업입니다. 자국 영토 안에 최첨단 생산 능력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미국에게,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인텔입니다. 그래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약 89억 달러를 들여 인텔 지분 9.9퍼센트를 직접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주가가 폭등하면서 이 지분 가치는 현재 600억 달러를 넘어, 미국 정부가 인텔의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정부가 특정 민간 기업의 주식을 이렇게 대규모로 사들이는 일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인텔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방증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26년 6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이 인텔과 함께 미국에서 칩을 만들겠다고 직접 발표했고, 주가는 그날 10퍼센트 넘게 뛰었습니다. 물론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애플은 인텔 18A-P를 플래그십이 아닌 보급형 칩에만 쓸 가능성이 크고, TSMC가 여전히 90퍼센트 이상을 책임집니다. 그러나 인텔에게 애플 수주의 진짜 의미는 당장의 매출이 아닙니다.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애플이 인텔 공정을 검증해 줬다는 '레퍼런스',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인텔과 칩 생산에 합의했고,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 xAI 합작으로 인텔 14A 공정을 쓰는 '테라팹' 단지를 텍사스에 짓기로 했습니다. 6월 초에는 폭스콘과도 랙스케일 AI 인프라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불과 1년 전 "아무도 안 맡긴다"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월가가 태세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월가의 평가에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입장 전환입니다. 적중률 높기로 유명한 비벡 아리아 애널리스트 팀은 6월 11일 인텔을 매도 의견에서 매수로 끌어올렸고, 6월 23일에는 목표가를 한 번 더 올렸습니다. 그 근거가 흥미롭습니다. 2030년이면 서버 CPU 시장이 1,700억 달러 규모로 커지는데, 그중 약 400억 달러, 그러니까 4분의 1을 인텔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AI 데이터센터는 GPU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GPU들을 제어하고 메모리와 네트워크를 묶어주는 CPU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CPU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골드만삭스 역시 목표가 150달러로 커버리지를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인텔은 대형 반도체 기업 가운데 기관 보유 비중이 유난히 낮은 편입니다. 쉽게 말해, 큰손들이 아직 '덜 산' 종목이라는 뜻입니다. 이 경우 펀더멘털이 조금만 개선돼도 기관들의 매수세만으로 주가가 재평가될 여지가 큽니다.
결국 인텔 한 주는 네 가지를 동시에 사는 것입니다
이제 저평가의 핵심 논리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인텔 투자자는 단순한 GPU 회사를 사는 게 아닙니다. 한 회사 안에서 네 가지를 동시에 갖는 것입니다. 첫째는 여전히 견조한 CPU 사업, 둘째는 200개가 넘는 노트북 디자인이 예정된 AI PC 최대 수혜, 셋째는 미국 유일의 최첨단 파운드리, 넷째는 미국 반도체 공급망 그 자체입니다. AI 가속기에서도 인텔은 엔비디아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대신, 저비용 추론용 칩 '크레센트 아일랜드'처럼 전력효율과 가격을 앞세운 영리한 우회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이 네 가지를 하나의 가격에 제대로 합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부문별 가치합산, SOTP 방식입니다. 인텔의 장부상 주당 순자산은 약 25달러인데, 보유한 전 세계 팹 네트워크의 실제 가치는 그보다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파운드리가 2027년까지 연매출 40억에서 50억 달러에 마진 개선 경로만 증명해도, 일부 셀사이드는 이 부문 하나만 300억에서 500억 달러 가치로 봅니다. 강세 모델인 TIKR은 2030년 말 적정주가를 237달러로 제시합니다. 지금보다 110퍼센트 더 높은 자리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리스크입니다
마지막으로, 균형을 위해 반대편도 분명히 짚어드리겠습니다. 인텔이 저평가라는 주장에는 무거운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첫째, 18A 공정이 계획대로 안정적인 수율을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파운드리 외부 고객이 실제 계약과 매출로 이어져야 합니다. 현재 완전히 확약된 외부 14A 고객은 아직 없고, 대부분 테스트와 평가 단계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셋째, 서버 CPU 시장에서 AMD와 Arm의 공세를 막아내야 합니다. 넷째, AI 추론 칩 전략이 실제 성과를 내야 합니다. 게다가 파운드리는 여전히 적자이고, 최근 1년 잉여현금흐름은 약 100억 달러 마이너스입니다. PER이 200배를 넘는 만큼, 파운드리 흑자 전환을 믿지 못한다면 현재 주가는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텔은 더 이상 '값싼' 주식이 아니라, 반도체 섹터에서 가장 비대칭적인 재평가 잠재력을 가진 종목입니다. 시장이 파운드리를 거의 공짜로 취급하는 지금의 격차, 그리고 정부 지분과 애플, 엔비디아, 테라팹으로 완성된 '미국 국가대표' 프레임이 맞물려, 파운드리가 손익분기에 다가서는 순간 컨센서스 목표가와 강세 시나리오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 빠르게 메워질 수 있습니다. 저평가는 곧 실행 리스크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 실행이 하나씩 확인될수록 재평가의 문은 더 크게 열릴 것입니다.
※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인텔처럼 변동성이 크고 현재 적자 상태인 종목은 손실 위험이 상당하므로, 모든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투자 전 반드시 본인의 투자 성향과 자금 상황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 189 |
| 19 | "애플이 -6%?!! 빅테크 망하나?", AI 인프라 버블, 정확히 언제 터지는지 알려드립니다
오늘 시장을 보신 분들은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그 견고하던 애플이 하루 만에 6% 넘게 빠졌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드디어 빅테크가 무너지는 건가? AI 버블이 터지는 신호인가?"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애플의 하락은 버블이 터진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버블이 아직 안 터졌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진짜로 터지는 시점은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그 "정확한 타이밍"을 데이터로 짚어드리겠습니다.
애플 -6%의 진짜 이유: 돈이 줄어서가 아니라, 수요가 미쳐서입니다
먼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애플은 어제(6월 25일)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일제히 올렸습니다. 모델에 따라 100달러에서 300달러까지 인상했죠. 이유는 단 하나, 메모리와 스토리지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입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메모리·스토리지 가격은 최근 세 분기 만에 무려 네 배로 뛰었습니다. 그 원인이 바로 AI 데이터센터입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쪽으로 생산이 쏠리면서, 일반 소비자용 메모리 공급이 말라버린 겁니다.
팀 쿡 CEO는 이 상황을 "100년에 한 번 오는 대홍수"라고 표현했습니다. 40년 넘게 업계에 있었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는 말이었죠. 애플은 그 비용을 더는 흡수할 수 없어서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했고, 시장은 "수요 파괴"를 우려하며 주가를 6% 넘게 끌어내렸습니다. 애플 입장에선 1년 만에 가장 큰 하락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핵심을 짚겠습니다. 애플이 가격을 올린 건 빅테크가 AI 투자를 줄여서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AI 투자가 너무 과열돼서 메모리 값이 폭등했고, 그 불똥이 애플의 노트북 가격으로까지 튄 겁니다. 즉 오늘의 애플 하락은 "AI 인프라 투자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애플 하락 = AI 버블 붕괴"라는 단순한 등식은 틀렸습니다. 버블은 아직 안 터졌습니다.
그럼 버블은 도대체 언제 터지나: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AI 인프라 버블은 언제 터질까요? 많은 분들이 "GPU가 남아돌면 끝난다"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그건 결과지 원인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로컬에서 AI를 구축해보며 확신하게 된 답은 이겁니다.
AI 인프라 버블은 GPU가 부족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GPU를 많이 넣어도 성능이 올라가지 않을 때" 끝납니다. 다시 말해, 돈으로 찍어누르는 방식의 효율이 떨어지는 순간이 진짜 변곡점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그 근거를 하나씩 쌓아 올리겠습니다.
지금이 어떤 단계냐: 700조 원을 쏟아붓는 '권력 경쟁'의 정점
먼저 현재 빅테크가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2026년 미국 5대 빅테크(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의 AI 설비투자(캐펙스)는 6천억 달러를 가뿐히 넘겨, 7천억 달러를 넘본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우리 돈으로 900조 원, 스웨덴 한 나라의 GDP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아마존만 해도 2천억 달러, 알파벳이 1,850억 달러 수준을 예고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리안츠 분석에 따르면 이들의 캐펙스 집약도, 즉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이 무려 34%에 달합니다. 1990년대 인터넷 붐의 정점이 15%였으니, 그 두 배가 넘는 겁니다. 더 충격적인 건 잉여현금흐름(FCF)입니다. 이들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이 35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그 꺾이는 각도가 현대 미국 상장사 역사상 가장 가파릅니다.
그런데 정작 돈은 못 벌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된 여러 기업 조사에서, 기업 AI 프로젝트의 95%가 측정 가능한 수익(ROI)을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술은 진짜인데, 사업적으로는 투자가 가정한 속도만큼 돈을 못 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죽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AI를 최상위 시스템 리스크로 지목했을 정도입니다.
그럼 빅테크는 왜 이렇게 무리하게 돈을 쏟을까요? 답은 "권력 경쟁"입니다. 지금은 ROI를 따질 때가 아니라 누가 먼저 컴퓨팅 인프라를 장악하느냐의 싸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래 플랫폼을 지배하려면 지금 무조건 선점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수익성보다 시장 지배력이 먼저입니다. 게임 이론으로 보면, 과소투자했다가 AI가 진짜 혁명이 되면 회사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으니, 차라리 과잉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계산입니다. 바로 이게 "돈으로 찍어눌러 권력을 키우는" 현재 단계입니다.
변곡점의 신호 ①: 화두가 '모델'에서 '컨텍스트'로 넘어갔습니다
자, 그런데 바로 이 "돈으로 찍어누르기"의 효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핵심입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는 공식이 단순했습니다. 더 큰 모델, 더 많은 GPU, 더 많은 데이터를 넣으면 성능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2026년 들어 해외 AI 업계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모델보다 좋은 컨텍스트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건 감이 아니라 검증된 사실입니다. 스탠퍼드와 삼바노바가 발표한 ACE 논문(ICLR 2026)을 보시죠. 컨텍스트를 고정된 설명서가 아니라 계속 진화하는 문서처럼 다뤘더니, 코딩 벤치마크에서 10.6%, 금융 추론에서 8.6% 성능이 올랐습니다. 결정적인 대목은 이겁니다. 컨텍스트를 잘 설계한 소형 오픈소스 모델이, 컨텍스트 설계 없이 돌린 최상위 독점 모델과 맞먹는 성능을 냈습니다. 같은 AI라도 환경만 잘 짜면 성능이 올라간다는 제 말이, 이렇게 학술적으로 증명된 겁니다.
더 강력한 근거도 있습니다. UC버클리에서 2026년 5월 발표한 논문 "모델 스케일링에서 시스템 스케일링으로"입니다.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은 명확합니다. 앞으로 AI 에이전트의 진보는 모델 자체를 키우는 게 아니라, 모델을 둘러싼 실행 시스템(하네스)을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하네스란 컨텍스트 관리, 메모리, 도구 연결, 작업 조율 같은 "환경"을 통째로 말합니다. 실제로 모델은 그대로 둔 채 도구 연결 방식만 다시 설계해도 벤치마크 점수가 크게 오른다는 사례(SWE-agent)가 보고됐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우리가 모델 점수라고 부르던 것이, 사실은 모델 더하기 환경 점수였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걸 부르는 이름입니다. 오픈AI는 "하네스 엔지니어링", 앤트로픽은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이라 부릅니다. 표현은 달라도 결국 같은 말입니다. 모델을 더 키우는 경쟁에서, 모델을 둘러싼 환경을 더 잘 설계하는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철학"이 바로 이겁니다.
변곡점의 신호 ②: 스케일링 법칙 자체에 한계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돈을 더 써도 효과가 줄어들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의 분석을 보면, 데이터 고갈, 폭발적 비용 증가, 감당 안 되는 전력 소비라는 세 가지 벽이 무차별 스케일링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형 모델 Phi-4(140억 파라미터)는 10배 큰 모델과 맞먹는 성능을 냈습니다. 2023년의 거대 모델 팰컨 180B는, 불과 1년 뒤 훨씬 작은 라마3 8B에게 추월당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두고 연구자들은 "스케일링의 느린 죽음"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2026년 선두 모델들은 이제 파라미터 수의 20%만으로 최전선 성능의 90%를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400개 넘는 모델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데이터를 아무리 늘려도 표준 법칙이 예측한 것보다 성능 개선이 더 빨리 둔화되는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한마디로, 수십억 달러를 추가로 부어도 향상폭은 예전만 못합니다. 추론 비용과 전력은 계속 늘어나는데 성능은 천천히 오르는, 전형적인 수확체감이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캐펙스는 정확히 언제 줄어드나: 지켜봐야 할 선행지표
이제 가장 궁금하실 타이밍입니다. CFO의 머릿속을 상상해보시죠. 100억 달러를 더 부어야 성능이 5% 오르는데, 컨텍스트 엔지니어링과 에이전트 설계로 같은 효과를 더 싸게 낼 수 있다면, "굳이 GPU를 더 사야 할 이유가 뭐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이 이사회에서 공식화되는 순간, 캐펙스 증가율은 꺾입니다.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빅테크 캐펙스 증가율은 2026년 51%에서, 2027년 13%, 2028년 약 5%로 급격히 둔화될 전망입니다. 시킹알파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투자는 2027년 크게 둔화될 가능성이 높고, 주요 CEO들조차 지속 불가능한 투자와 전력 제약, 불확실한 ROI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한발 더 나아가, 투자금이 'AI 인프라주'에서 'AI 플랫폼·생산성 수혜주'로 이동하는 로테이션 신호를 짚었습니다. 돈이 "찍어누르기(인프라)"에서 "잘 활용하기(철학·응용)"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켜봐야 할까요? 맥킨지가 꼽은 두 가지 선행지표입니다. 첫째는 데이터센터 공실률입니다. 지금은 1~2% 수준으로 과잉건설이 없지만, 2001년 광섬유 거품 때는 20%를 넘었습니다. 공실률이 5%를 넘겨 지속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그게 경고등입니다. 둘째는 캐펙스 대비 매출 비율입니다. 2026년 45~57%에서 2027년 AI 클라우드 매출이 커지며 하락 전환할 거라는 전망인데, 이 전환이 예상보다 늦어지면 투자 피로감이 본격화됩니다. 이 두 지표를 분기마다 체크하시면, 남들보다 먼저 변곡점을 잡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애플을 태그한 이유: '철학'으로 먼저 움직인 회사
마지막으로 왜 제목에 애플을 걸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애플은 GPU 경쟁을 가장 적게 하는 빅테크입니다. 거대 모델을 직접 짓거나 천문학적 인프라를 쌓는 대신, 외부 모델과의 파트너십, 온디바이스 AI, 프라이버시 중심 통합, 그리고 24억 대에 달하는 기존 디바이스 생태계 활용이라는 길을 택했습니다. "돈으로 찍어누르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말 그대로 철학적 차별화입니다.
단기적으로는 "AI에서 뒤처졌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WWDC에서 새 시리를 발표했지만 시장은 기대에 못 미친다며 주가로 응징했죠.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AI 경쟁의 본질이 "누가 GPU를 많이 가졌는가"에서 "누가 사용자의 컨텍스트를 가장 잘 활용하는가"로 이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애플의 전략은 완전히 재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캐펙스 과열이 진정되고 효율과 철학이 진짜 경쟁력이 되는 국면에서, 가장 적게 태우면서 가장 깊은 생태계를 가진 회사가 누구인지 다시 보게 될 겁니다.
정리하며
오늘의 결론입니다. AI 인프라 버블은 GPU가 남아돌아서 터지는 게 아닙니다. "돈을 더 쓰는 것보다, 더 똑똑하게 쓰는 것이 성능을 더 올린다"는 사실에 시장이 공감하는 순간, 그때가 변곡점입니다. 그 이후 경쟁은 GPU 숫자에서 컨텍스트, 워크플로우, 에이전트, 메모리, 즉 생태계 설계라는 '철학'으로 옮겨갈 겁니다.
본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모든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142 |
| 20 | 삼성·SK하이닉스 호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앞으로 일주일이 분수령입니다
지금 시장이 가장 뜨겁게 주목하는 호재는 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 즉 호남 지역에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안입니다. 단순한 지역 개발 뉴스가 아니라, 수도권과 충청에 집중돼 있던 우리나라 반도체 지도를 호남으로 확장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거대한 그림이 발표될 일정이 바로 다음 한 주 안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주일이 이 테마의 진짜 분수령이 되겠습니다.
핵심은 일정입니다, 일주일간 이벤트가 연쇄 대기 중입니다
가장 강력한 포인트부터 짚어드리겠습니다. 이번 이슈가 단발성 테마와 다른 이유는, 재료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6월 19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회동했고, 6월 25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습니다. 두 차례 면담 모두 29일 회의를 앞둔 막판 조율 성격으로 해석되죠. 그리고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토공간 대전환, 지방균형국가'를 주제로 한 민관 합동 대국민 보고회가 열립니다. 이 자리에는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등 주요 기업 경영진이 직접 참석합니다.
바로 다음 날인 6월 30일에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산업통상부가 주최하는 '서남권 발전 포럼'이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투자 협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날 최태원 회장이 광주를 직접 찾아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묶은 '호남권 AI 밸리' 구상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7월 1일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공식 출범하고, 7월 2일에는 이재용 회장이 충남 아산에서 지방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리하면, 25일 총수 회동, 29일 청와대 회의, 30일 광주 협약과 SK 발표, 7월 1일 특별시 출범, 7월 2일 삼성 발표까지, 이벤트가 하루 간격으로 이어집니다. 각 단계마다 재료가 다시 점화되는 구조라는 점,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후공정'이 아니라 '전공정 본진'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사안에서 시장을 더 흥분시킨 결정적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력과 용수, 인력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후공정, 즉 패키징 공장 중심의 투자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서는 그 무게추가 메모리 반도체 전공정 생산라인, 다시 말해 팹(Fab)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전공정 공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단순 조립 라인이 아니라 반도체 신규 공장의 '본진'이 호남에 구축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달라지죠. 현재 알려진 바로는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전공정 공장을,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과 함께 충남 아산에 AI 데이터센터를 추진하는 구도입니다.
투자 규모도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팹 한 기를 짓는 데 들어가는 건설과 설비투자 비용은 약 30조에서 40조 원, 장비와 환율, 물가 상승까지 고려하면 많게는 150조 원까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삼성과 SK 두 회사의 합산 투자 규모는 최소 300조 원에서 최대 400조 원 수준으로 거론됩니다. 참고로 최태원 회장은 앞서 "2050년까지 용인 클러스터 4기를 짓는 데 600조 원이 들어간다"고 추산한 바 있어, 이번 호남 투자의 잠재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정부 의지는 '검토'를 넘어 '기정사실화'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추진 동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4일 관훈토론회에서 "논의 마무리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건설 중인 경기 용인 클러스터를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2 클러스터가 추가되는 개념"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기존 투자를 옮기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더해지는 투자, 즉 순증이라는 점에서 호재의 성격이 한층 강해지는 대목입니다.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SK하이닉스가 2044년에 짓기로 했던 것을 2034년으로 10년 앞당겼는데, 호남은 그보다 더 당겨야 한다"며 "2048년까지 계획돼 있던 삼성도 2034년에서 2035년까지 당겨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여기에 제도적 뒷받침도 확실합니다. 오는 8월 시행 예정인 반도체 특별법에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한 클러스터 지원 방안과 인허가 특례가 담겨 있어, 기업의 지방 투자를 유도하는 법적 근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유력 후보지 첨단3지구, 강점은 '즉시성'입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광주 북구와 전남 장성군에 걸쳐 조성 중인 첨단3지구입니다. 면적은 362만 제곱미터, 약 110만 평 규모의 일반산업단지로, AI 기반 과학기술 창업단지와 연구산업복합단지 조성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바로 지을 수 있다'는 즉시성입니다. 광주과학기술원 GIST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같은 연구개발 인프라가 밀집해 있고, 정부가 추진하는 첨단 패키징 실증센터와의 연계 가능성도 큽니다. 호남고속도로와 국도 13호선 등 교통망도 잘 갖춰져 있죠. 무엇보다 대규모 변전소가 이미 설치돼 있어 전력 공급이 즉시 가능하고, 후공정 기업인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대만 TSMC 수주 물량 증가로 광주 공장 증설에 1조 원 규모 투자를 확정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3개 단지, 4천여 가구의 첫 입주가 10월로 예정돼 있어 주거와 연구, 산업이 결합한 자족형 신도시 면모도 갖춰가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첨단3지구에 1차로 약 16만 5천 제곱미터, 5만 평 부지를 확보하고, 인근 장성까지 넓혀 반도체 산단으로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규모 전력과 부지가 필요한 전공정 팹의 경우, 해남 솔라시도도 후보로 함께 거론되는데, 이곳은 이미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에 삼성SDS 컨소시엄이 확정되며 후보지로 정해진 바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 수혜주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본체보다 수혜주를 먼저 반영하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월 24일을 기준으로 호남 기반 종목들이 강력한 수급을 받았습니다.
광주·전남 기반 건설사인 금호건설이 29.89퍼센트 오른 4,845원에 상한가를 기록했고, 우선주도 함께 29.93퍼센트 급등했습니다. 같은 지역 건설사 남화토건은 30퍼센트 오른 5,980원에 상한가를 쳤고, 계열사인 남화산업도 동반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대규모 팹과 인프라 건설의 직접 수혜 기대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가장 화제가 된 종목은 소주 회사 보해양조입니다. 전남 장성과 해남에 대규모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18일부터 24일까지 5거래일 연속 급등해 1,400원대에서 3,95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한국거래소가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는데도 상한가로 직행할 만큼 투기적 매수 심리가 강했습니다. 이 밖에 지역 유통·소비주인 광주신세계가 인구 유입과 소비 증가 기대로 상한가를 기록했고, 서암기계공업이 30퍼센트, 동양파일이 29.92퍼센트, 모헨즈와 와토스코리아도 동반 급등했습니다. 반도체 소재로 사업을 확장한 브이원텍도 30퍼센트 강세를 보였습니다.
펀더멘털, 즉 업황이 받쳐준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이번 테마가 단순한 정책 모멘텀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든든한 업황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4월 세계 최초로 양산한 HBM4 매출이 10억 달러, 우리 돈 약 1조 5천억 원을 돌파했고, 올해 1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최태원 회장도 "메모리 병목 현상이 2030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며, 앞으로 5년간 웨이퍼 기준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AI GPU와 HBM, AI 서버 수요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새로운 생산거점 확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발표 당일 삼성전자는 5.29퍼센트 오른 35만 8,500원, SK하이닉스는 10.66퍼센트 오른 285만 5천 원으로 강세를 보였고, SK하이닉스는 다음 달 10일 미국 ADR 상장을 통해 45조 원 조달도 추진 중입니다.
다만, 균형 잡힌 시각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호재가 분명한 만큼, 냉정하게 짚어야 할 부분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기업 측 입장은 여전히 신중합니다. 삼성과 SK 모두 "공장 규모와 가동 시점 등이 아직 유동적"이라는 입장이고, 추진이 공식화되더라도 실제 공장 가동까지는 10년에서 20년의 장기 시계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둘째, SK하이닉스의 부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도 검토하고 있어, "이번 프로젝트의 열쇠는 SK하이닉스가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셋째, 급등한 특징주 대부분은 직접적인 사업 연관이 아니라 지역·부동산 기반 기대감으로 움직였습니다. 실제 투자와 입지 선정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대감만으로 단기 급등한 만큼, 투자경고나 거래정지 같은 변동성 리스크가 함께 따라온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하셔야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 AI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노리는 상징적 프로젝트입니다. 정부와 기업, 지역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발표 일정까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추진 동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다만 최종 규모와 부지, 일정은 아직 공식 확정 전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의 주가 급등에는 상당한 기대감이 선반영돼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청와대 회의와 광주 발표에서 어떤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는지 차분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13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