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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iff: A Global Steel War Heats Up With Trump’s Latest Tariff Mov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내 철강 도시들의 쇠퇴를 되돌리겠다고 주장하면서 광범위한 수입 관세를 부과하고 나섰다. 미국은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후 1시를 기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일제히 적용되는 25% 관세를 시행했다.
자국내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다. 한국과 베트남도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지역내 철강 산업을 위한 안전 조치들을 강화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더 많은 철강 산업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타깃은 지난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수출 실적을 기록한 중국이다. 전 세계 철강업체들이 느끼고 있는 위험은 트럼프의 관세가 업계의 공급 과잉 문제를 악화시켜, 수요가 부진한 현 시점에 생산자들과 정부들에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
15년 넘게 철강 업계를 추적해 온 컨설팅 업체 Kallanish Commodities 애널리스트 Tomas Gutierrez는 “미국으로의 장벽이 생긴다면, 이 중 적어도 일부는 최소 단기적으로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라면서 “더 많은 공장들이 다른 시장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은 세계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이다.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은 철강 산업을 열망하며, 이미 19세기부터 보호주의의 대상이 됐다. 트럼프를 비롯해 정치인들에게 철강은 오늘날까지 자국 제조업의 힘의 상징이다.
오늘 발효된 트럼프의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한 25% 관세는 교역국들에게 아무런 면제 없이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이번 조치는 2015-2016년 이후 가장 광범위하며, 자동차 제조에서 인프라 구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비용을 끌어올려 철강에 의존하고 있는 어려움에 처한 업종들에서 일자리 감소 등을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 이전의 움직임이 선별적인 타깃을 목표로 했다면, 이번 조치는 포괄적인 수단들을 사용해 더 많은 양의 철강과 주요 무역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철강 생산자들은 중국과 다른 지역의 과잉 공급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장으로 더욱 유입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 지역의 철강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EU 철강 생산 업계를 대표하는 조직인 Eurofer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1기에는 미국에 도착하지 않은 철강 3톤마다 2톤씩이 유럽에 도착했다.
사무총장 Axel Eggert는 지난주 브뤼셀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이 현재 예외 조건하에 수입하고 있는 1800만 톤의 철강 제품은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열려있는 시장, 즉 EU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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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Goldman Sachs Says US Credit Spreads Will Get a Lot Wider
골드만삭스 그룹의 스트래티지스트들은 관세 리스크와, 백악관이 단기적인 경기 침체를 용인할 의사를 갖고 있다는 신호 등을 이유로 미국 크레딧 스프레드 전망치를 대폭 상향조정했다.
이들은 현재 미국 투자등급 채권의 스프레드가 3분기 중 125bp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전 추정치는 84bp였다. 또한 하이일드 채권의 스프레드는 같은 기간 440bp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전 전망치는 295bp였다.
화요일 블룸버그 지수에 따르면, 미국 투자등급의 크레딧 스프레드는 94bp로 확대돼 지난해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이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주식과 회사채에 매도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그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요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전환기”에 직면했다고 발언하면서 그러한 우려가 더욱 심화됐다. 이번주에는 그가 경기 침체 발언에 대한 의미를 희석하려 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확실히 말하자면, 스프레드가 경기 침체 수준까지 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로트피 카루이(Lotfi Karoui)외 여러 골드만삭스 크레딧 스트래티지스트들이 3월 11일자 노트에서 지적했다. “오히려 당사는 이것을 매크로 변동성 확대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 재조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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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Walmart Wants to Be Something for Everyone in a Divided America
미국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의 CEO 더그 맥밀런은 지난 50년간 대통령들과 협력해 온 전통을 이어갔다. 트럼프 첫 임기 동안에도 팬데믹 시기 마스크·장갑 배포와 매장 주차장을 검사 장소로 제공하며 협조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월마트의 철칙인 가운데, 맥밀런은 트럼프의 일부 조치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2017년 샬러츠빌 백인우월주의 폭력사태 당시 트럼프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하며 “그는 국가를 하나로 모을 기회를 놓쳤다”고 했고, 2021년 의사당 폭동 때는 “허구의 선거 사기 주장이 국민을 갈라놓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난 11월 5일 재선에 성공하자, 맥밀런의 태도는 유화적으로 변했다. 같은 달, 월마트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일부를 축소한다고 발표해 논란을 낳았다(월마트는 이 조정이 대선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이후 맥밀런은 트럼프의 마러라고를 방문한 기업인 대열에 동참하며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트럼프 취임식에도 참석했는데, 엘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인사들이 앉은 VIP 구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소매업체 CEO가 ‘노쇼’를 선택하기엔 득이 될 일이 없었다.
월마트는 트럼프 관련 상품도 판매한다. “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 “Trump 2028 I’ll Be Back” 타월 등은 월마트의 제3자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맥밀런이 2014년 CEO 취임 후 월마트를 ‘인터넷 문외한 공룡’에서 디지털 강자로 탈바꿈시킨 결과다. 4년 전만 해도 월마트는 전자상거래에서 뒤처졌지만, 이제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광고 비즈니스(Walmart Connect), 유료 구독서비스(Walmart+) 등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인 90%가 월마트 매장 10마일 안에 거주하기에 ‘당일 배송’도 손쉽다.
맥밀런은 ‘언제나 저렴한 가격’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부유층 고객을 공략하려 애썼다. 2021년부터 4,600여 개 매장 중 2,000곳을 개조해 밝은 조명과 널찍한 통로를 도입했고, 2022년에는 프리미엄 자체브랜드 라인을 출시했다. 패션 분야에서는 디자이너 브랜든 맥스웰과 협업해 고급 의류도 선보였다. 이는 타깃(Target)을 벤치마킹한 전략으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임원 중 일부는 타깃 출신이다.
가장 대담한 변화는 인재 유치 방식이다. 월마트 경영진은 과거 절약정신을 강조하며 낡은 본사에서 근무했지만, 이제는 350에이커 규모의 구글 캠퍼스급 신사옥을 건설 중이다. 완공되면 친환경 사무동, 명상실, 피클볼 코트, 힙한 상점·식당가가 들어선다. 이는 아칸소주 벤턴빌을 ‘오스틴 혹은 실리콘밸리’ 같은 분위기로 바꾼 지역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월마트는 전자상거래 규모에서 아마존에 이어 세계 2위(이마케터 추산)로 올라섰고, 작년 주가는 72% 급등하며 코스트코, 크로거, 타깃을 앞질렀다. 경영 컨설턴트 램 차란은 맥밀런을 “조용히 회사를 고성장 엔진으로 바꾼 인물”이라며 “노벨상 감”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트럼프 재집권으로 월마트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대규모 추방정책, 관세 부과, 고립주의 강화는 월마트의 다국적 공급망과 “최저가” 전략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맥밀런은 “우리는 관세 속에서도 사업을 잘 해냈다”고 자신하지만, 지난 2월 실적 전망은 글로벌·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대를 밑돌았다. 푸드스탬프(SNAP) 정책 변화도 월마트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맥밀런은 월마트를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로 포장하려 애쓴다. “국가가 잘돼야 월마트도 성장한다”는 그의 말은 월마트의 오랜 홍보 전략이기도 하다. 그는 곧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의 낡은 사무실을 떠나 새 본사로 이전한다. 월튼이라면 10억 달러 규모 신사옥이나 부유층 공략을 납득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맥밀런의 월마트”다. 그는 과거 실패담을 떠올리며 교훈을 강조한다. 예컨대, 잘못된 미식축구공 디자인으로 재고를 할인 처분한 일을 언급하며 “디테일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월마트는 갈라진 미국에서 여전히 “모두의 무언가”가 되려 하지만, 정치적·경제적 격변 속에서 맥밀런의 균형 감각이 시험대에 올랐다. 새 본사 3층 사무실에서 그는 더 나은 풍경을 바라보며, 월마트의 미래를 그릴 것이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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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Korea’s New FX Rules Renew Calls for More Fundamental Changes
외환수급 불균형 완화를 위한 이번 정부의 신규 조치는 단기적인 안정성을 가져다줄 뿐이며,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환당국이 이번에 내놓은 ‘외환수급 개선을 위한 추가 방안’에는 금융기관의 對기업 외환파생상품거래를 통한 위험헤지비율을 125%로 확대,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의 “김치본드” 매입 허용, 외국인 채권투자자에 대한 서류 간소화 등이 포함됐다.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고 해외 투자를 늘리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원화자산 수요 역시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규모는 2024년에 1.1조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이번 조치는 이같은 추세를 일부 반전시키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외환거래 주체들에게 심리적 안전판을 제공하고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외환시장 내 수급 흐름 자체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포함됐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특히 주식에 대한 국내 투자를 더 신중하게 고려하도록 하는 유도방안도 마련됐다. 국내 투자형 ISA에 대한 국내주식 의무투자 비율을 법정 한도인 40% 보다 상향하는 방안이다.
우리은행의 민경원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제도 개선이 정부가 지적한 외환수급 불균형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과 국내 거주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라며 해외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더 나은 산업 정책과 기업 지원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DB금융투자의 문홍철 연구원 역시 “근본적인 경제 체질”의 변화 없이는 원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의 제한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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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daq down 3.83% overnight. Korea futures opening at -2.8%.
Me? Just sipping my coffee, pretending it's all part of the p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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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stor Positioning: Bond Market’s Trump Trade Is Looking Like a Recession Play
채권 트레이더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한 관세 도입혼란과 연방정부의 인력 감축이 성장 둔화를 더욱 부추기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침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경기 확장을 위해 부양책을 쏟아부음으로써 미국채 금리 상승 압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추측은 대통령 취임 두 달이 채 안돼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대신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경기 악화를 막기 위해 빠르면 5월부터 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이라는 기대로 단기 국채를 매수하고 있다. 이에 2년물 미국채 금리는 2월 중순 이후 크게 하락했다.
TD 증권의 미국 금리 전략 책임자 Gennadily Goldberg는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가 다시 가속화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곤했는데, 지금은 갑자기 리세션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시장은 성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채권시장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미국밖 해외의 성장 둔화둔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놀랍게도 경제가 견조하다는 것이 주요 원동력이었다. 처음에는 대선 결과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라고 투자자들이 당초 생각했기 때문에 ‘트럼프 트레이드’의 기둥인 성장 가속화와 인플레이션 전망을 배경으로 채권 금리가 지난해 말 급등했다.
그러나 2월 중순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큰 불확실성을 가져옴에 따라 미국채 금리가 하락중이다. 단기채를 중심으로 금리가 하락하고 일드커브는 스티프닝됐다. 이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정책 완화에 착수할 것이라는 기대속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으로,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쇼크를 가져오며 세계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로인해 지난주 증시 매도세가 일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인상 발효를 다시 연기한 후에도 주가 하락은 계속됐다. 연방정부의 연방기관에 대한 자금 지원 자제 노력과 수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하는 행정부 노력도 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
블랜디 와인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Tracy Chen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순서, 즉 우선 관세 인상 후 감세가 뒤따르는 것으로 인해 불황 리스크가 분명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채권 트레이더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경기 침체에 대비해 여러 차례 준비를 해 왔지만, 실제로 경제가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타격을 입었었다. 지금은 연내에 3차례에 걸쳐 25bp씩의 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연준이 경기 침체 대응 모드에 들어갔다고 보기에 충분하지 않다. 파월 연준 의장은 7일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통화 완화책을 서둘러 재개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번 주 발표되는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2.9% 상승하여 미국 금융당국의 2% 목표를 웃돌 전망이며, 인플레이션 지표가 채권금리에 상승 압력을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애틀랜타 연준의 예측 모델 ‘GDP 나우’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3월(1분기)에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는 등 경기 둔화 징후가 꾸준히 쌓이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7일 발표한 2월 고용 통계에서는 고용 증가세가 견조한 모습을 보였지만 노동 시장이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타났다. 연방 정부의 고용 감소 속에 파트타이머가 급증했다.
채권 시장의 방향성은 향후 수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어떻게 모양을 갖출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7일, 정부 정책에 따라 경제에 혼란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 인정했지만 장기적 전망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블랜디 와인의 Chen은 “관세 전쟁에 앞서, 시장에서는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것은 큰 변화다”라고 말했다.
- 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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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Iran-Contra Paved the Way for Trump to Defy Democratic Norms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워터게이트만큼의 파급력과 기억도를 얻지는 못했다. 워터게이트처럼 극적인 대통령의 악행과 사임이 뒤따른 것도 아니었고,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역사 애호가나 시민 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앨런 맥퍼슨의 새 책 『The Breach』는 그런 통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콘트라는 냉전 말기의 해프닝이나 단순한 안보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2019년 트럼프 첫 탄핵 국면을 지켜보며 이란-콘트라에 다시 집중했고, 트럼프 2기 초기가 지나면서 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부패와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 등은 최근 벌어지는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이란-콘트라는 사실상 두 개 스캔들의 결합체다. 첫째, “이란”은 인질을 석방시키려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판매한 일이다. 미국은 인질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에 무기를 파는 건 금지였으며, 그나마도 효과가 없었다. 둘째, “콘트라”는 니카라과 반군에게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한 사건으로, 의회가 반군 지원을 막는 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어겼다.
의회와 법률을 무시하려면 비밀스러운 구조가 필요했고, 이는 정상적인 정부 관료제 대신 백악관 측근과 민간 인사들이 주도했다. 맥퍼슨은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더 엔터프라이즈”라는 민간회사가 무기 판매 수익 일부를 챙겼고, 반군 지원 자금 역시 뒷거래나 모금 행사로 걷혔는데,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100명 넘는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물러났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일행정부 이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는 해석으로, 의회나 독립 관료제의 견제를 무시하는 논리다. 이란-콘트라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된 대표 사례였다. 레이건은 관료와 국회를 우회하며 소수 측근으로 정책을 몰아갔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나중에 법률 자문을 받거나, 문서를 파쇄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레이건이 어느 정도까지 무기 판매 대금을 반군에 전용하는 ‘디버전’을 알았는지는 끝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인질과 무기 교환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결국 청문회와 수사, 재판으로 수년간 소동이 이어졌으나, 최종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스캔들 규모에 비해 형사처벌은 미미했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혁하거나 의회 견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맥퍼슨은 이를 “민주주의가 이런 전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반대 메시지를 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고,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후 정치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실무자 다수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 후속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권력 집중과 은밀한 안보 작전을 주도했다. 대통령 사면권과 같은 제도도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기관이나 관료제가 의회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두 시점을 똑같이 놓기는 어렵고, 레이건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란-콘트라는 현재 상황의 서막”이라는 맥퍼슨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이 스캔들이 보여준 행태와, 지금 벌어지는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 관료 배제, 의회 약화, 사실 왜곡, 공공자원 사유화 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콘트라는 “이런 식의 불법과 은폐를 민주주의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탈 없다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1992년 테드 드레이퍼가 말했듯, “미국 헌정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는 이란-콘트라 이후 정치인들이 무리수를 둬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건 주동자들이 처벌은커녕 이후 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이다. 일부는 사면을 받고, 일부는 보수 진영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무부에서도 젊은 보수 변호사들이 성장해 이후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려 했고, 딕 체니 같은 인사는 의회에서 사건을 방어함으로써 자신과 동조자들의 권력 강화 노선을 뒷받침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법 해석을 비밀리에 비틀어 고문을 합리화하거나 영장 없는 도청을 수행했고, 여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면서 사익이 개입될 여지도 늘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란-콘트라가 경고한 세상에 접어든 형국이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과 권력을 나누며, 의회는 옆길로 밀려나고, 관료들은 무력화된다. 책임 추궁이 이뤄질 장은 법원뿐이지만, 대법관 다수가 레이건 또는 부시 행정부 출신이고, 이들은 작년 7월 대통령의 공적 권한 사용 범죄에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란-콘트라가 우리 현재의 전조였다는 맥퍼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그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런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놓쳤고, 반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선례가 남았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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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일행정부 이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는 해석으로, 의회나 독립 관료제의 견제를 무시하는 논리다. 이란-콘트라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된 대표 사례였다. 레이건은 관료와 국회를 우회하며 소수 측근으로 정책을 몰아갔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나중에 법률 자문을 받거나, 문서를 파쇄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레이건이 어느 정도까지 무기 판매 대금을 반군에 전용하는 ‘디버전’을 알았는지는 끝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인질과 무기 교환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결국 청문회와 수사, 재판으로 수년간 소동이 이어졌으나, 최종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스캔들 규모에 비해 형사처벌은 미미했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혁하거나 의회 견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맥퍼슨은 이를 “민주주의가 이런 전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반대 메시지를 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고,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후 정치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실무자 다수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 후속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권력 집중과 은밀한 안보 작전을 주도했다. 대통령 사면권과 같은 제도도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기관이나 관료제가 의회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두 시점을 똑같이 놓기는 어렵고, 레이건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건 전개 속도나 최종 결과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란-콘트라는 현재 상황의 서막”이라는 맥퍼슨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이 스캔들이 보여준 행태와, 지금 벌어지는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 관료 배제, 의회 약화, 사실 왜곡, 공공자원 사유화 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콘트라는 “이런 식의 불법과 은폐를 민주주의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탈 없다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1992년 테드 드레이퍼가 말했듯, “미국 헌정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는 이란-콘트라 이후 정치인들이 무리수를 둬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건 주동자들이 처벌은커녕 이후 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이다. 일부는 사면을 받고, 일부는 보수 진영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무부에서도 젊은 보수 변호사들이 성장해 이후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려 했고, 딕 체니 같은 인사는 의회에서 사건을 방어함으로써 자신과 동조자들의 권력 강화 노선을 뒷받침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법 해석을 비밀리에 비틀어 고문을 합리화하거나 영장 없는 도청을 수행했고, 여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면서 사익이 개입될 여지도 늘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란-콘트라가 경고한 세상에 접어든 형국이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과 권력을 나누며, 의회는 옆길로 밀려나고, 관료들은 무력화된다. 책임 추궁이 이뤄질 장은 법원뿐이지만, 대법관 다수가 레이건 또는 부시 행정부 출신이고, 이들은 작년 7월 대통령의 공적 권한 사용 범죄에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란-콘트라가 우리 현재의 전조였다는 맥퍼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그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런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놓쳤고, 반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선례가 남았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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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Iran-Contra Paved the Way for Trump to Defy Democratic Norms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워터게이트만큼의 파급력과 기억도를 얻지는 못했다. 워터게이트처럼 극적인 대통령의 악행과 사임이 뒤따른 것도 아니었고,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역사 애호가나 시민 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앨런 맥퍼슨의 새 책 『The Breach』는 그런 통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콘트라는 냉전 말기의 해프닝이나 단순한 안보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2019년 트럼프 첫 탄핵 국면을 지켜보며 이란-콘트라에 다시 집중했고, 트럼프 2기 초기가 지나면서 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부패와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 등은 최근 벌어지는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이란-콘트라는 사실상 두 개 스캔들의 결합체다. 첫째, “이란”은 인질을 석방시키려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판매한 일이다. 미국은 인질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에 무기를 파는 건 금지였으며, 그나마도 효과가 없었다. 둘째, “콘트라”는 니카라과 반군에게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한 사건으로, 의회가 반군 지원을 막는 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어겼다.
의회와 법률을 무시하려면 비밀스러운 구조가 필요했고, 이는 정상적인 정부 관료제 대신 백악관 측근과 민간 인사들이 주도했다. 맥퍼슨은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더 엔터프라이즈”라는 민간회사가 무기 판매 수익 일부를 챙겼고, 반군 지원 자금 역시 뒷거래나 모금 행사로 걷혔는데,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100명 넘는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물러났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단일행정부 이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단독으로 통제한다는 해석으로, 의회나 독립 관료제의 견제를 무시하는 논리다. 이란-콘트라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된 대표 사례였다. 레이건은 관료와 국회를 우회하며 소수 측근으로 정책을 몰아갔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나중에 법률 자문을 받거나, 문서를 파쇄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레이건이 어느 정도까지 무기 판매 대금을 반군에 전용하는 ‘디버전’을 알았는지는 끝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인질과 무기 교환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결국 청문회와 수사, 재판으로 수년간 소동이 이어졌으나, 최종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스캔들 규모에 비해 형사처벌은 미미했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구조를 개혁하거나 의회 견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맥퍼슨은 이를 “민주주의가 이런 전횡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반대 메시지를 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편법을 쓸 수 있고,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책임을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후 정치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실무자 다수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 후속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권력 집중과 은밀한 안보 작전을 주도했다. 대통령 사면권과 같은 제도도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기관이나 관료제가 의회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두 시점을 똑같이 놓기는 어렵고, 레이건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건 전개 속도나 최종 결과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란-콘트라는 현재 상황의 서막”이라는 맥퍼슨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이 스캔들이 보여준 행태와, 지금 벌어지는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 관료 배제, 의회 약화, 사실 왜곡, 공공자원 사유화 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콘트라는 “이런 식의 불법과 은폐를 민주주의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탈 없다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1992년 테드 드레이퍼가 말했듯, “미국 헌정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는 이란-콘트라 이후 정치인들이 무리수를 둬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사건 주동자들이 처벌은커녕 이후 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이다. 일부는 사면을 받고, 일부는 보수 진영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무부에서도 젊은 보수 변호사들이 성장해 이후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려 했고, 딕 체니 같은 인사는 의회에서 사건을 방어함으로써 자신과 동조자들의 권력 강화 노선을 뒷받침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 법 해석을 비밀리에 비틀어 고문을 합리화하거나 영장 없는 도청을 수행했고, 여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면서 사익이 개입될 여지도 늘어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란-콘트라가 경고한 세상에 접어든 형국이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과 권력을 나누며, 의회는 옆길로 밀려나고, 관료들은 무력화된다. 책임 추궁이 이뤄질 장은 법원뿐이지만, 대법관 다수가 레이건 또는 부시 행정부 출신이고, 이들은 작년 7월 대통령의 공적 권한 사용 범죄에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란-콘트라가 우리 현재의 전조였다는 맥퍼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그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런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놓쳤고, 반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선례가 남았다. 이것이 결국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워터게이트만큼의 파급력과 기억도를 얻지는 못했다. 워터게이트처럼 극적인 대통령의 악행과 사임이 뒤따른 것도 아니었고,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역사 애호가나 시민 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앨런 맥퍼슨의 새 책 『The Breach』는 그런 통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콘트라는 냉전 말기의 해프닝이나 단순한 안보정책 실패 사례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2019년 트럼프 첫 탄핵 국면을 지켜보며 이란-콘트라에 다시 집중했고, 트럼프 2기 초기가 지나면서 그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란-콘트라가 보여준 “부패와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 등은 최근 벌어지는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이란-콘트라는 사실상 두 개 스캔들의 결합체다. 첫째, “이란”은 인질을 석방시키려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판매한 일이다. 미국은 인질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에 무기를 파는 건 금지였으며, 그나마도 효과가 없었다. 둘째, “콘트라”는 니카라과 반군에게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한 사건으로, 의회가 반군 지원을 막는 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어겼다.
의회와 법률을 무시하려면 비밀스러운 구조가 필요했고, 이는 정상적인 정부 관료제 대신 백악관 측근과 민간 인사들이 주도했다. 맥퍼슨은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더 엔터프라이즈”라는 민간회사가 무기 판매 수익 일부를 챙겼고, 반군 지원 자금 역시 뒷거래나 모금 행사로 걷혔는데,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100명 넘는 관료가 부패 의혹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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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여러 조사—대통령 직속 위원회, 의회의 합동 청문회(텔레비전 생중계), 독립 검사, 형사 재판—가 진행됐지만, 백악관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기밀을 해제하지 않거나, 필요 최소한의 협조만 했다. 증언이 강제되거나 면책 거래가 이뤄졌을 때, 관련자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티기도 했다.
결국 이 장기적·복잡한 수사가 스캔들 열기를 서서히 식혔고, 레이건 지지율이 급락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큰 손실 없이 넘어갔다. 부통령 조지 H.W. 부시는 “나는 상황을 잘 몰랐다(not in the loop)”고 주장해 1988년 대선에서 쉽게 승리했다. (그는 실제론 이란 거래에 대해 “나는 이 디테일을 충분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 일기에 적었으며, 1985년엔 반군 지원을 위해 온두라스에 “인센티브”를 제시하러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란-콘트라 이후, 의회가 행정부를 보다 확실히 견제하도록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0년 정보법(Intelligence bill)에서 “의회에 ‘적시에(timely)’ 알린다는 것의 정의를 48시간 이내 보고로 한다” 정도의 사소한 수정이 있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서명하지 않았다.
형사 책임 문제도 흐지부지 끝났다. 위증(perjury) 혐의로 유죄 인정한 몇몇 인물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지역사회 봉사명령 같은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올리버 노스가 2년 집행유예, 1,200시간 봉사, 벌금 15만 달러로 가장 무거운 편이었지만, 항소심에서 절차상 문제로 뒤집혔다. 결국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부시 대통령이 남은 여섯 사건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이란-콘트라와 관련해 실제 수감된 사람은 세금 신고서에 해외계좌를 누락한 전 CIA 요원 한 명뿐이었으며, 형량은 16개월이었다.
3. 트럼프식 정치와 이란-콘트라의 기시감
“행정부가 관료 조직을 적대시한다, 의회를 배제한다, 정책을 중앙집권화하고 사유화한다, 사면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공공연한 거짓말과 부패에 대한 가능성…” 오늘날 트럼프 2기 행정부 초기 상황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란-콘트라 시절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렇다고 두 시점을 완전히 동일선 상에 놓기는 어렵다. 지금 벌어지는 행정부 권력 집중은 레이건 시절보다 더 방대해 보이며, 레이건의 예산관리국(OMB)이 연방 규제에 엄격한 비용편익분석을 도입한 것에 비해, 트럼프의 OMB 책임자는 연방공무원에게 “고통(trauma)을 주겠다”는 식이고, DOGE(정부효율부) 감축 논리도 불투명하다. 또 현재는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어 전체 그림을 단정하기에도 이르다.
그러나 맥퍼슨의 주장대로, 이란-콘트라는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의 전조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스캔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이런 식의 정치 행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였지만, 반대로 결과적으로는 “이 정도 하는 건 괜찮다”는 신호를 주었다. 1992년에 이란-콘트라 초기 역사를 쓴 테드 드레이퍼(Ted Draper)는 “미국의 헌정민주주의가 만약 붕괴된다면, 우리가 이젠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질지 더 잘 알게 됐다”고 쓴 바 있다. 실제로 이란-콘트라는 정치인들에게 큰 교훈을 안겼다 — “행정부 내부를 조금만 뒤틀어도 많은 편의를 얻을 수 있고, 법은 유연하며, 무리수를 둬도 큰 징벌이 없다.”
즉, 이란-콘트라는 후속 세대 정치인들에게 “괜찮다”는 선례를 남겼다. 스캔들 핵심 책임자들은 쫓겨나거나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이후 잘나가게 되었다. 예컨대 엘리엇 에이브럼스(Elliott Abrams)는 의회에 정보 제출을 두 번이나 누락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지만, 부시가 그를 사면했고,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이라크전 옹호)와 트럼프 행정부 1기(베네수엘라·이란 특사)에서 요직을 맡았다. 올리버 노스(Oliver North)는 보수 진영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폭스뉴스(Fox News)에서 진행자로 활약했다. 폭스 뉴스의 오너 로저 에일스(Roger Ailes) 역시 이란-콘트라 당시 조지 H.W. 부시를 위한 미디어 컨설턴트였고, “스캔들 관련 질문이 오면 언론 탓을 해 공격적으로 회피하라”고 조언했다. 이 방식은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널리 쓰이게 된다.
법률가들도 배우는 게 있었다. 에드윈 미즈의 법무부는 의도적으로 보수적인 젊은 법률가를 대거 영입해 연줄·경력을 쌓게 했다. 이란-콘트라 시기 법무부는 “아주 학구적 분위기”였다고 스티븐 칼라브레시(Steven Calabresi)가 회고한다. 그는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를 공동 창립하고 단일행정부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을 주창한 대표적 학자다. (2008년 저서에서 그는 부시의 이란-콘트라 사면을 “단일행정부의 승리”로 묘사했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에도 이들 보수 법률가들이 법조계와 학계를 장악했고, 연방리스트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 주최로 ‘권력분립’을 주제로 한 학술모임을 열었는데, 그곳에 이란-콘트라 담당 변호사들이 여럿 강사로 나왔다.
딕 체니(Dick Cheney) 역시 그와 사상을 공유했다. 레이건 행정부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란-콘트라 청문회를 주관한 의회 측 인사(와이오밍 하원의원)로서 행정부를 옹호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사건의 책임을 “의회가 외교정책에서 대통령 권력을 침해했기 때문”이라는 보고서 초안(소수 의견)을 내며 대통령 권력 강화 노선을 지지했다. 포드 행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하며 강력한 대통령제를 옹호해 온 그가, 이 사건을 기회 삼아 레이건 진영과 협력했고, 당시 보좌관이던 데이비드 애딩턴(David Addington)이 이후 그의 오른팔이 되었다. 9·11 테러 이후 부시-체니 행정부는 이란-콘트라 시절 식의 비밀·독점적 통치 방법을 테러와의 전쟁에 적용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때 이란-콘트라가 예고한 것과 상당히 닮아 있다. 대통령은 소수 측근과 준(準)정부 인사들을 통해 권력을 사유화하고, 연방 관료제는 부차적 존재로 전락했다. 의회는 이란-콘트라 때의 청문회만큼조차도 활발히 나서지 않는다. 결국 책임을 묻는 장은 법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것 또한 확실한 위안은 아니다. 현 대법관 아홉 명 중 다섯 명이 레이건 또는 조지 W. 부시 시절 행정부 변호사 출신이며, 이들은 2024년 7월 대통령이 공적 권한을 쓰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실상 면책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맥퍼슨이 말했듯, 이란-콘트라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서막이었다. 이 스캔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이런 식의 정치 행태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기회였으나, 그 반대 결과—“사실 괜찮다”—가 되어버렸다. 이란-콘트라에 대한 초기 종합역사를 쓴 테드 드레이퍼(Ted Draper)는 1992년, “만약 미국의 헌정민주주의가 언제고 전복된다면, 그 방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젠 좀 알게 됐다”고 평했다. 실제로 이란-콘트라는 정치인들에게 “행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큰 재량을 발휘할 수 있고, 법률은 유연하며, 무리수를 둬도 큰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교훈을 심어준 셈이다.
즉, 이란-콘트라 이후 “부정적 결과 없이” 법 테두리를 넘나드는 행태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지금의 상황이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 Bloomberg, Macro Tr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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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ent: Iran-Contra Paved the Way for Trump to Defy Democratic Norms
1. 이란-콘트라 사건은 어떻게 트럼프가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할 길을 열었나
이란-콘트라(Iran-Contra)는 미국 역사상 중요한 정치 스캔들 중 하나로 종종 꼽히지만, 워터게이트에 비해 그 영향이 제대로 평가되지는 못해 왔다. 워터게이트가 흔히 “대통령의 악행과 헌정 위기, 명확한 증거, 그리고 사임”이라는 극적 요소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다면, 이란-콘트라는 방대한 청문회 자료와 수사 기록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냉전 시대의 뒷이야기 정도”로 여겨지거나 “보수 강경파 안보 관료들이 몇 가지 법률을 약간 어겨 무기를 팔고 ‘자유 투사’를 도왔던 사건”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이렇다 보니 “대체 뭐가 문제였느냐”라는 반응도 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인기와 평판은 이 스캔들에도 크게 타격받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에 계속 관심을 두는 이들은 역사를 좋아하는 매니아들과 ‘시민 윤리’에 집착하는 일부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새로 나온 책은 이 같은 시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앨런 맥퍼슨(Alan McPherson)의 『The Breach: Iran-Contra and the Assault on American Democracy』(노스캐롤라이나대 출판부, 3월 4일 발간)는 이란-콘트라를 “냉전 말기의 일시적 해프닝이나 잘못된 국가안보 정책 사례” 정도로 바라보면 안 되고, 오히려 “민주주의 규범이 무너지는 핵심적 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맥퍼슨이 이 사건에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첫 탄핵 사태를 지켜보면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트럼프 2기(제2기 대통령 임기) 초기 몇 주가 지난 지금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맥퍼슨의 설명대로라면 이란-콘트라는 극단적 행정부가 미국 민주적 통치방식을 공격한 사례였고, 그 결과인 ‘부패, 기만, 불법, 책임회피 부족’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장면들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2. “이란”과 “콘트라”라는 두 개의 스캔들
이란-콘트라는 사실 두 개의 스캔들이 묶여 있는 사건이다. 첫째, “이란” 파트는 무기를 몰래 이란에 판매해, 그 대가로 레바논의 이란 우호 세력이 억류하고 있던 미군 인질을 석방시키려 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이란은 무기금수 대상이었으며, ‘무기수출통제법(Arms Export Control Act)’ 위반이기도 했다. 더구나 이 시도는 결국 효과가 없었다. 인질 3명이 풀려났지만, 곧바로 다른 3명이 잡혀 버렸다.
둘째, “콘트라” 파트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을 전복하려는 우익 반군(콘트라)에게 무기를 비밀리에 지원한 사건이다. 이는 미국 의회가 “미 정보기관이 콘트라를 지원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규정한 ‘볼란드 수정안’을 위반했다.
의회나 법률을 무시하려면 은밀히 움직여야 했고, 이는 곧 행정부의 관료 시스템을 배제한다는 의미였다.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 일부를 비롯한 소수의 백악관 측근들이 정책을 독점하며, 관(官)이 아닌 민간 동조자들이 핵심 역할을 맡았다. 맥퍼슨은 이렇게 비밀리에 운영된 구조에서 부패가 만연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이란에 무기를 팔아 억류자 석방을 노리던 과정에서 “더 엔터프라이즈(The Enterprise)”라는 소규모 민간회사가 수수료를 부풀려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챙기는 식이었다.
콘트라 지원 자금도 비슷하게 수상쩍은 방식으로 처리됐다. 국세 면제(nonprofit) 단체 “국가자유수호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Preservation of Liberty)”이 워싱턴 DC에서 기부금 행사를 열고 부유한 공화당 기부자들에게 세금 공제 혜택을 미끼로 돈을 모았는데, 1,000만 달러 중 실제 콘트라에게 전달된 건 450만 달러뿐이었다. 나머지는 직원들 몫이 되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3,200만 달러, 브루나이 술탄이 1,000만 달러를 지원했는데, 후자의 경우 잘못된 계좌번호를 안내받아 돈이 스위스 해운업계 거물에게 들어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현장에서 반군 지원을 맡던 전 CIA 요원 한 명은 “더 엔터프라이즈가 콘트라를 착취하고 있었다. 싸구려 무기를 비싸게 팔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 이러한 부패는 드물지 않았다. 맥퍼슨에 따르면 레이건 시절 백악관에서 100명 이상이 부패 의혹으로 사임·해임되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공직의 사익(私益) 이용을 막으려 여러 윤리법을 도입해 왔고, 정치적 중립·안정성을 지닌 관료제를 구축해 온 바 있다. 또한 입법·행정·사법 권력의 분립이 대통령 권력 남용을 막는 최종 안전장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정부 규제 철폐(deregulation)’를 핵심 의제로 내건 레이건 행정부는 이런 통치 철학과 정면 충돌했다. 레이건은 선거 유세에서 “워싱턴 관료들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고, 아이들을 버스로 이동시키며, 강력한 국방에 대한 요구를 조롱한다”고 비난했고, 취임 직후 곧장 공무원 채용동결과 연방정부 인력 감축을 지시했다. 같은 날, 법을 위반하면서 15명의 감찰관(Inspectors General)을 전원 해임했다(그리고 “쓰레기를 찾아내는 자(waste & mismanagement)에 대해 맹수처럼 굴길 바란다”는 이유로 자기 사람을 기용). 이후 여러 행정명령을 통해 모든 부처의 규제를 백악관 예산관리실(OMB)이 통제하도록 중앙집권화했다.
이는 대통령 권한의 새로운 해석, 즉 ‘단일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과 맞닿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헌법상 행정부 모든 권한은 오직 대통령에게 귀속된다. 이는 의회를 배제하고 관료제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대 법무장관이던 에드윈 미즈(Edwin Meese)는 “독립기관 자체가 위헌일 수 있다”고까지 말했으며, 이란-콘트라가 바로 그런 발상의 실천판이었다. 의회를 무시하고 정책을 백악관 내 소수 그룹이 장악했다.
통상, ‘대통령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만 관료는 선출되지 않았다’는 주장 아래 유니터리 행정부론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란-콘트라는 강력한 행정부가 얼마나 비밀리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이란과 콘트라 스캔들이 1986년 가을 터지자 관련자들은 문서를 파쇄·음성메시지 삭제·이메일 삭제 등 증거인멸에 나섰다(백업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지만).
여기서 결정적으로 레이건 대통령이 어느 정도 이 모든 과정(이란 무기판매 수익을 콘트라에 돌린 ‘디버전(Diversion)’)을 알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낼 ‘스모킹 건(smoking gun)’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스캔들의 핵심 이슈인 “무기 판매 수익을 니카라과 반군에게 흘려보냈다”를 대통령이 알았는지 여부는 흐지부지되었고, 그 덕에 레이건은 큰 정치적 타격을 입지 않았다.
사실 레이건은 처음엔 완전히 부인했다: “우리는 (인질 석방을 위해) 무기나 그 어떤 것도 교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거나, 최소한 오해를 부추기는 말이었다. 배우 출신이던 레이건은 사실관계 파악에 서투르거나 무심했을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그의 측근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지만,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고 평했다. 예를 들어 그가 일기에 “가짜 뉴스”와 “언론의 상어들”을 맹비난하며 음모론에 빠져 있다는 정황이 있다. 국가안보회의(NSC) 요원 올리버 노스(Oliver North)는 “(레이건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와 같은 ‘진실과 환상을 뒤섞는’ 태도가 결국 의회나 검사, 법정 등에서 사실 규명을 어렵게 했다. 레이건이 기억력이 나쁘다는 점도 한몫했다. (“내 마음과 최선의 의도가 말하길, 무기와 인질을 맞바꾸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증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라는 레이건의 명언이 이를 상징한다.) 극작가 스티브 테시치(Steve Tesich)는 1992년 『더 네이션(The Nation)』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콘트라를 “새로운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사회”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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